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프로야구처럼 복싱도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을 때가 있었다. 1970년대 프로복서 홍수환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는 집에 모여 경기를 시청했고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아마추어 복싱도 1984년 LA 올림픽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중흥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후 올림픽부터 거짓말처럼 금맥이 끊겼고 복싱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줄었다. 올림픽 복싱 마지막 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51) 관장은 “소통의 부재가 복싱의 침체를 키웠다”며 안타까워했다. 비록 현실은 암울하지만 한국 복싱은 조금씩 기지개를 켜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이상민 기자] “제가 올림픽 복싱 마지막 금메달리스트로 남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저를 기점으로 금메달리스트가 계속 배출될 줄 알았거든요.” | ▲ 김광선 관장이 서울 이문동에 위치한 김광선 체육관에서 섀도 복싱을 하고 있다. |
복싱 레전드의 깊은 한숨 속에서 한국 복싱의 현 주소를 가늠할 수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플라이급에서 김광선 관장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한국 복싱은 단 한 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배출하지 못했다. 1994년 서울과 경기도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광선 관장은 현역 은퇴 후에도 ‘복싱 다이어트’를 전파하는 등 복싱의 저변 확대를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또 이스턴오에스엠유라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 관장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공동으로 노조 온라인복지몰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2000년부터는 KBS 권투 해설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리우 올림픽이 열리는 현장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의 이승배가 은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페더급의 조석환이 동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웰터급의 김정주가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라이트급의 한순철이 은메달에 그쳤다. 서울 올림픽 후 무려 2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복싱에서 금메달은 사라졌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부진하다보니 관심과 지원이 뚝 끊겼다. 김광선 관장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복싱에 대한 스폰서가 많이 줄었다”며 “한국프로복싱연맹(KPBF)에 기금이 없으니 방송국에 지원을 하지 못하고 대회가 방송을 타지 않다보니 선수들에게 스폰서가 붙지 않는다. 이것이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복싱이 침체기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프로복싱연맹에서 기금을 만든 뒤 방송사와 협상을 하고 중계를 했다면 프로와 아마추어가 상생할 수 있었다는 게 김 관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프로복싱연맹에 돈이 없다보니 대회를 개최하기도, 중계 방송사를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 김광선 관장은 "프로복싱연맹과 방송사가 상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고 말했다. |
◆ 세계복싱 흐름 역행, 총체적 난국 초래 한국 복싱이 1990년대 이후 침체기로 접어든 원인으로 선수들의 기량 저하가 손꼽히지만 실력이 떨어진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김광선 관장의 생각이다. 선수들의 기량과 체력, 정신력이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 복싱이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암흑기에 빠져든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복싱은 박진감 넘치며 공격적인 경기를 추구한다. 선수가 공격적이지 않으면 심판진이 점수를 부여하지 않는다. 재미가 떨어지면서 올림픽에서 퇴출될 뻔 했던 레슬링처럼 복싱도 올림픽 제외 종목으로 분류될 뻔 했다. 공격하려 들지 않고 가드만 올리고 뒷걸음질치는 플레이는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한국 복싱은 이런 흐름에 역행했다. 2001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현 대한복싱협회) 재편 이후 상대와 떨어져 자신의 사정거리를 유지하며 싸우는 것을 장기로 하는 타입인 아웃복서가 양산됐다. 아무래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박진감 있는 경기가 전개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심판진들이 더 때린 선수보다는 덜 맞은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렸고 이것이 한국 복싱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김광선 관장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 경쟁력이 있었다. 그런데 아웃복싱을 장려하면서 해외 무대에서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키가 작은 데다 같은 신장에서도 팔이 짧고 스피드가 느려 아웃복싱에서 메달을 획득하기에 불리했다. 