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을 좋아한 사람(2)
룻1:1~5
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들(나오미의 두 아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4절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이 모압 여인과 결혼했는데 그 두 여인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10년 쯤 살았다.” 겉보기엔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1절~3절을 보면 중요한 세 動詞가 나옵니다. 1절에서는 엘리멜렉이 가족을 데리고 모압에 가서 “거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2절에서는 거기서 “살았다” 즉 거기에 “눌러앉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엘리멜렉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시편1:1에는 福 있는 사람의 자세가 나옵니다. “福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 세 개가 나옵니다. 그것은 “따르고, 서고, 앉는 것”입니다. 즉 福 있는 사람은 “따르고, 서고, 앉는 것”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福 없는 사람들은 이걸 잘 못해요. 즉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을 따라가고, 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서 있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이 좋아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엘리멜렉이 이 선택을 잘못한 거예요. 첫째 그는 잘 못 된 방향으로 갔고, 둘째 그곳의 풍습을 따라 살다가, 셋째 아예 그곳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다음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죽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난 나오미가 취했어야 할 행동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빨리 방향을 돌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나타난 그녀의 태도는 두 아들을 이방 여인들과 결혼시켰다는 것입니다.
결국, 4절이 말해주는 내용은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피우고 있는 나오미입니다. 남편이 죽든 말든 내 뜻대로 살겠다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무서운 반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그런 고집은 결국 두 아들의 죽음까지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사인(sign)을 미리 알아차렸더라면, 그래서 방향을 베들레헴 쪽으로 돌렸더라면 그녀의 두 아들이 죽는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인을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