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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詩篇 Psalm) 개요
Psalter -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들 또는 반주에 맞춰 불려진 거룩한 노래
표제와 저자
이 책의 히브리어 명은 “테힐림” 즉 “찬양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편을 이스라엘의 찬미가라고 부른다.
“시편”을 나타내는 헬라어는 “반주에 맞춰 불려진 거룩한 노래”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표제는 “찬양”을 뜻한다. “시편은 시이다. 그러므로 시로써 즐기도록 해야 한다. 형식은(시로 된) 음악이요 내용은 찬양이다.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노래로써 표현하는 시이다”(R. B. 알렌, 찬양하라! 생명과 호흡의 문제, 27).
많은 저자들 ⅔이상은 표제들이 나타난다. 이는 시대적 배경을 아는데 중요하다. 이 가운데 8명의 저자는 다윗(73편), 작가 미상(50편), 아삽(12), 고라의 자손(11), 모세의 기도(1), 헤만(1), 에단(1), 솔로몬(2), 여수룬(작곡가) 등
시편의 표제에 나타나는 여덟 사람의 이름은 저자, 기고자, 편집자, 음악가 또는 작곡, 편집 및 거룩한 시의 사용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인 것처럼 보인다. 그 이름들은 다윗, 아삽, 고라, 모세, 헤만, 에단, 솔로몬 및 여두둔이다. 시편은 수많은 작가들에 의하여 영감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아마 최종적으로 집대성된 것은 에스라, 느헤미야의 손에 의해서 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직후의 시대에 몇몇 서기관들에 의해 집대성되었을 것이다. … 시편의 ⅓은 아무런 표제도 없다. 그러므로 작자 미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이것들은 고아 시들이라고 한다). 시편을 지은이들 중에는 에스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와 같은 구약의 유명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추측도 있다(3BC, 615-617).
기록시기(역사적 배경)
보수적인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시편이 일천 년 간의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지어졌다고 본다. 많은 각각의 시들이 모세와 다윗으로부터 곧 이어지는 포로기까지의 히브리인들의 역사 중 어느 시기에 정확히 기록되었는지 확정될 수 없지만, 이들이 기록된 시기는 이러한 범주에 해당한다고 결론짓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특징
월터 부르그만(W. Brueggemann)이 적절하게 지적해 준대로, 시편은 경전의 그 어느 책보다 더, 비평학 이전적(pre-critical) 해석과 비평학 이후적(post- critical) 해석 “모두”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요청하는 책이다. 즉 시편은, 실제로, 그 어떠한 비평학적 분석에 의해서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케리그마적(복음 선포적)해석을 해 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비평학도 시편이 지닌 “영성”(spirituality)을 삭감시킬 수 없는, 이른바, “성서 속의 성서”(M. Luther)요 “영혼의 해부학”(J. Calvin)이며, 또한, “축소판 성서신학”(a biblical theology in miniature)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책이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연구의 결정적인 이정표(里程標)를 세운 학자는 헤르만 궁켈(H. Gunkel, 1862-1932)이었다. 그의 시편 연구 방법론인, 이른바, 시편시들의 유형사(history of types) 연구는 시편시들이란 그들의 제의적(祭儀的) “삶의 자리”(Sitz-im-Leben; life-setting)에 따라 자신의 문학적 장르(genre)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이른바, 시편시의 형성 현실을 규명해 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즉 시편시들은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예배환경 - 제의 환경 - 에서 형성,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동시대의 시편 연구가인 모빙켈(Sigmund Mowinckel)도 또한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으나, 예배의식(제의)적 배경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제의사적 연구”에로 치우쳐 버렸다. 이 방향으로 시편연구를 심화하여 간, 후크(S. H. Hooke)와 엥그넬(I. Engnell)의 제의 의식 편향적 연구는 그러나, 구미 신학계로부터 집중적인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궁켈의 시편연구는 자기 이후의 시편연구 방법론들을 비평학 이전의 모든 시편주석방법으로부터 현대 성서비평학적, 학문적 연구에로 근본적인 전환을 하게 만들기는 하였어도, 비평학적 주석과 교회의 실제적 신앙 사이의 갭(gap)을 메꾸라는 신학적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였다. 즉 궁켈의 양식분류방법이 지닌 취약점을 지적하고 또 세미한 개정을 하는데 까지는 갔다고 하여도, 폰 라트(G. von Rad)조차도 그의 “응답의 신학”(Israel before Yahweh: Israel's answer)을 통하여 비록 하나님과 이스라엘(인간) 사이의 “대화문학”(a dialogical literature)을 기초한 대화신학 같은 것을 제안하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그 “대화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결코 밝히지 못하였다.
