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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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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역사기행 후기방 지석(誌石) ㅡ 거창박물관
浮雲 추천 0 조회 3 26.08.13 03:33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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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3:41 새글

    첫댓글 고성 남씨 남병연(南秉然, 자 맹기)과 그 부인 밀양 박씨의 합장 또는 묘소 정보를 기록한 백자 청화 지석이다.
    ​백자 판 형태로 제작되어 청화(靑華) 안료로 글씨를 쓰고 유약을 발라 구워낸 전형적인 조선 후기 묘지석 형태를 띠고 있다.

  • 작성자 03:42 새글

    명문 판독 (한자)
    ​學生 固城南公 諱秉然
    字孟起 忌十月六日
    配孺人 密陽朴氏 忌
    十二月二十一日 坤坐

  • 작성자 03:43 새글

    석독 및 풀이
    ​學生 固城南公 諱秉然 (학생 고성남공 휘병연)
    ​학생(관직이 없던 선비) 고성 남씨, 이름은 병연(秉然).
    ​字孟起 忌十月六日 (자맹기 기시월육일)
    ​자(字)는 맹기(孟起)이며, 기일(사망한 날)은 10월 6일이다.

  • 작성자 03:46 새글

    配孺人 密陽朴氏 忌 (배유인 밀양박씨 기)
    ​배우자(孺人)는 밀양 박씨이며, 기일은十二月二十一日 坤坐 (십이월이십일일 곤좌)
    ​12월 21일이다. 곤좌(坤坐, 남서쪽을 등지고 북동쪽을 향함) 방향에 묘를 썼다.

  • 작성자 03:49 새글

    지석은 기능과 목적 면에서 묘비(墓碑)와 매우 유사하지만, 설치되는 위치와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묘비는 '지상에 세우는 표지판'이고, 지석(지석/묘지석)은 '땅속에 묻는 백업용 기록'이다.

  • 작성자 03:51 새글

    공통점 (같은 성격)
    ​은 묻힌 사람의 신원(본관, 이름, 벼슬, 가계)과 생몰년, 사망일(기일), 행적, 묘의 위치(좌향) 등을 기록하여 후대에 죽은 이가 누구인지 알리기 위한 기록물다.
    ​고인을 기억하고 제사를 올리기 위한 근거 데이터가 된다.

  • 작성자 03:52 새글

    차이점은 설치 위치가 묘비는 봉분 앞 지상ㅇ나 지석을 무덤 안(석실/광중) 지하라는 점,

  • 작성자 03:55 새글

    주 목적이 묘비는 참배객이 보고 알아볼 수 있도록 노출히지만 지석은 세월이 흘러 묘를 잃어버리거나(실묘) 묘비가 훼손될 것에 대비한 것.
    주요 재질이 묘비는 돌(화강암, 오석 등)이나 지석은 도자기(백자, 옹기), 돌, 금속 등이라는 점.
    기록 방식이 묘비는 음각(돌에 새김)이나 지석은 청화 안료로 적거나 음각후 유약 처리 등 다양하다.

  • 작성자 03:58 새글

    조선시대에는 세월이 수백 년 지나면서 비석이 바람과 비에 풍화되어 글씨가 깎여 나가거나, 전란·파묘 등으로 묘지의 위치를 잃어버리는 일(실묘, 失墓)이 자주 일어났다.
    ​따라서 후손들이 묘를 이장하거나 위치를 찾을 때 "이 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히 증명"하기 위해, 변형이나 훼손이 적은 백자 판 등에 기록을 남겨 무덤 안에 함께 묻어두었던 것이다.

  • 작성자 03:59 새글

    묘지석(誌石) 문화는 고려시대에 크게 발달했다.
    ​고려시대 묘지석은 도자기가 아닌 점판암이나 화강암 같은 돌 판에 글씨를 정밀하게 새겨 넣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 작성자 04:00 새글

    불교식 화장(火葬) 문화와 풍수지리 사상이 결합하여, 유골을 담은 골호(骨壺)나 묘 주변에 고인의 삶을 기록한 돌판을 함께 묻는 풍습이 크게 유행했다.

  • 작성자 04:00 새글

    고려시대 지석은 피장자의 출생, 가계, 관직 이력, 공적, 사망 원인, 문장(銘文) 등을 매우 길고 상세하게 적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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