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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半島之地(반도의 땅)를 말하지 않는다 [제1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도(京都) 재해석(再解釋)]
2,026년 07월 09일
○ 「반도(半島)【조선반도(朝鮮半島) : 한반도(韓半島)】는, 「AD 1,910年 반도(半島) 땅과 그 부속도서(附屬島嶼)의 일본(日本)에 의한 점령(占領)과 식민지배(植民支配)」는 : 〈AD 1,905년 7월 29일 일본(日本) 도쿄(東京)에서 미합중국(美合衆國) 육군장관(陸軍長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日本)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가쓰라 다로’가 극비회담(極祕會談)을 하였는데, 이를 “가쓰라-태프트 밀약 또는 각서(覺書)”라고 한다〉의 각서(覺書)에 따라,
➥ 「미합중국(美合衆國)의 필리핀 식민지배(植民支配)를 묵인(默認)하며, 일본(日本)의 대한제국(大韓帝國) 침략(侵略)과 보호령(保護領)으로 식민지배(植民支配)를 용인(容認)하고, 상호(相互) 이를 양해(諒解)한다」라는 두 나라의 은밀(隱密)한 야합(野合)에 따라… …‘반도(半島)는 일제(日帝)의 식민지(植民地)’가, ‘필리핀은 미국(美國)의 식민지(植民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극비(極祕) 각서(覺書)’는, 말 그대로 극비(極祕)로 취급(取扱)되다가 1,924년(年)에야 비로소 밝혀진 것이다. ➤➤➤ ‘미합중국(美合衆國)을 혈맹(血盟)’이라고 하면서 자신(自身)들의 조상(祖上)보다도 더 떠받들고 있는 일부(一部) 보수층(保受層)과 극우주의자(極右主義者)들은 한 번쯤 이러한 역사(歷史)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애써 모르는 척, 별건(別件)처럼 얼버무리지만 : 식민지배(植民支配)의 원인(原因)을 제공(提供)한 것이, 바로 위에서 설명(說明)한 ‘일본(日本)과 미국(美國)의 야합(野合)’으로부터이다.
필자(筆者)는 결코 반미주의자(反美主義者)가 아니다. 필자는 순수(純粹)한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로 진보(進步)를 선호(選好)하는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로 보면 : 가장 타당(妥當)한 표현(表現)이다. 이를 토대(土臺)로 보면 :
➥ 「➊ 미합중국(美合衆國)은, 1,905년의 일본(日本)과 은밀(隱密)하게 야합(野合)하여 반도(半島) 땅을 일제(日帝)의 식민지(植民地)로 내어 주었고, ➋ 1,945년 해방(解放) 이후(以後) 또한 구소련(舊蘇聯)과 야합(野合), 반도(半島) 땅을 남한(南韓)과 북한(北韓)으로 갈라놓는데, 핵심적(核心的)인 역할(役割)을 한 것은 또한 틀림없는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이며, ➌ 또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국무장관(國務長官)이 발표(發表)한 ‘애치슨 선언’에서, 극동(極東) 방위선(防衛線)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으로 설정(設定), 반도(半島) 땅을 제외(除外)하여, 북한(北韓)의 남침(南侵) ‘6.25 전쟁(戰爭)’의 단초(端初)를 만들어주었다는 것 또한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이다.」 이름 부인(否認)할 수 있는 증거(證據)나 근거(根據)는 없다. 물론(勿論)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대표적(代表的)인 “예(例)”라고 볼 수 있다.
현대사(現代史)에서 “미합중국(美合衆國)”은 도대체 뭔가? 정치적(政治的) 면에서 볼 때, 우리가 떠받들고 모셔야 할 정도(程度)의 나라인가? 미사려구(美辭麗句), 좋은 말로 : 「약자(弱者)의 비애(悲哀)다」리고 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기분(氣分)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 그렇다면 「반도(半島) 땅과 그 부속도서(附屬島嶼)는 정말 ‘고황제(高皇帝)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왕조(朝鮮王朝)’가 한성(漢城)에 ‘황도(皇都)=황성(皇城)’을 두고 500년(年)【AD 1,392∼1,897年】을 영위(營爲)했을까?」 이게 문제(問題)다.
또 「고황제(高皇帝) 이성계(李成桂)가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였음에도, “동국(東國)”이라고 불린 이유(理由)는 또 뭔가? ‘조선(朝鮮)과 동국(東國)’이 같은 뜻을 가졌나? 나라 이름을 멋대로 바꿔도 괜찮았다는 건가?
「조선(朝鮮)이란 나라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또 동국(東國)이라는 이름에는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 한 사람 ‘사이다’같은 해설(解說)을 내놓은 사람이 없다.
㈠ 조선(朝鮮) : 어디에서도 그 의미(意味)를 말해주지 않는다. “모른다”라는 뜻이다. 별의별(別의別) 주장(主張)이나 의견(意見)이 난무(亂舞)하지만 : 그럴듯한 주장(主張)은 없다.
㈡ 동국(東國) : 「중국의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는 ‘해동’이라는 별칭에서 파생된 칭호이다. [출처(出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라고 “시원한 콜라”처럼 말해준다.
☛ 그러나 여기서 “해동(海東)”은 뭔가? 라는 질문(質問)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별칭. 중국인이 ‘발해(渤海)의 동쪽 나라’라는 뜻으로 불렀는데 이를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사용하였다. [출처(出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라고 말해준다.
➥ 그렇다면 여기서 또 질문(質問)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발해(渤海)”란 또 어떤 바다를 말하는 건가? 하는 것이다. 「정사(正史)인 북사(北史)에서는 : 동발해(東渤海)를 흑해(黑海), 서발해(西渤海)를 지중해(地中海)라고 기록하였다.」 북사(北史)의 기록(記錄)이 “오류(誤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根據)도 없다.
또한 ‘후한서(後漢書) 본기(本紀)’에서는 『발해(渤海) 주변(周邊)의 6주(州)에 큰비가 내려 범람(氾濫)하였다』라는 기록(記錄)을 남겨 놓고 있어 내륙해(內陸海)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또 연행록(燕行錄)에서는 『수백(數百) 리(里)에 걸쳐 가로 놓여 있으며, 하천(河川)으로 연결(連結)되어 있다』라고 직접(直接) 본 것을 기록(記錄)으로 남겨 놓고 있으며, 또 다른 곳에서는, 『발해(渤海)의 북안(北岸)은 사막지대(沙漠地帶)였다』라고 하였다.
