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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트리슬램』 2020년 6호
-우주시 포럼-
우주서정시
- 자연서정시로서의 우주시
김세영 (시인,편집인)
우주서정시의 바탕
오늘날은 글로벌 시대를 넘어서, 달 표면에 인간의 족적이 찍히고, 우주여행의 베이스캠프인 우주선에서 장기간 기거하며, 화성에 우주선이 착륙하고, 태양계 밖에 까지 우주선이 성간 비행하는 우주시대가 되었다. 우주와 은하가 인간의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이 된 시대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문학 이슈로서 부각되고 있는 장르가 우주문학, 우주시이다. 우주시가 시 장르에서의 새로운 미래 개척지이자 블루오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주시의 바탕이 되는 우주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주라는 것은 기존의 자연이라는 공간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 시킨 시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의 자연이라는 공간은 지구라는 현재의 장소와 여기에서 바라보는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포함된 공간이다. 현대 천체물리학에서 밝혀진 우주는, 불과 100년 전 과거 시대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의 시공간이다. 그런데 불교와 기철학에서 이미 상상적 직관만으로 인식한 우주 개념이 현대 물리학과 유사한 엄청난 크기의 시공간을 표현하고 있어서 놀랍다.
현대 물리학에서 인식하고 있는 우주는 약 139억 년 전 빅뱅 후, 초기 약 38만 년 간 우주의 온도가 3000K로 낮아졌을 때 비로소 원자가 생성되면서 탄생했다. 원자 생성 이전의 우주는 전자가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빛과 충돌하여 빛이 직진하지 못해서 우주가 불투명하였다. 우주가 팽창하여 온도가 낮아지면서 점차 무거운 입자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빛이 직진할 수 있게 되고 우주가 비로소 투명해 졌다.
우주초기에 수소와 헬륨이 생성되고 이들 원소를 재료로 해서 수억 년(4억~7억 년) 후 은하와 별이 탄생하였다.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존재하며, 태양계가 있는 ‘우리 은하’는 그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 은하’에는 약 2000억 개의 항성이 있고 그 중에서도 태양과 같은 별은 약 1000억 개가 된다고 한다. 우리 은하의 지름은 약 10만 광년(약 95X1016Km) 이고, 높이는 약 1.5만 광년이 된다. 중심에서 약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지구가 소속한 태양계가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주시란 어떤 시인가? 우주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우주에 대한 현대 천체물리학적 사실 인지와 이것을 바탕으로 한 세계 현실의 인식과 감성으로 쓰여 진 시이다. 자연을 대상 소재로 하여 이에 대한 인식과 감성의 바탕으로 쓴 시를 자연서정시이라고 한다면, 그 자연의 바탕을 우주적 시공간으로 확장 시킨 시가 우주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믿었던 시대에서의 자연서정시와, 칼 세이건에 의해서 처음으로 보여졌던 한낱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자연서정시는 시적 바탕인 세계인식의 차원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1990년 2월 보이저 1호가 태양계의 외곽에서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서 바라본 지구는 티끌만한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았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 이란 그의 저서에서 기술한, 그 당시의 감회가 자연서정시로서의 우주시의 정서적 및 인식적 바탕이 된다고 생각 되어서,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주서정시의 현황
오늘날의 현대시에는 양극단에 전통적 서정시와 미래파적 실험시가 있고, 그 사이에 여러 경향의 시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시의 본령은 서정시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시에서도 우주적 소재와 소우주인 인간의 내면 정서를 결부시켜 은유적으로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자연서정시로서 새롭게 확장된 장르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된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자연서정시로서의 우주시를 쓰는 시인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주서정시의 원조의 자리에는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을 먼저 내세우고 싶다. 널리 알려진 시 한편을 예로 들어본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전문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을 보면서 우주적 시원의 근원적인 사색의 질문을 거듭 던지는 시이다. 신의, 창조자 절대자의 오묘한 섭리의 힘을 섬세한
감성으로 묘사한 우주서정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이다.
한국 시단에서 생존하는 시인 중 우주서정시인으로 제일 먼저 이름이 떠오르는 사람이 이원로 시인이다. 시인은 198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후 『빛과 소리를 넘어』 『팬터마임』 『바람의 지도』 등 삼십 권 이상의 시집과 영한대역 시선집을 출간하였다.
의사이기도 이원로 시인은 자연과 우주를 인간의 몸과 결부시켜서 시를 쓰고 있다. 우주에 충만한 신성하고 오묘한 법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미학적 상상력과 사유로 개성적 시세계를 그려서 보여주고 있다.
