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엄마랑 단둘이 경기도
부평에서 단칸방 얻어 살 때 퇴근 후
집에 오면 TV도 재미없고 퇴근길에
작은 수족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냇가에서 붕어며 송사리랑
놀던 때가 생각났다.
지갑을 털어 한 자짜리 어항을 사서
집에 들고 왔다.
엄마 눈이 휘둥그레진다.
모래 아래 스펀지 여과기를 설치하고
다음 날 예쁜 붕어를 데려왔다.
서울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철길 옆 동네에
엄마도 심심하던 찰나에 붕어
친구가 생겼다.
집에 오면 붕어만 쳐다보고 밥 주는
재미로 기르다 보니 신경 쓰는
일이 아주 많았다.
백점병이 와서 죽고 물이 오염되어
갈아 주고 지느러미 녹는 병이 와서
치료 약 타 주고 어항이 작으니
2주 정도면 물이 금방 오염되고
짜증도 나서 서너 달 만에 치웠다.
그렇게 서너 달 후 아는 지인이
유리공장에 계신다고 하시며
저렴하게 어항 두 자짜리 유리를
재단해 오셨다.
나는 집에서 모든 일을 직접 한다.
수도꼭지에서부터 전기. 실리콘 작업 등
해보고 안 되면 업체를 부른다.
실리콘만 붙여도 되는데 내가 초보자라
어항이 터질까 불안해 투박한 조립식
앵글을 사다가 직접 조립해서
어항 다이를 설치했다.
투박하지만 그럴듯하게 큰 어항이
만들어졌다.
다시 모래를 넣고 붕어를 사다 넣고.
그때는 컴퓨터도 없고 어항 여과기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바닥 스펀지 여과기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멍청했나 보다?
오염되어 2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그 큰 어항에 모래를 다 꺼내고 씻어 넣기를.,
밥 주면 똥 싸고 어항 크기에
비해 여과력이 작으니 당연히 물이
썩을 수밖에..
옆에 엄마도 도와주시며 청소할 때마다
야단이셨다.
일하고 일요일이라도 편히 쉬고 출근하지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쓴다고..
하긴 모래 꺼내 씻고 하는 청소가 한 두시간 걸리는 일이 아니니까…. ㅠㅠ
이사 몇 번 다니며 흐지부지하다가 치웠다.
서울에 정착했다.
일 때문에 청계천 지나는데 수족관 거리가
눈에 스쳐갔다.
허허 뭐야 저거 미치겠네!
다시 어항을 만들자 !
쉬는 일요일 갔다.
청계천 가면 열대어 수초 어항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냥 모래도 아닌 흑사에
스펀지 기포기가 아닌 여과기에
가짜 수초가 아닌 진짜 수초에
붕어가 아닌 열대어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인터넷으로 조금 배워 두자 반짜리
어항을 주문하고 소일 바닥재, 측면 스펀지 여과기, 구피를 데려왔다.
기를 줄도 모르는 수초도 서너 가지
사 와서 어항이 완성되었다.
결혼하고도 그 어항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조금씩 알아가는 수초 어항이 알면
알수록 어려웠다.
수초는 있는데 수초를 건강하게 기르려면
이산화탄소를 넣어 주어야 한다.
중고 이산화탄소 가스통을 사다가
어항 집에서 가스를 주입해 틀어 주면
수초가 푸르게 잘 자랐다.
기르기 쉬운 열대어 구피를 길렀더니
너무 새끼를 잘 낳아 처치 곤란이다.
구피는 알을 낳은 게 아니라 새끼를 낳는다.
우리 애들도 커가면서 신기한 듯 항상
어항을 보며 즐거워했다.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고기들은
죽어 나갔다
시간 나면 청계천. 신림동 수족관에 가서
정보도 얻고 사 오고 그러길..
10여 년 전 부산으로 이사 왔다.
그 어항 고기들도 당연히 데려왔다.
거실에 두고 수도에서 호수를 연결해
물이 증발한 만큼 보충해 주는
볼탑을 설치했다.
어항 집 가니 이산화탄소 통이
오래된 것이라 이탄을 넣어줄 수 없단다
불법이라고.
새것 10여 만원.
돈 아까워 그냥 포기하고 이산화탄소를
제조해 넣어 주기로 했다
설탕하고 이스트를 섞어 자작 이탄를
만들어 틀어 줬다.
5년 정도 재미있게 열대어와 살았다.
그리고 오래 쓰고 이사를 서너 번
하다 보니 물이 새기 시작했다.
유리도 많이 글킨 흠집이 보이고
실리콘을 바르고 하다 보니 지저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 어항과 헤어졌다.
주·야 일 다니며 피곤하고 열대어
얘네들보다 공부 잘하며 함께 산에도 가고 놀아 준 아들 딸이 더 예뻤다.
2019년 8월.
또 어항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그전에 쓰던 바닥재 흑사는 비싸고
버리기 아까워 창고에 두었는데
흙모래라 수명이 다 되어 부서지고
깨졌는데도 그냥 쓰기로 했다.
어항 다이는 싱크대 가게 하는 조카보고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인터넷 들어가 과감히 돈을 발랐다.
아마존 여과기 78,000 원
어항 44,000 원
led조명 81,000 원
co2 통 18,000 원
수초 10,000 원
이니셜스틱 13,000 원
수질정화재 4,000원
₩ 248,000원
여기에 덤으로 한 자짜리 어항을
하나 더 주문해서 윌로모스 이끼와
생이 새우 어항을 만들었다.
수초를 심고 한 달을 물 수질 잡느라
빈 어항을 돌리고 보니 어느 정도
고기가 살 수 있는 수질이 잡힌 거 같다.
네온 테트라 열대어도 데려오고...
수초가 많이 커서 몇 번 트리밍도 하다 보니
새로운 친구들을 데러 오고 싶다.
블랙 엔젤 4마리를 데려왔다.
침대에 누우면 어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얘네들은 오늘도 나만 보면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복숭아향기님
저희는 한자짜리 어항인데
어항은 아내님 담당 ㅎ
그리고 청계천 6가구두상가
지나서 수족관을 아내님
따라 가본적 있지요
소박하고 정겨운 글
잘봤습니다
복숭아향기님~^^
저도 거길 자주 가서 모든 걸 구입해오고 했지요. 새로 어항을 구입해서 이렇게 셋팅해서 현재는 이정도 ?
저녁에 멍때리기 좋아요.ㅎㅎ
@복숭아향기
아, 님도 청계천 그 수족관
애용하셨군여
그 수족관서 옷깃을 스쳤을
수도 있었겠어여 ㅎㅎ
새삼 반갑구여
앞으로도 정겨운 글
많이 올려주세여
새해 첫날 밤
행복하시구여~^^
@눈꽃작은섬 취미 생활 하시는 분들은
언젠가는 만나더군요.
서로 모르는 분들이니 그렇지
한번이라도 알던 사람들은
우리는 수족관에서
등산하시는 분들은 산에서
강태공들은 물에서
간혹 만나지요.
그러니 죄 짓고는 못 살지요. ㅎㅎ
어항과 인연이 깊은 분이시군요~
끈기있는 분이라 여겨집니다
오래도록 어항관리 해 오셨으니
이번에 구입하신 어항과 물고기들은
복숭아 향기님과 오래도록 함께 할것입니다
행복한 오훗길 되세요^^
2019년 8월달 이렇게 한달동안 준비해서 셋팅하고 두고 보니
입에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어떤 애들을 데려올까나 ?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