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리 주차장
얼마전 부터 문득문득 지리산 법계사 삼층탑이 눈에 아롱거린다. 산청은 여러번 다녀왔지만 산행 시간을 핑계로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열병이 날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디데이 전부터 눈이 내린다는 예보에 나와의 인연이 다시 미루어진다는 불안감에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다. 전날 법계사에 전화를 걸어 다행이도 산행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새벽길을 나섰다.
대구에서 중산리까지 두 시간도 소요되지 않은 거리를 달려왔다. 소형차 주차요금 4,000원 국립공원 입장료는 오래전부터 징수하지 않는다.
법계사행 소형버스. 30분 마다 출발이지만 탐방객이 승차하면 바로바로 출발이다. 운좋게도 법계사에서 제를 올리는 신도분이 승차하시어 나를 포함 4명이 출발했다. 중산리-신두류 휴양림까지 10 여분 소요된다.
우리의 정성이 버스요금이다.
순두류 자연학습원 하차 법계사 까지 2.8km
첫 이정표. 산세를 알 수 없지만 평이한 코스라면 40~50분이면 족할 것 같았다.
하지만 길이 녹녹하지 않다.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은 듯, 산짐승 발자국이 어지럽다.전율이 전신을 휘감으며 머리끝이 쭈삣쭈삣 거린다. 어디 쉽게 접근을 허락할 지리산이겠는가?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지리산 천왕에게 빌고 빌었다 무사한 산행이 되길 도와주십사라며......()()(). 한결 마음이 놓인다.
화들짝 내그림자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다. 혼자라는게 두렵다. 산아래 마을 처럼 지지고 볶고 울고불며 사는 것에 익숙해진,나 역시 저질 반열에 동행하는 사회적인 동물인 까닭이다. 지독한 자학인지, 비열한 변명인지, 추악한 장난인지, 패러독스인지.
모르겠다.
왜 설경 보다는 남부군과 이현상, 이병주 님이 먼저 뇌리를 스칠까?
민족 비극. 그래 그건 사상의 대립이 아니었을 거다. 밤낮의 주인공이 바뀌는 그런 여러날이 계속 된 후 문득 돌아보니 너는 이편 나는 저편. 형은 국군 아우는 빨치산이 되어있었다. 민초들과 무지랭이 농군, 초동급부들이 왜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야하는 까닭인들 제대로 인지 하였겠는가?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글. 안성기 주연의 남부군(?)에서 접했던 눈에 익은 환경 탓에 산죽과 눈 쌓인 좁은 산길이 데자뷰 처럼 친숙하다. 금방이라도 비트속에서 숨어있던 빨치산이 튀어 나와 앞을 막을 듯한 느낌이다.
절반이 남았다.
눈길은 계속되고
로타리 산장
사람소리가 이렇게 반가울까? 겨우 2.8KM, 1시간 10여분 나혼자 였는데? 라면 향은 또 어떻고. 로타리 클럽은 익히 알지만 산장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로타리클럽이 건립을 지원한 민간인 관리산장이며, 최초로 민간단체에 의해 세워진 휴식처라는고 한다.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단 코스인 칼바위 로타리산장 코스는 거리가 짧은 만큼 뫼 오름을 하는 이들에게 보다 강한 체력과 인내를 요한다. 칼바위 삼거리에서 망바위까지의 1km구간은 어지간한 체력을 가진 이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지만 날씨가 화창한 날 망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천왕봉의 위엄과 멀리 남해 바다의 전경은 그러한 땀 내음을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로타리산장 헬기장에 오르면 지리산의 절반 이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1,450m)한 법계사는 544(신라 진흥왕 5)년에 연기(緣起)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본 후에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천왕봉에서 약 3㎞ 떨어진 이곳에 창건하였다.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는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였고, 춘분과 추분에는 남극의 노인성(老人星)을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며, 갖가지 동식물이 많아 경치가 빼어나다.
천왕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일주문.
"법계사는 일본과 미묘한 관계가 있는 절로 예로부터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고 하여 여러 차례 왜적이 침범하였다. 고려 때 왜적 아지발도(阿只拔屠)가 이 절에 불을 지르고 운봉전쟁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은 일화는 심심찮게 이야기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런 속설에 근거해서 만행을 저질렀겠지.
적멸보궁?. 예불중이어서 법당 출입을 못했다. 뒤에 위치한 삼층석탑이 진신사리탑이어서 법당 후벽에 창을 내고 탑을 친견할 수 있도록 조성된 듯 하다.
편암함. 아니다 바라볼수록 경외감에 사로 잡힌다.
산신각
함양 금대암, 산청 단속사지 답사기에도 언급한 1489년 김일손의 속두류록에 업급된 법계사에 관한 짧은 글을 보면 스님 한 분만 계신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쇠락한 상태 같다.
