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박영숙 마르타
발행일2023-03-26 [제3336호, 3면]
우리나라 꽃 문화의 판도가 달라지던 그 시기에 성당에서의 모든 활동을 뒤로하고 ‘플라워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로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허리통과 전치 10개월의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큰 부상을 겪게 되었지만, 다행히 식물의 생명력을 이용한 자연 식이요법으로 호전을 보았습니다. 밥을 대신할 알약을 찾던 제가 ‘밥이 보약’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인스턴트식품을 피하고 자연식품과 운동, 호흡법을 생활화하며 치료받았습니다.
평생을 휠체어나 침대에 누워 살아야만 하는 환자들과 그 애환으로 넘쳐났던 재활치료병동에서 지냈습니다. 저 또한 허리통과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울 것이라며 적극적인 수술 권유를 받았던 심한 발목관절과 어깨 부상으로 그처럼 좋아했던 플라워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내려놓아야만 했고, 퇴원 후 맞닿은 현실 또한 두렵고 위험스러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체 저의 무엇이 그리도 잘못 가고 있는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오래전에 덮어 둔 성경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고, 집 근처 시골 성당으로 매일 미사도 다니며 수녀님 권유로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기적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던 심장 기능과 잃었던 목소리는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회복하게 되었고, 미사해설을 통해 차츰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몸으로 회복될 무렵, 또다시 저를 맴도는 질문은 ‘죽을 수도 있었고, 심한 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수 있었던 큰 사고였음에도 이렇게 살려 주신 하느님 뜻은 무엇일까?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 남은 저의 삶을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너무도 답답한 심정으로 하느님을 찾았던 피정에서 크게 잘못된 저의 신앙생활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 삶의 참된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차별 없이 대하시는 하느님’(「한국천주교 예비신자교리서」, 2016, 28면 참조)이시라는 교의를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고, 제가 습관처럼 찾던 하느님 중심의 뜻은 세상의 가치나 좋음으로 대치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 것입니다.
몸에 칼자국 하나도 없이 치료받은 제가 쌍날칼과도 같은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께서 그토록 지겨워하시는 우상들, 제 몸속 깊이깊이 박혀있는 주인이었던 나의 일과 나 중심의 생각들을 끌어내어 잘라버리는 수술을 받게 된 것입니다.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죄인의 아픔이었지만 그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 제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주님의 사랑을 통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첫영성체 이후 신앙생활 4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는 말씀을 깨닫고,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박영숙 마르타
제2대리구 명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