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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역 식당
주 요 섭
1
봉천 정거장 앞 너른 마당에 척 나서보면 어째 경성역 앞에 선 듯한 환각을 느끼게 됩니다. 환각이 아니라 기실 경성역 앞과 봉천역 앞은 그 규모의 대소가 있을 따름이지 아주 비슷한 것이 사실입니다. 맞은편에 선 집들의 광고판이며 뚫린 길들이며 앞으로 줄을 긋고 지나간 전찻길까지도 서로 비슷하니까요. 정거장 구조조차 비슷하여서 들어가는 데와 나가는 데며 대합실(만주국이 생긴 이후로 대합실을 새로 훨씬 안쪽 이층에다가 크게 꾸며놓았지만 그 전으로 치면 말입니다)이며 식당 위치 등이 모두 서로 비슷한 방향에 놓여 있단 말씀이지요.
이 ‘비슷’은 외지로 오래 여행을 다니는 사람에게 우연 이상으로 반가운 일이올시다. 오랫동안 고향 소식을 모르고 두루 헤매다가 봉천역에 척 내려서자 곧 경성역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여간한 기쁨이 아닌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서 표 주고 나가는 울타리 밖에 죽 줄을 지어 읍하고 섰는 젊은 사람들 곧 모자에다가 ‘아무 여관’ ‘무슨 여관’ ‘어디 여관’ 하고 여관 이름을 써서 쓰고 있는 ‘손님끌꾼’¹들까지가 경성역 냄새를 끼친단 말씀이죠. 더욱이나 ―오래간만에 “조선 음식 잡수시지요” “조선 여관으로 가시지요” 하고 외치는 조선말을 들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자연 “아, 여기가…….” 하고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2
나는 사주팔자를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인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주쟁이 아무개 씨의 명판단으로 보면 꼭 그렇게 타고났다고 단언하니까 말입니다만) 삼십 평생을 절반 이상 해외로 떠돌아 다니는 것이 나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봉천역을 거치기 무릇 이십여 회에 달합니다. 그러나 봉천을 이십여 회씩이나 들르면서도 이 또한 내 팔자이었던지 또 혹은 봉천이란 도시의 팔자이었던지 누구의 팔자소관인진 모르나 하여튼 나는 한 번도 봉천서 열 시간 이상을 머물러본 일은 없습니다. 물론 봉천서 밤을 지내본 일도 없고 따라서 그 흔한 것이 여관이언만 한 번도 그 안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아침 혹은 오후 차로 떠나게 되는데 언제나 봉천서 차에서 내리면 나는 물건 한 가지에 대해서 십 전씩만 돈을 주면 스물네 시간 동안을 잘 보관했다가 내주는 ‘짐짝 잠시 맡겨두는 곳’에다가 초라한 짐짝을 말겨버리고는 혼자서 온 봉천 시가를 두루 헤매다가는 밤에 다시 차가 떠날 시간이 되면 정거장으로 돌아와서 짐을 찾아가지고 다시 기차 안에다가 지친 몸을 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곧 봉천이란 도시는 내게 있어서는 한 개의 ‘기차 바꿔 타는 곳’으로밖에는 아무런 다른 존재의 의미를 갖지 않은 곳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끔 번개처럼 조선엘 다녀올 일이 있어서 봉천역에 내리면
“오래간만에 조선 음식 一” 운운해서 유혹하는 ‘손님끌꾼’들의 말에 마음이 십분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아니로되―무얼 몇 시간 후면 다시 떠날 길―하고는 넉넉지 못한 돈지갑 생각이 나서 결국 여관을 단념하고 역시 보따리를 들고 짐짝 잠시 맡겨두는 곳으로 어정어정 가는 것이 나의 의례히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봉천서 끼를 에워야² 하는 경우엔 밥은 어데서 먹느냐? 지당한 물음이지요. 나는 반드시 정거장 식당으로 가지요. 그것은 십여 년 전 일인데 역시 내가 봉천서 몇 시간을 보내게 된 때 나는 방향도 모르고 이리저리 싸다니다가 어면 조그만 골목 안에 일본 음식점이 있는 결 발견하고 들어갔다가 밥 위에다가 기름에 볶아낸 새우 두 마리를 얹어 주는 무슨 ‘뎀동’이라든가 밥 한 그릇을 먹고 놀라지 말지어라 일금 일 원 이십 전야라³의 대금을 빼앗기고 난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나는 익숙지 않은 음식집에는 일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으로 한 신조를 삼았었으니까요. 정거장 식당은 언제나 신용할 수 있을뿐더러 깨끗하고 또 밥값도 비교적 싼 셈이지요. 삼십 전만 주면 ‘카레라이스’라나요 매콤한 밥을 한 접시 두둑이 먹을 수 있고 오십 전을 내면 들척지근한 화식(和食)이라는 것을 먹을 수 있고 또 용단을 내려서 일금 일 원 이십 전야라의 대금을 털어놓으면 맹물국으로 개시하여 생선 소고기 닭고기과자 실과 면보 커피까지 뻑적지근한 양식을 먹을 수가 있지요.
