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본시장의 날씨 예보를 보면 맑음보다는 “종말주의보”에 가깝다. 그 중심에 새로 등장한 단어 하나가 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 사스(SaaS)와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합성어라니,
이쯤 되면 작명 센스는 거의 할리우드 재난영화급이다.
사스포칼립스는 쉽게 말해 “소프트웨어의 종말론”이다. 정확히는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가 AI 에이전트에게
자리를 내줄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그동안 우리는 ‘월 구독료 9.99달러’라는 평화로운 세계에 살았다. 회계는 이 소프
트웨어, 디자인은 저 소프트웨어, 협업은 또 다른 소프트웨어. 회사 책상 위보다 구독 알림 메일함이 더 빽빽해질 정도
였다.
그런데 갑자기 AI가 등장해 말한다.
“굳이 프로그램 켜실 필요 없어요. 그냥 저한테 말하세요.”
이 한마디에 시장은 얼어붙었다. “엑셀도, 포토샵도, CRM도 필요 없는 세상?” 이 상상은 투자자들의 심장을 정확히
가격 하한선까지 밀어 넣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일주일 새 1조 달러 넘게
증발했고, 그 충격파는 태평양을 건너 코스피와 코스닥을 동시에 흔들었다.
이 장면이 재미있는 건, 공포의 방향이 아주 21세기적이라는 점이다. 예전 종말은 운석이나 좀비였다. 요즘 종말은
업데이트 알림 없이도 일 잘하는 AI다. 인간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일자리를 걱정하는 시대라니, 실로 기묘하다.
더 흥미로운 건 역할 분담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건 위험해”라며 자금을 빼고, 개인 투자자들은 “그래도 아직은
쓸모 있지 않을까?” 하며 방어에 나섰다. 마치 재난 영화에서 헬리콥터 타고 떠나는 사람들과, 끝까지 집 지키는 주민들
같은 구도다. 그 사이 비트코인은 6만 달러 선까지 밀리며 “나도 불안해”라고 속삭인다. 디지털 세상의 공포는 디지털
자산에서 가장 먼저 티가 난다.
하지만 사스포칼립스라는 단어가 진짜로 재미있는 이유는, 이게 종말 선언이면서 동시에 과장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도구는 늘 기존 도구를 “완전히 끝장낼 것”처럼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형태를 바꿔 공존해왔다.
이메일이 편지를 없애지 않았고, 스마트폰이 인간의 생각을 대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업무는 더 많아졌다.
아마도 SaaS의 미래도 비슷할 것이다. 버튼을 누르는 소프트웨어는 줄어들지 몰라도, AI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종말이라기보다는 진화통에 가깝다. 다만 시장은 늘 한 박자 먼저 겁을 먹는다.
그래서 이름도 굳이 ‘사스포칼립스’다. ‘사스 리모델링’보다는 훨씬 자극적이니까.
결국 사스포칼립스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우리가 변화 앞에서 느끼는 불안의 별명일지 모른다. AI가 소프트웨어를 삼켜
버릴지, 아니면 새로운 구독 버튼을 만들어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하나다. 종말을 말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음 달 결제 예정 알림을 슬쩍 확인하고 있다는 것.
종말은 늘 거창하게 오지만, 현실은 대개 자동이체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