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망월동의 가을 하늘을 그리며 ‘인간 존엄’ 일깨우고 떠난 그 사람 고 백남기 농민 사건 2주년 생존권 요구하는 목소리에 국가 권력은 폭력 휘둘러
발행일2017-10-01 [제3064호, 4면]
일러스트 조영남
‘사람이 죽었다고 무조건 사과할 필요는 없다. 경찰의 힘은 국민의 사랑에서 나온다’고 했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 백남기 농민이 변을 당한 날 서울 집회현장을 총괄했던 구은수 당시 서울 경찰청장. ‘검찰 수사결과 경찰의 잘못이 명백하다면 유족에게 사과할 수 있다며 책임인정을 하지 않았던’ 현 이철성 경찰청장. ‘사인규명에는 부검이 제일 중요하다’며 ‘망자의 시신을 부검하라’고 다그친 김진태(당시 새누리당) 의원. 이제 이들이 뭐라 말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시민의 생명과 권리보호보다 부패한 권력 보호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물대포를 직접 맞아보고 사람의 얼굴뼈가 부러지는지 시험해 보겠다’ 하고 ‘백남기 농민 주검 안치실에 무단침입’했던 건국대 의대 이용식 교수. ‘고 백남기씨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아서 외부원인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병사’라고 진단했던 당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과장 백선하 교수. ‘백남기씨의 사인을 병사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는 문제가 없다’고 했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이제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의학적 소견에 대하여 어떤 주장을 할지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분명히 이들은 수많은 선한 의료인들을 모독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의료현장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함을 의미하고 시민보건에 심각한 위협입니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추악한 권력과 지식의 자화상들입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요한 1,5)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게 마련입니다.(루카 8,17) 2015년 11월, 박근혜 정부가 말했던 쌀값, 밀값 인상공약이 파기되었습니다. 농민으로 이해당사자였던 백남기씨는 농민의 기본적 생존권을 요구하며 서울 상경 집회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농가의 삶이 피폐해지는 이유는 저임금 정책으로 도시 주민들을 활용하려면 쌀값을 의식적으로 낮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농가가 우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곡물 정책은 쌀 수입량을 증가시키는 결과일 뿐입니다. 무차별하게 농업이 희생되고 산업화에 치중한 것으로 오래전부터 치명적 결과를 향해 달려온 까닭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언제라도 농가의 고통이 외부로 드러나고 농민들의 궐기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이 어려운 농민들이 ‘인간의 존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품위를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숙고한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지상의 평화」 10항)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상식입니다.
그는 지금 경찰을 앞세운 국가의 폭력에 쓰러져 우리 곁을 떠난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건이 발생한지 어언 2년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사실 그는 죽음으로 파렴치한 권력의 음모를 폭로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족과 동료들의 곁을 비워놓고 어두운 역사의 반복을 막는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먼 길 여행 중입니다. 하염없이 높은 가을 하늘, 골고타의 십자가가 오버랩되는 망월동으로 그를 만나러 갑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수도회)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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