3
이야기를 쓰는 목적은 봉천역 식당 메뉴 선전에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목적은 딴 데 있으면서 서론이 너무 길어진 모양이어서 미안한 말을 다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 원래 잔소리를 많이 하는 성미라 그만 그리 되었으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본 이야기로 들어서겠습니다.
이야기는 한 팔 년 전으로 뒷걸음을 쳐가지고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꼭 구 년 전이냐? 십 년 전이냐? 하고 정확한 대답을 하라고 다지는 이가 있으면 나는 그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때에는 한 십 년 후에 내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되리란 그런 선견지명을 못 가졌던 탓으로 그날 일을 공책에다 날짜를 적어두었던 것도 아니고 그때는 그저 무심히 지나쳐버렸건만 오늘 이야기를 쓰고 앉었게 되니 자연 대강 짐작으로 팔구 년가량 이전이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 입니다. 하여튼 장작림의 폭사⁴가 아직도 기억에 새름고 조선인으로는 중국 시가 안으로 들어가 다니기가 퍽 위험하던 때였으니까요.
그때 나는 역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서 봉천서 기차를 갈아타게 되어 저녁을 정거장 식당에서 먹으면서 차 며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입니다.
정거장 식당이란 원체 목적이 여행자를 위해서 설비해놓은 곳이라 그렇기 때문에 정거장 식당은 시내 다른 식당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변화가 많은 곳이라고는 나는 늘 생각하는 바올시다. 참 온갖 잡사람 별 괴물(물론 나 자신도 그중 하나이지만)이 다한 번씩 거쳐 지나가는 곳이 아닙니까? 정거장 식당에서 보이 노릇 한 일 년만 하고 나면 일생을 써먹고도 남을 소설거리가 얼마든지 생기려니 하고 나는 일상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행 중 심리는 자연 ‘구경’으로 기울어지는 것도 사실이겠지요마는 나는 정거장 식당 안에 들어가 앉으면 더한층 구경에 팔립니다. 사람 구경이지요. 남들이야 또한 나를 구경 하겠지마는!
이 식당에 혼자 앉아서 삼지창으로 밥을 퍼먹고 있다가 갑자기 조선말이 들려오는데 더구나 그 조선말 목소리가 옥을 굴리는 듯한 소프라노일 적에 문득 눈을 들어 그 소리 나는 편을 바라다보는 것이 무엇 괴이할 것 없는 평범한 일이겠지요. 더구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꼭 찌르면 터질 것같이 밝고 또 복사꽃같이 발그스레한 두 뺨의 소유자인 것을 발견할 적에 또 그 소프라노 목소리가 웃음소리로 변할 때마다 그 좌우 쪽 뺨에 우물이 옴폭 패고 메워지고 하는 광경이 눈앞에 나타날 때에 그때 나이 스물 안팎인 총각이었던 내가 먹던 밥을 잊고 한참이나 멀거니 바라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고백한다고 나를 가리켜 미친놈이라고 욕할 사람이 있습니까? 외지에서 동포 특히 이성(異性)의 동포를 볼 때 그가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를 막론하고 갑자기 가슴 속에 요동치는 흥분을 직접 체험해보기 전에는 잘 상상하지 못하리다. 더구나 그 이성의 동포가 흑진주같이 빛나는 맑은 눈의 소유자일 적에 양장한 두 팔목이 대리석처럼 희고 부드러워 보일 적에 십칠팔 세 난 처녀로 보일 적에 고독하게 외지를 헤매는 한 사나이가 미련스럽게도 공연히 가슴을 두근거리고 앉아 있었다고 나를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 사람이 있습니까?
