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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라는 도가니
서기1000년 이후 유럽에서는 사회와 시간의 관계, 사회와 돈의 관계를 바꾸는 금융제도가 탄생한다. 소국들로 파편화된 유럽에서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금융 시장이 필요했다. 정치경제는 투자시장이 발전하고, 주식회사가 발명되며, 비정부 은행제도가 출현하고, 복잡한 생명 자산 무역 보험이 등장했다. 이는 학문적으로 금융수학이 발전하여 추론 분석 절차라는 전통이 발전토록 촉진했다. 그리고 이런 혁신은 인간의 행동을 바꾸었다. 혁신은 위험과 우연을 보는 태도를 바꾸고, 확률에 따른 사고와 계산을 등장시켰고, 다른 한편은 고삐 풀린 투기를 낳아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 거품을 부추겼다. 유럽은 결국 유럽과 전 세계를 투자자로 바꾸어 놓았다.
중세는 정치적으로 십자군전쟁의 시기다. 이 때 발달한 종교기사단에 성전기사단이 있다. 이 단체는 사회봉사기관으로 탈바꿈하여 금융기관이 된다. 기사단은 14세기 까지 거대 초정부기관으로 성장하여 유럽경제 대부분과 주요 왕국의 금융을 좌지우지했다. 기사단은 청빈과 종교적 사명에 충실함을 서약했지만, 금융 중개자가 됐다. 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몰려드는 순례자에 개방한다. 이 성지 순례 단을 보호하려고 20년 뒤 창설한 것이 성전기사단이다. 레반트 지역 순례 경로 주요한 지점에 요새를 세우고, 후에는 사람보다 돈을 안전하게 운반해주는 일에 사명을 다한다. 성전기사단은 자산을 다른 기사단으로 이전하거나, 기사단을 해산하라 명령할 권리는 교황에게 있었기 때문에 이 은행을 최종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였다. 교황이 설립인가를 해주고 권리를 받았다. 그리하여 통합기관으로 움직일 권리도 받았기에 파리지부가 진 부채를 런던지부의 채무로도 취급되었다는 얘기다.
성전기사단이 보유한 재물과 보화는 기사단 성채, 수도원, 교회를 건설하고 유지하거나, 십자군 자금에 쓰고, 유럽 이곳저곳의 부동산도 주요 자산이다.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국제전 동부전선이라면 이베리아 반도는 서부전선이다. 스페인 왕 ‘알폰소’ 1세는 성을 선물하고 군사원조를 요청한다. 제왕이나 군주가 지대 수익, 자산을 보호하는 재산통제권을 양도할 권리가 있었던 것처럼, 성전기사단도 받을 권리를 재양도할 권리가 있었다. 스페인 ‘카탈루냐’ 왕실은 지역관할권을 담보하여 돈을 기사단에서 빌렸다. 이는 지역 세금과 사용료를 거둘 권한을 넘기는 것이다. 차츰 십자군 국가는 성지 지배력을 잃어간다. 1244년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빼앗긴다. 성전기사단은 성을 하나하나 잃으면서 후퇴하여 시리아 해안 너머에 있는 성은 1302년 모두 빼앗겼다. 성전기사단이 몰락하며 초래한 진공상태를 메꾼 사람들은 종국에 이탈리아 은행업자들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베네치아, 피사, 피렌체, 제노바, 나폴리 등의 작은 제후국으로 나뉘어 통치되고 있었다.
현대적 금융상품과 시장의 기원은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에서 채권이 발명되자 유럽 철학은 위기를 맞았다. 가톨릭교회가 고리대금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국가에 돈을 빌려준 베네치아 투자자들은 도덕적으로 애매한 처지에 빠졌다. 이 문제를 다루느라 자본사용이라는 주제가 깊이 분석되었고, 유럽인이 시간을 개념화하고 수량화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곤돌라를 타고 대운하를 흘러가다 보면 베네치아는 유적이자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베네치아의 등장 번영 쇠퇴는 목숨과 운을 걸고 공해로 나가 교역하는 상업적 모험이란 사실이다. 마르코 폴로가 살던 13세기 베네치아는 ‘달마티아’ 해안을 따라 ‘크레타’ 섬과 ‘에게’ 해까지 뻗은 해상식민대국이었다. 1298년 석방된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 집으로 돌아와 ‘리알 토’에 살았다. 이곳은 금융전문가가 모인 금융기능이 자리 잡은 곳으로 유럽에 지어진 금융건물의 모범이다. 베네치아는 공채를 발행하여 시민의 재산에 따라 강제로 채권을 할당했다. ‘아드리아’ 해 지배권을 놓고 비잔티움제국과 전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베네치아 채권은 중세 ‘센서스’ 계약에 기원을 두지만, 시민은 노동이나 무역으로 경제 가치를 미래 현금흐름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나이가 들며 육체와 정신이 노쇠하고 돈 벌 능력이 사라져 가더라도 경제적으로 대비할 방법이 생겼다. 13세기 초에는 가톨릭교회에 속한 탁발수도회가 창설된다. 1206년의 ‘프란체스코’교회와 1216년 창설된 ‘도미니크’회가 있다. 오늘날 학계에서 보기에 돈과 시간을 연결한 사고방식이 출현한 사건은 혁명이다. 중요성으로 봐도 그 후에 이어진 상업 관습 혁명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시간 자체를 상상하는 방식이 변한 증거로 고리대금업을 보는 학문적 태도에서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프랑스 ’자크르 코프‘인데 상인의 시간이 교회의 시간과 충돌했고, 대출 계약처럼 자본을 시간 차원으로 분할하는 행위는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교회와 상업사회가 충동하자 사회의 역동성이 자극받기 시작하여, 유럽인이 중세 농노 신분에서 행방되고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걷게 되었다고 ’자크로 코프‘는 생각한다.
