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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오 논란으로 살펴보는 건강식품의 허와 실
목차
실제 건강식품 시장은 굉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건강식품 시장 규모는 무려 1조 7920억 원에 이른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서 추산한 규모는 더욱 커 2013년 기준 4조 6300억 원에 육박한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건강식품 시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2013년의 시장규모는 5년 전인 2009년의 1조 1600억 원과 비교해 55%나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건강식품'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제품이 실제 그 이름값을 하느냐다. 겉포장만 그럴듯하고 내용물은 별 거 없는 속칭 가짜 상품이 수두룩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건강식품 위해정보 신고현황'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에만 3225건의 건강식품 위해정보가 신고됐다.
아래 사례들은 뉴스나 주변에서 한 번씩 봐 왔던 전형적인 건강식품 구매 모습이다. 홈쇼핑, 전통시장, 마을회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 건강식품 판매에 앞뒤 안 보고 비싼 건강식품을 구입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어느 전통시장. 입담 좋아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좌중에 모인 관객들이 울다 웃기를 반복한다. 관객들의 평균 연령은 약 70세. 오랜만에 듣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리를 지킨다. 이윽고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자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관심을 보인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주부 A씨. 요즘 들어 찌뿌둥한 몸에 하루하루가 괴롭다. 그러던 중 무심코 켠 TV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자신이 이렇게 괴로운 이유가 갱년기 증상 때문이라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기 때문이다. 화면에는 갱년기 여성의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멍하니 쇼핑 호스트의 입만 바라보던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걸었다.
2015년을 떠들썩하게 한 과학이슈 중 하나였던 가짜 백수오 논란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건강식품 열풍에 들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22일. 한국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에서 판매하는 백수오 식품의 원료에 이물질인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해당 제품은 각종 인터넷과 잡지 등에 소개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건강식품.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키던 제품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환불 건으로 홈쇼핑 업무가 마비되고, 코스닥 최고의 기대주였던 관련 기업 주가가 폭락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백수오 관련 이야기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백수오 제품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잇달아 단체소송 카페를 만들어 소송을 하기도 했다.
신드롬을 일으켰던 내츄럴엔도텍의 제품 말고도 백수오를 원료로 사용한 제품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결국 한국소비자원에서 관련 제품 207개 제품을 수거해서 검사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40개 제품에서 이엽우피소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 167개 제품이라고 100%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엽우피소가 들어 있는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이 안 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백수오(白首烏)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논란이 됐을까? 백수오와 하수오 그리고 백수오와 비슷한 이엽우피소까지, 알고 보면 꽤나 복잡한 백수오의 정체도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백수오의 정식 학명은 키난춤 윌포디(Cynanchum wilfordii Hemsley)로 정확히는 이 식물의 뿌리 부분을 약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로는 은조롱이라고 하며 백하수오라고도 불린다. 특히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홍보 자료에 따르면 안면홍조·불면·신경과민·우울·피로 등에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갱년기 여성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한편 이름이 비슷해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적하수오는 여뀌과 식물인 '붉은조롱(Polygonum multiflorum Thunb)'의 덩이뿌리를 말린 것이다. 간과 신장 등에 좋아 예로부터 약재로 쓰였다는 점을 빼면 사실 백수오와 비슷한 점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많은 곳에서 혼용하고 있다. 이엽우피소는 30여 년 전 중국에서 도입된 외래종으로 정확한 명칭은 '넓은잎조롱(Cynanchum auriculatum)'이다. 재배 기간이 3년 남짓이고 재배도 쉽지 않은 백수오에 비해 1년 만에 수확이 가능하고 생산량도 좋아 가격이 백수오의 에 불과하다. 가장 큰 특징은 백수오와 뿌리 부분의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는 점으로 사실상 육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짧게 정리하자면, 백수오 논란은 백수오 대신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저렴한 이엽우피소를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백수오의 특별한 효능을 기대하고 거액의 돈을 지불한 소비자들은 실망감을 느낄 법하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나마 상황이 좋았을 것이다. 이엽우피소의 진짜 문제는 독성 문제가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엽우피소는 현재 대한약전의 한약(생약)규격집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는 의약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뜻으로 현재 건강기능식품이나 약재로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뜻이다. 이엽우피소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독성이 보고된 식물이기도 하다.
