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샤워를 마친 맨드라미가 뽀송뽀송 존재감 시위를 하는 가운데 농익은 남보라 색 가지는 태양 빛을 열렬히 사모하고 있었어요. 흙 냄새가 정겨운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늦여름으로 칠까, 벌써 가을이구나 할까 둠칫하다가 종종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어요. 오 예, 주말이라서 내리막 에스컬레이터를 가동하는 모양입니다. 나이스 위크 앤드 세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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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이"정신은 정신이 아닌 것, 자연을 통해서만 들어난다"고 했어요. 종합(헤겔)이 아닌 '부정성의 사유'를 언급한 것 같아요. 내 정신은 부정적인 것(자연)을 내면화 시켜 생명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대표적 외적인 것이 자연입니다. 내 이성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자연과 부닥칠 때 관념 화가 시작됩니다. 결국 나의 정신(=이성)은 즉자적으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생명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 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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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을 열고 나가 밖에 있는 '타자'(내가 아닌 것)와 만나 그 부정적인 것과의 대립을 통해서만 정신이 규정된다는 것 아닙니까? 지젝은 부정적인 것들 곁에 머물기, 혹은 부정적인 것들과 함께 하기를 제안합니다. 만약 나(=정신)에게 부정적인 것이 없다면 나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적이지 못하게 됩니다. 외적인 것이 있어야 만 내 정신은 잠에서 깨어나 운동을 하고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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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노동(알바)은 자기 자신 안에 묶여 있으면서 정지 상태의 내가 부정적인 것(분리)을 통해 역동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것과의 결합(십자가의 역설)을 통해 생명이 창조된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모든 우연적인 것-(타자적인 것이 없는 주체)은 원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운동력이 일어 나지 않아요. 결국 부정성이 내 안에 있어서 생명을 보존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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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대형 누각 앞에서 인증 샷을 박고 수제비(6000)도 한 그릇 때렸어요. 사람들이 많아서 무료 배급하는 줄 알았어요. "걷다보니 피곤하네. 그냥 진접으로 갈게 심심할 때 무서울 때 전화 하시라(나)" "ㅋ ㅋ ㅋ 오늘 따라 엄마가 안 가네(에)" "아비 한테서 널 지키려고 왔을 거야. 맛 있는 것도 사주고 철학 예기도 하면서 회포를 푸시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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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자신이 아닌 것이 곁에 머물러 있을 때만 정신은 주체적 창조가 가능한단다. 두려워 하지 말고 뚫고 나오시라! 예주야! " Run out! "진리는 철저히 찢겨 발겨짐(분리), 즉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자기를 획득하고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에예공! '균열-틈-죽음'은 나와 상관 없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체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2024.8.31.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