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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과 결단의 달☜ 행정 보고서 제출 D-19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8)
마5:10-11절)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오늘 이 여덟째 복(福)은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심하게 핍박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주님을 인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이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그를 위한 상(賞)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約束)하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여덟 번째 복(福)에 대하여는 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여덟 번째 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보여주며, 이것이 또한 얼마나 오해되기 쉬운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해설 부분을 보고“팔복이 아니라, 아홉 가지 복”이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복(福)은 여덟 가지로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표현이 처음 3절에서도 나왔고, 오늘 여덟 번째에도 나오는데, 이것은 여기서‘팔복(八福)’이 완결된다는 의미요, 그 뒤에 따라 나오는 것들은 곧 이 여덟 번째 복인“핍박 받는 자”에 대한 해설입니다.
오늘 우리가“팔복”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처음 두 가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심령이 가난해야”하고,“애통하는 심령”이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죄(罪)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罪)가 해결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천국(天國)에 들어갈 수 없고, 사회적인 지위(地位)가 높다고 해서 천국(天國)에 들어가는데, 더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만이 내 죄를 해결한다는 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마치 환자(患者)가 의사(醫師)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수술대 위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수술대에 올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外) 다른 방법은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이“심령의 가난이요, 애통”입니다. 즉“애통 한다”는 것은 구원을 위한 전인격적인 부르짖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내 안에는 아무런 소망(所望)이 없음을 깨닫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세 번째“온유하다”는 것은 자신을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즉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또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 길이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고 내린 결론은, 곧 하나님보다 앞서면 아무것도 되는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도 결국 제자리 걸음입니다.
네 번째“의에 주리고 목마른”것입니다. 여기서“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이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갈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갈망이 얼마나 큰지, 어느 때는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더 불행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그가 배부를 것”이라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줄 것이 있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무한한 힘(能力)이 그들에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겼는가? 하는 것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여섯 번째“마음이 청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거룩”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거룩할 수 있다는 뜻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性品)이 심겨져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 성을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영적(靈的)인 것을 위하여 힘 써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靈的)인 것을 거두게 되어 있고, 반대로 육적(肉的)인데에 관심을 두면 결국 썩어질 육적(肉的)인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두 가지는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일곱 번째“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용서입니다. 우리들은 평화의 사자(使者)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이 세상의 불화(不和)를 화해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용서입니다. 그래야만 싸움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과거 이야기를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본문이 마지막 여덟 번째 복(福)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Ⅰ.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것
5:10절)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물론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모두 사람이 착하고, 선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중에는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성품과 도덕성에서 뒤 떨어지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신앙인은 비신앙인에 비해 무엇인가 선하고 자비롭습니다.
특히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절대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도둑질하거나 간음이나 거짓증거 같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성경대로 사는 사람은 남을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결코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온갖 거짓말로 중상모략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선하게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왜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할까?
이런 핍박을 받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義)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기가 잘못해서 고통을 받거나, 혹 자신의 이념(理念)과 종교적(宗敎的)고집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의(義)”를 위하여 핍박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기(詐欺)를 쳐서 감옥(監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찾아가 위로를 하니까“주님도 고난을 받으셨다네...”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과 자기가 고통 받는 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 고(古)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탈세 문제로 감옥(監獄)에 수감되게 되었을 때, 그도 자신의 처지를 예수님의 고난과 연결시켜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모두 의인(義人)이라면, 이 세상에 의인(義人)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 안에는 고도의 욕구(慾求)가 들어 있습니다. 단순히 생리적 욕구뿐 아니라, 자신의 이념(理念)이라든지, 아니면 종교적(宗敎的) 열정 때문에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편안한 삶을 버리고, 산(山)으로 올라가 중(스님)이 되거나, 선교사로 먼 이국땅에 가서 선교하다가 죽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저히 평범한 삶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자신의 이념(理念)을 위해 감옥(監獄)에서 청춘을 다 보내면서도 의지(意志)를 굽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군사정권(軍事政權)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념(理念)을 위해 퇴학(退學)을 당하거나, 감옥(監獄)에서 고생을 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서“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고 할 때, 이“의(義)”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의(義)의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는“의(義)”입니다. 이것은 법적(法的)인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여기에는 일체 다른 것이 섞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자신의 공로(功勞)를 포함시키기를 원합니다. 즉 구원이라는 것은“예수님의 십자가+인간의 공로"라는 식입니다. 사람이 오직 영원히 멸망(滅亡)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罪人)이라는 사실이 얼마니 끔찍한 것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의(義)”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되기를 원합니다.
사탄(詐誕)은 이것을 노립니다. 즉 아무것이나 마구 공격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중심(中心)으로 공격합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마귀(魔鬼)의 가장 큰 공격 목표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福音)입니다. 만일 이것만 무너지게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는 무효화(無效化)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같은 신앙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전쟁(戰爭)이 있습니다. 그것은“우리 인간들의 공로를 좀 알아 달라”는 입장과“안 된다. 인간들은 오직 죄인일 뿐이다”라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公路)를 지키려고 하다보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핍박을 받게 되어 있고, 이것이 세상적인 핍박보다 더욱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따돌림(왕따)을 당하고 때로는 육체적인 고통까지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족들은 모여서 조상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 혼자만 죽은 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을 때, 가족들은 그를 미워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고집(固執)을 몹시 미워합니다.