☛ ‘사서(史書), 연행록(燕行錄)’에서 말하는 “발해(渤海)”는 21세기(世紀), 오늘날의 발해(渤海)를 지칭(指稱)하고 있지 않다. 『발해(渤海)는 옛 조선(朝鮮)의 동천(東遷)과 함께 이동(移動)되었다』라는 것으로 이해(理解)될 수 있는 것이 사서(史書)마다 그 주변(周邊)의 지세(地勢)가 다르게 묘사(描寫)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에 없었으며, 그 무대(舞臺)는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땅이었다”라는 것을 증거(證據)해 주고 있다.
따라서 『해동(海東)은, 중원대륙(中原大陸)을 칭하는 것이며, 우리나라란 뜻은 곧 중원대륙(中原大陸)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適切)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 여기서 「해동(海東)의 해(海)」는 본래(本來) ‘지중해(地中海)=발해(渤海)’를 일컫는 것이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適切)한 표현(表現)이다.
● 『조선국(朝鮮國)의 지리지(地理志)라면 당연(當然)히 ‘조선(朝鮮) 지리지(地理志)’이어야 했음에도, 엉뚱하게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라고 했을까?
또 「조선여지승람(朝鮮輿地勝覺)」이 아니고,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라고 했을까? 조선(朝鮮)의 지리지(地理志)임에도 무엇 때문에,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라고 했느냐? 하는 원초적(原初的) 질문(質問)이다.
신증(新增)이란 : 신설(新設)과 증설(增設)을 해, 새롭게 만들었다는 뜻이므로, 이전(以前)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라는 지리지(地理志)가 있었음에, 신설(新設)하고, 증설(增設)하여 새롭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국어 위키백과 : 〈➊《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성종(재위 1,469 ~ 1,494) 때의 지리지이다. 성종 때 명나라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1,462)가 수입되자 왕이 노사신·양성지·강희맹 등에 그것을 참고하여 세종 때의 《신찬팔도지리지》를 대본으로 지리서를 편찬케 하였다. 그 사람들은 성종 12년(1,481)에 50권을 완성하였고 성종 17년(1486)에 증산(增刪)·수정하여 35권을 다시 완성해 간행하였다. ➋ 그 후 연산군 5년에 개수(改修)를 거쳐 중종(中宗) 25년(1530)에 이행(李荇) 등의 증보판이 나오니, 이것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라고 한다. 전 55권 55책〉】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1,486年)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1,530年) 간의 연차(年差)는 겨우 45년(年) 차이(差異)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京都 上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京都 [上] 【原文 全文】
《古朝鮮馬韓之域。北鎭華山有龍盤虎踞之勢,南以漢江爲襟帶,左控關嶺,右環渤海。其形勝甲於東方,誠山河百二之地也。百濟中葉,自漢山而徙居,未幾播遷南土。高麗肅宗雖置南京,有時來巡而已,皆不足以當形勢之勝。至我太祖康獻大王,受天明命,定鼎于此,以均四方來廷之道里,以建萬世不拔之閎基,非東、西、開三京形勢所能彷彿其萬一也。猗歟盛哉!
〔新增〕 國都
大明董越《朝鮮賦》:眷彼東國,朝家外藩。西限鴨江,東接桑暾。天池殆其南戶,靺鞨爲其北門。【其國東、南皆際海,西北爲建州,正北爲毛憐、海西。】八道星分,京畿獨尊。翼以忠淸、慶尙,黃海、江原。義取永安,意在固垣。平安地稍瘠薄,全羅物最富繁。【京畿、忠淸、慶尙、黃海、江原、永安、平安、全羅,皆道名。平安卽古弁韓地,慶尙卽古辰韓地,全羅卽古馬韓地。】 其袤也道里二千,延則加倍,【其國東西二千里,南北四千里。誌書云。】 視古也國封三四,今則獨存。【新羅、百濟、耽羅,今皆爲所有。】 蓋惟不蹈前人之覆轍,所以獨蒙昭代之深恩也。詔許建邦,自爲聲敎。【本朝洪武二年,高麗國王王顓表賀卽位。詔許自爲聲敎,賜以龜紐金印。】 曰詩曰書,視庠視校。士窮則辟蠹雕蟲,宦達則摶鵬變豹。【其國奉朝廷正朔,鄕試以子午卯酉年,會試、殿試亦辰戌丑未年。[出處 : 고전번역원 DB]》
● 1. / 新增東國輿地勝覽) 京都 [上] 序文 : 《古朝鮮馬韓之域。: 고조선(古朝鮮)은 마한(馬韓)의 지역이다. 北鎭華山有龍盤虎踞之勢,南以漢江爲襟帶,左控關嶺,右環渤海。其形勝甲於東方,誠山河百二之地也。: (서울은) 북으로 화산(華山)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동과 서는 용이 서리고 범이 쭈그리고 앉은 형세이고, 남쪽은 한강(漢江)으로써 요해처(要害處)를 삼았으며, 멀리 동쪽에는 대관령이 있고 서쪽에는 발해(渤海)가 둘러싸고 있어서 그 형세의 훌륭함이 동방(東方)의 으뜸으로서, 진실로 산하(山河) 중에, 백이(百二)의 땅이다.》라고 하였는데… …,
(1) 《古朝鮮馬韓之域。: 고조선(古朝鮮)은 마한(馬韓)의 지역이다.》라고 하였는데 : 이러한 지리지(地理志)에서 말하는 것은,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의 역사해설(歷史解說)과는 전적(全的)으로 배치(背馳)【서로 반대(反對)가 되어 어긋나는 것】된다.」이를 어찌할까?