아웃복싱을 하면 안 되는 신체 조건을 가졌다. 반면 서양 선수들은 같은 키에서도 팔이 길고 스피드가 빨라 한국 선수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 ▲ 김광선 관장이 선수 시절 받은 우승 트로피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채점방식, 더 투명하게 할 필요 있어 채점 방식을 투명하게 해야 하는 것도 한국 복싱이 앞으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기존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유효타 개수만 점수에 반영됐다. 하지만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더욱 공격적인 경기를 펼친 선수에게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예를 들어 1라운드에 더 공격적이었던 선수에게 10점을 주고 상대선수에게는 8점 혹은 9점을 주는 방식이다. 이는 프로복싱 채점방식과 같다. 외국에서는 최초 5명의 심판이 점수를 매긴 후에 컴퓨터로 뽑은 세 명의 심판으로 승부를 가린다. 채점 과정에서 담합이나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다. 실제로 컴퓨터 추첨 방식을 채택한 뒤로 비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 김광선 관장은 “한국에서는 5명의 심판이 모두 승부에 반영되는 채점을 한다. 그래서 3대2 같은 스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대한복싱협회에서 부조리를 없애려 하고 감독 출신 심판을 뽑지 않으며, 심판 세미나도 여러 차례 열었지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공정한 판정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제가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를 할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을 KO로 눕혔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이겼다고 생각하는 경기를 펼쳐야 겨우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어요.” | ▲ 김광선 관장은 복싱 채점 방식을 외국처럼 심판 3명을 무작위 추첨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
◆ 지금은 인파이터 전환기, 가능성 보이는 선수 집중 육성해야 아웃복서가 양산됨과 동시에 한국 복싱은 끝을 알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인파이터를 키우자는 움직임이 뒤늦게 생기면서 조금씩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2013년 장윤석 대한복싱협회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런 여론이 형성됐다. 그 결과 함상명 등 인파이터 복서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함상명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팬텀금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가시적인 성과를 냈지만 김광선 관장은 한국 복싱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봤다. “지금은 선수들이 새로 바뀌는 과정이기 때문에 선수층이 조금 더 두꺼워져야 해요. 당장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건 무리고 인파이터들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정착하려면 10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한복싱협회와 프로복싱연맹에서 인파이터를 키우려 하기 때문에 각 체육관에서도 공격적인 선수들의 기량이 올라오고 있어요. 이건 정말 희망적인 부분이지요.(웃음)” 김광선 관장은 한국에서 매니 파퀴아오(필리핀)와 같은 세계적인 복서가 배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항상 가지고 있다. 복싱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스타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언젠가는 복싱이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 김광선 프로필 △ 생년월일 = 1964년 6월 8일 △ 출생지 = 전북 군산 △ 출신학교 = 군산남초-동북중-한양공고-동국대-동국대 대학원(석사) △ 아마추어 전적 = 202전 201승 1패 △ 프로 전적 = 8전 6승 2패 △ 수상 경력 - 1983년 로마 월드컵 금메달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플라이급 금메달 - 1987년 세계 월드컵 금메달 - 1987년 서울컵 국제복싱대회 금메달 - 1988년 서울 올림픽 플라이급 금메달 - 1986년 체육훈장 기린장 - 1986년, 1988년 백상체육대상 - 1988년 체육훈장 청룡장 △ 주요 경력 - 1994년~ 김광선 복싱 체육관 관장 - 1997년 육군사관학교 체육학처 전임강사 - 2000년~ KBS 권투 해설위원 - 현 이스턴오에스엠유 대표 - 현 국가대표선수회 이사 [취재후기] 체육관 관장과 기업체 대표, 방송 해설위원 등 김광선 관장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복싱계에 몸담고 있다. 복싱 다이어트를 개발해 복싱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김 관장은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살도 많이 빠진다”며 복싱의 장점을 설파한다. 저변이 확대되고 그 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발굴된다면 한국 복싱의 앞날은 밝다고 단언했다. 김 관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서 한국 복싱에 대한 기대감이 솟구쳤다. | ▲ 김광선 관장은 "당장 내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 복싱이 지금과 같은 길을 꾸준히 걷는다면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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