바람이 지도를 그려간다
모든 공간을 그려갈 지도다 /모든 시간이 담겨질 지도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땅을 그리고 바다를 그린다
날마다 새롭게 지도를 그려간다
언제인가 바람이 불어서 / 하늘을 만들고 별을 만든다
날로 새로워질 지도를 그려간다
물과 불과 소리를 흔들어 /빛과 형상과 그림자를 넘어
바람이 지도를 그려간다
-이원로 「바람의 지도」 부분
“바람이 지도를 그려간다 ”는 것은 시간이 공간을 지나가면서 그리는 우주의 역사를 말한다. 바람은 창조자의 말씀이다. “바람이 불어서
하늘을 만들고 별을 만든다 ”고 표현하고 있다. 우주 창생의 역사를 서정적으로 이미지화 하고 있다.
우주문학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 김영산 시인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는 1990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벽화』 『게임광』 『시마』 『하얀 별』 등과 시론집으로 『우주문학의 카오스모스』 등이 있다.
“우주문학론은 우주과학을 기반으로 우주적 사유와 우주적 형식으로 이뤄진 문학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세계는 시의 우주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우주문학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초월하여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초월적 세계의 지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주적 사유이다.”라고 설명한바 있다.
우리 사랑에도 보가 있나, 보를 터트려야 물이 흐르지 — 우주 여자에게 별의 씨가 뿌려지고 오랜 임신기간, 그 고통 우주 얼룩으로 남았다.
우주 태아 빛이 되기 전 어머니 중력과 하나였다, 중력에서 빛이 달아나느라 각축전 벌였다. 오 환한 빛보 터트려 우주가 생겼다, 오오 그 환한
기록이 우주의 비석이다!
이미 나는 죽은 자인 것이다, 상복 입은 여자는 내 여자인 것이다. 광녀여, 우주의 광녀여! 별이여 하얀 별이여 내 시즙(詩汁)을 받아
마셔라! 오 사람 여자 38주 임신기간 — 우주 여자 38만 년 임신기간 오오 사태(死胎)도 있다지 — 다행히 낙태(落胎)하지 않고 어머니가
되었군.
—김영산 「詩魔―십우도(아홉)」 부분
빅뱅 직후 우주가 탄생하기까지의 38만년을 여자의 임신기간 38주에 비유해서 시화해서 표현하였다. 빅뱅을 일으킨 직후 일정 기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높고, 우주의 밀도가 높아 빛이 어둠 속에서 물질과 복사가 마치 수프처럼 한데 섞여 있는 상태였다. 38만 년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냉각이 되고 밀도가 낮아지면서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가 형성되고, 빛이 어둠에서 탈출하여 직진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의 별들이 탄생하는 위대한 우주여자의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출산이 시로 묘사되었다.
우주적 인식과 감각으로. 시를 쓰는 신진시인으로 이제니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은 1972년 부산 출생이며,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페루」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아마도 아프리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가 있다. 시인의 시어는 주문 주술적이다. “신의 목소리가 신의 말씀보다 앞서듯이. 소리의 질감이 소리의 의미를 압도하듯이.” 이제니 시의 특징은. 대부분은 동일한 문장 구조가 계속 반복되는 한편, 등장하는 시어의 수도 다양하지 않고 한정적이지만. 운률성 있게 반복하여 신기하게도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가 탄생된다.
들려온다. 하나의 음이. 하나의 목소리가. 태초 이전부터 흘러왔던 어떤 소리들이.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침묵으로 존재했던 어떤 형상들이. 너는 입을 연다. 숨을 내뱉듯 음을 내뱉는다. 성대를 지나는 공기의 압력을 느낀다. 하나의 모음이 흘러나온다. 음은 비로소 몸을 갖는다. 부피를 갖고 질량을 갖는다. 소리는 길게 길게 이어진다. 길게 길게 이어지다 끊어진다. 끊어지다 다시 이어진다. 어떤 높이를 가진다. 어떤 깊이를 가진다. 너는 허공을 바라본다. 높은 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을 보듯이. 구석구석 음들이 차오른다. 차오르는 음폭에 비례해 공간이 확장된다. 너는 귀를 기울인다. 저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의 목소리라도 듣듯이. 목소리는 목소리 그 자체로 말한다. 신의 목소리가 신의 말씀보다 앞서듯이. 소리의 질감이 소리의 의미를 압도하듯이. 너는 음의 세례를 받으며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
너는 현재에 서서 과거의 얼굴 위로 미래의 목소리를 불러들여 덧입힌다. 다시 돌릴 수 없는. 다시 들을 수 없는. 음이 이어진다. 다시 이어지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다 끊어진다. 들리는가. 이 음들이. 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지는 이 사물의 무수한 진동이. 사라져가며 다시 울리는 이 끝없는 존재의 증명이. 매 순간 처음처럼 울리는 이 거대한 침묵이.