새로 등장한 베네치아 채권과 이를 거래하는 ‘리알 토’의 2차 시장은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중요한 금융기술이다. 국가는 미래에 현재의 자원을 옮겨 자본을 집중하고 군사적 목적에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베네치아에 있는지 채권보유자가 확인할 유인이 생겼다는 부산물도 발생했다. 베네치아는 국가부채를 늘리고 유지하는 데 시민의 발언권을 가진 자치공화국이었으므로, 시간을 넘나들며 돈을 움직이고 궁극적으로 국가자원을 유지하고 성장시킬 책임을 공유하는 합자회사기도 했다. 그러자 즉, 시간 자체가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새로 등장한 재산과 투자방식으로 돈을 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알 토’의 ‘신자코모’ 성당에 이상하리만치 큰 시계를 건 것은 의미 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다. 옛날 이탈리아의 금융업자는 시계를 보고 시간이 중요한 차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근에 경쟁국 ‘피사’에 ‘레오나르도’라는 수학자가 있다. 그는 북아프리카에 있던 ‘피사’의 식민지 ‘부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서 아랍 수학을 배웠는데 아라비아 숫자로 써 내려가며 계산을 하는 놀라운 기술을 배웠다. 아라비아 숫자는 사실 인도숫자를 이슬람 학자들이 가져온 것이며, 이 때 인도숫자를 이용한 여려 가지 문제풀이 기법도 들여왔다. 3의 법칙에 내재한 교차 곱은 대수학 방식 중 가장 단순한 축에 든다. ‘피보나치’가 쓴<리벨 아바치>란 책이 있다. 여기에 나온 문제를 보자 “매년 왕에게 연금으로 300‘베잔트’를 분기마다 나눠 받는 군인이 있다. 만약 분기에서 연말에 1번으로 몰아서 왕이 연금을 준다한다면 연금가치는 얼마나 줄어드는가?” 하는 문제이다. 13세기 군인 봉급이 일반적인 상식이란 점이 새롭다. 한편 봉급이 퇴직금 이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자금대안의 핵심 개념이 존재해야 풀리는 문제로 중요하다. 군인이 투자 금을 은행에 맡겨서 매월2%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문제에 나온다. 수학 관점에서 보자면 이 문제는 금융적 사고의 분수령이다. 매 분기 은행에 돈을 넣었다고 가정하면 이 이자수입이 없어지고 봉급가치도 줄어든다. 300‘베자트’ 봉급이 259‘베잔트’에 몇 푼이 더 붙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순 현재 가치 법은 현재 금융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돈을 매년이 아니라 분기마다 받는다면 가치가 얼마나 늘어날까?” 같은 금융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날에도 주택을 구입할 때 계산에 속는 사람이 많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일 월 년 단위로 공시될 수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전체 제방과 운하를 유지 관리하는 치수위원회에 1648년 ‘레크디크 보번덤스’ 치수위원회가 5월 15일에 발행한 액면가 1,000‘휠던’, 금리 5%짜리 영구채 증서를 가지고 350년도 더 전에 작성된 문서에 이자를 지급하는 일이 있었다. 이 채권은 앞으로도 치수위원회의 돈이라는 피를 빨아 먹으며, 세대가 바뀌어도 나라가 바뀌어도 이자를 받는 채권이다. 이 같은 영구채는 이자를 언제든지 영원히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영구채는 불멸이다. 종신연금은 수익자가 살아 있는 동안 매년 고정된 금액을 지불한다. 영구채와 비슷하지만 물려주지는 못한다. 종신연금은 정말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다. 죽을 때 까지만 생활비를 보장한 것이다.
