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동인시집 [☆세월은 가고☆]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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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고]
소금꽃 동인시집 / 2018.제8집 / 오늘의문학사(2018.06.30)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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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고
김송하
낙엽을 떨군다는 것은
꽃잎을 떨구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꽃잎이 지는 것이
열매를 만드는 막중함을 말하는 것이라면
낙엽이 지는 것은
무한한 침묵으로
나이테의 금을 그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덜컹덜컹 진눈깨비 첫눈이 온다
숲속의 나무들 체념을 한 듯
꼼짝 않고 서서 눈을 맞고 있다
바람의 노래 따위는 이제 더 이산 위로가 아니다
여름날의 무성함은
추억의 일부분 일 뿐이다
아직 떨구지 못한 잎새들
초상처럼 흔들고 있다
천하만상을 품어 안고
묵묵히 계절을 맞고 있는 숲,
경외로울 뿐이다
적송 외 1편
김송하
이 붉어 적송이라 했다지
붉어도 너무 붉다
간밤 봄비에 번들번들 붉다
푸르다 그 이파리
혹독한 겨울
속살을 지내고도
절대 푸르다
참 조화속이다
붉은 속살애 푸른 이파리
부처님 속살도 붉은가?
별을 헤는 밤
김송하
비우자 하나
가진 것이 너무 많고
잊고자 하나
색깔이 너무 붉다
만나고 헤어짐이
자연의 이치라 하나
이별만 있고 아픔이 없다면
그 만남 또한
허무하리라
오늘도 그 별을 바라보며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작은 점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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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피부염 외 1편
김일호
처음엔 계절병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고질병임을 알고
어딴 처방도 믿지 않았습니다
내 한 몸 건사한다 해서
아팠던 과거가 사라지지지 않으리라
밤마다 돋아나는 부스럼에
날카로운 손끝만 파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기필코 도려내야 할 환부였기에
속속들이 밖으로 들어내고자
불면의 고통과 싸워야 하였습니다
알몸으로 문밖에 나설 용기나
피범벅이 되도록 긁어대는 자학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틈새에 지쳐 누워
아른 새벽 창문을 열어보지 못한 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건조한 울음만 토해냈습니다
고등어
김일호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삶이었으리라
깊고 차가운 바닷물 속에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살아왔으리라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물망에 얽혀 뭍으로 끌려와
시장의 좌판에 눕게 되었으리라
세상구경꾼들은 제 몸값도 셈하지 못하는 주제에
한 마리에 천원 값으로
두 마리 토막쳐 달라는 흥정이 서러웠으리라
생선장수 아주머니는
빛이 없는 고등어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망설임 없이 칼날을 내려치고
고등어는 이미 바다를 떠날 때 죽어 왔으리라
시장판의 떠들썩한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지폐를 헤아리는 주머니를 엿볼 수 없는
죽은 눈의 고등어가
토막난 채 검정비닐 봉투 속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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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낮은 곳으로 외 1편
여규용
등 돌려 비켜앉은 시앗의 맘이면
삶이 얼만큼 고달팠는지 모른다
인생은 앞으로 모른다
내 맘대로 온 갓도 아닌데
힘겹게 살다가
때 되면 그렇게 사라져 간다
낮게
더 낮게 처음 그 자리로
보란 듯이 돌아가는 모습
깊은 대지의 주름엔
고달픈 삶의 흔적만
가득하다
산 위에 서다
여규용
정상에 섰다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내겐
당신이 있으니
두렵지 않다
* 퇴직을 앞두고 마음을 다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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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도 물이 든다 외 1편
오영미
땅바닥에 불이 구른다
오색의 이름으로 채색된 이 가을
불구가 된 아이의 눈을 어쩌나
연못에 거꾸로 눕는다
불덩이의 산이 통째로 빠진다
물은 그의 존재를 말없이 허락하고
몸이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
온통 그을린 알몸이 드러난다
나무는 달아나지 않는다
햇살 수줍음에
발갛게 달아 뜨거워져도
나목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아집
빛이 있는 한
언제나 물속에서 헤엄친다
나무는 숨지 않고
어둠 속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꾸물거릴 때 오히려
오영미
휘발유 냄새가 난다
조간신문이 테이블에 누워 있다
목 없는 헬멧이 천정을 향했다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모든 호흡기는 반듯한 걸까
머리의 반은 헬멧 속에 있다
눈, 코, 입은 정상인가
타의적으로 감겨 있군
무언으로 우물거리는 입
헬멧의 끈이 조여 왔을 것이다
장갑과 목도리는 올이 풀려 있다
우리의 눈으로 그것들을 확인할 때
탁자 위 신문들이 벌떡 일어났다
나의 휴식은 목 없는 채로 처박히는 것
바닥에 뒹구는 유령의 조각들
신문 속 글자들이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따라나서는 것은 나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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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가 외 1편
유준화
오래 묵을수록 껍데기가 두꺼워 지능겨
저 삼백년 묵은 느티나무 좀 봐
두꺼워진 껍데기 안에 바람구멍이 생겨
별별 이상한 풀벌레 소리가 나지?