더욱이 베스터만(C. Westermann)의 탁월한 시편연구는, 매우 흥미롭고도 또 주목할 만 하게도, 시행착오적인 시편신학을 내어놓기까지 하였다! 그의 본격적인 시편 연구서는 1961년 「시편의 하나님 찬양」(Das Loben Gottes in den Psalmen, 「The Praise of God in the Psalms」)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났으나, 그러나, 그는 여기서 “탄원시”를 포함한 시편시의 모든 양식을 “하나님의 찬양”으로 일원화하는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 책이 출간된 지 16년이 지난 뒤, 1977년에 그는 “하나님 찬양”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탄식”을 비롯한 인간고에 관한 제(諸) 탄식이 지닌 신학적 의의와 그 의미를 발견하고는「시편의 찬양과 탄식」(Lob und Klage in den Psalmen, 영역본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이라는 제목의 개정판을 내어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것은 제 3세계 신학의 의의에 대한 발견과 제 1세계 신학의 신학적 자기반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궁켈 이후의 “시편신학”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서구 신학의 시행착오적 모순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궁켈 이후의 시편신학의 과제는 “궁켈의 접근방식에 신학적 해석을 첨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신학적 해석이 중심적으로 첨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즉 앞으로의 시편 해석학의 과제는, “부르그만”(W. Brueggemann)이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모빙켈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다원적(pluralistic)이고 다양한(diversified)것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베스터만(C. Westermann)의 참회적 반성과 이에 대한 부르그만(W. Brueggemann)의 적절한 반응에 의하면, 이미 폰 라트(G. von Rad)가 오래 전에 불완전하게나마 예시한 데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 과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적 언어교류(a dialogically verbal exchange between God and humanity)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경우, “탄원시” 연구가 그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이고 그 구성 골격은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Actio Dei)에 대한 시인(詩人: “나” 또는 “우리”)의 ⒜ 신학적 응답(하나님을 향한 탄원), ⒝ 심리적, 인간학적 응답(시인 자신의 고난에 대한 탄원), 그리고 ⒞ 사회적 응답(원수에 대한 탄원)을 중심할 것이다. 좀 더 간결한 도식은, 부르그만(Brueggemann)이 제안한 것과 같이, ⒜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받은 만족스러운 인간 삶의 응답으로서 “방향제시”(orientation; 기쁨, 즐거움, 아름다움[선함],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통치법의 노래) → <권리 상실의 고통이 주는 충격> → ⒝ “방향감각상실”(disorientation: 혼돈과 질곡의 노래) → <탄원 … 놀람, 그리고 희망과 구원 희구의 절규에 의한 충격) → ⒞ “새로운 방향제시”(new orientation: 놀라운 새 삶을 경험한 감격의 노래) … <찬양과 감사의 노래>라는 ⒜ → < > → ⒝ → < > → ⒞ … < >의 구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주제
인간은 곤경에 처하고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 각 詩에 따라 여러 주제로 분류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품성과 섭리에 대한 찬양으로 귀결된다.
시편은 생애의 거울이라 불려진다. 그 까닭은 감정, 기분, 욕구, 인간의 정신이 겪는 경험, 거의 모든 경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들은 기도이며, 그것들은 우리들이 하는 기도의 모형이 되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우리의 기도생활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제를 제공해 준다.
인간은 시련에 빠진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다. 이것이 시편의 보편적 주제이다. 이 거룩한 시들 속에서 우리는 히브리인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보게 된다(3BC, 619).