마르쿠스 아우헬리우스는 로마 황제 중에서 대단히 철학적(哲學的)인 황제(皇帝)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핍박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는“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했습니다. 즉 *우상(偶像)에게 한 번 절하면 되는데, 그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목숨을 거느냐?* 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이 기꺼이 사자(獅子)굴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는 더 화가 나서 핍박을 했습니다. 사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부분에 질려버릴 때가 많습니다. 즉 자기들에게는 술 한 잔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우상(偶像)에게 한번 절한다고 해서 자기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또 대개 그리스도인들은 비사교적(非社交的)이며,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다가 고집(固執)하나는 엄청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Ⅱ.세상을 보는 입장의 차이
성경에서는“세상”이라는 표현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말씀하실 때의“세상”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2:15절)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할 때는“세상의 가치관” 또는“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일정한 가치관(價値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이 세상을 보는 관점(觀點)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이 영원(永遠)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이 세상 외(外)는 아는 것도 없고, 이 세상에 자기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입장은 무엇입니까? 부정적(否定的)인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이 세상이 멸망(滅亡)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즉 이 세상의 발전(發展)을 위해서나, 이 세상이 영구적(永久的)으로 잘되게 하기 위한 일에 소극적(消極的)입니다.
단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도 큰 유익이 되어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는 것이지, 이 세상이 잘되는 것을 목적으로 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모순된 자세가 무엇인가 하면, 이 세상 자체에 대하여는 부정적(否定的)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불교처럼 아예 이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접촉할 기회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악(惡)하다! 악(惡)하다!” 하면서도 계속 세상에서 함께 삽니다. 즉 세상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세상에서 학교도 다니고, 세상에서 집도 사고, 장사도 하면서 똑같이 삽니다.
같은 사회 공동체로 살면, 어떻게 하든지, 그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일을 위해 함께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마지못해서 그런 일을 할 때도 있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關心)이 더욱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는 필요한 것은 다 가져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악(惡)한 세상에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건지기 위해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關心)도 없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사람들”뿐입니다. 즉 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서 빼내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적(目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면, 함께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모두 빼내어 간다면, 누가 그를 좋아하겠습니까? 즉 같은 직장에 있는데, 그가 직장 생활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빼내어 다른 데로 데리고 가는 것이라면, 누가 그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영(靈)이 있고, 세력(勢力)이 있습니다. 곧 사탄(詐誕)입니다. 사탄(詐誕)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사력(詐力)을 다 합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사탄(詐誕)은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군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福音)의 빛이 비취면서 마귀(魔鬼)의 지위(地位)는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詐誕)은 어떻게 해서든지“복음(福音)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도록”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래서 주로 어떻게 합니까? 하나는 이 세상의 가치관(價値觀)을 사용합니다. 원래 돈이나 권력이나 학문은 악(惡)한 것도 아니고, 선(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詐誕)은 돈을 숭배(崇拜)하게 하거나, 권력과 지식을 절대시 하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비난하거나 따돌려버리게 합니다.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따돌림(왕따)당하는 것”입니다. 즉 완전히 사회적 폐인(廢人)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직장이 없다면, 자동적으로“왕따”가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남자가 돈을 벌어야만 사람 구실을 한다”는 것은 거의 절대적인 진리(眞理)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직장을 잃는 자체가 사회적인 죽음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가치(價値)가 대학에 의하여 매겨지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의 우수성은 어느 특정 대학에 얼마나 많이 진학하느냐?로 평가됩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하게 시켰습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魔鬼)입니다. 마귀(魔鬼)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직접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합니다.
마귀(魔鬼)는 영(靈)이기 때문에 몸이 없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어떤 물리적인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단지 사람을 격동(激動)시켜서 죄짓게 하고, 서로 미워하게 해서 해치게 만듭니다. 사탄(詐誕)은 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또 자기도 모르게 우리들을 증오(憎惡)하게 합니다. 특히 성격(性格)이 과격(過激)한 사람들은 직접 물리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좋지 못한 소문을 퍼트려서 고통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본인(자기 자신)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유가 있습니다. 곧 영적(靈的)인 열등(劣等)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상함과 숭고함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 존귀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자기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무엇인가 똑똑한 것 같고, 도도하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일종의 영적(靈的) 시기심(猜忌心)과 질투심(嫉妬心)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이요, 빛의 아들들입니다. 도저히 이 세상 사람들은 흉내 낼 수 없는 거룩함이 우리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니까“어둠이 빛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세상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들의 말 중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價値)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자기 자랑이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어울리려고 해도 유치해서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차이가 큽니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굽신 거리면서 존경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믿는 사람들은 돈도 없는“세입자 개척교회 목사”주제에 무엇인가 자기를 경멸(輕蔑)하는 것 같고, 판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Ⅲ.핍박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으면, 단순히 꾹 참고, 인내하는 정도가 아니라,“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5:11-12절)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의(義)로 인하여 핍박을 받게 되면, 끝까지 잘 참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나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가 하는데,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신앙으로 말미암아 핍박이 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 첫째는“회의파(懷疑派)형”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나를 못 살게 굴까? 도대체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
모든 것들이 잘될 때는 신앙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다가도 어려움이 오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동안 생명의 말씀 없이 신앙생활 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이 세상은 너무나 긍정적(肯定的)입니다.