「고조선(古朝鮮)은 : 오늘날의 한강(漢江) 이북(以北)으로부터 황해도(黃海道), 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땅을 일컫는다.」
그러함에도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첫머리에 “古朝鮮馬韓之域 : 고조선(古朝鮮)은 마한(馬韓) 땅(域)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럼 ‘고조선(古朝鮮)은 반도(半島)의 남(南)쪽 전라도(全羅道) 땅에 있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 그러하면 : ‘단군조선(檀君朝鮮)=고조선(古朝鮮)’의 왕성(王城)이었던 평양성(平壤城)은 전라도(全羅道) 땅에 있어야 맞는 말이다. 이래서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가 죽어야 나라가 민족이 번영(繁榮)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는 : 「고조선(古朝鮮)은 오늘날의 한강(漢江) 이남(以南)에 없었다」라며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는 맹렬(猛烈)하게 주장(主張)하며, 「마한(馬韓)은 전라도(全羅道) 땅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경상도(慶尙道) 땅에 있었다는 ‘진한(秦韓)=진한(辰韓)’」 때문이다. 즉(卽) 「진한(辰韓)의 서쪽에 마한(馬韓)이 있어 서한(西韓)이라고도 했다」라는 조건(條件)을 충족(充足)시키기 위해서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가 만들어낸 말이다. 어거지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 그 이면(裏面)에는 “왜(倭)”가 2,600년(年) 열도(列島)에 있었음을 증거(證據)하기 위한 것이다.
➥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역사해설(歷史解說)인가?
「동서남북(東西南北) 수천리(數千里) 땅, 방(方) 수천리(數千里) 땅에서 벌어졌던 옛 역사무대(歷史舞臺)를 : “아주 조그만 그것도 동서(東西)는 수백(數百) 리(里)에 불과(不過)한 좁디좁은 땅에 옮겨 놓고 보니,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역사해설(歷史解說)을 할 때마다 “오류(誤謬)”가 나오고, 드디어는 설명(說明)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가? ㈠ 「마한(馬韓)은 한강(漢江) 이북(以北)으로부터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萬江) 너머 요녕성(遼寧省)과 길림성(吉林省)을 포함(包含)하는 건가?」 아니면 ㈡ 「쪽박 차고 쫓겨나듯이 “마한(馬韓) 땅”은 전라도(全羅道) 땅에 처박힌 것인가?」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는, 이에 대해 누구도 선뜻 나서서 답(答)을 말해 줄 수 없다.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곧, 고조선(古朝鮮)이든 삼한(三韓)이든 “반도(半島)”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가 없기 때문이다.
(2) 《北鎭華山有龍盤虎踞之勢,南以漢江爲襟帶,左控關嶺,右環渤海。: (서울은) 북으로 화산(華山)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동과 서는 용이 서리고 범이 쭈그리고 앉은 형세이고, 남쪽은 한강(漢江)으로써 요해처(要害處)를 삼았으며, 멀리 동쪽에는 대관령이 있고 서쪽에는 발해(渤海)가 둘러싸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 이게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기다.
『화산(華山)』 : 참 어려운 이야기다. 말 그대로 화산(華山)은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요충지(要衝地) 가운데 요충지(要衝地) 땅인 장안(長安)의 동(東)쪽에 있는 산(山)【화음현(華陰縣), 화산(華山), 해발고도(海拔高度) 2,160m】의 이름이다.
☛ 「서울의 화산(華山) : 서울특별시의 북부와 경기도 고양시 사이에 있는 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삼각산(873m)’이라고도 한다. [출처(出處) : 국가 유산청, 국가유산포털]」라고 설명(說明)한다. 그렇다면 “백제(百濟)의 한산(漢山)”은 또 어디에 있나?
설령(設令) “삼각산(三角山)이 화산(華山)”이라고 한다면 : 그 아래의 「左控關嶺,右環渤海 : 동(東 : 左)에는 관령(關嶺)을 제어(制御)하고, 서(西 : 右)쪽은 발해(渤海)가 둘러싸고 있다(環)」라는 기록(記錄)은 뭐냐? 이해(理解) 불가능(不可能)한 말이 된다.
즉(卽), 「左控關嶺,右環渤海 : 동(東 : 左)에는 관령(關嶺)을 제어(制御)하고, 서(西 : 右)쪽은 발해(渤海)가 둘러싸고 있다(環)」라고 하였다.
➥ 「반도(半島) 대한민국(大韓民國) 서울(Seoul)의 서(西)쪽 강화도(江華島)는, 발해(渤海)에 둘러싸여 있는 섬(島)인가?」도대체 “발해(渤海)”는 어디에 있는 바다를 말하는 건가?
항상(恒常) 말하는 것이지만 : “하북성(河北省) 남(南)쪽의 발해(渤海)는, 21세기(世紀)의 발해(渤海)일 뿐이다.” 이걸 아주 쉽게 확인(確認)할 수 있는 것이 있다.
☛ 즉(卽), 「해동(海東)은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인데, 발해(渤海)의 동(東)쪽이라는 뜻이다. 동방(東方)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를 역으로 돌려보자. 「발해(渤海)의 서(西)쪽은 해서(海西)이니, 곧 서방(西方)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구절(句節)이 성립(成立)되어야 한다.
그 결과(結果)는 : 「중국(中國)은 서방국(西方國)이고, 해서(海西)의 나라여야 한다.」 그러나 역사서(歷史書)는 말하기를 : 「중국(中國)은 ‘동방(東方)’에 있다. 곧 총령(葱嶺)의 동쪽을 동방(東方)이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 「반도(半島) 땅은, 발해(渤海)에 둘러싸여 있지 않다. 더더구나 ‘서울=한성(漢城)=한양(漢陽)’은 “발해(渤海)”와는 전혀 관계(關係)가 없다. 오로지 서(西)쪽에는 서해(西海)에 닿고 있을 뿐이다.」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는, 공부(工夫)를 아주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알면서도 모르는척하는 것은,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을 배신(背信)하는 행위(行爲)다.