—이제니 「나선의 감각―음」부분
우주음은 자음 없이 모음으로만 구성된 어떤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 원형의 소리이다. 우주의 기본요소인 기氣가 입자가 아닌 파동의 형태로 나타내는 진동이다. 비언어적 소리의 진동인 파동이다. 우주음악의 기본인 율려의 모습이다. 신의 말씀이 아닌, 의미를 드러내기 이전의 태초, 우주창조 시 신의 목소리이다.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한 우주의 구조는 나선의 형태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선과 곡선의 미분화 혼합체가 나선의 구조이다. 이 속에서는 공간이 휘어지듯이 빛도 휘어지고, 시간도 휘어진다. 기파도 휘어져서 진행하고, 우주음도 휘어져 간다. 그래서 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나선의 감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주서정시로서 김경주 시인의 「우주로 날아가는 방1」 과 「외계」 가 생각난다. 김경주 시인은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꽃 피는 공중전화',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고래와 수증기』 등과 시극집으로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나비잠』등이 있다. 「우주로 날아가는 방1」 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방을 밀며 나는 우주로 간다
땅속에 있던 지하 방들이 하나 둘 떠올라 풍선처럼 날아가기 시작하고 밤마다 우주의 바깥까지 날아가는 방은 외롭다 사람들아 배가 고프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싣고 지구는 우주 속에 둥둥 날고 있다 그런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분홍을 밀랍하는 일이다 불씨가 제 정신을 떠돌며 떨고 있듯 북극의 냄새를 풍기며 입술을 떠나는 휘파람, 가슴에 몇천 평을 더 가꿀 수도 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 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 외로워해 주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평생 등 뒤에서만 안고 잤다 제정신으로 듣는 음악이란 없다
지구에서 떠올라온 그네 하나가 흘러다닌다 인간의 잠들이 우주를 떠다니는 동안 방에서 날아와 나는 그네를 탄다 내 눈 속의 아리아가 G선상을 떠다닐 때까지, 열을 가진 자만이 떠오를 수 있는 법 한 방울 한 방울 잠을 털며
밤이면 방을 밀고 나는 우주로 간다
- 김경주 「우주로 날아가는 방1」 전문
우주서정시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이는 시이다. 밤에는 지하의 방들이 우주로 떠올라 풍선처럼 날아간다. 어두운 밤에 혼자 방에 누워 눈을 감으면 방은 우주선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실은 지구는 우주 속에 둥둥 떠다니는 행성이 된다.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이 시의 핵심 메시지이다. 외로움을 진정으로 느껴보아야 생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바탕이 된다는 뜻이라고 본다. 인간의 고독한 정서를 우주적 인식으로 확장 증폭시킨 시이다.
필자의 경우 2012년 이후에 쓴 시들을 모아 2016년에 출간한 제 3 시집 『하늘거미집』에 우주를 소재한 우주서정시라 할 수 있는 시가 여러 편 실려 있고, 그 이후 최근 잡지에 다수의 우주시를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 우주서정시로서 대표적인 시 2편을 소개해 올린다.
누대의 생에 걸쳐서 보낸 송신을 / 수천 광년 거리에서 이제야 수신했다고
깜박거리며, 아포피스*처럼 다가오지만 / 그냥 지나치고 말 것이라는 둥,
내 그림자 끄트머리에 잠시 머물다가 /개기월식처럼 슬그머니 빠져나갈 것이라는 둥,
허블망원경으로 파파라치처럼 추적하는 /나의 간구한 기도의 중력으로 끌려와
손아귀 속에 갇혀도, 타다 남은 운석가루만 /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둥,
유니버설 조인트로 두 손을 깍지 끼어 잡고 /거부의 혀를 입 속에 가두고
너트 속에 볼트를 끼우듯 한 몸이 되어도/ 어느새 몸체 밖, 어둠으로 빠져나가는 너,
너를 호명하며 잡은 대나무가 접신으로 진동할 때
죽통 속의 마디진 파동들이 일제히 공명하여
폭죽으로 터져 나가는 찰라, / 순간 진공이 된 통발 속으로 쏙 빨려 들어온 너,
한 덩이 몸빛으로 / 수천 광년을 달려오다
마지막 기층의 틈 속에서 / 무거운 몸은 태워버리고
날카로운 빛도 마모되어, 이제 / 대나무 속청의 떨림 같은
기파氣波로, 어둠 속 하늘거미집 같은 /둥지를, 내 울림통 속에 짓지 않을래?