시편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대주제들
실재하시는 하나님과 그 품성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관계
성소와 관계된 찬양과 감사의 예배
메시아 왕국의 설립
선악간의 대쟁투
시편 속의 그리스도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져 있다. 시편은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전체의 계획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편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은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으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24:44).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직분(시22:22)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분(시40:6, 8, 22, 49, 110)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직분(시 2:21, 45, 72)
그리스도의 고난(시22편, 시69편)
그리스도의 부활(시16편)
내용
시편의 가치
이스라엘의 전 역사에 걸친 민족 신앙의 고백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중요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찬양은 예배의 필수요소이다
모든 세대에 계속해서 전해 내려온 찬송가이다.
시편은 무엇을 제공해 주는가?
시편의 반복되는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고난에 대해 구제책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옛 종들이 말하거나 노래 부른 영감 받은 기도로 된 찬미(prayer-hymns)들이다. 그들은 높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표하였으며 심판과 구원을 통하여 나타난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확신 있게 증거 하였다.
구약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세기를 통하여, 성경의 시편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생활과 예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성경의 시편들은 우리가 인생길에서 겪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있음을 알게 해주는, 믿는 자의 개인적인 순례 여행의 일부이다. 시편들은 시련의 때에 구원을 호소하는 탄원이요,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기쁨의 응답이며 현실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선포하는 것이다. 또한 그 가운데는 비탄의 소리도 있고 공의를 구하는 부르짖음도 있으며 질병이나 불행으로부터의 구원을 바라는 호소도 있다.
시편의 능력은 애도와 탄원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용기를 주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와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신다. 이 같은 경험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문제에 관여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안심하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다. 주께서는 인간의 고뇌와 절망을 아시며 통제하신다.
시편은 인간의 경험을 표현한다.
다윗의 시편은 양심의 가책과 고범죄의 깊은 구렁에서 최고의 믿음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장 고양된 경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험의 범위를 꿰뚫고 있다. 그의 생애의 기록은, 죄는 수치와 괴로움만을 가져 올 뿐이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가장 깊은 구렁에까지도 도달할 수 있으며 믿음은 회개하는 영혼을 향상시켜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할 수 있으며 믿음은 회개하는 영혼을 향상시켜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할 것임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포된 모든 보증 가운데서, 이것은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공의와 자비의 언약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이다(2PP, 497).
150편의 시편들은 내용에 있어서 매우 풍부하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1528년에 시편에 대해서 내린 평가는 여전히 적절하다. “시편은 ‘작은 성경’으로 불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속에는 온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답고도 간략하게 내포되어 있다. … 온 성경을 전부 다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서는 어떻든 작은 한 권의 책에 내포되어 있는, 성경전체에 대한 요약을 보게 될 것이다’”(마르틴 루터, “시편 서문”, 루터의 사업 35권, 254).
영적 교훈
무릎을 꿇은 성자(34:6). “내가 부르짖는다”라는 구절은 시편에서 18회나 나타난다. 욥기에서 인간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시편에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저작 동기를 묻는 일
시편 해석의 근본 목적은 그 시편 시들이 어떤 “동기”로 노래 불리워지게 되었고 그리고 그 노래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예배 환경 속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또 그 노래가 그 예배 공동체에게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공유하려고 하였는지를 밝혀내는데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시편시들은 저작자들의 시적 감정을 서정적(抒情的)으로 표현, 묘사하려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저작자들이 그들의 신앙 환경 속에서 그들의 하나님과 대화한 것을 노래로서 표현하고 또한 그것을 예배 공동체[제의(祭儀) 공동체]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나누어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지고 모여지고 보존된 것이기 때문이다.
18세기 계몽주의와 더불어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길이 열리자 시편 연구가들은 우선 히브리시들의 정신세계가 무엇이고 그 히브리시들의 문학 현실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여 나타난 첫 학문적 연구의 모습은 시편시의 문학적 특징을 살피는 일이었다. 로버트․로우드(Robert Lowth)의 “히브리시의 평행법” (De Sacra Poesi Hebraeorum, 1753)에 관한 연구는 가장 초기의 학문적 시편 연구의 모습이었다. 이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것은, 시편의 히브리시들이 가진 독특한 특징인데, 그것에 의하면, 히브리시들은 구절체들이 둘 또는 셋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이들 구절체들 사이에서는 마치 그네가 흔들리는 것 같은 반복 평행의 진동(振動)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놀랍게도, 시편시들의 케리그마를 발견해 내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중요한 한 도구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즉 시편시들은 반복어법적 평행법을 통하여 스스로 그 읽는 자들에게 해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본문 해석의 궤도 이탈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산문체로 된 기타 다른 성서 본문보다는 시편 본문이 케리그마 발굴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동시에 지나친 확대해석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고 하겠다.