(3) 《其形勝甲於東方,誠山河百二之地也。: 그 형세의 훌륭함이 동방(東方)의 으뜸으로서, 진실로 산하(山河) 중에, 백이(百二)의 땅이다.》라고 하였는데… …,
그 형승(形勝)【지세(地勢)나 풍경(風景)이 아주 뛰어남을 일컫는 말이다】의 뛰어남이 「동방(東方)」의 으뜸이라고 하였다. 「동방(東方)」은, 곧 우리나라 옛 조선(朝鮮)을 칭(稱)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➊ 동방(東方) : “서방(西方)의 반대(反對)말”이라고 하였으니, “동방(東方)이란 반도(半島)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방(東方)이 우리나라(半島)를 칭(稱)한다는 말은, “세기(世紀)의 헛소리다”」
「해국도지(海國圖志) 국지총론(國地總論)」에서 말하기를 : 네서 : 《梵典言贍部洲中有四主,東人主即震旦,南象主即印度,北馬主即蒙古哈薩克,西寶主即大小西洋。是歐羅巴、利未亞皆屬贍部洲之明證。: 범전(梵典)의 말씀에서, 섬부주(贍部洲)의 가운데에 ‘네 주(主)’가 있는데, 동인(東人)의 주(主)는 곧 진단(震旦)이요, 남상(南象)의 주(主)는 곧 인도(印度)요, 북마(北馬)의 주(主)는 곧 몽고(蒙古)의 합살극(哈薩克)이요, 서보(西寶)의 주(主)는 곧 크고 작은 서양의 바다(西洋)이다. 구라파(歐羅巴)와 이미아(利未亞)는 모두 섬 부주(贍部洲)에 속했다는 것은 명백하게 증명(證明)이 된다.》라고 하였다.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진단(震旦)은 중국(中國)』이라고 하였다. 『Naver 한자사전(漢字辭典)에서는 :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으로, ‘발해(渤海)’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으니, 「해국도지(海國圖志)」에 의하면 : 「발해(渤海)는 곧 중국(中國)이다.」라는 뜻과 같고, 진단(震旦)이란, 해가 뜨는 동(東)쪽을 말하는 것이고, 고려(高麗) 역시 진역(震域)의 나라라고 하였다. 진역(震域)은 곧 진단(震旦)과 같은 뜻을 가진 단어(單語)다.
“Naver AI”에서도 말하기를 : 『震旦』이란 : 《㈠ 한국사 맥락: ‘동방에 단군의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사용된다고 설명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㈡ 사전(중국어) 의미: ‘진단(震旦)’으로 번역되며, 중국의 별칭으로도 제시됩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동방(東方)의 단군(檀君)의 나라이니, 우리나라의 별칭(別稱)이요, 이것은 곧 중국(中國)의 별칭(別稱)으로도 사용(使用)되는 말이었다」라는 뜻이 된다.
진단(震旦)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震旦(梵語:Cīna-sthāna,巴利語:Cīna-rattha),又譯震丹、真丹、真旦、振旦、神丹,也稱摩訶震旦(Mahā-cīna-sthāna),即支那斯坦,是支那的異譯,為古代印度對中國的稱呼。》이라고 하여, 중국(中國)을 칭(稱)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해국도지(海國圖志) 국지총론(國地總論)」에서는 : 「자고이래(自古以來) 진단(震旦)은 중국(中國)이다.」라고 하였다.【而震旦則正當溫帶,四序和平.故自古以震旦為中國,謂其天時之適中,非謂其地形之正中也.西洋溫帶之地,則為地中海所佔,而歐羅巴亦偏於冷帶,利未亞亦偏於熱帶.】
또 말하기를 : 《夫中華在蔥嶺之東,則山脈自西來,愈西愈高,高至蔥嶺而止,西洋在蔥嶺西,則山脈自東往,愈東愈高,亦高自蔥嶺而始。山居東西正中。: 중화(中華)는 총령(蔥嶺)의 동(東)쪽에 있다. 산맥(山脈)이 서(西)쪽으로 오는데, 점점 서(西)쪽으로 점점 더 높게, 높은 것은 총령(葱嶺)에서 멎었는데, 서양(西洋)은 총령(蔥嶺)의 서(西)쪽이며, 산맥(山脈)은 동(東)쪽으로 오고 가는데, 점점 동(東)쪽으로 점점 높게, 또한 높은 것은 총령(蔥嶺)에서 비롯된다. 산(葱嶺)은, 동서(東西)의 정(正)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 《➊ 「중화(中華)는 총령(蔥嶺)의 동쪽에 있다.」 이는 동방(東方)을 뜻하는 말이며, 동이(東夷)들이 사는 곳이다. ➋ 「서양(西洋)은 총령(蔥嶺)의 서쪽에 있다.」 이는 곧 서방(西方)을 뜻하는 말이며, 서이(西夷)들이 사는 곳이다. ➌ 총령(蔥嶺)은 동서(東西)의 정 가운데(正中)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불주산(不周山)’을 “천주(天柱)”라 하고, 이곳을 중심(中心)으로, 서(西)쪽 땅과 동(東)쪽 땅을 구분(區分)했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래서 자고이래(自古以來)로 : 「중국(中國)은 진단(震旦)이며, 진단(震旦)이란 단군조선(檀君朝鮮)을 말하는 것이며, 곧 우리나라를 칭하는 말이다. 또 발해를 진단(震旦)이라고 하였고, 고려(高麗)는 역시(亦是) 진역(震域 : 震旦)의 나라」라고 한 것이다.
