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이곳 분당 역시 거리 거리마다 형형한 색갈의 가로 등불이 암흑 천지를 헤매이고 있는 우리 중생들에게
빛과 밝음을 선사하고 있다. 아기 예수님 오신
성탄절 크리스마스 트리 처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웬지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마술 램프와 같은 등불 들인데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에도 이렇게 등불을 밝히곤 했었던 가 본데, 거리에서 구걸을 하여 먹고 사는 난타라는
어느 노파 또한 등불을 달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은지라 수중에 남은 마지막 동전을 긁어서 불을 밝힐 수 있는
최소한의 기름을 구해서 갠신히 등을 달았는데 임금님께서 달았던 수 많은 등불이 바람에 그 빛을 잃었어도 이 가난한
여인네의 찬란한 등불은 그 빛을 끝내 잃지 않았다는 빈자 일등이라는 아름다운 얘기가 올 석탄절을 맞아 내겐
더욱 새롭다.
절에 가면 복전함이란 것이 놓여 있다.
복을 일구는 밭이란 뜻이다.
재가 불자들은 이 함에 시주를 하고 그 복전은 출가 수행인들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로 사용을 한다는 것이
불교에서 시주의 기본 개념이다. 출가 수행자가
생업에 끄달리다 보면 공부가 제대로 되질 않기 때문에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 처럼 머리를 길른 유발 불자들이
그 분들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보면 되고, 출가인 즉 스님들은 신격화된 존재가 결코 아니다. 불가에선
사부 대중이라고 해서 출가한 남녀와 집에서 수행을 하는 재가 남녀의 격을 그닥 심하게 구분을 하지 않는다.
이씨 조선시대엔 거의 천인 대접을 받았던 스님들이 요즘엔 그 위상 높이기에 급급한 사례가 여럿 있는데 내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을 딱히 찍으면 나이 스물을 겨우 넘긴 처녀가 계를 받아 비구니가 되면 속가의 어머님을
보살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에게 큰절을 올리게 한다. 임금이 되든 판서가 되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의 은혜는 결코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은혜 보다 꿀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난 교회엔 나가질 않지만 기독교 방송은 불교 방송 못지 않게 자주 시청을 한다.
파이프 오르간을 비롯한 엄청난 음향, 조명시설에 기가 푸욱 죽는다.
교회에선 거대한 성전을 짓거나 헌금이 들어 오면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에게 바친다고 하는데 성경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천지를 그 분께서 창조 하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건물과 돈이 창조주이신 그 분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구냥 목회 활동을 위해서 목사님과 그 가족의 기초적인 생활비와 품위 유지비 그리고 예배당을 운영하기 위한 운전 자금
정도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부처님이나 하나님께서도 잘 모르시는 일이 바로 어느 특정 종교의 자금 규모라고 합니다.
돈과 물은 고이면 반드시 썩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지난 해에도 어김 없이 일부 중놈들이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대가리를 번들 번들하게 깎은 중놈들이 호텔방에서 술을 쳐 먹으면서 도박을 하는 장면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야
말았다. 부처님께선 계율을 아주 중요시 하셨다.
특히나 출가 수행자들에겐 더욱 엄격하셨다.
장터에서 떡을 판 돈, 시골에서 산나물 뜯은 돈, 손주놈들이 준 구렁이 알 같은 용돈으로 복전을 일구었던 그 돈으로
중들이 도박을 했다면 최소한 법이 있으니 때려 쥐기지는 못할지라도 어떤 어떤 징계를 내렸다는 조치가 있어야 할
터인데 아무런 발표가 기다리고 기다려 보아도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막상 절집에 가서 등불 공양이라도 할라 손 치면 아웃도어 용품 팔 듯이 등불의 정가가 정해져 있다.
올 해는 웬일인지 기분이 그닥 좋질 않아, 솔직히 말하면 주머니 사정도 만만치가 않아서 어느 산 어느 절이든 내 발길이
닿는 어떤 가난한 절에 자금만 등불이나 올린다는 심중으로 느림보를 따라서 장흥 제암산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남녘땅에도 이미 철쭉은 만개했던 꽃잎은 살포시 접어 버리곤 쑥 처럼 푸른 잎사귀를 화들짝 펼쳐 스쳐 지나 가는
오월의 바람을 희롱하고 있다.
이 계절의 이 바람은 정말 축복 받은 이들의 몫이다. 상큼한 레몬 쥬스가 생각나는 멋진 산행길이다.
제암산을 거쳐 사자산에 이르러선 힘이 펄펄 넘쳐 나는 사자 목덜미를 바라다 보노라니 신비감 마져 느껴 진다.
용추 계곡으로 하산을 서두르며 혹시 어느 호젓한 곳에 절집이 있지 않나 하여 여러 번을 두리번 거렸으나 시절 인연이
맞지 않나 보다. 절집은 끝내 찾지 못하고 션한 콩국수가 기다리고 있는 느림보 리무진과 강 대장님이 얼굴이 보인다.
절집에선 화장실을 해우소라 하고 남자들 소변만을 보는 곳을 휴급소라고 한다.
양산 통도사에 주석 하셨던 경봉 큰스님이 최초로 쓰신 용어라고 하는데 이 스님의 마지막 선문답은
야반삼경에 대문빗장을 만져 보거라. 빡 끝.
분당 탄천변 왕쥐 돌삐 드립니다.
서울대를 졸업했다 실존인물이다 아니다 현재 생사 조차도 잘 모른다는 지허 스님이 쓰신 책이 두 권 있습니다.
사벽의 대화와 선방 일기인데 참으로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걷는 참된 수행인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는 너무도
고운 향내가 나는 아름다운 책 입니다. 종교를 떠나 강추 드립니다.
노 무현 대통령 시절 법무장관을 하셨던 강 금실 변호사님께서도 이 책을 여러 분들에게 선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명산이 있으니 당연 명찰이 있을 것이리다.
첫댓글 초파일 연등이 걸린 산사의 모습은 참으로 따뜻해보입니다.
구도의 길로 인도 하시는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 또한 보는 마음을 푸근하게 하지요.
제암산 지도에 절집이 별로 보이지 않는걸보면 큰 산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가 봅니다.
하긴 최근들어 철쭉의 명성에 뜬 산이라고 봐야겠지요.
바다를 바라보며 산길을 걷는 일은 즐거움이 배가 되지요.
세상사..어지러운 일 모두 비우고 화요일 하루 만은 마음을 자연에 정화한다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