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박성은 리아입니다.
이번에 다녀온 순례지는 남한산성 순교 성지입니다.
몇 년 전 친구와 사진 찍으러 남한산성에 갔다가 성지를 보고 '아!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생각만 했었는데 다시 방문하게 된 계기는 주일미사 주보에 남한산성 순교 성지에 관련된 기사가 3주 연속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남한산성 순교 성지에 대해 검색해 보니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이자 광주 유수부의 관아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박해가 일어나면 경기도 일대의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감옥에 갇히고 심문과 고문을 받았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부터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 하다 순교했습니다.
현재 교회 자료에는 행적이 확인되는 순교자가 70명 이상, 실제 순교자는 약 200~300명으로 추산됩니다. 다만 당시의 문초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이름과 행적을 모두 알 수 없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 이 성지의 아픈 특징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기억하면 좋은 분이 복자 한 덕운 토마스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한 덕운 토마스는 남한산성으로 끌려와 순교했습니다. 교회 기록으로 확인되는 남한산성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그리고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가족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 김성희 암브로시오, 정은 바오로와 정양묵 베드로 등도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주교회의)**
특히, 남한산성 순교 성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순례 코스입니다. 순교자들이 실제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초를 겪고 처형을 당한 순서를 따라가며 순교자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묵상하며 걷는 순례 코스입니다.
순교자 현양비→포도청• 감옥터→연무관• 제승헌→시구문→동문 밖 형장 순서입니다.
저는 순례코스가 있는지 모르고 순교자 현양비와 성당과 성당 주변 십자가의 길, 야외 미사터만 담았는데 이렇게 코스가 있는지 나중에 알고 연무관 순례 후 시구문을 찾다가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답니다. 다음엔 꼭 순례하고야 말겠습니다.!!
성당 입구에서 만나는 순교자 현양비입니다. 남한산성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신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복자 한 덕운 토마스를 포함해 약 30여 명의 순교자와, 기록에 남지 않은 300여 명의 무명 순교자를 함께 현양하고 있습니다.
현양비 옆에는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던 한 덕운 토마스의 영성을 담은 '남한산성 피에타'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형장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남한산성 피에타 옆에 현양비를 마주 보고 있는 곳, 오래된 담장과 나무 그늘 아래 작은 벤치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아픈 역사를 품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마음을 고요히 내려놓습니다.
성당 입구에 성지 게시판이 있습니다. 그곳에 QR을 찍으면 순례 코스가 뜹니다.
전통의 멋을 품은 남한산성 성당입니다.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잠시 기도하는 공간입니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과 바람을 주님께 조용히 맡겨봅니다.
성전의 제대 뒤에는 조선시대 죄인에게 씌우던 칼을 쓰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내 생각엔 수없이 많은 하얀 비둘기 조각들이 주님에게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은 여러 가지입니다만 제 느낌을 기록해 봅니다.
십자가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은 마치 순교자들의 희생이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 나아가는 듯합니다. 그들의 희생이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믿음의 빛으로 남아 있길 기도합니다.
성전에서 나와 성체 조배실로 갔습니다.
한옥의 소박하고 고요한 공간 안에 마련된 성체 조배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잠시 세상의 분주함을 내려놓아 봅니다.
성체 조배실을 나와 성모님께 인사하고 십자가의 길로 올라갔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나무데크를 오르다 보면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기도와 묵상을 받치며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 해 집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 백지사 조형물이 있습니다.
백지사란 뭘까?
백지사란 물에 적신 한지를 얼굴에 여러 겹 붙여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잔혹한 형벌입니다.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았던 순교자들.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이곳은 야외 미사터입니다.
탁 트인 야외에서 하늘과 자연을 마주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곳입니다.
성당 안에서 드리는 미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하느님의 창조물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곳... 저도 야외 미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당을 나와 순례 코스에 나와있는 연무관으로 향했습니다.
연무관은 조선시대 남한 산성에서 군사들의 무술 훈련과 관련된 일을 하던 건물입니다. 남한 산성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공간입니다. 하지만 박해 시대 당시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신문과 고문을 받으며 박해자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고백했던 고난의 장소입니다.
연무관의 주변에는 몇 백 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보호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박해받던 순교자들을 지켜보고 있었겠죠?
나무는 말이 없지만, 오랜 세월을 품은 모습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모델은 순례를 함께 한 제 친구입니다**
이번 순례는 연무관까지 이지만 다음엔 감옥터와 시구문, 동문밖 형장까지 순례해 보겠습니다.
순례는 단지 한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그곳에 남겨진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내 마음을 돌아보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순교자들의 굳건한 믿음을 기억하며, 오늘 나의 믿음도 조금 더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