기록 목적
개인의 내적인 기쁨이나 슬픔을 찬양 또는 고백하기 위하여
종교 행사 때 하나님을 높이는 신앙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일상생활이나 종교 행위에 있어 교훈을 주기 위하여
찬미의 형태로 시를 만듦으로써 오는 유익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데는 그것을 노래로 하여 반복하여 부르는 방법보다 더욱 효과적인 것은 없다. … 노래는 영적 진리를 마음에 감명 깊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무겁게 짓눌려서 거의 절망에 빠지려는 심령이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아이 적에 부른 노래의 문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억을 돌이키고 그로 인하여 유혹의 힘을 잃고 인생에 새로운 의의와 목적이 생기고 용기와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누어주게 된 실례가 얼마나 많은가?(Ed, 217-218).
시편의 교훈 -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9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편의 내용들은 너무나 여러 가지 성질의 것이어서 짧은 시간에 전부 취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편의 가장 중요한 구절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29:2).
시편의 쓰임
기도서
개인생활이나 공동생활에서 헌신의 표시
특별한 절기를 위해 선정된 것들; 유월절(113~118편, 135편), 칠칠절, 초막절, 수전절(30편, 118편), 월삭(81편 - 이날의 제사에는 29편을 함께 부름), 초막절 첫날밤(120~134편), 부림절(7편), 대속죄일(103, 130편), 희년, 월삭(98, 104편) 등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외 시편을 가장 많이 인용하심
어떤 환경, 처지, 신분일지라도 그것에 알맞은 시를 찾을 수 있다.
메시아 : 신성, 아들 신분, 성육신, 제사장, 부활, 승천, 십자가 고난 등
여러 시의 주제들
서정시의 극치
“시편은 우리 영혼의 책이다. 그냥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라 밤낮으로 묵상할 책이다. 묵상할 책만이 아니라 노래할 책이다. 혼자서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합창으로 부르고 또 아름다운 곡조를 붙여서 부를 노래다. 광막한 광야, 외로운 길손으로도 부르고, 외로운 감방에 앉아 나와 하나님과 세상과 역사를 생각하면서 부를 노래다. 북을 치며 부르고, 나팔소리 울리며 부르고, 통기타를 치며 부를 노래이다. 울면서도 부를 노래요, 땀을 흘리면서도 부를 노래이다. 승리의 순간이나 실패의 순간에도 부를 노래이다. 억울해도 부르고 천대를 받고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아도,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아도 부를 노래다. 사방에 우겨 쌈을 당한 위기에서도 부를 노래요, 죽음을 눈앞에 보고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다. 그러기에 칼뱅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로우심, 만물에 가득 찬 그의 영광, 인간 역사를 인도하시고 심판하시는 그 권위와 지혜를 노래한 책이다.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절망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불어 넣어주시는 하나님, 나대신 싸워주시는 하나님,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책이 시편이다”(시편 명상 머리말, 김정준, 대한 기독교 서회).
문학적 특징
댓귀법 사용
히브리 시의 중요한 특징은 문구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나란히 배열하는 댓귀법이라는 사상의 은율이다. 이 독특한 구문은 조수의 밀물과 썰물에 비유되었다. 독일의 한 작가는‘(바다의 파도처럼) 염려로 가득한 마음이 긴장되었다가 풀어지는 것’에 견주었다. 이 특징은 국경을 초월하여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듯한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3BC, 622).
동의법 - 동일한 사상을 둘째 행에서 말만 바꾸어 나타내는 법(시71:9)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떠나지 마소서.”