☛ 그렇다면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은 뭔가? 《「신해혁명(辛亥革命) 곧 AD 1,911년(年) 이후(以後)의 중국(中國)일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국(中國) 역사(歷史)는, 겨우 114년(年)이 된 ‘최(最) 신생국(新生國)’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지리지(地理志) 속의 내용(內容)은 : 당연(當然)하게도 반도(半島) 땅의 것이 아니라, 중원대륙(中原大陸) 땅에 대한 것이다」 이걸 인정(認定)하지 못하면 : 지리지(地理志) 연구(硏究)에 100년(年)을 투자(投資)하더라도 “1”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➋ 《誠山河百二之地也。: 진실로 산하(山河) 중에, 백이(百二)의 땅이다.》라고 하였으니… …, 「백이지지(百二之地)」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백이지지(百二之地)」: ‘백이산하(百二山河)+백이관산(百二關山)’을 말하는 것으로, 옛 진(秦) 나라를 지칭(指稱)하는 것으로, 「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 진(秦)의 땅은, 지형(地形)이 매우 험준(險峻)하여 2만(萬)의 군사(軍士)로, 제후(諸侯) 100만 군사(軍士)를 막을 수 있다」라는 데서 유래(由來)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의 설명(說明)이 “한성(漢城)=한양(漢陽)=경도(京都)”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은 : 「임진왜란(壬辰倭亂)이나 정묘호란(丁卯胡亂 :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 1,636∼1,637)을 보면 : “헛소리였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百濟中葉,自漢山而徙居,未幾播遷南土。: 백제(百濟) 중엽에 한산(漢山)에서 옮겨와 살다가 얼마 후에 남쪽으로 파천(播遷)하였다.》라고 하였는… …,
➥ 참! ‘반도(半島) 한국사(韓國史)’는 이래서 사학자(史學者)들에게 침을 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卽), 『백제(百濟) 중엽(中葉)까지도 「한산(漢山)」에 ‘도읍지(都邑地)=왕성(王城)=경도(京都)’를 두고 있었는데, 얼마 후(後)에 ‘한성(漢城)=한양(漢陽)=서울’로 천도(遷都)하였는데, 그 뒤에 또 남(南)쪽으로 파천(播遷)하였다」라고 하였다.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에게 묻노니 : 『한산(漢山)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山)을 말하는 건가?』 「도대체 한산(漢山) 어디에 서울[京都]을 두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고, 얼마 후에 ‘한성(漢城)=한양(漢陽)=서울’로 천도(遷都)하였다는데, 그곳이 어디인가?」
중요(重要)한 것은 “한산(漢山)”이며, 또 천도(遷都)한 ‘한성(漢城)=한양(漢陽)=서울’은 어디에 왕성(王城)을 두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 남한산(南漢山)에서 뻗어 내려온 표고 44.8m의 잔구상(殘丘狀)의 자연구릉을 이용하여 구축한 것이라고 말하는 몽촌토성(夢村土城)이 왕성(王城)이라는 건가? 방어(防禦)를 위해 구축(構築)된 성(城)이라는 건가?
《“위키백과”를 보면 : 몽촌토성(夢村土城)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2동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이다.》라고 하였는데,
우리 진솔(眞率)하게 한 번 스스로 자문(自問)해 보자. 「그곳에서 “그곳의 유적(遺跡)이 백제(百濟)의 것이라는 징표(徵表)가 있나? 흔적(痕迹)이 있나? 표지석(標識石)이라고 발굴(發掘)되었나?”」라고 말이다. 없잖은가!
➥ 「막무가내(莫無可奈)로, “경기(京畿) 일부(一部)+충청(忠淸)+전라(全羅)의 땅”은 백제(百濟)의 땅」이라는 증거(證據)도 없는 ‘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헛소리를 그대로 따라온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것이 옛 백제(百濟)의 것이라는 건가?
기록(記錄)에 따르면 : 한산(漢山)에도 궁궐(宮闕)이 있어야 하고, ‘한성(漢城)=한양(漢陽)=서울’에도 궁궐(宮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根據)로 말하는 건가?
《헛소리는 더 큰 헛소리를 낳는다.》라는 것은, 100% 진리(眞理)와 버금가는 중독성(中毒性)을 가졌다. 증거(證據)나 흔적(痕迹)을 가지고 말하자. 헛소리는 헛소리에 불과(不過)할 뿐이다.
(5) 《高麗肅宗雖置南京,有時來巡而已,皆不足以當形勢之勝。: 고려(高麗) 숙종(肅宗)이 비록 남경(南京)을 두었지만, 가끔 와서 순행하였을 뿐이니, 모두 그 형세의 훌륭함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곧 경도(京都)인 한성(漢城), 한양(漢陽)에 “남경(南京)”을 설치해 놓고, 가끔 순행(巡幸)하여 민심(民心)을 살피고, 때로는 휴가(休假)를 즐기기고도 했다는 뜻인데… …“남경(南京)의 궁궐(宮闕)은 어디에 있었나? 그 흔적(痕迹)은? 없잖은가!”
그렇다면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과 반도사학계(半島史學界) 여러분들에게 또 물어보자… … 고려(高麗)는 삼경(三京)을 두었는데, “반도(半島) 땅의 지세(地勢)”로 보면 :
• 서경(西京)인 호경(鎬京), 곧 평양(平壤)은 북(北)쪽에 있어, 북경(北京)이 맞고,
• 개성부(開城府)인 개경(開京)은 황도(皇都)다. 중경(中京)이라고도 한다.
• 동경(東京)인 계림(鷄林), 곧 낙랑(樂浪)은 남(南)쪽에 있어 남경(南京)이 맞고,
• 남경(南京)인 서울, 곧 한양(漢陽)은? 그럼 서경(西京)은? 뒤죽박죽이잖은가?
반도(半島) 땅의 형세(形勢) 곧 지세(地勢)로 보면 : 북경(北京), 중경(中京), 남경(南京)의 삼경(三京)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서(歷史書)에서는 : 『서경(西京)과 동경(東京), 남경(南京)을 두었다는 말은 그 강토(疆土)가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넓게 이어졌었다』라는 결론(結論)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 그러니 『고려(高麗 : 開城)의 동(東)쪽 수천리(數千里)에서 맹화유(猛火油)가 나오고, 고려(高麗 : 開城)의 남(南)쪽 5 천리(千里)에 강주(康州)가 있는데, 그 옆의 무주(武州)에서 귤(橘)이 나온다』라는 기록(記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곧 「반도(半島) 땅의 지형(地形)이나 지세(地勢)를 말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여실(如實)【사물(事物)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알려주고 있다.
(6)《至我太祖康獻大王,受天明命,定鼎于此,以均四方來廷之道里,以建萬世不拔之閎基,非東、西、開三京形勢所能彷彿其萬一也。猗歟盛哉! :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이 천명(天命)을 받고 여기에 도읍을 정하여, 사방에서 조정으로 오는 길의 거리를 균등하게 하고, 영원토록 뽑아 낼 수 없는 큰 터를 세우니, 동경ㆍ서경ㆍ개경의 삼경(三京)의 형세로서는 그 만분의 일도 여기에 방불할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답고 훌륭하구나.》라고 하였다.
