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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사 불양비(佛養碑)
불양비는 1773년(영조 49년) 양평 백성들로 이
루어져 조직된 당산계(堂山契)가 전답(田畓)을
기증한 것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여기서
불양(佛養)은 절에 기증했다는 뜻이다.
비석의 높이는 지붕돌을 포함하여 2.1m, 비신(
碑身)의 높이 1.5m, 비신의 폭 65㎝이다. 비신
에는 다량의 운모(雲母)가 섞여 있어 돌의 질이
좋지 못하다. 그러인해 고작 230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500년 이상 산 비석처럼 쭈글쭈
글해 보인다. 장대한 세월이 무심히 할퀴고 간
상처 투성이로 마멸이 심해 비문의 전체 해독은
불가능하다.
비석의 바닥돌과 지붕돌은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
범종각의 옆구리를 통해 안쪽으로 들어서면 법당인 대적광전을 비롯한 사나사의 중심부가 펼쳐
진다. 범종각 좌우로는 아름드리 나무들을 배치하여 바깥에서 경내가 잘 보이지 않게끔 하였다.
그럼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사나사의 내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 용문산의 첩첩한 산주름 속에 둥지를 튼 산사, 보우대사와 인연이 깊은 사나사의 내력(來歷)
용문산 서쪽 사나사 계곡 깊숙한 곳에 둥지를 튼 사나사는 923년(고려 태조 5년) 대경대사(大鏡
大師) 여엄(麗嚴)이 창건했다고 한다. 이때 5층석탑과 노사나불(盧舍那佛)을 만들고 노사나불의
절이란 뜻에서 사나사라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함규(咸規)의 양평함씨 세력이 양평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절의 위치는 그들의 성지인 함왕성과 함왕혈의 중간 정도가 된다. 그런 점을
볼 때 함씨세력의 지원으로 그들의 원찰(願刹)로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며, 대경대사는 함씨세력
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대경대사는 913년 용문산 남쪽에 용문사를 창건했다
고 한다.
법등(法燈)을 켠 이후 양평함씨의 지원으로 그런데로 유지된 것으로 보이며, 1367년(공민왕 16
년) 보우대사(普愚大師, 1301~1382)가 왕사(王師)의 자리를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140칸 규모로
중건하여 머물렀다. 보우대사는 고려 후기 불교의 1인자로 우왕(禑王) 때
다시 왕사가 되었으나
1382년 용문산 소설암(小雪庵)에서 입적(入寂)했다. 보우가 세상을 뜨자
우왕은 원증국사(圓證
國師)란 시호를 내렸으며, 그의 사리를 나눠서 그와 인연이 깊던 북한산
태고사(太古寺)와 이곳
에 부도와 탑비를 세워 안치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시절에는 절이 파괴되어 1608년(선조 41
년)에 단월 한방손(檀越 韓芳孫)이 재건했으며, 1773년 양평 백성들의 시주를 받아 불량답(佛糧
畓)을 마련해 절을 꾸렸다.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왜를 토벌하기 위해 의병(義兵)들이 용문산 부근에 집결하자 왜군은 그들
을 토벌한다는 이유로 사나사를 비롯한 용문산의 절들을 죄다 불질러버렸다. 1909년 승려 계헌(
戒憲)이 대방 15칸을 지어 꺼진 법등을 다시 켰으며, 1936년 광명전을 중건하고
1937년 법당 15
칸과 조사전을 지었다.
허나 6.25전쟁으로 간신히 가꾼 가람은 다시 잿더미가 되었으며, 1956년
양평함씨 일가인 단월 함문성(檀越 咸文成)과 주지승 김두준(金斗俊)이
합심하여 대웅전과 대방,
요사, 산신각, 함씨각을 재건했다.
1982년 5월에 포운당(布雲堂) 태공(太空)선사가 주지로 부임하여 요사를 신축하고 서울 봉은사
에서
일주문을 넘겨 받아 옮겨 세웠으며, 1993년 대적광전을 지어 법당으로 삼고, 기존의 대웅
전은 옆으로 옮겨 지장전(현재 미타전)으로 삼았다. 현재 봉은사의 말사로 조계종 소속이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미타전, 조사전, 함씨각, 범종각 등 6~7동의 건물이 있으
며, 함씨각은 양평함씨의 시조인 함왕을 모신 전각으로 함씨세력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음을 보
여준다. 법당 앞에는 으례 있어야 될 탑이나 석등(石燈)이 없으며, 다소 좌측 부분에 용천리3층
석탑이 이곳의 유일한 탑이다.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원증국사탑과 석종비,
용천리3층석탑이 있으며, 1773년 백성들의 불량답 시주를 기리고자 세운 불량비가 있다.
같은 산에 안긴 용문사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져 찾는 이도 많지 않다. 마을과도 1km 이상 거리
를 두어 속세의 기운을 경계했으며, 아늑하고 그윽한 산사의 분위기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멋
드러진 사나사계곡이 절 남쪽을 감싸 흐르고 새도 넘어오다 졸도할 정도로 높은 산에 에워싸인
첩첩한 산골로 번뇌도 졸졸 따라오기가 힘들 정도이다. 속세의 짐을 사나사계곡에 내던지고 속
세에서 잠시
나를 지우고 싶을 때 마음과 안구를 정화하며 잠시 안기고 싶은 그런 절집이다. |
※ 용문산 사나사 찾아가기 (2011년 5월 기준)
* 지하철 중앙선(용산~용문) 용문행 열차를 타고 양평역 하차. 열차는 보통 30분 간격이다. 중
앙선과 환승이 가능한 전철역은 용산역(1호선), 이촌역(4호선), 옥수역(3호선), 왕십리역(2,5
호선), 회기역(1호선), 상봉역(7호선, 경춘선), 망우역(경춘선)
* 청량리역에서 안동, 강릉 방면 열차를 타고 양평역 하차. 열차는 보통 1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소요시간은 30분 내외로 운임은 무궁화호 3,000원 / 새마을호 4,700원 (휴일 좌석요금 기준)
*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양평행 직행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양평터미널과 양평군청4거리(양평역 1번 출구)에서 용천리행 6-1, 6-2, 6-3번 군내버스를 타
고 용천리 사나사입구에서 내린다. 버스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버스 번호보다는 버스 정면에
꽂힌 '용천리' 행선판을 확인하고 탄다. 사나사입구에서 사나사까지 도보 35분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절까지 접근 가능, 절 밑에 주차장 있음)
① 서울 → 양평 방면 6번 국도 → 오빈교차로에서 6번 외곽국도로 좌회전 → 덕평2교를 건너
우회전하여 상평교차로에서 우회전 → 신애3거리에서 용천리 방면 농로로 직전 → 용천2리
마을회관 → 사나사
② 서울 → 양평 방면 6번 국도 → 고읍교차로에서 옥천 방면 좌회전 → 옥천면주민센터(옥천냉
면촌) → 백현4거리에서 직진 → 용천2리마을회관 → 사나사
★ 사나사 관람정보
* 사나사에서 용문산 정상까지 3시간 정도 걸리며, 용문사나 연수리 방면으로 내려 갈 수 있다.
*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 (☎ 031-772-5182) |
첫댓글 용문산 근처에는 대한제국이 망할때 많은 의병장들이 모여있던 곳이지요..
구한말 의병들의 본거지 및 6.25시절 처절한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지요.
세세한 자료정리에 늘 감탄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운영진님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