대조형식 - 대조적이거나 반대되는 사상을 둘째 행에서 나타내어 첫 행을 보다 분명하게 설명하는 법(시71: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종합법 - 어떤 사상을 둘째 행이 첫째 행에 보충하거나 완성시키는 방법.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편의 독특성
다른 책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시편에는 인간들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루터는 작은 성경, 제롬은 성경 안에 있는 성경, 버질은 영혼을 위한 종합병원, 아다나시우스는 읽는 자들을 위한 거울이라 하였다. 고대 랍비들은 “다윗의 오경”(Pentateuch of David)이라 불렀다고 한다.
복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친다.
시편 연구를 위한 제시
시편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접근하도록 하라.
성도들이 연구하고 있는 시편의 특성을 마음에 간직하도록 하라.
시편은 詩인 것을 명심하라.
직유법
은유법
과장법
의인화
돈호법
제유법
많은 시편에서 적용하고 있는 중복 법칙에 유의하라.
성경의 시편을 연구할 때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시편들은 히브리 시로 기록되었으며, 생각을 통하여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발해진 것임을 기억하라. 일례로 시19:1을 참조하라. 이 시인의 주된 논점은 무엇인가? 히브리 시에서 두 번째 행은 종종 의미상 첫 번째 행과 병행한다(잠18:15). 때때로 두 번째 행의 사상은 첫 번째 행과 대조된다(잠10:19, 15:1).
시편의 대부분은 음악에 맞춘 시였다.
시어(詩語)는 종종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명상할 수 있다. 출애굽을 이야기하는 시편에 산들이 “수 양(羊)같이 뛰놀”(114:4)았다고 말할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설명되고 있다.
성경에는 많은 유형의 시가 있다. 이 유형들은 애가(哀歌)일 수도, 감사의 노래일 수도, 도움을 호소하는 말일 수도, 아니면 기쁨과 찬양의 표현일 수도 있다. 시편을 읽을 때, 유형을 구분하라. 그러면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심장인 시편
성경의 중심, 사람의 중심이 있는 책
인체의 한 가운데를 헤집으면 그 중심에는 심장이 있다. 다른 장기들도 살아서 저마다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모두 잠잠히 움직이는데 유독 심장만은 고동을 치며 온 몸에 맥박을 일으킨다. 맥박을 타고 뜨거운 피를 온 몸에 보낸다. 성경 한가운데를 열면 으레 시편이 가슴을 펴 보인다. 그리고 중심을 드러내 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1189장으로 되어 있는 성경의 맨 가운데 장이면서 동시에 가장 짧은 장이기도 한 시117편이 있기 때문이다. 심장이 고동을 치며 맥박을 일으키듯, 시편은 리듬이 없는 산문이 아니라, 글의 맥박인 특이한 율동을 가지고 심령을 고동치게 한다. 시편에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인간의 중심을 경험한다. 거의 3천년 전 파란만장한 생을 살며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용기와 좌절, 원망과 감사로 사슴의 가슴처럼 쉴 새 없이 고동치던 다윗의 심장을 우리는 지금도 시편의 맥박을 통해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의 애환, 그의 애증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애가에서 그와 함께 울고, 그의 참회시에서 그와 함께 통회하고, 그의 감사시에서 그와 함께 감사하는 변함없는 인간 영혼의 동질성에 공명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뱅도 시편을 “영혼의 각 부분에 대한 해부학”이라 부르고, “인간이 느끼고 있는 감정 중에 이 시편에처럼 드러나지 아니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 그 난감했던 종교개혁 시절, 시편에서 위로와 힘과 피난처를 찾았던 루터도 “시편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의 심장을 들여다보게 된다”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했다. 시편에 그려진 옛 성도들의 결코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기복이 심한 영혼의 심전도에서, 오늘 우리는 구급이 필요한 우리 심령에 위로를 발견하고 극복하는 놀라운 처방을 시편의 하나님에게서 찾게 되는 것이다.