더구나 이 처녀의 몸에 행복이 넘치고 흘러서 그 순진스런 즐거움이 온 방 안 공기를 진동시키고 남을 적에 그 눈길마다 그 움직임 마다 그 목소리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도 행복에 가득 찬 분위기를 발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넘쳐흐르는 것을 볼 때 그 처녀와 마주 앉아서 그 아름답고 고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한 젊은 사나이에게 향하여 내가 일종 질투 비슷한 또는 부러움 비슷한 야릇한 감정의 착란을 가지고 바라다보았노라는 것을 내가 지금 말한다고 나를 미친놈이라고 욕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이뿐입니다.
그날 밤 차를 타고 나서 잠을 좀 자볼까 하고 일부러 침대차로 가셔 누웠건만 잠은 한숨도 못 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생각은 별로 없고 그저 ‘그 둘이 물론 애인일 게다. 아니 혹은 오뉘인지도 모르지. 아니야, 둘이라 그렇게도 행복스러워 뵈든 걸 오누이 간에야 무슨 그렇게! 고향이 어데들일까?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결혼했을 까? 아니 분명 처녀야. 아직 처녀미가 있던걸. 오누이일까? 아니지 연인이지 연인이야.’
자, 이런 소용없는 생각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느라고 잠을 못 잤으니 이제야말로 미친놈이라고 욕을 한대도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4
어느덧 이삼 년 세월이 흘러간 뒤입니다. 나는 그동안도 봉천을 두세 번 거치었지만 정거장 맞은편에 네온사인이 더 많아졌다는 것밖에 별로 이렇다 할 기억 남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직 정거장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문득 양장의 조선 처녀가 생각났으나 ‘아직도 봉천 있을까? 행복스럽게 살기나 하는가?’ 하는 당토 않은 생각이 나는 것을 혼자 빙그레 웃어서 눌러버리고 그때 새로 배운 재간 곧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내보내는 장한 재간을 연습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날 나는 봉천에 그때 새로 생겼다는 아라사 사람 티룸에 저녁 때 잠깐 들러본다던 것이 그 레코드 음악에 취해서 그만 늦도록 앉았다가 여덟 시가 지나서야 나갔습니다. 때가 늦은지라 식당 안이 텅 비었는데 저편 한편 무리가 되어서 웃고 떠들고 할 뿐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식당 안에서도 제일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요. 음식을 시켜놓고는 할 일이 없이 갑갑해서 읽어야 소용도 없는 것이언만 메뉴를 들고 술값이 얼마 얼마 담뱃값이 얼마 얼마를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하였지요. 그런데 아까부터 귀에 낯익은 목소리 그 말은 조선말이 아니건만도 그 목소리는 퍽 귀에 익단 말씀이지요. 그래 나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다 보았더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양장한 여성, 대여섯 남자 틈에 오직 두 여성이 끼어 앉았는데 한 여자는 화복⁵을 입었고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양장을 했는데…… 그 목소리, 그 얼굴, 그 몸맵시 분명코 이삼 년 전에 이 식당 안에서 행복의 절정에 싸여 있는 때 보았던 그 여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그 말은 조선말이 아니요, 같이 와 앉았는 사람들도 조선 사람이 아닌지라 나는 나 자신의 기억력에 의문을 느끼고 어느 딴 여자리라고 생각을 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 소프라노 목소리라든지 말끝마다 짜르르 웃으면 웃을 때마다 뺨에 우물이 파지고 메워지고 하는 것이라든지 나는 언제나 한번 본 얼굴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노라고 늘 자랑을 하는 처지입니다마는 갈데없이 이 양장미인은 다른 여자가 아니고 삼 년 전 그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얼굴이 조선 여자인걸요. 양장을 했지마는 현해탄 건너 여자보다는 한결 순후하고 중국 여자보다는 한결 명랑한 얼굴, 봉천 여자 얼굴처럼 우둔하지 않고 또 동경 여자처럼 깜찍하지 않고 복스러운 얼굴 그것이 조선 여자 얼굴의 특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더구나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으니 그 여자가 유창하게 하기는 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조선식 악센트가 섞여 있는걸요.
