종이팩 와인과 체면 사이
막내아들 놈이 내 차를 가져간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넘었다.
처음엔 잠시일 줄 알았다. “아버지, 조금만 쓰겠습니다”라는 말은 늘 그렇듯 기간이 없다. 차가 없다는 건 이동의 불편함
이전에, 내 일상에서 하나의 리듬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그중 하나가 와인이었다.
집에 있는 와인 쿨러가 비어 가도 어쩔 수 없었다.
와인은 발로 사러 가야 하는 물건이다. 동네 마트의 진열대 앞에서 오래 서서 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바쁜 장남에게 근무 시간에 전화를 걸어 “애비 와인 좀 사러 같이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체면
이라는 게 있다. 자식 키워 본 사람은 안다. 체면은 생각보다 많은 걸 대신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아파트 상가의 CU 편의점이었다.
1977 브랜드 레드 와인. 임시방편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와인을 마신다기보다는 와인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병을
열었다고 해야 맞겠다. 와인 애호가에게 그 공백은 생각보다 크다. 술잔이 아니라 마음 한켠이 비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오늘, 휴일을 핑계 삼아 장남에게 전화를 했다.
“코스트코나 같이 갈까?”
와인을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안다. 아버지가 왜 코스트코를 가자고 하는지.
코스트코에서의 와인은 늘 현실적이다.
평소 즐겨 마시는 하디즈와 1869. 1869는 그곳에서 사면 한 병에 2만 7천 원이 채 안 된다. 같은 와인이 아파트 상가 편의점
에선 3만 5천 원, 근처 신세계 백화점에서도 비슷하다. 숫자로만 보면 고작 몇 천 원 차이지만,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그 몇 천 원은 와인 한 병의 격을 가른다.
연금이 넉넉하다면 조금 더 비싼 와인도 집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쥐꼬리만한 연금으로는 고급 와인은 늘 “다음에”로 미뤄진다. 와인숍의 조명 아래에서 그 병들은 늘 말끔하고 당당한데,
나는 계산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다.
그래서 나는 종이팩에 든 하디즈를 사랑한다.
5리터에 2만 5천 원 남짓. 보통 와인병으로 치면 한 병에 7천 원도 안 된다.
그렇다고 맛이 7천 원짜리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솔직히 말해 3만 원대 와인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허세를 걷어내고 혀만
믿는다면 말이다.
오늘 그 종이팩 하디즈를 네 박스나 샀다.
와인 쿨러를 가득 채우고 나니, 이상하게도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통장 잔고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와인은 종종 이런 착각을
준다. 숫자로 따지면 소박한 선택인데,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생각해보면 와인은 늘 그렇다.
병의 가격이나 라벨의 연도보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마시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숫자에 흔들린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확신한다. 종이팩 와인을 쟁여 놓고 “이제 좀 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충분히 좋은 와인 생활이다.
와인 애호가의 행복은 반드시 비싼 병에만 들어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종이팩 속에도, 아들의 빈 차 자리와 채워진 와인 쿨러 사이 어딘가에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