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경상도 영남대로는 웬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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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04:13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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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는 웬 길인가?
조선시대에 부산에서 서울을 가려면 영남대로를 이용하였다. 영남대로는 세가지 길이 있었다. 첫 번째는 ‘좌도’, 즉 ‘열닷새(보름)길’이었다. 울산, 경주, 영천, 의흥, 의성, 안동, 풍기, 죽령, 단양, 한양까지는 수로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두 번째는 ‘중도’인데 부산, 밀양, 청도, 대구, 안동, 선산, 상주, 조령, 음성, 이천, 광주 등을 지나 한양에 이르는 길로 ‘열나흘길’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도’는 김해, 현풍, 성주, 금천, 추풍령, 영동, 청주, 죽산, 양재를 지나 한양에 이르는 ‘열엿새길’이었다.
철길이 놓이기 전, 영남 사람들이 서울을 갈 때는 대체로 청도를 거쳐서 가는 열나흘길을 택하였다. 새벽밥을 먹고 대구나 밀양에서 길을 떠나면 점심 먹을 무렵에 청도읍 고수리에 있는 납딱바위에 도착하였다. 납딱바위는 지금의 청도역에서 남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철도 신호대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바위는 몇십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마루처럼 넓적하였고 바로 옆에는 늙은 소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주었는데, 이 바위 뒤쪽에 벼랑이 있었고, 그 아래로 청도천의 맑은 물이 휘돌며 흘러갔다고 한다. 한양으로 공물을 나르던 동래부와 밀양부의 역인들과 길손들이 땀을 식히고 점심을 먹은 뒤 이곳에서 길이 엇갈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과거 보러 서울로 가는 청도 아래쪽의 영남 지방 선비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청도 납딱바위에서 쉬어가야 운수가 좋다는 말까지 생겨날 만큼 이 바위는 몇백 년에 걸쳐서 지친 길손에게 쉴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경부선 철도 공사를 할 때 쪼개져버려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다만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납딱바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옛 이름이 이서소국(伊西小國)이었던 청도는 신라 유리왕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구도성(仇刀城) 또는 경내(境內), 경산(驚山)으로 불리다가 대성군(大城郡)이 설치되었다. 고려초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청도군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풍속은 검약, 솔직한 것을 숭상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도를 흐르는 물은 영남 알프스라고 알려진 운문산에서 비롯되는 운문천인데, 운문산에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정한 도량인 운문사(雲門寺)가 있고 그곳에 고려 때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윤언이(尹彦頤)가 지은 원응국사 비문이 있다.
운문사 소나무
운문사 만세루
청도를 흐르는 물은 영남 알프스라고 알려진 운문산에서 비롯되는 운문천인데, 운문산에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정한 도량인 운문사(雲門寺)가 있다.
『택리지』에 “팔공산 남쪽, 낙동강 서쪽이 칠곡이고 그 동남쪽에는 하양, 경산, 자인 등의 고을이 있다. 경상도에는 성을 쌓아 지킬 만한 곳이 없으나, 오직 칠곡 관아가 있는 성은 1만 길이나 되는 산 위에 있어 남북으로 통하는 큰길을 가로질러서 큰 요해처(要害處)가 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칠곡은 신라의 사동화현(斯同火縣)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남대로는 웬 길인가?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3 : 경상도, 2012. 10. 5.,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