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ocutio – December, 2011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세례자 성 요한과 레지오
대림 시기의 정신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세례자 성 요한이 이 시기에 행한 주요 역할에 대해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그의 특별한 소명이 예수님, 즉 약속된 메시아의 오심을 위하여, 선택받은 사람들뿐마 아니라 온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것이 아직 그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준비하도록 성 요한보다 더 잘 도와주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 안으로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 바로 대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대림 시기 동안 우리 앞에 세례자 요한의 모습, 즉 성격, 사명과 말씀에 대해 매우 많은 성경 독서를 할애해 놓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의 총체적인 정체성은 예수님께로 향하는데 관련이 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레지오 단원의 삶과 소명에 대한 좋은 설명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전례력에 따라 수년간에 걸쳐 대림 시기를 이해하며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레지오가 레지오의 주요 체계 에서 세례자 성 요한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지위를 부여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얼마되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본에 따르면 세례자 성 요한은 요셉 성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느 수호자보다도 레지오의 신심 체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요한과 레지오의 위대한 교사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마리아보다도 우선입니다.
물론, 성모님은 레지오의 수호 성인이 아닙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모후이고 어머니이며 창설자이고 참으로 천주의 모친이시므로 성모님의 고유 등급에 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응대는 우리의 수호 성인들과 비교하여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우리 삶 안에서 우리가 세례자 성 요한에게 그에 걸맞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고 우리가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뗏세라에서 그에게 기도하지만 그가 진정 우리의 위대한 친구이자 본보기 중의 한 사람입니까?
교본은 그가 모든 레지오 단원의 모범으로, 선구자로서 주님보다 먼저 와서 주님의 길을 고르게 하였으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려는 굳센 힘과 신심의 표본이었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끝내 순교하였다고 말합니다.
레지오 단원에게 중요한 내용은 그와 성모님과의 특별한 관계입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에게 말할 때 그는 그의 어머니의 태 안에서 뛰놀았고 성모님은 그의 삶의 첫 달, 첫 주에 매우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모님과의 그 특별한 친밀함이 그의 전 생애를 결정지었습니다.
대림 시기이자 예수 성탄 대축일에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구절이 교본에 있습니다. 교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이야기는 우리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것이며, 세례자 성 요한이 첫 번째로 그 혜택을 입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레지오 단원들의 수호 성인이었으며, 레지오의 접촉 활동과 방문 활동을 비롯한 모든 레지오 활동의 특별한 수호자였음이 드러난다. 레지오가 펴는 모든 활동은 성모님의 중재자 역할을 협력해 드리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성 요한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그가 과거의 한 사람이고 현재의 우리 삶이나 활동과는 그리 밀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일 수도 있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유효하며 주님께서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성경의 성사 중에 있는 우리에게도 실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인물들이지만 그리스도 신비체의 역동적인 지체로서 우리의 삶과 활동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추기경 다니엘루Cardinal Danielou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한 글로 표현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오실 분”이라면, 세례자 성 요한은 언제나 주님에 “앞서 오는 분”이다. 역사 속의 그리스도 강생은 지금도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님, 성모님과 모든 성인이 우리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나 우리 자신의 가족 일원보다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현재의 우리들에게 더 가까우시다는 실제적인 깨달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인과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변화를 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새로운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성경과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점을 잘 설명해주는 오리겐Origen의 글을 교본에서 인용하며 결론을 맺겠습니다. ‘나는 세례자 성 요한의 신비가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서 여전히 실현되고 있다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라면 누구나 세례자 요한의 정신과 덕행을 자신의 영혼 안에 받아들여, 주님 앞에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마음 속의 거친 길을 바로잡고 매끄럽게 닦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례자 성 요한의 정신과 덕행은 여전히 주님의 오심을 앞질러 예비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기쁘고 거룩한 예수 성탄 대축일이 되기 바라며 우리의 주님께서 한 번 더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모든 은총과 축복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세례자 성 요한이 우리를 준비시켜 주기를 기원합니다.
레지오마리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