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키10 - 베뢰아에서 바울강단을 보고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다!
2024년 5월 5일 데살로니키 Thessaloniki 에서 Acropolis Walls (Byzantine City Walls) 성채
를 보고 언덕을 내려와 이슬람 사원을 지나 아야 소피아 Hagia Sophia 성당을 구경
하고는 25분을 걸어서 데살로니키역 Thessaloniki central railway station 에 도착합니다.
베뢰아 가는 기차는 하루 3편이 있는데 플랫폼으로 나가서 달랑 2량 짜리 기차에 오르니
12시 15분에 출발하는데.... 기차는 도중에 자주 정차하니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데 무인역이 많은지라 차장이 돌아다니면서 돈을 받고 표를 끊어주는 모습을 봅니다.
포도밭이 이어지는 들판을 한시간 달려서 베뢰아 Veria (ΒΕΡΟΙΑ) 에 내리니 버스나 택시가 없는지라 구글맵
을 보면서 A4 용지에 손으로 그린 베뢰아 지도를 들고 10여분을 걸어서 로터리에 도착해 택시를 타니
10여분을 달려 센텀을 지나 Saint Paul's Bema(바울강단) 에 도착하는데 미터기 요금은 4.5 유로가 나옵니다.
데살로니키 서쪽 마케도니아에 있는 도시 베리아(Veria) 는 베르미오 산에 있으니 테살로니키에서 전도를
하던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몰려서 피난한 곳으로 베뢰아에서는 전도에 성공해 소바더등의
협력으로 초대교회를 세우는 중심이 된 도시지만 데살로니키 유대인들이 여기까지 몰려오니 또 추방됩니다.
이 도시는 마케도니아 장군 페로나 (Ferona) 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장군의 딸 중 한 명의
이름을 딴 베리타 왕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전해지며..... 기원전 4세기 부터
마케도니아 왕조의 도시로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펠라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168년에 로마에 속하게 되었고, 서기 55년에 데살로니키에서 추방된 사도 바울이
와서 설교를 했다고 하니 매년 6월에 파블리아 (Pavlia)" 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6월 29일에 전 정교회 차원의 야외 야외 기도회가 열리는 것으로 행사가 끝난다고 합니다.
사도 행전의 저자는 복음에 대한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반응과 베뢰아 사람들의 반응
간의 차이를 언급하였고 당시 베뢰아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있었고 바울
과 실라가 진리를 가르치는지를 보려고 경전을 조사할 의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 중 다수는 남성과 여성 모두 믿었으나..... 믿지 않는 테살로니카 유대인들이 이를 듣고
베뢰아로 와서 군중을 흥분시켜 폭동을 일으켜 바울, 실라, 디모데가 설교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 신자들이 바울을 해안으로 보냈으나 디모데와 실라는 뒤에 남아 체류했으며 바울은 아덴,
곧 아테네로 가게 되었고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에게 속히 아테네로 올 것을 이야기
했다는데.... 그러니까 아테네는 영어식 표기이고 그리스 현지에서는 "아텐" 이라고 발음합니다.
그러고는 바울 강단을 나와서는 어떤 여자분에게 유대인 회당 시나고그를 물으니
손가락으로 멀리 가르치는지라 로타리로 나와 손으로 그린 시내지도를
들고 찾다가 다시 행인에게 물러서 5분여 만에 유대인 회당 시나고그에 도착합니다.
시나고그는 유대교의 회당을 말하니.... 기도할수 있는 큰 홀이 있고, 토라 연구 또는 사무실로 쓰기 위한 작은
방들이 있는데, 보통 안식일 (토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며, 해당 날짜와 절기에 맞춰 토라를 봉독합니다.
시나고그는 바빌론 유수 이후 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에 가기 힘든 먼 지방에 사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예배와 모임, 교육을 진행하는 장소로서 시나고그가 역할을 했습니다.
시나고그가 중요해진 것은 서기 70년 경에 로마 제국이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 에서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으니.... 더는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면서 부터 라고 합니다.
저 유대인의 반란 과정에서 그 유명한 마사다 요새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예루살렘 성전이
무느졌으니 각지의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수립되었고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으로 들어온 유대계 미국인들을 위해 용산 미군기지 내에 시나고
그가 있긴 했으나..... 미군 관계자 중에서도 유대인들만 출입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민간 차원에서 시나고그가 생긴 시기는 2010년대로 주한 랍비인 오셔르 리츠만이 한남동
사택을 유대인 커뮤니티·이용 편의를 위해 개조하여 "카바드 코리아"
라는 이름으로 개소했는데 다만 건물 내부만 개조한 것이라 외부는 사원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 베뢰아의 유대인 지구 회당의 석조 건물로 화려한 실내 장식을 갖추고 있으며 뒤에는 미크베
(종교적 목욕탕)가 있다지만..... 오늘은 문이 굳게 닫혀 잇어 들어가 보지는 못합니다.
마을 중앙에 교회가 있는 기독교 구역과 달리, 유대인 구역에는 회당이 집과 같은
직선에 있었으며 유대인들이 여행하고 기도하러 올 때만 운영된다는데.....
사도 바울이 A.D. 51년과 57년에 베뢰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설교했다고 합니다.