여기 와서는 몹시 갈증이 심하여 종자(從者)들은 모두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아 쌀가루를 타서 마셨다. 다시 다른 길이 없고 다만 천 길의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모여 시내 하나를 이루어 산위에서 쏟아지는데, 마치 은하수가 거꾸로 쏟는 듯하며, 간수(澗水) 가운데 큰 돌이 첩첩이 포개져 다리가 되고, 이끼 흔적이 미끄럽고 윤택하여 밟으면 넘어지기 쉽다. 오고가는 초동(樵童)들이 작은 돌멩이를 그 위에 쌓아올려서 길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나무 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시내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다섯 걸음 만에 한 번 쉬기도 하고, 열 걸음 만에 한 번 쉬기도 하여, 있는 힘을 다 썼다.
시내가 그치자 점점 북으로 향해서 다시 대 숲 속을 헤쳐 가니 산이 모두 돌이다.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올라가 숨가쁘게 십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를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으므로, 그 별경계를 기뻐하여 꽃 하나를 꺾어서 머리에 꽂고 따라오는 일행에게도 말하여 모두 꽂고 가게 하였다. 한 봉우리를 만났는데, 이름은 세존암(世尊巖)이다. 바위가 극히 우람하나 사다리가 있어 오를 수 있기로 올라서 천왕봉을 바라보니 수십 리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기뻐서 일행에게 일러주고 힘을 써서 다시 한 걸음 더 나가자고 한다.
여기서 길이 점점 나직하여 5리쯤 가서 법계사(法界寺)에 당도하니 중 한 사람밖에 없고, 나무 잎이 널찍널찍하여 비로소 자라나고 산꽃은 곱게곱게 바야흐로 피어나니, 바로 저문 봄철이라, 잠깐 쉬고 곧 올라가서 돌이 있는데 배 같기도 하고 문짝도 같다. 그 돌을 경유하여 나가는데, 길이 돌고 구부러지고 오목하고 울툭불툭하며 석각(石角)을 붙들고 나무뿌리를 더위잡고 겨우 봉 꼭대기에 당도하자 곧 안개가 사방에 끼어 지척을 구별할 수 없었다.
향적승(香積僧 식사를 맡은 중)이 냄비를 가지고 와서 한군데 평평한 땅을 찾으니,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샘물을 이루었기로 감히 다시 올라가서 곧 쌀을 씻어 밥을 짓게 하였다. 온 산에 다시 다른 재목은 없고, 있는 나무는 삼회(杉檜)와 비슷한데, 중의 말이 비자목이라고 하며, 이 나무로 밥을 지으면 밥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시험해 보니 과연 그렇다. 옛사람이 밥을 지어 먹을 나무에 애를 썼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전하기를, “두류산에는 감과 밤과 잣들이 많아서 가을바람이 불면 열매가 떨어져 계곡에 가득 찬다. 그래서 중들이 주어다 요기를 한다.” 하는데, 이는 허언이다. 다른 초목도 오히려 나서 크지 못하는데, 하물며 과일에 있어서이랴. 매년 관가에서 잣을 독촉하니 거주민이 노상 되려 다른 고을에서 나는 것을 사들여서 공세(貢稅)에 충당한다고 한다. 모든 일에 있어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같지 않은 점이 이런 유이다.
극락암
보물 제473호로 지정되어 있는 법계사 삼층석탑은 높이가 2.5m이며, 약식화된 형태, 조형미의 투박함 등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의 구조는 기단부로 이용된 자연암석에 상면 중앙에 탑신을 받치기 위하여 2단의 굄을 마련하였고, 그 위에다 별석으로 3층탑신을 얹었다. 각 옥신에는 우주를 모각한 외에는 다른 장식이 없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의 받침을 모각하고 상면에는 옥신을 받치기 위한 굄이 1단 모각되었다. 1층의 탑 몸체는 매우 높고 2층과 3층은 급격히 줄어들어 낙수면 경사가 심하며, 옥개는 둔후한 편으로 받침은 각층 3단이고 추녀는 전각에 이르러 약간 휘어졌다. 상륜부에는 뒤에 만든 듯한 포탄형 석재가 얹혀 있을 뿐 모두 없어졌다. 옥개석의 전각(轉角)은 약간 반전(反轉)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중후한 감을 주고 있다.
뜰 앞의 잣나무 (庭前栢樹子). 문득 6조 혜능. 조주선사가 떠오른 까닭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 정경이 불법이요, 불성이라고 했던가? 나같은 중생이 무얼 알리오.
옛사람들의 산행기에는 법계사 석탑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조에는 붕괴된 상태로 있었던 것일까?. 함양 금대암,산청 단속사지 기행문에도 탑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곳 같은데, 설마 이해 부족은 아니겠지?
이제 하산 합니다.
법계사-칼바위- 중산리. 3.4KM
망바위
칼바위
셔틀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여기로 시작해서 법계사로 오릅니다.
하산. 3.4KM. 1시간 20분 소요
자연 암반위에 정좌한 삼층석탑. 산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보는 생명체로 보인다. 오늘은 시리도록 푸른빛과 어울린다. 가끔은 산허리를 감고 있는 운무와 매치 되겠지. 무장해제 당한 나와 한바탕 걸쭉하게 즐기며 마음껏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바다 삼아 유영하도록 오늘은 풍경속 물고기를 풀어주고 싶다. ***산청군청 홈페이지 자료를 참조했습니다.*** 2011.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