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바라문들의 법문
1 선재동자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선인에게 예배하고 길을 떠나 진구국에 다달았다. 방편명 바라문은 고행을 닦느라고 사면으로 맹렬한 불이 타는 높고 험한 칼산에서 뛰어내려 불 속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 바라문은 공순하게 절하고, 법을 묻는 선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만일 이 칼산에 올라가서 저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면 보살의 행이 저절로 깨끗하여지리라."
선재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렵고, 바른 법문을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더니, 이 바라문은 악마이거나 악마의 심부름꾼으로서, 일부러 선지식의 모양을 짓는 것이 아닌가? 지금 나에게 목숨을 재촉하니 이것은 불법을 멀리 여의게 하려 함에 틀림 없으리라.'
바로 이때에, 허공중에서 십만의 범천들이 다음과 같은 말로 선재동자를 타일렀다.
"선남자여,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이 사람은 대성인이다. 금강 같은 지혜 광명으로 모든 중생들의 탐욕 바다를 말리는 것이다. 이 사람이 불구덩이에서 몸을 구울 적에, 큰 광명이 솟아나와 하늘 세계를 비추면, 우리들은 오욕락을 즐기지 않게 되며, 하늘 사람들을 그곳으로 오게 하여 법을 일러주며, 또 그 광명이 아비지옥에 비치어 고통 받는 중생들을 천상에 나게 한다."
선재동자는 범천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방편명 바라문이 진정한 선지식인 줄을 알고, 잘못된 것을 뉘우치면서 칼산에 올라가 불구덩이로 뛰어들었다. 미처 불구덩에 이르기도 전에 '편안히 머무는 삼매'를 얻고, 불구덩이에 들어가서는 '고요하고 안락한 삼매'를 얻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칼산과 불구덩이도 내 몸에 닿을 적에는 편안하고 쾌락함을 주나이다."
방편명은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그지 없는 보살의 법문을 알았을 뿐, 모든 원을 만족하고 중생의 번뇌를 소멸하는 보살들의 큰 행이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남쪽으로 다른 선지식들을 찾아가서 보살행을 물으라."
2 선재동자는 남쪽으로 가면서 여러 나라에서 여러 선지식을 찾아 좋은 법을 많이 듣고, 다음에 만당성의 만족왕을 찾아갔다. 그 성에 이르러 만족왕이 궁전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선재는 궁전으로 들어갔다. 만족왕은 금강으로 만든 자리에 앉아서 머리에는 염부단금으로 반달을 장식한 보관을 쓰고, 머리카락은 검푸르고, 귀바퀴는 길게 늘어지고, 몸에는 여의주 영락을 걸었으며, 위에는 진주로 꾸민 일산이 덮였고, 곁에는 야광주로 꾸민 당번을 세워 찬란한 빛이 사방에 비치었다. 일만 대신과 장군들이 왕을 모시고 정사를 하고 있었다.
선재는 또 무수한 백성들이 나라의 법을 어기고 형벌을 받는 것을 보았다. 혹은 다섯 군데에 결박을 지웠고, 혹은 손발을 끊기었고, 귀와 코를 잘리었고, 두 눈을 뽑혔고, 허리를 찍힌 것, 끓는 양잿물에 삶는 것, 기름 가마에 볶는 것, 전으로 싸고 기름을 붓고 불로 태우는 등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선재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고 보살도를 배우는 터인데, 이 만족왕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혹독한 형벌을 마음껏 하고 있으니, 나쁜 사람 중에도 가장 악독한 사람이구나.'
이때에 허공에서 하늘사람들이 선재에게 권하였다.
"이 왕에게 가르침을 청하라. 보살의 방편을 중생으로는 생각하지 못하느니라."
만족왕은 정사를 끝마치고 나서 선재의 손을 잡고 궁전에 들어가, 어마어마한 궁전의 설비와 장엄이며, 하늘아가씨 같은 시녀들 오백 명이 시위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 주고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요술 같은 법문을 성취하였노라. 이 나라 백성들로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아내를 범하거나, 나쁜 소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은 말로만 교화하여서는 그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없으므로, 이런 요술을 부려서 그들로 하여금 나쁜 버릇을 버리고 착한 일을 하게 하느라고 이러한 여러 가지 혹독한 고통을 보여 주노라. 선남자여, 내 성품이 조그만 개미 한 마리도 해롭게 할 마음을 내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을 두고서랴. 사람은 모든 선근을 내는 복밭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3 선재동자는 이번에는 가릉가파제 국의 사자분신 비구니를 찾아 갔다. 그 나라에 이르니, 사자분신 비구니가 일광 숲 가운데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문을 말하고 있었다. 광명이 번쩍이는 여러 가지 나무 밑에 수없는 사자좌가 놓였고, 비단 방석을 깔고, 보배 그물을 드리웠고, 한량없는 권속들이 둘러앉았으며, 비구니는 부사의한 신력으로 말미암아 여러 곳 사자좌에 낱낱이 앉아 있었다. 얼굴과 몸매는 한없이 단정하였고, 행동거지는 아름답기 비길 데 없으며, 안정된 마음, 단아한 태도는 마니 구슬 같았고,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사자분신 비구니는 정성을 다하여 보살행을 묻는 선재동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지혜를 끝까지 궁구하는 법문을 성취하였으므로, 누구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모두 반야바라밀 법문을 일러주지마는, 사람이란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온갖 말을 모두 알지만 말에 고집하지도 아니하며, 모든 부처님을 뵙지만 부처님이란 집착을 내지도 아니하노니, 법신을 깊이 아는 까닭이며, 또 한 생각 동안에 온갖 법계에 가득 차지마는 법계란 생각에 집착하지도 아니한다. 그것은 모든 법이 요술과 같은 줄을 아는 까닭이니라."
