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봄인가 싶을 정도로 볕이 따사롭고 바람도 잔잔하니
몸도 나른하고 마음은 느긋하니 여유롭고 온화하다
배부르고 등따신 이런 날은 그저 웃통이라도 벗어놓고
널찍하니 앉아서 일광이로도 흡족하니 쬐고 있어야 한데
채면이라는 얄궂은 인사치레가 홀로 있어도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옹아리하는 어린애마냥 허둥지둥이다 ㅎㅎ
남쪽으로 볕이 따사로우면 우리집 배란다 난간에 설치된
실외기 아래 음침한 곳에는 비둘기 두마리의 사랑놀이가 한창이다
몇 번인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 둘러봐도 오간데 없이
잘 못 들었나 하면서도 등지고 앉았으면 뭔가가 푸드덕 대다가
인기척을 들면 언감생심 사라지니 나이(?)가 들면 헛소리도 들리고
헛된 말도 했던 말도 잘도 한다더니 벌써 그러나 싶어서 홀로
조심조심우조심인데 어쩌자고 이러나 싶어 기웃기웃 내다보지도 않고
그저 앉은뱅이 조리질하듯 고개만 쫘우뚱 기우뚱하는 꼬락서니라니...
창틀로 가려진 어둡고 구석진 틈아리 속이라 잘 쳐다보이지도 않으려니와
시큰둥하니 추운 날씨에 내다보더라도 깊은 속은 딜다보지않은 습성이라
어쩌자고 오늘은 멀리 하늘도 파랗고 공기도 맑고 햇볕도 고운지라
눈꽈리 뛰록거리면서 구석구석 뙈작거리는데 궁금하던 실외기 아래
비둘기 두마리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깃털을 부비기도 하고 부리를
마주대기도 하면서 정수리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콕콕 두드려주기도 하고
아주 사랑놀이에 정신이 팔렸는지 내가 눈여겨 내다보는데도 아랑곳 않으니
저희들끼리는 사랑 삼매경에 빠진듯 나의 착각일지라도...
이런 녀석들이었나 싶어 입끝이 약간 올라가면서도 헛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그러려니 하다가 놀랐던지 푸드덕 거리며 눈치빠른 한 마리가
날아가는데 덩달아 뒤질새라 두 마리가 다 날아간 자리 궁금하면 못참는지라
창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들여다봤더니 아주 장관이다 오만 똥칠을 다하고
빠진 깃털에 이겨지고 말라붙어서 뛔작뛔작 앵겨붙은 모습이 짙게 칠한
희번득한 모양새에다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지 가관이라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이걸 어쩌나 어떻게 처단해야 하나 냅둬야 하나 못 오게 조치를 강구해야하나
봄이 오고 여름이면 창문도 열어 놓아야 하는데 이런 걸 두고 창문이라도
열라치면 냄새와 분비물이 바람을 타고 집안으로 온통 들어올텐데...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에 오금을 저릴일도 아닌데 오싹하면서 그렇다고
당장 물을 길러다가 씻을 수도 없는 노릇 아랫집에 물세례라도 하게되면
난리속이 아닐지라 오로지 비오는 날을 기다려 좀 씻어내고 장단기 대책을
세워야겠다 싶어 우연찮게 궁금하면 통하더라고 뒷 동을 쳐다보는데
실외기 상단에 경사진 지붕과 그물망을 친 곳이 여러집이라
이 엄동설한 동지섣달에 쫓아내기는 인지상정에 반하는 일이라
춘삼월 날이 좀 우선해지면 가차없이 내쫓을 일이다
그 때까지는 내 그대들의 사랑놀이에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은 것처럼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은 것처럼 할 터이니 억지 무심할지언정
봄이면 가처분도 없을터이니 새 집을 마련하도록 말미를 주노라 ..
좀팽이의 대단한 인정이다 ㅎㅎ
첫댓글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 집으로 들어 가서 산다는 말이 있듯이,
고놈들이 잘 터득했을련지요?
안장다리로 울집 마당을 둘이 콕콕 찧는 걸 보면서 부러웠는데 노랫말처럼 다정이니 배울만 한 게 아닌가 느낍니다.
쫒아내면 아마도 까치집을 찾아 갈지도 모르는데,
요즘 키 큰 나무들을 보면 1가구 1주택이 많더이다.
시골은 나뭇가지로 50cm 정도의 길이로 집을 짓는데, 도시는 철사 옷걸이가 많아 위험하다는군요.
옛날에 들은 소리라서 어쩔까 싶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