➥ 여기서 확실(確實)하게 해 놓을 필요(必要)가 있다. 곧 삼경(三京)의 위치(位置)와 방위(方位)다. 곧 「서경(西京)ㆍ동경(東京)ㆍ개경(開京)」은 : 『‘동서(東西) 또는 서동(西東)’ 방향(方向)의 축선(軸線) 상(上)에서 가능(可能)한 것이지, ‘남북(南北)이 몇 배(倍)로 큰 수직(垂直) 상(上)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방위(方位)를 뜻하는 : ‘서경(西京)의 서(西)쪽은 실제(實際)로는 북(北)쪽에 있고, 동경(東京)의 동(東)쪽은 실제(實際)로는 남(南)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半島) 땅의 지세(地勢)로 보면 : 『서경(西京)은,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이어야 하고, 동경(東京)은,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쯤 되어야 올바른 것이 된다.』
곧 「반도(半島) 땅의 지형(地形)이나 지세(地勢)를 말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여실(如實)【사물(事物)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알려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그 후속편(後續篇)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중원대륙(中原大陸)의 것이어야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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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新增〕 國都 : 《大明‘董越’ 朝鮮賦 :“眷彼東國,朝家外藩。西限鴨江,東接桑暾。天池殆其南戶,靺鞨爲其北門。: 대명(大明)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 : “살펴보건대, 저 동국(東國)은 조가(朝家)의 바깥 울타리로,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이 한계가 되고, 동쪽은 상돈(桑暾)에 닿았으며, 천지(天池)는 거의 그 남쪽 문이 되고, 말갈(靺鞨)은 그 북쪽 문이 되었다.”고 하였다. 【其國東、南皆際海,西北爲建州,正北爲毛憐、海西。: 그 나라는 동(東)쪽과 남(南)쪽이 모두 바다에 닿아있고, 서(西)쪽과 북(北)쪽은 건주(建州)이고, 정북(正北) 쪽은 모련(毛憐) 해서(海西)이다.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편찬(編纂)한 학자(學者), 관리(官吏) 등은 “명(明)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서 말한 것들이 「동국(東國)의 지형지세(地形地勢) 또는 기후(氣候), 방위(方位), 강토(疆土) 등에 대한 설명(說明)을 참조(參照)했다면 그것을 그만큼 신뢰(信賴)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월(董越)’의 말이 틀렸다거나 오류(誤謬)였다면 : 인용(引用)했더라도 “이것은 잘못 기록(記錄)된 것이다, 또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라는 등의 설명(說明)을 남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리지(地理志) 편찬(編纂)‘은 왕명(王命)에 따라 이뤄진 ’거국적(擧國的)인 사업(事業)‘이었기 때문이다.
(1) 《大明‘董越’ 朝鮮賦 :“眷彼東國,朝家外藩。西限鴨江,東接桑暾。天池殆其南戶,靺鞨爲其北門。: 대명(大明)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 : “살펴보건대, 저 동국(東國)은 조가(朝家)의 바깥 울타리로,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이 한계가 되고, 동쪽은 상돈(桑暾)에 닿았으며, 천지(天池)는 거의 그 남쪽 문이 되고, 말갈(靺鞨)은 그 북쪽 문이 되었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
• 「서(西)쪽은 압록강(鴨綠江)이 한계(限界)가 되었다.」: 반도(半島) 땅의 지세(地勢)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동(東)쪽은 상돈(桑暾)에 닿았으며」 : “상돈(桑暾)”의 뜻이 뭔가? “부상(扶桑)에서 돋는 해라는 뜻으로, 동해(東海)를 가리켜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지만 “부상(扶桑)”이라는 말의 뜻은 또 뭘까? 부상록(扶桑錄)이란 것을 보면, 열도(列島) 땅을 가리킨다고 하니, 일본(日本)을 말한다고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일본(日本)에 뜨는 태양(太陽)과 조선(朝鮮)의 동(東)쪽과 뭔 상관(相關)이 있을까?
• 「천지(天池)는 남(南)쪽 문(戶)이 되고」하였는데… …「천지(天池)는 백두산의 정상에 있는 산정(山頂) 호수(湖水)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남(南)쪽 문이 된다」라고? 그럼 한라산(漢拏山)의 백록담(白鹿潭)은?
• 「말갈(靺鞨)은 그 북(北)쪽 문이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말갈(靺鞨)”은 이미 없어진 지가 수백(數百) 년 이상(以上)이 되어버린 때이다. 이때는 말갈(靺鞨)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 버려 존재(存在)하지 않았을 때이다.
(2) 【其國東、南皆際海,西北爲建州,正北爲毛憐、海西。: 그 나라는 동(東)쪽과 남(南)쪽이 모두 바다에 닿아있고, 서(西)쪽과 북(北)쪽은 건주(建州)이고, 정북(正北) 쪽은 모련(毛憐) 해서(海西)이다.】라고 하였으니… …,
➥「당시(當時) 조선(朝鮮)의 땅」은 : 「동(東)쪽과 남(南)쪽은 모두 바다(海)에 닿아있다. 서(西)쪽과 북(北)쪽은 건주(建州)이고, 정북(正北) 쪽은 모린(毛憐)과 해서(海西)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의 반도(半島) 땅의 형세(形勢)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西)쪽과 북(北)쪽은 육지(陸地)인 땅으로 이어져 있었다」라는 뜻이다. 반도(半島)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3)《八道星分,京畿獨尊。翼以忠淸、慶尙,黃海、江原。義取永安,意在固垣。平安地稍瘠薄,全羅物最富繁。팔도(八道)가 별처럼 벌여 있는데, 경기(京畿)가 홀로 으뜸이 되고, 충청(忠淸)ㆍ경상(慶尙)ㆍ황해(黃海)ㆍ강원(江原)을 날개로 삼았으며, 동북쪽의 명칭을 영안(永安)이라 한 것은 그 뜻이 경계를 견고히 하려는 데에 있다. 평안(平安)은 땅이 조금 척박하고, 전라(全羅)는 물산이 가장 풍부하였다.【京畿、忠淸、慶尙、黃海、江原、永安、平安、全羅,皆道名。平安卽古弁韓地,慶尙卽古辰韓地,全羅卽古馬韓地。경기ㆍ충청ㆍ경상ㆍ황해ㆍ강원ㆍ영안ㆍ평안ㆍ전라는 모두 도(道)의 이름인데, 평안은 곧 옛날 변한(弁韓)의 땅이고, 경상은 옛날 진한(辰韓)의 땅이며, 전라는 옛날 마한의 땅이다. 】》하였다.