이엽우피소의 독성 문제는 중국에서 먼저 제기됐다. 중국 식물도감 데이터베이스에는 이엽우피소 뿌리의 독이 침 흘림, 구토, 경련, 호흡곤란, 심장박동의 완만 등의 중독 증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이에 따르면 쥐와 참새를 독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한한의사협회에서도 보도자료를 통해 이엽우피소를 조심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중국의 여러 논문들은 이엽우피소의 독성을 확정하는 수준의 연구로는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 독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은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엽우피소의 독성을 지적한 논문은 난징 철도의대에서 진행한 「이엽우피소 토탈 글리코사이드 A중 항종류 세포 독성분의 신경세포에 대한 독성평가연구」다. 쥐를 대상으로 한 이 논문은 이엽우피소의 C21스테로이드에서 추출한 화합물이 쥐의 대뇌피질 신경세포에 독성 반응을 일으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쥔메이, 루총밍 등이 진행한 동물실험에서도 이엽우피소의 독성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엽우피소에서 추출한 토탈 글리코사이드를 투여한 쥐들이 걸음이 이상하고 운동 능력이 저하되었으며, 심할 경우 경련과 강직성 움직임, 심박과 호흡의 둔화 현상 등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엽우피소가 든 사료를 먹은 암퇘지에서 유산이 증가했다는 1쪽짜리 연구 논문이 1984년에 발표되기도 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런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엽우피소가 간 독성이 있고 신경 쇠약 · 체중 감소를 유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엽우피소의 독성이 완전히 증명됐다고 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독성학회는 2015년 5월 1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중국에서 진행된 이들 연구가 쥐에게 이엽우피소를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이는 등 허점이 많다고 밝혔다. 한국독성학회는 의학·약학·수의학·생물학·보건학 등의 독성 전문가 1000명 이상이 모인 학술단체다.
한국독성학회에 따르면 OECD의 독성시험 가이드라인은 전체 사료 중 시험물질의 양이 5%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시험물질이 5% 이상이면 정상적인 영양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연구 결과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당 실험에는 최대 5%, 10%, 20%의 세 가지 케이스로 나눠 이엽우피소가 함유된 사료를 먹였다. 그 결과 이엽우피소가 5% 함유된 사료를 먹은 쥐에선 이렇다 할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내츄럴엔도텍 제품의 정상 복용량은 한 번에 두 알씩, 하루 4알이다. 설사 제품이 혼합물이 아닌 이엽우피소로만 구성됐다고 해도 하루 4알로 얻는 이엽우피소 섭취량은 2g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과 쥐의 체중 차이 등을 감안하면 위험하다고 결론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엽우피소에 부정적인 연구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2년엔 체중 1킬로그램당 10∼4밀리그램의 이엽우피소 추출물을 실험용 쥐에 먹였더니 뇌의 신경물질인 세로토닌 수치가 상승해 우울증이 감소하고 운동량이 늘어났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독성학회에 따르면 이 연구에서 쥐들이 먹은 이엽우피소의 양은 난징 철도의대 연구의 1/100 수준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이엽우피소의 독성을 연구한 결과 데이터가 너무 적다. 이는 이엽우피소가 중국 외의 다른 나라에선 거의 먹지 않아 연구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연구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도 독성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이와 같이 이엽우피소의 정확한 효능과 독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백수오 논란으로 큰 곤란을 겪었던 식약처에서 본격적인 독성 검증에 나선 형국이다. 식약처는 향후 이엽우피소 독성시험 용역을 발주하고 2년의 기한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이엽우피소 및 백수오 시험물질 조제 등에 5개월, 용량결정 등 예비시험에 2개월, 시험물질별 반복투여 독성시험 및 1차 보고서 작성에 13개월, 병리조직검사 등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포함한 결과보고서 작성에 4개월이 걸린다.