연금계약은 유럽이 인류에게 크게 공헌한 업적으로 꼽힌다. 시민은 개인 또는 여러 명의 생애와 연동한 연금을 구매하여 기대보다 길게 장수했을 때의 부양의무를 가족에서 국가로 넘겼다. 확률수학이란 미지에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학자들은 주사위 확률을 연구하여 돈을 거는 등 복잡한 확률문제에 연구를 착수했다. 여기 대표학자가 ‘베르누이’다. 베르누이의 주장은 ‘큰 수의 법칙’이라 불린다. ‘베르누이’가 교수로 일한 바젤대학교는 지금도 수학과의 명성을 업고 지성의 중심이다. 유럽 수학자들이 한 세기에 걸쳐 엄청난 일을 했고, 그 결과물이 현실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 통계학을 이용하면 강한 확신 수준에 꽤 근접할 수 있었다.
‘앙리 르페브르’는 주식시장을 표현하는 수학적 모형개발의 선구자이다. 그는 옵션가격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주식이 거래되고 시작하고부터 주식옵션이 거래되고 있다. 옵션은 지금 정한 가격으로 미래에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권리계약이다. 콜옵션은 주식가격이 올라도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풋옵션은 콜옵션과 반대다. 풋옵션이 있으면 거래상대가 원하지 않더라도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가 생긴다. 주식이 대폭락해 휴지가 돼도 미리 정한 가격에 팔 권리가 있다. 유럽이 금융에 기여한 업적 중 하나는 주식회사이다. 기원은 법학과 경제학 분야의 연구과제이다. 그리스의 환전상과 중세의 종교단체라는 서로 동떨어진 기관에서 은행이 발달했듯 주식회사의 뿌리는 봉건적 토지 지배권과 상업항해 칙허에 다양한 방식으로 닿아 있음이다. 핵심은 발전과정에서 모두 자본을 조달하고 사업체를 관리하여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문제를 푸려고 제시된 방법이 주식이다. 제노바는 공공재정 조달수준으로 채택하고 피사나 베네치아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세입을 담보로 민간의 자금을 차입하면서 처음으로 빚을 진다.
프랑스의 남서부 도시 툴루즈는 대서양과 지중해와 떨어진 거리가 비슷한 내륙이고 강이 흐른다. 이곳의 지배자 백작은 세습하여 이곳을 지배하며 시민에게 군사력을 지원받고 대신 자치권을 부여한다. 툴루즈 법은 은행업, 대부업, 이자부과를 허용하고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했다. 이곳은 곡식제분으로 금융이 발달한다. 유럽은 6세기부터 수력으로 외륜 수차로 방앗간을 돌리다 11세기가 되어 육지로 올라와 성업을 한다. 제분회사들은 강에 정박하기 좋은 곳을 차지하려고 자본주의 입장에서 경쟁하다 홍수를 만나 사고가 생기면서 강둑을 만들어 댐을 짓는데 상당한 자본이 필요했고 시정부도 개입한다. 방앗간 용수로를 만들려면 토지를 소유한 교회와 시정부 평민 등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투자자 집단이 자본을 모으고 개발권을 취득하여 운영하고 이익을 분배한데서 이 조합은 영리회사였다. 이 회사가 로마공화정 이후 처음으로 나타나는 주식회사의 특징을 여럿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 제분소의 상호협의에 의한 문서가 있다. 상당히 긴 2.5m의 두루마리 문세인데 최초 쐐기문자로 적은 대출거래 내역, 이집트 부동산 담보대출문서, 네덜란드 영구채권과 같이 옛 금융문서는 대부분 상당히 간결하다. 그런데 주식회사를 만드는데 왜 이리 긴 문서가 필요했을까? 채권은 상환을 약속하는 문서이지만 주식회사는 수 세기에 걸쳐 자율적으로 운영될 조직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기계를 만드는 청사진, 우선 투자자의 자본으로 공장으로 만들고, 자본사용방법과 이익배분을 풀어놓은 특별한 기록이다. 이처럼 중세 유럽 이곳저곳에서 주식투자를 통해 자본을 출자 받은 제분회사와 채광회사를 보면 자본주의란 역사에 반복하여 출현하는 경제적 해결책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경제적 생태계에서 자유스럽고도 돌연변이에 가깝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국토는 소국이나 놀라운 해양력으로 부상한 강국이다. 두 제국은 개개인이 적지 않은 개인적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고 이워졌다. 무역주식회사는 자본을 끌어오고 위험을 나누며, 성공할 때까지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해야 하는 기획안에 돈을 댄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도구로 발달한다. 주식회사라는 패러다임은 탐험이 한두 번 실패하고 전쟁에 패하며 시장이 폐쇄되는 동안에도 주주의 이익을 지켜, 몇 년, 몇 세기에 걸쳐 자본의 영속성을 유지하며 튼튼히 버티는 규칙의 집합임이 입증되었다. 두 나라의 주식회사는 국가와 다름없을 정도로 중요해졌고, 따라서 국가의 손익은 서로 밀접하게 얽히게 된다. 네덜란드는 국력이 절정에 달한 1687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4배에 이르는 대 함대를 형성하고 영국을 침공 상륙한다. 영국 왕이 실정을 거듭하여 영국 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없었다. 영국민은 피를 흘리지 않는 침략을 환영했고, 정권은 순조롭게 바뀌지만 두 나라 모두에 오래가는 충격을 남겼다. 정치사에서 영국 왕권이 축소되고 의회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7세기 초 영국 시장이 등장하는 데는 영국의 명예혁명과 네덜란드의 금융업자의 공헌이 크다. 영국의 은행제도 작동방식은 네덜란드의 방식이다. 채권시장, 연금 및 기타 저축 수단이 네덜란드의 자본이 공급되면서 투자증서 시장이 움직였다. 네덜란드인은 네덜란드동인도회사 VOC와 네덜란드서인도회사 WIC를 만들었다. 영국주식시장에 거품이 생기면서 기획의 시대에 절정에 달할 때 생긴 것이 프랑스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다.
