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논문은 2022년 5월 21일 이탈리아 카포스카리대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한 시조 번역 국제 워크숍 “Translating the Korean Sijo Genre-Challenges and Possible Solutions”에서 발표한 글을 보완한 것이다. 이 워크숍은 시조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카포스카리대학교 한국학 전공 학생들에게 시조의 미학을 소개하 고 함께 시조 번역의 방향을 탐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송지언).
* 송지언 교수의 논문 가운데 일부를 아래와 같이 수록한다(홍성란).
시조 형식과 여백의 미학에 대한 탐구
-시조의 이탈리아어 번역을 위한 시론*
송지언(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국문초록>
본 연구는 이탈리아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학자들이 한국의 시조를 번역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 시조는 정형시이기 때문에 내용뿐만 아니라 고유한 형식 을 잘 살려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조의 형식 미학에 대해 탐구하고, 영어 번역에서 시조의 형식을 주의 깊게 표현한 사례들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직접 시도한 이탈 리아어 번역 시조 세 편을 소개하였다.
이 논문은 시조의 중장과 종장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상의 ‘여백’이 시조에 긴장감을 부 여하고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함으로써 시조의 형식을 완성한다는 점에 대해 고찰하였다. 특히 잘 선택된 종장 첫 마디의 어휘가 한 편의 시조에서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하는지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것이 ‘여백’의 미학이라고 할 때, 이 부분은 그러한 ‘여백’을 함축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 된다.
그러므로 시조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시조 종장의 첫 마디가 시각적으로 부각되도록 번역하는 방식을 탐색해볼 것을 제안한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 오록(K. O'Rourke)의 5행 번역 방식이 있다. 시적 종결의 표지로 이 부분에 대한 강조가 적절히 표현되지 않으 면 번역된 시조가 시적 긴장을 잃고 짧은 산문으로 퇴색될 수 있다. 이 논문이 시조를 이탈리아어로 또 다른 언어로 아름답게 번역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주제어: 시조, 시조 번역, 시조의 이탈리아어 번역, 시조 형식, 여백, 케빈 오록
애기메꽃
홍성란
한때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지
날 위해 돌돌 감아오르는 줄 알았지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치마 계집애
<영어 번역>
Bindweed flower
Once I really knew
how life revolved around me
knew how life turned and turned around me little girl in a pink ch´ima
crouching on a path by the field - David R. McCann 번역48)
<이탈리아어 번역 1>
Il bocciolo di campanula
Una volta pensavo che Il mondo girasse per me.
Pensavo che roteasse girando e rigirando per me. Sul sentiero accovacciata
Una ragazzina dalla gonna rosa. - Daniela Carlino 번역49)
2022년 봄 학기에 필자가 방문학자 자격으로 참여했던 카포스카리대학교의 시조 번역 강의를 수강하고 번역 과제를 제출한 학부 3학년 학생으로, 담당 교수였던 두르소 교수 님으로부터 번역 과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2명의 학생 중 한 명이다.
<이탈리아어 번역2>
Il convolvolo
Una volta/ pensavo che/
Il mondo/ girasse per me.
Pensavo/ che il mondo/ stesse girando e/ girando per me.
Sul sentiero/
una ragazzina/ dalla gonna rosa,/ accovacciata.
이탈리아어 번역시를 행 구분과 연 구분에 따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한 때 나는 생각했다/ 세상이 나를 위해 돈다고
세상이 나를 위해 돌고 또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솔길 위에/ 분홍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 쪼그려있다
4음절/5음절/
3음절/6음절
3음절/4음절/5음절/6음절
4음절/
6음절/6음절/4음절(5음절)
현대시조 <애기메꽃>은 맥켄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현대시조인만큼 원 시의 행 나누기와 연 나누기를 대체로 지켜서 번역하였는데, 시조 종장에 해당하는 세 번째 연은 원 시와 다르게 번역하였다. 첫 번째 이탈리아어 번역 은 카포스카리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작품이다. 함께 강의 를 수강한 여러 학생이 이 작품의 이탈리아어 번역을 완성하여 제출했고 그 중에서도 담당 교수로부터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은 작품들이 2편정도 더 있 었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것이 가장 공감 가는 번역이었다. <애기메꽃> 원문은 시적인 간결함을 유지하면서도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국어로 표현되 었는데, 원문에 따라 군더더기 없이 가장 기본적인 단어와 문법을 구사한 번 역이 바로 이 학생의 번역이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번역인 두 번째 이탈리아어 번역은 이 학생의 번역을 율격 면에서 다듬고 제목을 더 정확한 용어로 바꾸는 정도의 작업을 더한 것이다. 또한 <애기메꽃>은 애초에 시인이 가곡창 5장 형식에 따라 시행을 배열한 작품이 므로, 이탈리아어 번역에서는 그 점을 살려 번역하였다. 특히 단독 행으로 배 치된 ‘들길에’ 부분이 번역문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들길에’를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서 ‘Su una strada di campagna’라고 풀어서 번역한 학생도 있었지만, 종장의 첫 마디는 간결해야 하므로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마무리 : 시조 번역에 대한 제언
지금까지 시조의 각 장 사이 특히 중장과 종장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상의 ‘여백’이 시조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함으로써 시조의 형 식을 완성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잘 선택된 종장 첫 마디의 어휘 가 한 편의 시조에서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하는지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확 인했다.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것이 시조의 ‘여백’이라고 할 때, 시조 종장의 첫 마디는 그러한 ‘여백’까지 함축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고시조와 현대시조 작품들을 살펴보면, 시조 종장에서 고양 (elevazione)과 전환(conversione)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 단순히 초, 중장의 의미와 반대가 되거나 새로운 의미를 종장에서 표현 한다고 해서 ‘전환’의 효과가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종장 첫 마디에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가 사용되는 사례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로 볼 때, 전환이 종장의 전반적인 내용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 다. 종장의 첫 마디에서는 시상의 도약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높이 뛰기 위해 서는 반드시 몸을 움츠리고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는 초, 중장의 내용과 단절되어 긴장감을 주고, 풍부한 의미가 함축되어 무게 감이
실리는 단어가 선택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 살펴본 작품들에서는 주로 시간, 공간 또는 시점의 변화가 드러나는 단어들이 선택되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표현이 있다. 용을 그릴 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음으로써 그림 속 용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뜻으로, 명작을 완 성하는 마지막 손길을 말한다. 시조 종장의 첫 마디도 시조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것과 같은 특별함과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시조를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이 부분이 내용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번역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논문에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가곡창 의 5장 형식에 착안한 5행 형태의 번역을 제안하였다. 5행은 작품에 따라 6행 으로 변경될 수도 있겠지만, 종장 첫 마디를 한 행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시적 종결에 대한 표지로서 이 부분에 대한 강조가 적절히 표현되 지 않으면, 번역된 시조는 자칫 시적 긴장감을 잃고 짧은 산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의 형식에 운율과 구조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할 때, 운율은 언어가 바 뀌면 필연적으로 함께 변할 수밖에 없지만, 상대적으로 구조는 언어가 변해도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시조를 번역할 때, 운율은 시조의 고유성을 고집하기 보다는 번역되는 언어가 가진 시적 아름다움을 살리는 방식으로 번역하고, 구조는 한 작품의 의미 전개를 섬세하게 살펴서 시조의 시조다움을 살리는 방식 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조 영어 번역의 역사가 이미 100년을 훌 쩍 넘었다. 이 논문이 시조가 이탈리아어로 또 다른 새로운 언어로 아름답게 번역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466 韓國詩歌硏究 第58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