깊은 바다에 내려가 호미질하면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비소리가 난다
숨비소리를 습관처럼 내던 할머니는
생의 밑바닥을 얼마나 긁다가 가셨을까
엄니도 몸에 바람구멍이 생겨
시리다시리다 하다가 가셨는데
두껍지도 못하던 엄니 몸뚱이에서 나던
논구밭 돌덩이에다 호밋날이 내지르던 숨비소리
그가 그런다,
너도 이제 껍데기가 두꺼워졌으니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남의 살 먹고 살 만큼은 살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숨비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린 줄 아느냐고
귀뚜라미는 겨울에 운다
유준화
겨울밤에는
네 울음소리만 들려
너는 보이지 않고
네 울음소리만 목 터지게 들려
벽 뒤에 숨어 울어야 하는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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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외 1편
윤문자
바람이
소녀의 머리칼에
나비핀을 달아주자
소녀는 금새
꽃이 되었습니다
거울보기
윤문자
언재부터인가
거울 속에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거울을 닦아도
그 얼굴을 찾을 수가 없다
거울은 왜
나를 숨겨버린 것일까
먼 젊음이
나를 따돌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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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물닭 외 1편
이흥우
가시연 맷방석에
쇠물닭 병아리들
모정이 정겨워서
붙잡는 연인 발길
연꽃도
등 밝혀 웃어
행복으로 폈어라
눈사람을 보며
이흥우
새 하얀
모습으로
늘 곁에서 다정했지
문지방
서성이는
봄 햇살 간지럼에
거울 속
내 모습 보듯
추해지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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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외 1편
임종본
아직 어둠이 일어서지 못한 창가에
청음淸音으로 달려드는 새소리
어서 깨어나라고
삼국*의 잔치마당으로
설어 걸어가라고
가슴을 열어
가을을 입고
가을을 신고
가을을 쓰고
가을을 품어보라고
밤새 날아온 가을 철새의 노래로
물드는 여명이 사뭇 호걸스럽다.
* 삼국: 예산국화, 예산 국수, 예산 국밥
길
임종본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어머니 마음만큼
홀대 받지 않을
길이 있다
당신을 위하여
세속에 묻힌 역사가 있듯이
내 안의 불기둥 되어
숙련으로 만나는 광대함
때로는 위안이 되고
마침내 곳곳마다
나침판이 되어주는 길
한결같은 너와 나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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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耳鳴 외 1편
조현곤
언제부턴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친구 아닌 친구처럼 오래도 버성겨 산다
내가 그리 바쁠 땐
잠시 자리를 비켜주고
외롭고 슬픈 땐
옆에서 위로라도 해주는 양
쉴 새 없이 매미소리를 낸다
이제는 눈치도 빠른 것이
화라도 내지 싶으면
슬그머니 사라져
그림자마저 꼬리를 감춘다
해를 낚다
조현곤
정동진 새벽 검푸른 바다
동동 떠 있는 그림자는
초개들을 태우기 위해
붉은덩이 잉걸불로
두둥실 솟아오른다
때마침
지나가던 한 척의 고깃배가
매혹덩이를
멋지게 끌어 올린다
낚였구나,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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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바늘 외 1편
최관수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려면
지닌 채로 달려들 순 없겠지
시간의 틈 없이 지나려는 집념과
긴 세월 버티고 서 있을 때
탈진이 되고 스러져 형태를 잃고
결국은 흐느적거리다 진토가 되어
행여 바람 결 따라 요행히도
바늘구멍을 꿰어 지날 수 있을까
부자가 지닌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굶주림으로 종잇장 같은 생명으로
하나님을 뵈올 올곧은 영혼의 뼈로
육체의 고통을 촉처럼 십자가에 걸고
진토가 된 후에 틈 없이 시간을 꿰매다가
행여 수천의 어느 바람결에 실려
천국 문을 사뿐히도 넘고 넘어
하늘 시냇가 백성이 오되겠지
붓글씨
최관수
글씨를 쓴다
산과 강이 흐른다
산맥 따라 뼈가 있고
강물 따라 피가 흐른다
글씨를 쓴다
글씨는 글의 씨앗
착한 마음시키면
부드러운 곡선
나쁜 마음 번지면
뾰족해진 창
글씨를 쓰신다
자연에 글씨를 쓰신다
자연은 땅에다 쓰는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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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1 외 1편
황한섭
식당 설거지 일을 나가는 마누라의
고단한 등 뒤에 철썩 붙어 앉은
나비 한 마리가
제 집처럼 편해 보이는데
어제도 그녀의 출 길을 마중하던 나비
그 짧은 생명줄 속에 우린 또 하나의 인연일가
아마도 전생의 인연일 게다
내가 당신의 아들인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애인인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핏줄인 것처럼
너의 가슴에 반짝이는 별이 되고
한 송이의 장미꽃으로
피어나고 싶은 것은
아마 천년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꽃편지
황한섭
가을 하늘 뭉게구름
넌 염소 구름
그 마을에 사는
장난꾸러기 소념
가을 날
노을빛으로 물든 저녁 하늘
귀에 익은 풍금 소리
저. 푸르던 바다
아기 구름 떠 있고
통가타를 치는 소녀의 긴 머리가 바람에 날리고
햇살 아래
삐뚤삐뚤
손으로 눌러 쓴
꽃 편지를 읽고 있는 어린 병사의
새까만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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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동인詩集 [※세월은 가고※]
[ 발간사 ] -
삶의 희망 그 별빛이 되다
초록의 향기 물씬한 성하의 절기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숲속의 나무들 영그는 나이테를 읽으며 깊어지는 소금꽃 시문학의 별빛이 되기 위해 긴 밤 지새우는 날갯짓으로 깨어난 아침 오늘도 마냥 경이롭기만 합니다.
