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장에서는 유다의 군대 지휘관이었던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 백성이 예레미야에게 나아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하나님께 물어봐달라고 요청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내용에 대해서 그들에게 알려주자(1절),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며 전면적으로 거부하게 됩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바룩(Baruch)의 예레미야를 부추겨서 유다 사람들을 바벨론 군대가 붙잡아 가도록 하기 위한 거짓말이란 것입니다(3절).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 말은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그동안 바룩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었고, 예레미야의 지시에 의해 그 기록한 말씀을 낭독했을 뿐, 바룩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카톨릭을 제외한 기독교에서는 정경(正經, κανων, Canon)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경(外經, Apocrypha) 혹은 위경(僞經, Pseudographia)에는 바룩서(The Book of Baruch)가 있지만, 이 바룩서는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룩이 예레미야를 부추겼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들의 계획과 생각과 다르자 말도 안 되는 엉뚱한 핑계를 대며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결국 요하난과 모든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고, 요하난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은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애굽 땅의 다바네스(Tahpanhes)라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4절~7절).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다 땅에 눌러앉아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의 동역자인 바룩까지 함께 애굽으로 갑니다(6절). 예레미야와 바룩은 계속하여 애굽 땅으로 가지 말고 유다 땅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야기했지만, 예레미야와 바룩까지 데리고 애굽으로 갑니다. 예레미야와 바룩에 대해서는 거느리고 갔다는 표현보다는 끌고 갔다는 표현이 더 타당하리라 여겨집니다. 다바네스는 애굽의 나일(Nile)강 삼각주 동편 언덕에 있는 도시인데, 현재 이집트의 포트사이드(Port Said)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하난과 유다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애굽 땅으로 간 이유에 대해서 2절은 오만해서 그렇다고 말씀합니다. 아사랴와 요하난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자들에 대해 “모든 오만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오만(傲慢)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주드(זוּד, arrogant)라는 단어에서 나온 핫제딤(הַזֵּדִ֑ים)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교만한”, “주제넘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 정세(政勢)와 여러 가지 분위기 등을 자신들이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들의 계획과 생각이 가장 최선이라고 여기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기들의 생각이 더 뛰어난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예레미야가 말함에도 불구하고 아예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무시해 버리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오래전에 기록된 말씀이기에 이 시대에 걸맞지 않다며 무시하기도 하고, 아무리 성경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도 이 세상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려면 그대로 행하는 것은 무리라며 무시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진리이며, 영원토록 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국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애굽으로 가자 하나님은 애굽의 다바네스에서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애굽 땅도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통해서 쳐서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8절~13절).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대문의 벽돌로 쌓은 축대에 큰 돌 여러 개를 가져다가 진흙으로 감추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그러한 퍼포먼스(Performance)를 유다 백성이 보는 앞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벨론 군대가 애굽을 침공하여 여러 개의 큰 돌을 감춘 그곳 위에 느부갓네살이 그 왕좌를 놓게 될 것이고, 화려한 큰 장막(帳幕)을 그 위에 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10절). 다바네스에는 애굽의 바로가 다바네스를 찾아왔을 때 머무는 궁전이 있었는데,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이곳을 침공하여 장악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큰 장막이라는 것은 왕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치는 임시 천막으로 솨푸루로(שַׁפְרִיר֖וֹ)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영어로는 “Royal pavilion”, 혹은 “Canopy”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바벨론의 왕이 다바네스를 침공하여 이곳에 왕이 임시로 머물다가 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군대가 와서 모두 죽이고, 사로 잡아가고, 애굽 신들의 신당(神堂)들도 모두 불사르고, 벧세메스(בֵּית שֶׁמֶשׁ, Beth Shemesh)의 석상들을 모두 깨뜨릴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벧세메스는 “태양의 신전(神殿)”이라는 의미입니다. 애굽에서 섬기는 태양 신인 “쉐메쉬”(שֶׁמֶשׁ, Shemesh)를 섬기는 신전까지 모두 파괴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하난과 유다 백성이 의지했던 애굽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파괴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10절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에 대해 “내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기에 이방인인 바벨론의 왕까지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한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아무리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며, 모든 역사(歷史)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지식과 지혜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초월자(超越者, Transcendent)이시며, 절대자(絶對者, Absolute)이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논리와 생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앞에서, 제한성을 가진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의 생각과 지혜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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