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 선거에서 우리 대수천 회원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허탈했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은 애국심으로 하나 되어 태극기를 흔들면서 탄핵반대를 외쳤지만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래도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최근에 우리나라의 통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은 우리의 통일을 겁내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한민족의 잠재력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통일되었을 때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변의 강대국 중 일본의 국토면적은 남한의 3.8배에 달하며 중국의 국토 면적은 무려 남한의 96배에 달합니다. 이처럼 작은 국토에서 그 안에 또 반이 나뉘어져서 싸우니 걱정이 앞섭니다.
중국은 한국이 한때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통일비용이 엄청납니다.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을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상의 비용이 요구됩니다. 북한주민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적당히 일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한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사실도 북한주민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 유일신 체제의 신격화 사상도 쉽게 없앨 수 없습니다.
저는 몇년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식사한 적이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이 문상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제가 사의를 표하면서 전 대통령이 저를 식사에 초대한 것입니다. 이 때 전두환 대통령은 지학순 주교 이야기를 저에게 하였습니다. 유신시절 정부를 비난하였던 지학순 주교를 구속함으로써 그때까지 잠잠하던 천주교회가 반정부로 돌아섰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일환으로 북한에 가서 여동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6.25 전쟁이 일어나던 해 29세의 나이로 서품을 받았으며 그때 여동생은 21세였습니다. 주교님의 집안은 천주교집안이었으므로 이때 여동생은 주교가 천주교회 내에서 어떤 직위에 있으며 천주교 신앙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교님은 여동생을 40년 만에 만났는데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처럼 보일 정도로 늙어 보였고 손, 얼굴, 피부도 너무 거칠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동생이 40년 만에 자기를 보고서도 반가운 기색이 없이 ‘오빠 그 옷이 그게 뭐예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교로서 수단을 입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동생이 그렇게 말하다니! 그리고는 ‘저는 김일성 주석덕분에 잘 살고 있으니 오빠도 이곳으로 오시라우’라고 기계적으로 되풀이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지 주교님은 너무 기가 막혀 홧김에 이북 말로 ‘이 썅 간나같은 연아! 관둬라’라고 고함치고서는 2시간 예정의 면담을 30분 만에 끝내고 뛰쳐나왔습니다.
원래 면담은 이틀에 걸쳐 하기로 되어 있어 지 주교님은 그 다음날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한번 더 보자는 심정으로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여동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주교를 붙들고 한없이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척의 소식을 물었는데 놀랍게도 아무 것도 모른다고 답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친척끼리도 연락이 안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처참한 실정을 눈으로 보고 돌아온 지학순 주교는 전 대통령에게 지금부터 정부의 일에 아무 것도 반대하지 않고 오로지 찬성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 대통령과 지학순 주교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반인륜적이고 공포와 억압만이 있는 이 지구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와 무턱대고 통일해서는 안 됩니다. 북의 정권은 어떤 종교도 용납하지 않으며 오로지 김일성 부자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방 당시 북한에는 5개 교구가 있었으며 성직자도 주교 포함 243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거의 300명에 이르는 성직자가 북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거의 모든 성직자가 잡혀 갔고 그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학순 주교님도 그해 3월 낌새를 알아채고 남으로 도망 왔기 때문에 살았던 것입니다. 가톨릭은 로마의 300년 박해도 견디어냈지만 세계 역사에 이처럼 잔인하게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나라는 없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진석 추기경님은 방송에서 6.25전쟁 관련대담을 하시면서 당시 전쟁으로 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고 북침이라고 하면서 남측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도발과 범죄를 저질렀지만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할 때에도 ① 죄를 인정하며 ② 잘못을 반성하고 ③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뉘우침이 있어야 함과 동시에 ④ 죄를 고백하고 ⑤ 죄에 대하여 보상해야 합니다. 정진석 추기경께서는 북한은 이 중 단 한가지도 행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용서의 대상도 아니며 용서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북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통일이 공산주의에 의한 통일인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인지도 잘 식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평화통일을 바라면서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에 진보정권이 들어선 것도 어찌 보면 기회일지 모릅니다. 이들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들을 겪고 나면 정말 이 사람들로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급한 마음으로 과격하게 행동한다면 나라를 망칠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단단하게 하여 현명하게 기다리면서 나라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 5단이라도 바쳐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