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날곡(원곡)과 리메이크곡 중에서, 오리지날곡의 임팩트가 강해서인지 아니면 첫인상이 강해서인지 이상하게도 오리지날곡의 선호도가 더 높은 것이 만국공통입니다. 아마도 아이가 여럿 있으면 첫정 때문에 첫아이에게 정이 많이 가는 것과 유사한 것심리가 아닌가 합니다. 다른 면에서는, 오리지날곡의 선곡 과정에 있어서 오리지날곡을 부른 가수가 자신에게 가장 궁합이 맞는 오리지날곡을 선택한 결과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으며, 가요의 세계라 하여 다를 바는 아닙니다. 본래 ‘서울 야곡’은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가 트레이드마크인 현인의 곡입니다. 무려 1950년이라는 그 옛날에 집필된 세련된 가사는 모더니즘계열 시의 간판 김광균의 시가 연상됩니다. ‘그라스’라는 표기 자체는 옛날을 느끼게 하지만, 쇼윈도에 내리는 비를 눈물로 비유하는 공감각적 표현은 김광균을 상징하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를 소환합니다.
그 시대의 다른 대중가요의 가사와 비교해 봐도 전문 글쟁이가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련된 감각이 인상적입니다. 좋든 싫든 김광균이나 다른 모더니즘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쓴 것이 유력합니다. 실제로도 글쟁이 유호가 작사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야곡’ 특유의 음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는 리메이크곡을 부른 전영이 더 살려냈습니다. 현인은 특유의 떨림음이 있어서 모더니즘이 구현하는 맛을 살리기에는 2%가 부족합니다. 침잠된 목소리의 전영이 오리지날곡보다 더 맛을 살려냈습니다.
전영은 가수임에도 ‘가수같지 않은 가수’, 연예인임데도 ‘연예인같지 않은 연예인’으로 불리던 사람입니다. 한창 뜰 때 미련없이 한국을 떠나 유학을 떠난 소신파입니다. 화장끼 없는 얼굴에 1970년대라면 거의 금기와 같은 안경을 쓰고 노래를 불렀던 기인에 가까운 가수였습니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로 10대가수에 선정되었음에도 그 흔한 쇼프로그램은 물론 방송출연 자체를 기피했던 괴짜였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단아하고침잠된 분위기로 꾸준히 인기를 누렸던 행운아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야곡’은 장르상 요즘 거의 불리지 않는 탱고입니다. 본래 탱고는 여성무용수의 야한 춤사위가 인상적인 남미의 춤곡입니다.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누렸지만, 디스코와 댄스곡의 광풍에 거의 잊혀졌던 장르입니다. 그러다가 헐리우드의 왕년의 꽃미남 배우 알 파치노를 마침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만든 ‘여인의 향기’에서 빛난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영화 속에서 열연한 알 파치노의 탱고 춤사위가 떠오릅니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우 글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네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에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
바가본드 마음 아픈
서울 엘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