나는 호기심이 바짝 당겨서 그 정체를 추측해보려 했습니다마는 혹은 어떤 음식점 웨이트레스가 되었는가 또 혹은 어떤 회사사무원이 되었는가 얼른 추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 일행은 모두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의 일동일정을 추근추근히도 따르는 내 시선을 그 양장의 처녀(아마 그때는 처녀가 아니었겠지요마는)가 인식 했던지 문까지 다가서는 잠시 내 쪽을 돌아다보다가 내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놀란 토끼 모양으로 얼른 고개를 돌립니다마는 그의 맑은 두 뺨에 홍조가 떠오르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대관절 어찌 된 일일까? 그때 그 남자, 내가 연인이리라고 단정했던 그 납자는 어찌 되었는가? 어떤 관계로 저 사람들과 함께 밀려다니는가.’
이런 온갖 생각에 휩싸여서 그날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그날 저녁을 먹었는지 또는 보이가 잊어버리고 안 가져오고(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마는) 나도 역시 잊어버리고 안 먹지나 않았는지 지금까지도 기억이 아니 납니다.
5
또 한 삼 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만주사변이 엊그제 생긴 일이라 봉천은 전시 상태와 같았습니다. 이때 역시 나는 여행을 안 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그 무시무시한 감시와 취조를 받아가면서 봉천에 내렸던 것입니다.
그때 내가 봉천역 식당에서 또다시 그 양장미인을 만나 보았다고 말씀드리면 나더러 거짓말한다고 하시렵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우연이 중복되고 또 중복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요. 글쎄 나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것도 내 팔자의 한 부분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이번엔 나는 어찌도 놀랐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사람의 얼굴이 불과 이삼 년간에 그렇게 틀려지는 수도 있는지요. 꼭 누르면 터질 듯이 말롱말롱하던 그 두 뺨이 핏기 하나 없이 노래져버린 데다가 입가에는 벌써 가는 주름이 잡혀서 입을 꼭 다물면 우는 상 비슷한 기분을 일으키는 얼굴, 그 명랑하던 웃음은 어디로 가고 아주 우울한 얼굴의 한 권형‘이 되어버린걸요. 팔꼬뱅이⁷부터 드러내놓은 그의 팔은 오륙 년 전 그때보다도 더 하얘졌는데 그때에는 대리석처럼 반지르르하고 아롬답던 것이 지금에는 회벽처럼 푸수수하고 거칠어져버렸습니다. 오직 그 흑진주같이 빛나는 두 눈만이 그대로 엣날 그 아름다움을 간직해 내려왔습니다. 그래 그 눈만을 잠시 바라다보면 그 얼굴은 옛날 순진성은 없어졌지마는 그 대신 더 요염한 매력을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은 이번엔 누구더냐구요? 혼자 와 앉아 있어요. 내가 식당으로 들어설 때엔 벌써 그는 저녁을 다 먹고 치웠는지 식탁에는 아무것도 없고 혼자 턱을 괴고 앉아서 담배만 자꾸 피우더군요.
나는 그만 놀라고 슬프고 기분이 이상해져서 멀거니 그 여자만 바라다보고 있었습니다마는 그는 한두 번 나를 바라다보았으나 이번엔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고 그렇게 놀란 모양으로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그냥 잠시 바라다보고는 다시 천장을 치어다보면서 담배만 자꾸 피우는걸요.
아마 내가 식당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담배를 대여섯 대 계속해 피웠지요. 나는 한번 말이라도 건네볼까 하는 호기심이 불 일 듯 일어났으나 원래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 데다가 또 그 여자의 태도가 어떻게도 냉랭하고 청승맞은지 그만 용기가 없어졌습니다. 보이가 내 주문한 밥을 가져올 때 그는 그만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6
그러고는 바로 어제 일입니다. 어제 저녁으로 내가 봉천서 먹었지요. 바로 아까 오후에 서울 내렸으니까요.
예, 벌써 짐작하시는군요. 그래요 그 여자를 어제 또 봉천역 식당에서 보았어요. 그것도 무슨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요.
정거장을 그동안에 모두 수리를 해놓아서 아주 으리으리하더군요. 안으로 커단 대합실을 새로 내고 층층대를 크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파란색이 도는데 발로 밟으면 물큰물큰하더군요. 식당은 마침 수리 중이어서 이편 한구석에 임시로 자그마하게 열었는데 새로 산 듯 눈에 띄는 것은 하얀 에이프런을 맵시 았게 입은 여급들이 이제는 식당 보이 직업까지도 사내들은 못 해먹게 된 세상입니다그려.