온 몸으로 읽는 책
시편은 눈으로 읽는 서사시가 아니고, 가락이나 운을 따라 읊는 일반 서정시도 아니다. 흔히 시들처럼 인위적으로 음운을 맞춘 것이 아니라 생각의 구조에 리듬을 맞춘 특이한 형식으로, 생각으로 읽고 온 몸으로 반응하게 한 체험의 율동시이다. 오늘날도 40%가 이러한 시로 이루어진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자주 머리와 몸을 함께 앞 뒤, 상하로 흔드는 유대인의 관습에서 몸으로 읽는 시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음조는 단순하지만 부드럽게 높낮이를 반복하며 위로와 비탄, 감사와 탄원 등 벅찬 감동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몸으로 읽는 시가 시편이다. 시의 형식이 아니라 생각에 리듬을 일으키기 위하여 시편은 여러 형태의 대구법을 사용했다. 첫째 줄과 같은 내용을 둘째 줄에서 다른 표현으로 강조하는 동의 대구법을 비롯하여, 서로를 충돌시키는 반의 또는 대조 대구법, 강도를 더해 가는 점층 대구법, 몸을 비틀 듯 앞뒤 내용을 X로 묶어 긴장을 높이는 교차 대구법, 그밖에 종합 및 상징적 대구법들을 써서 그 뜻이 머리를 지나 심장에 와 닿을 때까지 심화시켜 오장육부가 한데 엉킨 속사람의 탄원이 되게 한다. 그리하여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시143:4)라고 표현할 수 있었고,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103: 1)는 깊은 곳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편에서 참으로 인생살이가 답답해질 때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시62:8)는 것이 무엇임을, 토한 후에 후련해진 경험을 알게 된다.
시로 지은 성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산에도, 들에도,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소를 택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친히 계시겠다고 하신 곳이 있었다. 바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25:8)였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모든 감사와 찬송, 허물과 죄, 실수와 연약함을 가지고 성소에 때로는 감사의 제사를, 때로는 속죄의 제물을 그리고 어떤 때는 화목제물을 드렸다. 성소는 모든 백성들이 같은 거리에서 쉽사리 올 수 있도록 진영의 한 가운데 지어졌다. 거기서 높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로 낮아지고 허물로 연약해진 인간을 만나 죄를 사하시며 상한 심령을 싸매시고 저는 다리를 힘 있게 하셔서 사슴처럼 뛰게 하셨다. 성경의 한 가운데 있는 시편에서 우리는 시로 지은 성소를 보게 된다. 죄와 허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고”,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임을 깨달은 죄인이 찢겨져 상한 심령을 제물로 가지고 찾아와서 부르짖는 곳이 시편이다(시51:16-17). 시편에서 죄인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시65:4)하게 된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인생의 당혹한 문제를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 깨달았”(시73:17)다고 부르짖게 된다. 실제로 시편은 개인 예배는 물론 성전 예배에 관련되어 크게 쓰여 졌다. 시편에서 우리는 예배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게 된다. 비록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이방의 포로의 신세가 되었을 때에라도 그들은 시편 속에 지어진 성소와 상한 마음으로 제사하고 감사의 노래를 예물을 드렸다. 시편에 성소와 성전이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시편에서 우리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경험으로 고백하는 정직한 시인들에게서 듣는다. 성소에서 우리는 죄로 이간되고 불화하게 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마침내 화목에 이르는 감격을 본다. 교리와 성례, 교회 정치 형태의 차이 때문에 어차피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린 유대교, 개신교, 로마 가톨릭 교회와 희랍정교가 모두 시편으로 노래하며 함께 송영할 때 그들은 시편의 하나님께 시편에 고동치는 인간의 중심을 가지고 연합과 화합을 경험하는 것이다. 시편은 하나님과 인간과 천연계, 죄와 구원 등 심오한 신학적 주제를 망라하여 취급하면서도 그것을 결코 논란이 되도록 말의 논리로 다루지 아니하고 누구나 동감을 가지는 경험에 바탕하여 그것에 시의 옷을 입히고 노래의 날개를 달아준다. 그리하여 어린아이나 노인들도 깨달을 수 있고 신학을 못 배운 사람에게 쉬우면서도 많이 배운 사람에게는 심오한 말로 평등의 신앙을 선물한다. 시편의 하나님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분의 하시는 일을 체험으로 설명함으로써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을 함께 깨달아 믿게 한다. 그래서 오직 바로 곧 “어리석은 자”만이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14:1)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시편은 이렇듯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을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시46:8)라고 확신을 가지고 초청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이 있는 것이다.