지금까지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가짜 백수오로 악명을 떨친 이엽우피소는 효능은 고사하고 독성에 대한 검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엽우피소가 아닌 백수오를 원료로 사용하면 모든 논란이 끝나는 것일까? 계절이 몇 번 지날 때까지도 수그러들지 않는 환불을 둘러싼 업체와 소비자 간의 실랑이는 둘째치고라도 아직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다.
사실 진짜 백수오 제품이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건강기능식품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백수오는 그 자체가 아니라 복합추출물이기 때문이다. 식약처 역시 '임산부 및 수유부는 섭취를 삼갈 것'을 권장하고, '항응고제 또는 항혈전제를 복용하는 사람 역시 의사와 상담할 것'을 주의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수오 논란에서 가장 확실하게 짚어봐야 할 점은 역시 백수오의 효능 그 자체다. 많은 전문가들이 백수오의 효능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가정의학회 근거중심의학위원회(이하 위원회) 등 의학계에서 인정한 관련 임상시험은 5월 5일 기준, 총 2편에 불과하다. 위원회에 따르면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백하수오, 백수오, 이엽우피소를 검색어로 논문을 검색한 결과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은 총 164건이 있으나, 이 중 해당 물질과 관련한 논문은 총 20편이며 이 중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된 임상시험은 단 1편에 불과하다. 위원회에서 수동으로 추가 검색한 결과, 백수오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 대한 1편의 임상시험이 추가로 검색돼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백수오의 효능에 대한 임상시험은 총 2편이다.
문제는 이 2편의 논문도 그 효능을 명확히 입증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2003년 《한국생물공학회지》에 발표된 첫 백수오 관련 논문은 백수오 · 당귀 · 마른 생강 등을 투여한 폐경기 여성 24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58.3%가 폐경 증상 호전을 보였으나, 백수오 단독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전통의학정보포털의 논문 검색에서도 백수오 관련 논문 2건, 백하수오 관련 논문 3건, 연구보고서를 4건 찾을 수 있었으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없었다.
폐경 증상 자체의 특징 때문에 위약 효과가 더욱 크다는 의견도 있다. 갱년기 증상은 기본적으로 몸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여성호르몬 수치의 변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화되는 것을 약의 효과로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4월 기준 시중에 판매되는 백수오 건강식품 32개 제품 중 진짜 백수오를 원료로 사용한 제품은 3개 제품(9.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90%가 가짜라는 것이다. 이 제품들을 복용하고 증상이 호전된 것 같다면 위약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내 몸에 맞지 않는 건강기능식품은 독이라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약을 처방할 때 전문가의 처방전을 받아서 하듯 건강기능식품도 각 사람의 체질과 연령, 식습관 등을 고려해서 복용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양 상태는 굳이 건강기능식품을 시시때때로 섭취해야 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2013 국민건강통계-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는 칼슘과 칼륨을 제외하면 영양이 부족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비타민 A와 비타민 B1(티아민), 비타민 B2(리보플라빈)는 음식을 통해 섭취한 양이 이미 권장량을 초과하고 있다. 설령 영양소가 부족하더라도 건강식품이 아닌 과일이나 채소 등의 일반 음식으로 보충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건강식품이 열풍인 것일까? 과학과는 약간 거리가 먼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백수오를 비롯한 건강식품이 그토록 큰 열풍을 일게 한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다. 백수오가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미디어의 역할이다. 알로에, 두충차 등 한시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강식품의 이면에는 항상 미디어의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가 건강기능식품의 홈쇼핑 광고와 건강의료 정보프로그램이다. 특히 전문가들이 홍보하는 건강식품은 그 권위를 등에 업고 손쉽게 신빙성 있는 제품이 된다. 또한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관련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제품은 더욱 홍보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방송출연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대중매체에서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부 의료인들에 대해 경고를 한 바 있다. 백수오 논란은 단순히 원료를 속인 사기사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건강식품에 대한 정부의 방침과 세간의 인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허술한 건강식품 등록과 관리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건강식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건강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은 다르다는 점이다. 하나의 제품이 '건강기능식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다. 건강기능식품은 몸에 좋은 기능성을 지닌 원료나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식약처의 검사로 인증한 제품이다. 정부에서 그 기능성과 안정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건강식품'은 전통적으로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원료를 이용해 만드는 식품이다. 식약처의 인증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기 때문에 기능성과 안정성을 확신할 수 없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판매 식품들이 대개 이 건강식품이다.
