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고르넬리오 교황
“회개하는 죄인을 교회가 다시 품어야 한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은 3세기 로마 교회의 어려운 시기에 교회를 이끌었던 목자이며, 특히 박해로 인해 신앙을 저버렸던 이들을 회개와 보속을 통해 다시 교회로 받아들이는 화해와 자비의 길을 지켜낸 교황입니다.
1. 박해 속에서 교황이 되다
로마의 평범한 사제였던 고르넬리오는 251년 4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가 한창이던 때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앞서 교황 성 파비아노가 순교한 뒤 약 14개월 동안 교황좌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박해가 워낙 심했기 때문입니다.
2. 배교한 신자들을 다시 받아들이다
당시 박해를 피하기 위해 신앙을 버리거나, 돈을 주고 로마 당국으로부터
이교 신상 앞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증서를 받은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박해가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를 원했습니다.
고르넬리오 교황은 이들을 무조건 내치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합당한 보속을 한다면 교회는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자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회개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 교회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3. 노바티아누스와의 대립
그러나 노바티아누스는 이러한 화해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배교죄는 용서받을 수 없으며 교회에도 그러한 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로마의 주교라고 주장하며 별도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교회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고르넬리오 교황은 이러한 극단적인 엄격주의와 분열을 거부하고, 회개하는 죄인을 다시 품는 교회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4. 성 치프리아노와 함께 교회를 지키다
이때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성 치프리아노도 고르넬리오 교황의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두 성인은 노바티아누스의 분열에 맞서 교회의 일치와 화해, 그리고 회개한 죄인에 대한 자비를 지켰습니다.
251년 10월 로마에서 주교 약 60명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고,
이 회의에서 노바티아누스의 주장을 단죄하고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았습니다.
5. 다시 박해를 받다
252년 갈루스 황제 때 박해가 다시 시작되자 고르넬리오 교황은 체포되어 첸툼첼레(오늘날의 치비타베키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고난을 겪은 뒤 253년 6월 순교자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유해는 훗날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칼리스투스 카타콤바로 옮겨졌습니다.
그의 묘비명은 라틴어로 기록된 초기 교황 비문 가운데 하나로, 그를 ‘순교자’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6. 왜 성 치프리아노와 함께 기념할까요?
고르넬리오 교황과 치프리아노 주교는 노바티아누스의 분열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지지하며
교회의 일치와 신앙의 진리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두 성인의 깊은 우정을 기억하며 9월 16일 함께 기념합니다.
🌿 오늘 우리에게 주는 묵상
성 고르넬리오의 삶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실수하고 때로는 신앙적으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넘어진 사람을 영원히 밀어내는 공동체가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이 다시 일어나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
다시 돌아오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처럼 우리도
판단보다 자비를, 배척보다 화해를, 분열보다 일치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성 고르넬리오 교황의 믿음과 용기를 본받게 하소서.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회개하는 이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 안에 분열이 있다면 화해의 길을 열어 주시고, 서로의 부족함을 품으며 교회의 일치를 지켜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성 고르넬리오 교황 순교자와
성 치프리아노 주교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치프리아노 주교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9월 16일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함께 기념
“교회의 일치를 지키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진리를 증언한 목자”
성 치프리아노(Cyprianus)는 3세기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교회의 주교이자 뛰어난 신학자이며,
박해의 시대에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순교의 영광을 얻은 성인입니다.
그는 특히 교회의 일치, 회개하는 죄인에 대한 자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사랑을 강조한 목자로 기억됩니다.
1. 부유한 이교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성 치프리아노는 200~210년경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부유한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래 이름은 타스키우스였으며, 뛰어난 수사학 교사이자 법률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명예와 부유함만으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46년경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를 신앙으로 이끌어 준 연로한 사제 카이킬리우스를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카이킬리우스라는 이름을 덧붙였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 그는 곧 사제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2. 박해 속에서도 교회를 돌보다
250년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자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고,
반대로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배교한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치프리아노 주교는 신자들의 권유로 잠시 피신했지만, 결코 교회를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신처에서 편지를 보내고 사목적인 지시를 내리며 교구와 신자들을 계속 돌보았습니다.
박해가 어느 정도 지나간 뒤에는 카르타고로 돌아와 교회를 다시 세우고 신자들을 위로했습니다.
3. 배교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박해가 끝나자 가장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박해 때문에 신앙을 버렸던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치프리아노는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무조건 내치는 극단적인 두 입장을 모두 경계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배교자에게는 합당한 참회와 보속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회개하는 사람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카르타고 교회 안에서도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4. 교회의 일치를 지키다
이 시기에 로마에서는 노바티아누스가 배교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교회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치프리아노는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의 일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251년에
📖 《가톨릭교회의 일치》
📖 《배교자들에 관하여》
라는 중요한 저서를 저술하여 신자들에게 교회 안에서 일치를 이루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함께 노바티아누스의 극단적인 엄격주의에 맞서 교회의 일치를 지켰습니다.
5. 성 고르넬리오와의 깊은 우정
성 치프리아노와 성 고르넬리오는 매우 어려운 시대에 서로를 지지했습니다.
두 성인은 배교자 문제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도
“진리를 지키되,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열려 있어야 한다.”
는 교회의 길을 함께 지켰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두 성인을 9월 16일 함께 기념합니다.
두 성인의 우정은 단순한 인간적인 친분을 넘어, 교회의 일치와 복음의 진리를 함께 지켜낸 신앙의 우정이었습니다.
6. 흑사병 속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인의 사랑
252년 아프리카에 흑사병이 크게 퍼졌습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때문에 하느님께서 분노하여 전염병을 내렸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치프리아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자들에게 공포와 증오 대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돌보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는 전염병의 한가운데서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7. 마지막까지 진리를 증언하다
생애 말년에는 이단에서 받은 세례의 유효성을 둘러싸고 로마 교회와 의견 차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논쟁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계속 논의되었으며,
치프리아노 자신은 마지막까지 교회의 신앙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리를 증언하려 했습니다.
257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다시 시작되자 치프리아노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유배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258년 9월, 총독 앞에서 이교의 신에게 제사를 바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 성 치프리아노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① 교회의 일치
어려움이 생길수록 서로를 갈라놓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② 회개하는 사람을 위한 자비
잘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만이 아니라 회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입니다.
③ 사랑으로 증명하는 신앙
신앙은 말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사랑의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 오늘의 묵상
성 치프리아노는 부유하고 성공한 세상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학식과 재능을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고
교회를 섬기고, 신자들을 위로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주님께 봉헌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묵상해 봅니다.
나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다시 품을 수 있을까?
나는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는가?
성 치프리아노의 삶이
우리에게 진리를 굳게 지키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신앙을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 기도
**주님,
성 치프리아노 주교의 굳센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의 일치를 사랑하게 하시고, 회개하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며,
고통받는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성 치프리아노 주교의 전구를 통하여 저희에게 굳센 믿음과 사랑을 주소서.
아멘.**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고르넬리오 교황 순교자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
두 목자는 박해와 분열의 시대에도 교회의 일치를 지키고,
회개하는 이에게 자비의 문을 열며, 마침내 자신의 목숨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참고로 두 분 모두 실제 순교일은 9월 14일로 전해지지만, 이날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므로
전례상 두 성인의 기념은 9월 16일에 함께 거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