노래로 부른 기도, 기도로 드린 노래
시편이 모두 다윗의 시는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삼하23:1) 다윗이 썼거나 수집했거나 그의 이름에 돌려지는 시가 시편 150편의 절반쯤인 73편이다. 그리고 3,500년 전 모세의 기도(시90편)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포함되어 있고 모세와 같은 때 광야의 성소에서 봉사하다가 반역을 주도한 형벌로 땅에 꺼져 죽은 고라의 자손들이 조상의 죄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성전의 찬양 지휘자로 아름다운 이름을 지키며 찬송을 이끌어 나갔다. 그들의 이름에 돌려지는 시는 12편이나 된다. 역시 같은 레위 지파로 다윗 시대의 성전 음악을 담당했던 아삽의 자손에게 돌려지는 시가 또한 12편이나 되며 그밖에 솔로몬에게 두 편(72, 127편), 헤만(88편)과 에단(89편)에게 각각 한 편씩 돌려진다. 그리고 나머지 ⅓에 해당하는 시에는 그 표제에 아무 연고자의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아 쓸쓸하게도 “고아의 시”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150편이나 되는 시가 지금처럼 이렇게 한데 묶여진 데는 BC 5세기의 학자요 레위인 제사장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에 크게 이바지한 민족 지도자 에스라의 숨결과 손길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시편 137편”에는 바벨론 포로 시절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신앙으로 달랜 고아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 시편에 포함된 시들은 모세 때인 BC 15세기부터 바벨론 포로 이후 시기인 BC 5세기까지 천년간 기록된 시들이 편집되어 있는 셈이다. 멀리는 3,500여 년 전, 가까이는 2,500여 년 전의 시를 우리는 오늘에 읊고 부르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동치는 심장을 가지고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셔서(히13:8),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는(시100:5)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고 있다.
시편의 본명은 “찬양들”(Praise)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tehilim”이다. 오늘날 쓰고 있는 시편(Psalms)은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칠십인역 성경에서 “현악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들”이라는 뜻의 헬라어 “Psalmoi”에서 나온 말이다. 시 아닌 노래가 없고 노래가 아닌 시가 없음을 생각할 때, 시편은 이름 그대로 시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찬송가”이다. 성악은 물론 비파와 수금과 제금 그리고 나팔을 불며 성전에서 노래했고(대하 5:13), 전쟁할 때 노래했으며(대하20:19-23), 특별의식 때 노래했다(느12:27). 시편은 하나님 백성의 찬송가였고, 노래로 부른 기도였으며, 기도로 드린 노래였다. 노래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고, 찬송 없는 예배를 생각해 보라. 시편 없는 신앙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 심장이 뛰지 않는 정적의 인체에 비교한들 무슨 무리가 있겠는가.