남해회사 사업모델은 인수합병을 통해 해외무역을 인수하고 채권전환을 1717년에 완성하고 1719년에는 구주배정에 따른 유상증자로 이어졌다. 자본금의 10%를 분할 납입하는 조건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투자자를 끌어들여 고객층을 넓혔다. 투자자에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유동성 공급기관 역할을 했다. 주식발행에 신뢰를 주기위해 개인재산으로 주식을 사겠다고 제안하여 언행일치를 실행했다. 마지막으로 신주인수권이 붙은 유상증자를 선보였다. 1차 주식을 산 청약자는 그다음 청약 때 4대1의 비율로 신주를 살 권리를 부여받는데 1차 주식을 어머니 2차 주식을 딸 3차 청약의 주식은 손녀로 불렸다. 드디어 1720년에 주식의 대폭락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 암스테르담에서 책이 발간되는데 제목이‘어리석음을 비추는 위대한 거울’이다. 이처럼 금융경제학자나 열광할만한 건조한 문서들 뒤에는 대폭락 뒤에 쓰인 풍자적 희곡과 시가 여러 편 나온다. 여기 등장하는 탐욕스런 바보, 영리한 주식투기꾼, 인간의 이성을 훔쳐가는 가치 없는 종잇조각을 사게 만드는 초인이자 수수께끼에 싸인 광대와 협잡꾼 등 익살스런 인물이 양념이다.
한 그림을 보면 명예 부 어리석음을 의인화한 우의적 장면, 암스테르담과 파리의 붐비는 주식시장, 돈을 걸었다가 잃고 피해를 본 투자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광경 등 훌륭하고 흥미로운 그림인데 존 로가 마치 신처럼 구름위에 떠 있고 주식시장을 상징하는 인물이 고양이를 풍선에 묶어 띄우려고 미친 듯이 풀무질을 해대는데, 이는 미시시피회사 주가를 부풀리는 것을 암시한다. 로의 머리에는 풍차가 얹혀 있는데, 여기서 바람은 공허한 로의 금융 시스템을 비유한다. 옆에는 자본금 비납 주식, 일반 주식, 청약권, 대출, 경품, 이중이자 등 문제가 되는 금융계약 목록이 나온다. 이러한 계약서가 가득 찬 상자에는 구멍이 뚫어 쥐가 드나든다.
1720년을 후세에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란 제목의 페이지는 ‘어리석음’이 모든 수레를 흥분한 투자자들이 따라가며 엄청난 행렬을 이루는데 그들이 가는 문은 ‘구빈원’ ‘병원’ ‘정신병동’ 등이다. 수레를 끄는 것은 당대의 주요 무역회사와 금융회사, 동인도회사, 미시시피회사, 영국은행, 네덜란드 서인도회사, 로열 어슈어런스를 의인화한 사람들이다. 운명의 바퀴는 네덜란드에 설립된 신설무역회사와 보험회사다. 수레의 위에서는 행운의 여신이 날아다니며 주식과 바다뱀을 섞어서 뿌리고 있다. 도박사였던 존 로의 개인사도 풍자를 면치 못한다. 존 로와 부인은 적색과 흑색으로 찍은 카드가 실려 있다. 영국에서도 남해회사를 풍자한 카드가 있다. 분명한 것은 금융재앙의 뿌리는 도박이라는 것이다. 재앙을 만들어 낸 기획자는 도박사이고, 금융혁신의 기초 개념은 도박이었다.
2019.11.24.
금융의 역사-3
월리엄N 괴츠만 지음
지식의 날개 발간
첫댓글 금융의 역사가 유럽에서 이루어졌고
오늘의 그 현실을 이 땅에서도 느끼게 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