건강기능식품은 식약처장이 고시한 '고시형'과 식약처장이 별도로 인정한 '개별인정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시형 제품이 개별인정형보다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개별인정형 제품은 기능성 등급에 따라 4등급까지 나뉜다. 건강식품의 대명사인 홍삼이나 백수오 복합추출물은 모두 2등급에 속한다. 생리활성화 및 질병 발생 위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이다. 식약처의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및 기준 규격 인정에 관한 규정'에서는 “기반 연구 자료를 통한 가능성 있는 생리학적인 효과나 기전을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는 확실하게 특정 치료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서 건강 개선의 가능성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 등급 더 떨어진 3등급은 한 술 더 떠 인체 적용 시험에서 기능성을 확보할 수 없는 원료다.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만 효능을 확인했을 뿐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엄중한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 건강기능식품의 약 95%가 이런 2·3등급에 머물러 있다. 동물실험에서만 효과를 본 원료들이 건강기능식품으로 상품화될 수 있는 현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는 전문가들도 많다. 임상시험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사람에게 효과가 없거나 해를 입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백수오 사건의 진원지가 됐던 내츄럴엔도텍의 상품 역시 단 한 편의 논문으로 식약처의 승인을 받고 건강기능식품 인정을 받았다. 임상시험 대상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미국 여성 29명이었다. 시험 방법도 지나치게 간단했다. 실험자에게 석 달 동안 백수오 추출물을 주고 안면 홍조 등 갱년기 증상이 개선됐는지를 물어보았다. 더 큰 문제는 논문의 공동 저자가 내츄럴엔도텍 직원이라는 점이다.
식약처의 식품 인정 기준이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시스템인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용불가 원료 목록에만 없으면, 안전하다는 근거가 없더라도 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식품 원료를 관리할 경우 언제 제2, 제3의 가짜 백수오 사태를 촉발하게 될지 모른다.
한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보험회사들이 건강식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조사 중이다. 무분별한 건강식품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미국 독극물 응급센터에 접수된 2천 건의 신고 전화에서 신고자들은 심근경색, 간질환, 출혈, 염증 등 식품 보조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상 증세를 알렸다. 여기에는 인삼, 마황, 허브 등 천연 물질도 포함된다.
최근 인기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의 경우도 알약 형태로 복용할 때는 그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 독일 연방위해평가원에 따르면 오메가-3 지방산을 과도하게 복용했을 때 혈액 응고에 영향을 줘 자발적 출혈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건강식품인 비타민제도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타민의 부작용들이 학계에 보고됐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 맥스 호르윗 교수의 연구다. 이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을 무기질과 혼합된 알약 형태로 복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근경색이나 암으로 죽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섭취하는 비타민 C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매일 3~4g의 비타민 C를 복용했을 때 설사 및 위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미네소타에서 당뇨병 환자 192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매일 비타민 C를 3,000밀리그램 이상 복용한 환자는 다른 환자에 비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사망할 위험이 두 배나 늘었다. 이 밖에도 비타민의 위험성을 경고한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모든 건강식품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기호 CHA의과학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건강기능식품이 내 몸을 망친다』에서 아무거나 먹지 말고 제대로 알고 먹으라고 강조한다. 먹는 순서, 보관법, 본인의 체질 등을 잘 따져서 복용할 경우에만 말 그대로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수오와 같은 건강식품, 건강기능식품의 효능과 진위 여부를 따져보기 전에 근거 없는 건강식품 열풍에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일이다. 대한한의사협회가 2013년 전국의 한의사 39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6%가 “홍삼 등 건강식품 부작용으로 내원한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고 밝힐 정도로 맹신은 널리 퍼져 있다. 제2, 제3의 백수오 논란이 없도록 좀 더 신중하게 건강식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