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虎道峡 트레킹
호도협은 리쟝丽江에서 샹그릴라香格里拉로 향하는 차마고도茶马古道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차마고도는 전술하였던 바, 비단길보다 200년이나 앞선 무역길로 운남과 티벳까지 5000㎞에 이르는 길이다. 운남의 차와 티벳의 말을 물물 교환하러 오가던 길이였으며, 오체투지의 순례의 길이기도 하였다. 이 길의 한 구간에 호도협이 자리하고 있다.
인도대륙과 유라시아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은 하나였던 산을 옥룡설산(5,596m)과 합파설산(5,396m)으로 갈라놓았고, 그 사이로 금사강이 흘러들면서 길이 16km,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로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다. 이 협곡은 포수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금사강 중앙에 있는 돌을 딛고 강을 건넜다고 해서 호도협이라 부른다.(월간산 <나홀로 세계일주>중에서)
호도협 트레킹 길은 세계 3대 트레킹 길 중에 하나이다. 금사강을 끼고 병풍처럼 서있는 산의 깍아지른 듯한 절벽, 도무지 길이라곤 있을 성 싶지 그곳에 신비처럼 길이 있다. 총28밴드의 길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S자의 굴곡을 이루고 있다. 한 쪽은 절벽, 한 쪽은 천 길 낭떠러지, 먼 곳에 또 다른 산의 풍광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좁디좁은 길이다. 절경에 취해 인생 샷 하나 건지려고 한 발짝만 더 나가다가는 그 길로 황천길이다. 이 길을 그 옛날 마방들은 말과 함께 걸었다고 생각하니, 자못 마음까지 경건해진다. 삶을 내놓고 걷는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요즘은 인생을 한바탕 춤에 비유한다. 자신의 몸짓으로 자기만의 무대에서 춤사위 한마당을 차리는 것,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살라고 격려하는 세태에서, 인생을 춤이라 비유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발상인 듯싶다. 인생을 길이라 하는 비유보다 설득력 있다. 그러나 차마고도는 그야말로 살기 위한 길,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선 길이었으니, 이 길에서만큼은 '인생길'이라는 말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차한 비유 같지 않다. 넓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도 나서야 했던 길, 길바닥은 사람과 말의 발자국으로 윤이 날 지경이다.
호도협 16km 트레킹을 중도객잔中道客栈에서 시작했다. 나시객잔, 중도객잔, 차마객잔 등, 호도협 트레킹 길 중에는 이렇게 세 개의 객잔이 있다. 객잔이란 한국으로 치면 주막 같은 곳으로, 나그네의 먹을 곳과 잠잘 곳을 내주는 곳이다. 중도객잔에서 시작하여 관음폭포를 거처 다시 차마객잔으로 들어서기까지, 온 세상에 마치 이 길만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게다가 절벽의 중간쯤에 실처럼 만들어진 길을 가자니, 이것만으로도 내 인생이 신선이 된 듯도 하였다가, 세상 가장 협착한 길을 가는 고난의 종인 듯도 하였다. 삶이 그댈 속일지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어떤 시인의 위로는 정작 마방들이 들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가, 어느 순간 오직 걷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기계적인 걸음을 계속하게 된다.
그럴싸한 대의명분을 위하여 걷는 걸음이 아니다. 존재하기에 걷는 것이고, 살아야 하기에 걷는 것이다. 길을 떠나기 전, 아내가 막 해산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갓 세상 구경을 한 아이의 눈망울이 굵은 동아줄처럼 아빠의 마음을 동여맸을지라도 떠날 때가 되면 길을 나서야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이승에서 떠나보낸 지 몇 날 되지 않은 채, 땅에도 묻고 가슴에도 묻어 떠나는 길일 수도 있겠다. 막 결혼한 새신랑이 신부와 설레는 첫날밤을 치루고, 놓고 싶지 않은 손을 애써 뿌리치며 나서는 길일 수도 있겠다. 차마고도, 그 길을 걷는 한 발 한 발에, 부모와 아내와 자손에 대한 그리움과 생사가 묻히고, 가족을 위한 먹을 것과 필수품을 가져올 기대와 설레임을 그려 넣으며 걸었을 발걸음. 생을 유지하고 버티는 것, 험난한 가족의 생을 위해 기어코 감내하는 그 발걸음에 더 나은 대의명분이 무슨 필요냐? 길에서 그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이다.