고대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서 발굴된 것으로 지금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 부조 그림에는 BC 700년 경 히스기야가 다스리던 유다를 침공한 산헤립이 사로잡은 유대인 포로들을 끌고 가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있다. 놀랍게도 섬뜩한 단도를 뽑아든 앗시리아 군사에게 끌려가는 세 유대인 전쟁 포로들은 손에 모두 수금을 잡고 있다. 특히 세 번째 포로는 양장을 꼬아 만든 수금을 현을 뜨는 채(피크)도 없이 뜯는 모습이다. 후에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고향에서는 쫓겨나 타향살이 포로가 되었어도 그들은 결코 노래를 버리지 않았으며 시편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바벨론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 중의 버드나무에 … 수금을 걸”어 놓고 “시온의 노래”(시137편)를 부르며 조상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철썩 같은 언약을 믿었다. 수금을 치는 “오른손이 그 재조를 잊을 때까지”, 노래 부르는 그들은 “혀가 … 입천장에 붙을” 때까지 시편을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노래로 부른 기도, 기도로 드린 노래는 마침내 응답되어 예루살렘은 회복되었고 메시아의 영광은 다시 성전에 가득했으며 세상은 구주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시편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죄로 포로된 바벨론 땅에 얽매여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예루살렘의 신속한 회복을 기다리며 영광 중에 오실 메시아를 만나기까지 나그네 세상에서 아직도 불러야 할 그 망향의 노래인 것이다.■
시편의 구성과 분류
전체 5권 150편으로 구성
여호와를 찬양하라. | 제 Ⅰ권 41편(1-41) | 제Ⅱ권 31편(42-72) | 제 Ⅲ권 17편(73-89) | 제 Ⅳ권 17편(90-106) | 제 Ⅴ권 44편(107-150) |
송 영 | 41:13 | 72:18,19 | 89:52 | 106:48 | 150:6 |
예배의 주제 | 숭배하는 예배 | 방랑하는 예배 | 끊임없는 예배 | 순종의 예배 | 완성의 예배 |
모세오경과 같은 명제 | 창세기 - 사람 | 출애굽기 - 이스라엘 | 레위기 - 성소 | 민수기 - 모세와 광야 | 신명기 - 율법과 땅 |
저 자 | 대부분 다윗 | 다윗과 고라 | 다윗과 아삽 | 다윗과 작가 미상 | 다윗 |
원본수집과 배 경 | 다 윗 | 제2, 3권은 히스기야와 요시아 시대에 추가됨 | 에스라와 느헤미야 |
각 권은 송영으로 끝을 맺는다.
73편이라고 하는 많은 시를 쓴 다윗의 정신이 전체에 흐른다.
여기에는 다윗의 행진의 노래, 기도의 노래, 격려의 노래, 높은 칭송의 노래, 고백의 노래 등이 있다.
시편의 분류
시편 주석가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예를 들면 H. 궁켈은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시온의 노래들을 포함한 찬미들
공공적인 애가
왕의 시들
개인적인 애가
개인적인 감사와 노래들 - 본교 성경주석은 다음과 같다.
자연 - 8, 19, 29, 104편
역사적 민족적 시 - 46, 68, 79, 105, 106, 114편
교훈 - 1, 15, 35, 71편
메시아 - 2, 22, 69, 72, 110편
통회 - 6, 32, 38, 51, 102, 130, 143편
저주(원수에 대한) - 35, 52, 69, 83, 109편
기도, 찬양, 예배 - 16, 55, 65, 85, 89, 90, 95-100, 103, 104, 107, 142, 143, 145~150편
순례 - 120~134편
이합체(각절의 첫자가 히브리어 알파벳순으로 시작되는 시) - 9, 10, 25, 34, 37, 111, 112, 119, 145편
시편의 제목으로의 구분
시편 150편 중에서 34개 편(이 시들을 [고아]라고 부른다)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편의 첫머리에 제목이 붙여져 있다. 대개 5가지 종류의 제목들이다.
시의 성격을 설명하는 제목들
그 시를 반주할 음악적 지시를 표시하는 제목들
그 시가 사용될 예배 의식을 표시하는 제목들
작자 또는 원천이 되는 시집을 표시하는 제목들
그 시가 지어진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제목들
시의 제목
아앨렛샤할 - “아침의 사슴”이란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함.
알다스헷 - “멸망시키지 말라”의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함.
요낫엘렘 르호김 - “저 멀리 참나무 위의 비둘기”의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함.
마스길 - 지혜와 교훈의 노래
믹담 - 구원 혹은 비난의 노래
뭇랍벤 - “아들의 죽음”에 맞춘 노래
시 - 현악에 맞추어서 부른 찬송
식가욘 - 애도의 노래
소산님 - 백합화 곡조
소산님에둣 - “약속의 백합화”의 곡조에 맞춤.
수산에둣 -“언약의 백합화”에 맞춘 노래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 예루살렘 축제 행렬시 부르는 노래
사랑의 노래 - 결혼식의 노래
악기
알라못 - 높은 음조의 하아프
깃딧 - 현대 기타의 선구자
마할랏 - 플룻
마할랏르안놋 - 수치나 슬픔의 음조로 연주되는 플룻
Neginah(현악기) - 현악
스미닛 - 수금, 다섯줄의 하아프
기별
우리의 모든 것 중에 모든 것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최 철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