어서 그 양장 미인 이야기를 하라고요? 예 지금 곧 하겠습니다. 그렇게도 우울한 얼굴이 세상에 다시 또 있을 수 있을까요? 그 흑진주같이 빛나는 눈도 웬일인지 그 광채를 잃고 언제나 눈물이 고여 있는 것같이 보여서 금시에 그는 밥을 먹다 말고 울고 쓰러질 것같이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더군요.
혼자 왔뎌냐구요? 아니요. 이번엔 둘이서 왔습니다. 내가 저녁을 한 절반이나 먹은 후에 그 여자가 들어왔는데 포근히 잠든 어린애 아마 네 살이나 났을까요? 한 아이를 업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계집애인데 교의에 내려놓으니까 그냥 식탁에 두 팔을 얹고 엎드려 쌕쌕 계속해 자더군요.
양장의 그 여자는 이번엔 천장을 치어다보지도 않고 담배도 안 피우고 오직 식탁만을 맞추고 그 위로 기어가는 개미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들여다보고 앉아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도 뚫어지게 바라다보았으나 내 시선을 감각 못 했을 리도 없으련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이 세상에는 오직 그 식탁 하나밖에는 아무런 다른 존재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듯이 한곳만 그렇게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그렇게도 눈물 날 만치 구슬픈 밥 먹는 태도를 나는 입때 본 일이 없었습니다. 밥을 한술 입에 떠 넣고는 맥이 한 푼어치도 없는 사람처럼 입을 후물후물 그것도 가끔 밥 먹기를 잊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몇 번 후물후물 그러다가는 어떻게 가까스로 삼키고는 또 한참을 멀거니 앉았다가는 다시 새로 생각난 듯이 또 한 숟갈 떠 넣고 후물후물 이 모양이었습니다. 언제나 식탁 위 한곳만을 뚫어질 듯이 주시하면서.
그러더니 그는 밥 뜬 숟갈을 손에 든 채 입에 넣지 않고 한참이나 멀거니 앉아서 시선을 옆에 엎디어 자고 있는 애기에게로 옮겼습니다. 잠시 동안 애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한순간 실로 눈 깜짝할 한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 창백한 뺨 위에 우물이 패었다가 메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한술 떠 들었던 밥을 도로 접시에 놓고 고요히 일어서서 자기 등에 둘렀던 덧옷을 벗어서 자고 있는 아이의 어깨를 덮어주었습니다. 봄이 꽤 들어서 뭐 그리 추운 날은 아니었습니다마는!
그러고는 그는 다시 앉아서 아까 모양으로 절반 정신은 딴 데 둔 사람처럼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올시다. 나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지금 어떠한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어떠한 환경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 여자를 봉천 식당에서 서너 번 본 이 외에 그 여자에게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고 내가 그의 반생을 그려본다면 그것은 한갓 내 추측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이 여자에게 대한 내 추측이 바로 사실같이 자꾸 생각되어서 우울하고 구슬픈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마치 해외로 떠도는 조선 여성의 한 타입의 표본을 눈앞에 앉히고 보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어서 처참한 감정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모르고 쌕쌕 잠자는 그 어린 딸―추울세라 어머니가 덧옷을 벗어 덮어주는 것도 인식 못 하면서 지금 그 아이는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선 나라 꿈을 꾸고 있겠지요. 어머니의 슬픔도 모르고 자기 앞을 걸쳐 막고 있는 비애의 커단 함정도 모르면서 어머니의 슬픔을 상속받아 대를 이을 이 애기! 어머니가 딸에게 그 딸이 또 딸의 대에 대를 이어서…… 조선인으로서의 비극, 여자로서의 비극, 인류로서의 비극을 부단히 대 이어나갈 이 딸…… 이 쇠사슬 같은 연쇄의 영원을 생각할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쉬었습니다. 나는 내 입에서 나와서 뭉게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바라다보면서 그 연기 속에다가 지금 내 앞에 앉아 밥 먹고 있는 이 한 조선 여성의 조그마한 기쁨들과 커단 슬픔으로 채웠을 반생을 그림 그려보고는 지워버리고 또 그려보고는 다시 지워버리고 하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끝-
2016년 4월 1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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