협착한 길에도 무명의 들꽃들은 여전했다. 정지용님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같은 들꽃들이 내 인생 대변하는 것 같다. 수많은 사연들을 마음에 담고 걸음을 떼는 삶의 순례자들처럼, 들꽃 또한 갖가지 자기들의 삶을 수다쟁이처럼 이야기하는 듯했다. 생명을 살아내기에는 척박한 곳, 그처럼 높은 곳에 뿌려져, 기어이 존재를 피우고 살아낸 작은 생명체들은 거대한 산 절벽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여행자의 마음을 격려한다. '걷고 걸어라, 가고 가거라, 삶은 그렇게 살아내고 유지되는 거란다' 하고 말이다. 새삼 하나님이 생명에게 허락하신 주체성의 의지가 감사하다. 생명을 시작하시되 자동화된 로봇 같은 생을 살게 하지 않고, 주제적으로 응전하고 도전하며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모든 것을 안전하게 보장하고 보호하는 사랑보다 훨씬 더 큰 사랑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차마객잔茶马客栈
지친 다리를 쉬게 할 객잔에 도착했다. 분명 타지임에도 내 집인 듯 싶으니, 역시나 이곳은 길에서 지친 나그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휴식처임이 분명하다. 해발 3천미터를 웃도는, 하늘과 가깝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은 어떤 몽상을 품게 한다. '아, 여기가 하늘 가는 길이구나' 싶은. 이걸 증명이라도 하는 곳이 측간이다. 중도객잔에는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厕(천하제일의 측간)이 있다더니, 차마객잔 또한 못지 않다.
중국의 일상 문화 중 외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것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에 문이 없다. 겨우 가릴 부분만 가리고 옆에서 볼 일 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도, 담소를 나눌 수도 있다. 이런 화장실 문화는 어찌 보면 역사의 아픔이기도 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미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 국민당의 잔류가 본토에 남아 간첩들이 준동했다고 한다. 아직 공산당이 정권을 안정적으로 뿌리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화장실에서 많은 정보가 교환되는 것을 알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화장실의 문을 다 떼어버렸다고 한다. 60년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불신과 감시가 더 깊어져 이런 습관이 굳어지고 말았다. 아침이면 동네 사람들이 화장실에 모여 볼일을 보며 담소를 나눴다고 하니, 외국인에게는 경악할 일이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이런 화장실 문화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시골 등에는 이런 형태의 화장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중도객잔과 차마객잔의 화장실만큼은 문명에 뒤떨어진, 아니 불신과 감시가 팽배했던 문화의 잔류라기 보다는, 천혜의 휴식처라 말하고 싶다. 볼일을 보는데 탁 트인 산수가 눈 안에 들어온다. 콧 등을 스치는 맑은 공기와 바람, 풀잎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을 앉은 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는 곳, 화장실을 비움의 자리라고 하더니, 비워낸 인생에게 표창이라도 달아주듯 새삼스럽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듯 기쁘다. 어디서 이런 화장실을 맛보겠는가? 이곳이 천상인 것이다. 하하.
객잔의 모습은 한국의 전통가옥과 사뭇 비슷한 느낌이다. 목조 건물의 중심에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언제부터 심겨졌을지 모를 꽃나무 한 그루가 천연의 붉은 빛으로 여행객을 환하게 맞이한다. 객잔의 음식은 매우 다채롭다. 세계 3대 트레킹 길 중에 하나이니만큼,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이력 때문인지, 퓨전 요리가 가득하다. 우리에게는 오골계로 닭백숙을 내주었는데, 한국의 맛 그대로다. 마늘을 듬뿍 넣고, 끓인 백숙에, 찹쌀 죽까지 든든하게 배를 불린다. 숙소의 맨 위에 마련된 옥상에서 자연을 소화제 삼아 먹은 것을 소화시킨다. 좋은 공기와 바람은 기초 대사량마저 늘려 주는 모양이다. 언제 저녁을 먹었냐는 듯, 뱃속이 가벼워질 즈음, 여행객끼리의 낯가림과 어색함의 무게도 가벼워져, 이런 얘기 저런 얘기에 웃음 꽃을 피운다.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달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준다.
마침내 객잔에 어둠이 내린다. 산 속의 어둠은 유난스럽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일 게다. 눈을 거두고 귀가 열리는 세상에서 생명이 내는 자기 존재의 소리는 가이 독보적이다. 어둠의 수혜다. 문득 상해 와이탄의 야경이 떠오른다.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온 세상 위에 휘황찬란하던 도시의 야경. 도시의 빛은 모든 생명의 소리를 거두었다. 문명의 네온사인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은 옆지기의 소리마저도 잊어버린다. 그러나 대자연의 어둠은 보이지 않던 존재마저 드러내준다. 가장 심연의 것을 끌어올리는 시간, 안목의 정욕에서 자유로운 시간이다.
살아가는 것들에게 가장 가까이 잇대었던 시간, 차마객잔의 밤이 나에게 준 뜻깊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