그들은 마귀(魔鬼)의 존재나, 인간의 죄 성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즉 너무“죄! 죄! 죄!”하는 신앙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신앙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이 터지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집니다.즉“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왜? 왜?’왜? 하다가 시간만 모두 보내고 맙니다.
둘째는“의기소침(意氣銷沈)형”입니다.
핍박이 오면,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세상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는데, 핍박이 오고 난 후는 더욱더 이 세상을 적대시하여 완전히 이 세상에 대하여 배타적(排他的)이 되는 것입니다. 아예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 수도원 같은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죽지 못해 사는 식으로 비관적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가“공격형”입니다. 나를 미워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 대하여 공격적(攻擊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원수(怨讐)를 직접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으로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며, 그들이 망하거나, 죽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악(惡)에 대하여 적대시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악한 영”에게 이용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들이 죽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고, 그들이 망하기를 바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하여 미운 감정을 가지면, 내 신앙이 냉소적(冷笑的)이 되기 때문입니다.
냉소적(冷笑的)인 신앙 속에는 주님이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조건 꾹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런 핍박이나, 비난이 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신앙 때문에 이런 고통이나 핍박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치 도저히 와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왜? 왜?”하면서 회의(懷疑)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분(身分)이나, 처지를 생각하면, 이런 핍박이 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소속(所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魔鬼)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한 것”입니다. 아무리 서로 잘 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근본적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의 신앙 때문에 나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내가 정말 하나님께 속(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12절)......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지자들에 대한 박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싫어했을까? 그들이 세상을 비난했기 때문입니다.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핍박을 받을 때,“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자기가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님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메고 갔습니다. 그는 아마“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십자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십자가였습니다. 그(시몬)는 두고두고“왜 좀 더 그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투덜거리지 않고 기쁨으로 지고 갈 수 없었을까?”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매를 맞고, 욕을 얻어먹음으로써 더욱 더 예수님과 같아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님은“제자가 선생보다 나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선생인“예수님 자신이 고난 받았으니, 대접받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미치게 만드는 것은 없던 일을 만들어 비난하는 것입니다. 즉 5:11절)...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마귀(魔鬼)가 항상 쓰는 수단이 곧 이런 비슷한 거짓말입니다. 즉 비슷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 안에 엄청난 과장(誇張)과 거짓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괜히 이상한 짓 했다고 소문을 퍼트리는 것입니다. 물론 말하는 사람이야 즐거울지 모르지만, 그 사람 하나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굳이 변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조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오해를 다 풀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악(惡)한 때”입니다. 즉 여차하면 마귀(魔鬼)가 나의 영혼을 삼켜버립니다. 그때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악(惡)으로 악(惡)을 갚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모든 것들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은 것과 천국(天國)의 상급(賞給)이 직접적 관계가 있음을 약속(約束)하고 있습니다.
5:12절)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주님은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든 칭찬과 상급(賞給)은 영구적(永久的)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인정(認定)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천국(天國)에서 큰 상(賞)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능력이나 은사(恩賜)가 곧 그의 믿음일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입니다. 그의 믿음은 그의“경건 생활”이요, 생명의 말씀“순종하는”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자는 생명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고통을 기쁨으로 많이 참은 자입니다. 또 주님과 같아지기 위해 스스로 어려움을 많이 겪은 그 사람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받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죄 성과 교만(驕慢)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우리의 연극(演劇)무대로 보십니다. 아무리 배우가 연극을 잘 했을지라도 연극공연 중에 상(賞)을 주지는 않습니다.
즉 공연 중에는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상(賞)은 연극의 막이 내려야만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다 누리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가심으로 저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게 하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다 가진 사람은 천국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알고,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천국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결코 고난과 핍박 중에 혼자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이 세상에서도 천국(天國)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알림
◎필수과목 소개
성경 66권 중.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기도 26회, 찬송 26곡을 배우고. 또 전도 가이드(guide)로 활용하므로 예배와 전도에 자신감이 생겨 종교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고 성령의 인도로 활기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교육 장소 ☞ 경기도 노작마을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날자 시간 ☞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12시(평신도) *오후 =2시-5시(지도자반)
◐교육 대상 ☞어느 누구나 선착순 신청자(교갱원 카페 소속과 카톡회원은 필수과목)
◐교육 방법 ☞소그룹 및 1:1 맨토(Mentor) 기타는 교갱원 설립 수련때까지 영상으로
◐준비 물품 ☞ 성경찬송. 노트, 지우개 달린 연필
◐양육비용 ☞ 총26과(1과당 10,000원(26X10,000=260,000원)교재비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전3:13-14)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새벽(冬)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교갱원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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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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