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호 《좋은생각》 인터뷰 차, <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가 양인자 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지요.
“김수현 씨와 《여학생》이란 잡지 기자로 활동했어요. 김수현 씨 덕분에 스무 살 때 벼락을 맞은 듯했어요. 맹하게 살아온 내가 반짝 눈을 떴어요. 자극을 받았죠. 김수현 씨 기사는 어쩌면 그렇게 모두 명쾌하고 재미있고 통통 튀는지. 대화할 때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다음 얘기로 툭툭 튀어 나가서 얘기하는 재미를 알았죠.”
양인자 님은 김수현 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잡지사를 관두고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 작가로 잘 나가던 김수현 님의 권유로 양인자 님은 <부부 만세> 각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기(雨期)의 연인>을 쓸 때 주제곡을 맡은 작곡가 김희갑 님이 양인자 님에게 작사를 권해 쓴 노랫말이 가수 혜은이 님이 부른 <열정>이었습니다. 이후 양인자 님은 작사가로 제2의 인생을 꽃피웠습니다. <서울, 서울, 서울>, <그 겨울의 찻집>, <타타타>,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100여 개의 히트곡을 작사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양인자 님은 김수현 님과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주셨습니다. “적은 기자 월급을 받아 어렵게 생활할 때였어요. 김수현 씨가 전화번호부를 보고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전화해 보자고 했어요. 당시 전화번호부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잘사는 거였어요. 제일 먼저 김수현 씨가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었어요. 김수현이라는 이름은 필명이고 본명은 김순옥이라서 김순옥이란 사람에게 전화했어요. '저도 이름이 김순옥인데요. 이 이름을 가지고도 잘살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전화받은 사람이 잘살 수 있다고 잘 얘기해 줬어요. 그래서 김수현 씨가 '잘살 수 있대. 너도 해 봐.' 했어요. 저도 양인자라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말했어요. '제 이름도 양인자인데요.' 하니까 '전화하지 마!'라는 거예요.” 양인자 님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전화를 쌀쌀맞게 받긴 했지만, 김수현 님 전화를 자상하게 받아 주며 잘살 수 있다고 희망을 준 사람이 고마웠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마도 힘들던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지요.
그날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희망의 말이 사람을 희망의 길로 이끈다고요. 또한 곁에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글 / 월간 《좋은생각》 편집실 이하림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