여기 시나고그 뒤쪽에는 발부타 (Barbuta) 이지 싶은데.... 로마 시대 (A.D.50) 때
부터 있던 건물로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분수에서 유래했고,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있는데 여기 주변에는 트리포타모스 (Tripotamos) 강이 있다고 합니다.
발부타는 회당과 하바스 거리 (Havras Street) 가 있는 "게토" 라고 하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되어 온 수많은 유대인이 베뢰아에 도착하면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이지역 건물의 특징은 유명한 Sahnisia (건물 선반), 지붕 위의 태양열, 그리고 넓은 머리의
못이 있는 수평 및 대각선 목재가 있는 이중으로 달린 무거운 문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마케도니아 제국에서 애게스, 뻴라, 데살로니가에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로 B.C. 9세기경 베뢰아
의 프리게스 지역에 쓰라끼 지역으로 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B.C. 5세기경부터 도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삐드나 전투(B.C. 168) 이후 로마에 투항한 첫 번 째 도시
로 B.C. 49-48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케사라에게 승리를 거두기 전에 지냈던 곳이기도 합니다.
베뢰아는 마케도니아 사회의 초석이라는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종교적 중심지로 알려졌으니
이 도시에는 금과 대리석 채석장이 있었고 극장과 체육관이 있었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마케도니아 속주의 두 수도 중의 하나로 삼았습니다.
고전 시대 (Thucydides 가 썼다)부터 알려진 베뢰아는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성장했다.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될 무렵, 베뢰아 사람들은 셀루쿠스의 명령에 따라 그곳에 시리아 도시
할리 보나를 재건했다는데, 고등학교에 관한 그리스의 유일한 법이 베뢰아(B.C.167) 에 남아 있습니다.
에데사 (Edessa), 펠라 (Pella) 와 함께 이곳은 제 3 마케도니아의 수도 (Liv. 45,30,5 "Macedonia
Tertia") 로, 헬레니즘 시대 이 도시에서 생겨난 마케도니아인의 마지막 왕조인 안티고니스
(Antigonids) 의 통치 기간에 베뢰아는 처음으로 의회를 갖고 자체 화폐를 발행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기리기 위해 "올림피아" 또는 "알렉산드리아" 라는 스포츠 게임도 했습니다.
도시의 쇠퇴는 슬라브족의 침략으로 인해 초기 비잔틴 시대 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러나 중기
비잔틴 시대까지 도시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 985년에는 불가리아인이 점령합니다.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후 불가리아 왕 이오아니치스 (Ioannitzis) 는 비잔틴 제국의 해체를 이용해
1205년에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을 공격하고 세레스까지 점령했으니 이 지역은 마케도니아
의 베뢰아, 세레스 및 기타 중요 도시들을 정복한 비잔틴 황제(John Doukas Vatatzis)에 의해 해방됩니다.
14세기와 15세기에 이 도시는 세르비아 인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 후로도 여러 번 침략당했는데
1434년에는 오스만이 점령했으니..... 터키 점령 기간동안 무슬림과 유대인이 베뢰아에
정착했으며 1530년에는 657명의 기독교인과 234명의 무슬림 가정이 있었고
동시에, 특히 17 세기와 18 세기에 상인들의 존재로 인해 그리스 부르주아지가 만들어집니다.
1822년에 이 도시에서 타소스 카라타소스 (Tassos Karatasos) 가 오스만 터키에 대해 저항했으니
베뢰아에는 '21 George Syropoulos, Athanasios Syropoulos 및 다른 Syropoulos
또는 "Syrians" 의 혁명의 지도자들과 George and Dimitrios Kolemis 형제가 있었고
1912년 10월 16일 그리스 군대에 의해 해방된후 1946 년에 이마티아 현의 수도로 선포되었습니다.
1864 년 8월 15일 축일 전날, 관습에 따라 기독교 주민들은 축하 행사를 위해 도시에서 떨어진 파나기아
도브라 수도원으로 갔은데 그날 밤, 도시에 큰 화재가 발생했으니 교구 사제의 보고에 따르면
총 300채가 넘는 집, 상점, 작업장이 불에 탔고 8 개의 교회, 그리스 학교, 유명한 도서관도 불에 탔습니다.
1965년,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D. Georgakopoulos) 박사가 찰타리 거리 (P.Tsaldari Street) 에 있는
석조건물을 철거하는중 1883년 1월 5일자로 기록된 메모를 발견했고 화재와 관련된 민요도 적혀 있었습니다.
Agios Patapios 의 고고학 유적지 : 북쪽 문에서 이어지는 주요 도로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고대 중심지
이자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이기도 했으니.... 중요한 유적은 로마 시대 건물 유적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도시 조직에 대해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모자이크로 된 바닥
이 있는 건물의 일부, 초기 로마 건물 ( Nymphaeum) 부지에 마련된
초기 기독교 세례당, 별채가 있는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가 발견되었습니다.
오스만 기념물로는 Hunkiar Jashimi, Kazaktsi 및 Orta 모스크는 원래 교회 였으나
15세기에 오스만 터키인들이 모스크로 사용되었으며, 19세기 중반, 새롭게 지어진
모스크는 무슬림 신학교의 마드라사 (madrassah) 의 이름을 딴 마드라사 모스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