*소행성 Apophis
- 김세영 「너」 전문
한 개인과 한 개인의 만남은, 수백억 년의 시간과 수천 광년의 공간에서 확률적으로 지극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동행이다. “너트 속에 볼트를 끼우듯 한 몸이 되어도/ 어느새 몸체 밖, 어둠으로 빠져나가는 너,//죽통 속의 마디진 파동들이 일제히 공명하여// 순간 진공이 된 통발 속으로 쏙 빨려 들어온 너,”라고 묘사했듯이 지극히 찰라적인 운명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스침인 것이다. 한 인간과 한 인간의 만남은 한 영혼의 기파와 다른 한 기파의 만남인 것이다. “대나무 속청의 떨림 같은// 둥지를, 내 울림통 속에 짓지 않을래? ” 라는 표현처럼 두 개체가 영혼적인 교감 즉 기파의 공명이 이루어져야 한 울림통 속에 머무를 수 있은 것이다.
은하의 고독한 불씨로 던져져 /팽창하는 자유의 횃불로
우주의 검은 바다를 밝히는 /중년의 독신녀이다 //
불꽃의 절반을 태우며/ 갱년기에 접어든 여왕의 모습
적색 거성, 거대한 적혈구의 용광로 /심장이 불꽃을 뿜는다//
그녀를 연모하는 뭇 행성들이 /홍염紅焰 의 치맛자락에 휩싸여
별똥별이 되어 /한여름 밤의 불나방처럼 /열락의 분신을 한다//
늪처럼 깊은 자궁의 내막 속에 /오랜 욕망에 지친 흰 뼈를 묻으려는
백색 왜성들의 수억 마리의 꿈들, /모천처럼 찾아가는 블랙홀이
그녀의 단전 속에 있음이다//
때로는 여왕벌처럼 외롭고 슬플 때 /울먹임의 파도가 은하의 유역에 범람하여
쓰나미에 떠내려간 유성들이 /궤도를 잃은 우주의 유랑자가 된다//
훗날, 마지막 몸 보시 다비로 /초신성超新星의 광채로 어둠을 밝히는
우주의 등대가 되려는 그녀! /떠도는 혼의 유성들을 초혼가로 불러 모아
우주의 어머니처럼 용광로 가슴으로 /얼음 운석이 된 심장들을 품어주려는 것이다
새로운 별의 마그마로 녹여주려는 것이다.
-김세영 「우주의 여자」 전문
태양의 현재 나이가 약 46억년이고, 추정되는 수명이 약 100억년이므로 태양을 여자에 비유하며 중년의 여자에 해당된다. 주위를 도는, 지구를 포함한 8개의 행성들과 여러 개의 왜소행성들을 거느리는 태양계 가족을 이루고 있다. 행성들은 그녀의 중력의 치맛자락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그녀를 연모하여, 가장자리에서는 붉게 빛나는 구름인 홍염 속에 열락의 분신하는 소행성들도 있다. 그녀는 패밀리의 여왕답게 “ 떠도는 혼의 유성들을 초혼가로 불러 모아 우주의 어머니처럼 용광로 가슴으로 얼음 운석이 된 심장들을 품어주 ” 며, 우리은하의 한 영역을 지키며, 어둠의 시공간을 밝히는 우주의 등대가 되려는 것이다.
우주서정시의 미래
우주시대에서 새로운 문학 이슈로서 부각되고 있는 장르인 우주문학, 우주시에 대해서, 특히 우주서정시 즉 자연서정시로서의 우주시의 생성 배경과 문학적 특성의 의미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한국 현대시 문단에서 우주서정시의 시적 특성에 부합되는 대표적인 시편들을 발췌해서 간단한 시단평과 함께 소개하였다.
지난달 5월 31일 밤 11시 16분, 민간 회사인 '스페이스X'는 우주비행사 2명을 태운 민간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국제우주정거장 ISS에 안착시켰다고 한다. 2024년에는 민간인 승객 100명을 태우고 화성 탐사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우주가 인간의 실생활 공간 환경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때는 우주서정시가 특별하지도 않은 그냥 지금의 서정시가 되는 것이다. 향후 우주시에 관심 있는 시인들이 많이 나와서 훌륭한 우주서정시들이 지속적으로 많이 발표되기를 희망적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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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2006년 시집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작품 활동 시작
2007년 「미네르바」 시 등단. 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편집인
시집: 『하늘거미집』 『물구나무서다』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서정시선집: 『버드나무의 눈빛』, 디카시집: 『눈과 심장』,
한국의사시인회 고문, 시산맥시회 고문
제 9회 미네르바 문학상, 제 14회 한국문협 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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