(04) 《其袤也道里二千,延則加倍 : 그 넓이는 거리가 2천리이고, 길이는 배가 된다. 【其國東西二千里,南北四千里。誌書云。: 그 나라는 동서가 ‘2’ 천리이고, 남북은 ‘4’ 천리라고 〈지서(誌書)〉에 쓰여져 있다. 】 視古也國封三四,今則獨存。: 옛날을 살펴보면, “그 나라는 서너 나라로 봉해졌는데, 지금은 하나만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新羅、百濟、耽羅,今皆爲所有。신라(新羅)ㆍ백제(百濟)ㆍ탐라(耽羅)가 지금은 다 그 소유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 《其袤也道里二千,延則加倍 : 그 넓이는 거리가 2천이고, 길이(延)는 배가 된다. 【其國東西二千里,南北四千里。誌書云。 : 그 나라는 동서(東西) ‘2’ 천리(千里), 남북(南北) ‘4’ 천리(千里)라고 〈지서(誌書)〉에 쓰여져 있다.】》라고 하였는데… …,
• 「그 나라의 남북(南北) 곧 길이 세로(袤)의 도리(道里)는, ‘2 천리(千里)’이고, 연(延) 곧 동서(東西)는 배(倍)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4 천리(千里)’라는 것이 된다. 【연(延)은 동서(東西)를 뜻하고 무(袤)는 남북(南北)을 뜻한다.】
그런데 그 주석(註釋)에는 : 「其國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誌書云: 그 나라는 동서(東西)가 2 천리(千里)이고, 남북(南北)은 4 천리(千里)라고 지서(誌書)에서 전한다.」라고 하였으니,
본문(本文)과는 정반대(正反對)로 말하고 있으나, 확실(確實)한 것은 「반도(半島)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반도(半島) 땅의 도리(道里)와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인데… …이러한 강토(疆土)의 면적은, 역설적(逆說的)으로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요충지(要衝地)=중국(中國)’ 땅의 도리(道里)와 같다.
곧 「감숙성(甘肅省) 동부(東部)로부터 장안(長安), 낙양(洛陽), 산동(山東)을 잇는 축(軸) 선상(線上)의 거리(距離)와 같다는 것이다.」
☛ 즉(卽), 「감숙성(甘肅省) 중동부(中東部) 100,000㎢ + 섬서성(陝西省) 200,000㎢ + 하남성(河南省) 160,000㎢ + 산서성(山西省) 156,000㎢ + 산동성(山東省) 157,000㎢ + 호북성(湖北省) 180,000㎢ + 안휘성(安徽省) 140,000㎢ + 강소성(江蘇省) 100,000㎢ + 하북성(河北省) 180,000㎢」를 합(合)친 정도(程度)의 면적(面積)이 된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에게 감히 여쭙건대 : 동서(東西) 2 천리(千里), 남북(南北) 4 천리(千里)를 현대(現代)의 산술방식(算術方式)을 적용(適用)하면 : 위의 ‘☛’ 에서 설명(說明)한 중원(中原) 요충지(要衝地) 땅의 면적(面積)이 된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說明)할 수 있나? 어떻게 납득(納得)시킬 수 있느냐? 하는 거다.
• 또 이러한 「조선(朝鮮) 강토(疆土)의 도리(道里), 2,000리, 4,000리는.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서도,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서도 똑같이 말하고 있다」라는 사실(事實)이다.
이러한 조선(朝鮮) 강토(疆土)의 도리(道里)는 반도(半島) 땅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며, 면적(面積)으로 환산(換算)하면 : 「2千里(800㎞) × 4千里(1,600㎞)=1,280,000㎢」로, 반도(半島) 땅의 6배(倍)에 이르는 큰 땅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반도(半島)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요충지(要衝地) 땅」을 말해주고 있다.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왕명(王命)으로 편찬(編纂)한 학자(學者), 관리(官吏)들이 당신들【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보다 멍청해서? 남의 나라 땅의 지리지(地理志)를 우리들의 것이라고 만들었을까?
➥ 또 하나 지적(指摘)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사학자(史學者)들은 수치개념(數値槪念)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 「삼한(三韓)은 방(方) 사천리(四千里)이다. 또 삼한(三韓)의 땅은 삼남(三南)【하삼도(下三道)】에 있었다.」라고 하는 기록(記錄)이 대부분(大部分)이다.
이 말은, 「삼남(三南【하삼도(下三道)】인 ‘충청(忠淸), 전라(全羅), 경상(慶尙)’의 삼도(三道)의 땅이 동서남북(東西南北)【方 : 四方】‘4’ 천리(千里)였다」라는 뜻이다. 곧 4 천리(千里)는, 대략(大略) ‘1,600’㎞이니 면적(面積)으로 환산(換算)하면 1600×1,600=2,560,000㎢로 한반도(韓半島)의 총면적(總面積)인 220,000㎢의 “12배(倍)”로, 오늘날의 중원대륙(中原大陸) 핵심(核心) 요충지(要衝地) 땅 대부분(大部分)을 말하고 있다.
「반도(半島) 땅은 너무 협소(狹小)하여 이러한 조건(條件)을 충족(充足)시킬 수 없다」 곧 「옛 조선(朝鮮)은 중원대륙(中原大陸)의 토착(土着) 왕조(王朝)였다」라는 뜻이다.
필자(筆者)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가 바로 이런 점이다. 「사가(史家)들이나 왕조(王朝)의 대신(大臣), 재상(宰相), 관리(官吏)들이 사서(史書)를 저술(著述), 편찬(編纂)할 때는 전(傳)해져 오는 역사서(歷史書)와 당시(當時)의 외교사절(外交使節)로부터 전(傳)해 들었거나, 또는 전쟁(戰爭)에 참전(參戰)했던 중요(重要) 인물(人物)들로부터의 진술(陳述)이나 증언(證言)을 바탕으로 참고(參考)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확정적(確定的)인 이야기다.