삶의 귀로에서 만난 동인의 인연 앞에 항상 겸손하고 숭고한 선배님의 그 뜻을 배우며, 8년이란 세월이 그림자를 남기고 항상 가까이에서 서 있습니다.
우리 동인지도 어김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와 그 자리 매김의 다부지게 굳혀가고 있으며 두렵고도 행복한 사명감으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인들 속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시집의 글밭에 반딧불 같은 불빛으로 날아오르기 위하여 각고의 시간을 아껴주신 동인 여러분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며, 존귀한 제호『세월은 가고』를 허락해 주신 김송하 시인님께 더욱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바라건데 이 문집이 인연이 되어 미래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내일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별빛 같은 희망을 내 걸어 봅니다.
‘시는 미래다’
사람들은 간혹 시를 잊어버리지만 시는 사람들을 잊어본 적이 없다는 선인들의 뜻을 새기며, 낯익은 여름 풍경 속에 풍요로운 햇살만큼 따스한 호흡으로 발간된 제8집『세월은 가고』동인집을 사랑하며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018.6
소금곷 동인회장 임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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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꽃잎이 지는 것이 / 열매를 만드는 막중함을 말하는 것이라면 / 낙엽이 지는 것은 / 무한한 침묵으로 / 나이테의 금을 그리고 있음을 / 암시하는 것이다_김송하 시「세월은 가고」中
후질근하게 비 내리는 날 / 이것저것 섞어 부쳐 먹으며 / 생긴대로 있는대로 / 살아갈 일이라 했다_김일 시「빈대떡 신사」中
낮게 / 더 낮게 처음 그 자라ㅣ로 / 보란 듯이 돌아가는 모습 // 깊은 대지의 주름엔 / 고달픈 삶의 흔적만 / 가득하다_여규용 시「더 낮은 곳으로」中
땅바닥에 불이 구른다 / 오색의 이름을 채색된 이 가을 / 불구가 된 아이의 눈을 어쩌나 / 연못에 거꾸로 눕는다_오영미 시「연못에도 물이 든다」中
바람 부는 겨울 강가에서 / 몸은 깃대가 되고 외투는 깃발이 된다 / 길게 꽈리틀고 있는 계룡산의 긴 허리를 감고 / 만장처럼 하얗게 나부끼는 금강 / 라싸로 가는티벳의 길처럼 까칠하고 시리다_유준화 시「겨울 강에서」中
허공이 집인 나에겐 의지할 곳이라고는 꼭지 하나뿐이었습니다. 나 하나 살아 보려고 얼마나 매달리고 매달리며 물고 늘러졌는지 꼭지는 쇠심줄보다 더 질겨졌습니다. 한번은 꼭지에게 애원했습니다_윤문자 시「공중살이」中
가시연 맷방석에 / 쇠물닭 병아리들 // 모정이 정겨워서 / 붙잡는 연인 발길 // 연꽃도 / 등 밝혀 웃어 / 행복으로 폈어라_이흥우 시「쇠물닭」中
30년 만에 다시 피워올린 평창 / 빙상 경기의 대 합창 / 백호의 포효로 알려진 환호와 함성 / 그것은 곧 세계의 평화 그 제막이었다_임종본 시「제23회 동계 올림픽 평창에 서다」中
드디어 새상 밖으로나오던 날 / 뜨거운 물로 목욕을 시킨 후에 / 오징어처럼 말했다가 / 나를 덥석 껴안고 얼굴을 비벼댄다 /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방비로 당했다 _조현곤 시「수건의 일생」中
결국은 흐느적거리다 진토가 되어 / 행여 바람결 따라 요행히도 / 바늘구멍을 꿰어 지날 수 있을까 _최관수 시「낙타와 바늘」中
너의 가슴에 반짝이는 별이 되고 / 한 송이의 장미꽃으로 / 피어나고 싶은 것은 / 아마 천년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_황한섭 시「인연 1」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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