4 선재동자는 사자분신 비구니의 지도를 따라서 험난국의 보장엄성으로 바수밀다 아가씨를 찾아갔다. 보장엄성에 들어가 바수밀다 아가씨가 있는 데를 물으니, 그 아가씨가 훌륭한 지혜를 가진 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보아하니 얌전한 동자인데 어째서 그런 여자를 찾는가?' 하고, 아는 이들은 선재를 칭찬하면서 이 성 안의 깊은 궁전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아가씨가 있는 집은 크고 넓어서, 담은 열 겹을 둘렀는데, 다라나무를 줄지어 심었고, 참호도 열 겹인데 팔공덕수가 가득 차고, 밑에는 금모래가 깔리고, 각색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보배로 꾸민 궁전과 누각에는 향기가 풍기고 처마 끝에 드리운 풍경에서는 꽃향기를 불러오는 바람을 따라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가씨의 얼굴은 아름답기 짝이 없고 태도가 단정하며, 음성이 보드라웠다. 또한 문장이 놀랍고 글씨도 명필이며, 모든 기예를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었다. 보살도를 공손히 묻는 선재에게 대답하는 법문은 이러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애욕을 여읜 깨끗한 법문을 이루었노라. 그리하여 하늘 사람이 나를 볼 때에는 내가 하늘 사람이 되고, 이 세상 사람이 나를 볼 적에는 이 세상 사람이 되는데, 그 미묘한 태도는 천상, 인간에 비길 이가 없다. 음욕에 반한 사람이 나를 찾아오면 음욕을 여의는 법문을 가르쳐서 애착이 없는 삼매를 얻게 하고, 나의 얼굴을 보는 이는 환희 삼매를 얻게 하고, 나와 말을 주고 받는 이는 아름다운 음성을 얻게 하고, 나와 한 자리에서 자는 이는 해탈하는 광명을 얻게 하고, 나를 끌어안은 이는 모든 중생을 구호하는 삼매를 얻게 하고, 나의 입을 맞추는 이는 비밀한 공덕장을 얻게 하노니, 누구든지 내게 오기만 하면 모두 애욕을 여의는 법문을 얻게 되느니라."
5 선재동자는 또 남해에 있는 보타락가산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아갔다. 산의 서쪽 가는 데마다 흐르는 시내와 맑은 샘이 있고, 수목이 무성하였다. 관세음보살이 야들야들한 풀 위에 금강보좌를 놓고, 가부좌하고 앉아 둘러앉은 보살들에게 [대자비경]을 말하고 있었다. 선재동자는 합장 정례하고 보살도를 배우려고 왔다는 뜻을 여쭈었다.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더없는 보리심을 내었구나. 나는 대자비의 법문과 광명의 행을 성취하고, 모든 부처님들의 계신 곳에서 중생을 교화하노니, 혹은 보시로 거두어 주고 혹은 일을 함께 하면서 교화하고, 어떤 때에는 부사의한 몸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광명을 놓아서 번뇌를 덜어 주기도 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교화하기도 하고, 위의를 갖추고 법을 말하기도 하여, 자재한 신력으로 방편을 베풀어 깨닫게 하기도 하며, 또는 그들과 같은 몸을 나타내어 그들을 건져주며,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려는 서원을 세우고, 그들의 험난한 길에서 헤매는 공포, 번뇌의 공포, 어리석은 공포, 얽매이는 공포, 살해를 당하는 공포, 빈궁한 공포, 다투는 공포, 죽는 공포, 나쁜 곳에 떨어지는 공포, 사랑하고 미워하는 공포들을 구원하여 주며, 또 나를 생각하거나 나의 이름을 일컫거나 나의 몸을 보는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공포를 여의게 하노라. 나는 다만 이 대자비의 법문과 광명의 행을 알고 있지만, 보살들이 남을 이롭게 하려는 큰 서원과 보현의 큰 행은 나로서는 알지 못하는 바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