특히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方位), 그 나라의 토산물(土産物), 지형지세(地形地勢), 특이(特異)한 지형(地形)이나 자연환경(自然環境), 인종(人種)의 특징(特徵) 등에 관(關)해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當然)한 것이리라!
예(例)를 들면 : 「‘고구려(高句驪)는 점점(漸漸) 커져 수(隋) 때에는 동서(東西)가 6 천리(千里)나 되었다’라거나, ‘삼한(三韓)은 방(方) 4 천리(千里)다’라거나, ‘조선(朝鮮)은 동서(東西) 2 천리(千里), 남북(南北) 4 천리(千里)의 나라였다’라거나 하는 등의 기록(記錄)은, 위에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를 참고(參考), 기록(記錄)한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當然)한 이야기다.
그 기록(記錄)이 잘못되었거나 오류(誤謬)였다라고 한다면 : 많은 주석서(注釋書)에서 바로 잡았을 것이나, 그러한 흔적(痕迹)조차 없다는 것은 근세(近世)까지도 그러한 기록(記錄)을 신뢰(信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특히 반도조선(半島朝鮮)을 주장(主張)하는 엉터리 학자(學者)들은 더더욱 그렇다. 「반도(半島) 땅에서 ‘동서(東西) 6 천리(千里)’니, ‘방(方) 4 천리(千里)’, ‘동서(東西) 2 천리(千里)’ 등의 숫자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하고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이야기다」라는 것을 ‘몰랐다’라고 한다면 : 뇌(腦) 구조(構造)에 심각(心覺)한 하자(瑕疵)가 있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는 안타깝게도 “반도(半島) 땅의 지리지(地理志)가 아닌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지리지(地理志)다”라는 것이다. “한반도(韓半島) 땅은,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에서 말하는 동국(東國)의 땅을 담을 그릇이 없다.”」라는 것이 바로 강력(强力)한 서지적(書誌的) 그 증거(證據)다.
(05) 《蓋惟不蹈前人之覆轍,所以獨蒙昭代之深恩也。詔許建邦,自爲聲敎。: 생각건대, 앞 사람의 실패한 자취를 밟지 않았으니, 그 까닭은 당시대의 깊은 은혜를 홀로 입었기 때문이다. 조서(詔書)로써 나라 세운 것을 허락하여 독자적으로 덕화를 펴게 하니, 【本朝洪武二年,高麗國王王顓表賀卽位。詔許自爲聲敎,賜以龜紐金印。: 본조 홍무(弘武) 2년에 고려국의 왕 왕전(王顓)이 표(表)로써 즉위(卽位)를 축하하여 조서로 독자적으로 교화를 펴도록 허락하고, 구뉴(龜紐)와 금인(金印)을 내려주었다. 】 曰詩曰書,視庠視校。士窮則辟蠹雕蟲,宦達則摶鵬變豹。: 시(詩)와 서(書)가 있고, 상(庠)과 교(校)가 있다. 선비가 궁하면 향(香)을 피우거나 좀을 물리고, 문장이나 꾸미는 하찮은 일을 하며, 벼슬길이 트이면 붕새를 잡거나 표범을 변하게 한다.【其國奉朝廷正朔,鄕試以子午卯酉年,會試、殿試亦辰戌丑未年。그 나라는 조정의 정삭(正朔)을 받들고, 향시(鄕試)는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년(酉年)에 행하고, 회시(會試)와 전시(殿試)는 진(辰)ㆍ술(戌)ㆍ축(丑)ㆍ미년(未年)에 행한다. 】》라고 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도(京都), 서문(序文)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만약(萬若)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라는 지리서(地理書)가 곧 동국(東國)인 “조선(朝鮮)”의 것이었다면 : 그 모든 지리지(地理志) 내용(內容)은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땅에 맞춰진 지리지(地理志)였을 것임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그 내용(內容)은,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와는 전혀 관계(關係)가 없는 다른 땅에 대해 기록(記錄)해 놓은 것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요충지(要衝地) 땅에 대한 기록(記錄)이다」라는 것을 확인(確認)해 준다. [제1편 –끝-]
2,026년 07월 09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 오랫만에 장마비가, 장마답게, 매우(梅雨)답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피해를 내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으면 좋겠습니다.
* 다음 편은 : 전회에 이어 "조선의 사막지대와 그 서지적 증거"편을 이어서 게재 예정입니다.
조선의 대륙왕조에 대한 그 서지적 증거는 : 옛 사대부들의 기록만을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록을 보면서 그 내용을 이해(理解)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봅니다.
가장 큰 것은, 뇌세포속에 각인된 "반도조선"이라는 세뇌된, 고착화되어 사고(思考)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은 사고(思考)할 수 있는 세포가 있어야 합니다.
"반도사관=식민사관"에 찌들고, 고착화된 분들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어쩌면 게인적 불행입니다.
* 예를 들면 :
''조선반도=한반도=반도"속에서 5,0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고 한다면 : 역사해설은 지명과 함께 고착화되어 "미상, 추정, 추측"이라는 애매모호한 것들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5,000년을 한 민족으로 서로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한자로 된 지명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일제(日帝)로부터 시작됩니다.
* 많은 우리들의 선조분들이 기록한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조차 할 수 없다면?
국가적으로 벌인 지리지 편찬에서 : 그 내용이 반도 땅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라면?
* 스스로 우리는 : '그들의 후손이 아닙니다' 자백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러나,
한민족 여러분들은, 옛 사대부들을 "자신들의 몇 대 선조"라고 하면서 족보까지 내밀며 자랑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도대체 뭡니까?
* 필자는 이러한 국민들의 이중적인 형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족보를 들이대며 : 몇 대손으로.... ...하면서,
왕조실록이나 지리지, 역사서를 들이대면 : 나몰라라! 미친... ...하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 선대는 맞는데
역사서나 사대부들의 기록(왕조실록, 사서, 지리지)은 아니라는 것인가?
답답한 때에,
답답한 사회속에서
답답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필자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
필자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