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손이 한번 떨어졌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이륙한 양재호는 그 짧은 순간이지만 몸둘 바를 몰라했다. 바둑도 유리했던 관계로 '저, 손이 안떨어졌는데요'하면서 상대의 얼굴을 한번 슬쩍 올려다볼 수도 있었겠지만 양재호는 그만 싹싹하게 돌을 거두고 말았다. 스스로 반칙패를 인정한 것.
정수현과 양재호는 기사 중에서도 깔끔한 매너와 학구파 기사로 둘 다 정평이 나있는 인물들. 그리고 충암고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막상 후배가 그렇게 '자수'를 해오면 정수현도 상당히 머쓱했을 을 것인데 의외로 양재호가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깨끗이 수습이 되었으니 그 해프닝은 모범적인 케이스.
사실 프로들도 손이 "떨어졌다. 안 떨어졌다" 하는 하수 같은 상황으로 인해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꼭 시간부족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앞서 경우처럼 깊은 생각 끝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뻔한 곳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손이
나갔다가 갑자기 딴 곳이 눈에 들어와 스톱을 하려다가 '하프스윙'으로 인정받은 타자 같은 케이스도 있다.
7년전 일이다. 신예기사 중 김성룡은 유난히 '튀는' 청년이다. 아직도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반바지에 염색머리가 떠오른다. 사실 지금은 10대들의 기본적이 모습이긴 하지만 점잖은 바둑동네에서 7년전 김성룡은 눈총도 꽤나 받았다.
워낙 서글서글하여 웬만하게 친하면 거리낌없이 '형님'하고 불러대는 통에 그와 친하게 안 지낼 수가 없게 만드는 쾌남아다. 그는 바둑도 속기파요 말씨도 속사포요 거의 모든 동작이 제트기.
흔히 그렇듯 감각파는 번뜩이는 재주에 비해 실수도 잦은 편이어서 성적은 기대만큼 성적을 올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김성룡은 달랐다. '신4인방'이라고 불리는 그룹에 거뜬히 들었고 랭킹 10위권에 확실히 들어가는 신바람바둑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가 승승장구하던 10대 후반에 아버지뻘도 더되는 김재구를 예선에서 만난 건 큰 경험이 된다.
김재구는 당시에도 8단이었고 김성룡은 이제 2단. 어떤 기전의 2차예선이었는데 조용한 별실에서 두 사람은 대국을 벌이고 있었다.
<11>반칙패
마침 필자는 그 대국에서 직접 사건을 목도하게 된다. 김성룡의 후배기사가 마침 그 즈음 입단하여 처음으로 공식대국을 갖게 되어서 그 바둑을 구경하러 대국실을 들어갔다 엉뚱한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바둑은 상당한 속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실력으로는 한창 때인 김성룡이 노장기사인 김재구보다야 앞서있을 것이니 김성룡이 제법 유리한 가운데 판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조용히 끝날 것 같던 판에서 갑자기 김재구의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대국장의 열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차악 가라앉고 만다.
"네 이놈! 거기다 갖다 놔. 어디 선배 앞에서 무르기를 한다는 것이야. 버르장머리없이!"
추상같은 김재구의 불호령에 김성룡은 물론이고 필자와 다른 대국을 치르던 기사 몇 명이 화들짝 놀란 건 불문가지.
김재구의 추상은 이어진다.
"니가 바둑을 좀 둔다고 버릇이 그래서 되겠느냐. 어서 그 자리에 갖다놓아라. 난 너의 버릇을 고쳐야 하겠다!"
김재구가 손자 같은 김성룡에게 화를 낸 건 대국 도중 김성룡이 자꾸 손을 바둑판에 갖다 놓았다 뗐다 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자신이 참는데도 한도가 있어 이번만은 물려줄 수가 없다는 것.
한편 톡톡 튀는 김성룡이 대선배의 말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전 물린 적 없습니다. 그리고 손이 떨어지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이런 실랑이가 서로 몇 차례 오고가자 김성룡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본래 놓으려고 했던 곳을 김재구의 말대로 갖다놓았다. 어차피 좋은 바둑이니 '백번 양보하여' 그냥 좋게 넘어가자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김재구가 또다시 가만 놓아두질
않았다. 만약 다시 갖다놓는다면 그것은 또 물리는 것이므로 바둑을 계속 둘 수 없다고 강변한 것.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되자 옆에 있던 필자가 끼어 들기도 좀 험악한 상황이 되었다. 김재구의 말인즉슨, 김성룡이 착수를 했다가 옮겼으므로 반칙패가 선언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김성룡은 손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아무런 일도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두사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한국기원은 심판위가 급히 조직되어 심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주장은 '법정'이라고 달라질 게 없었다.
<12>반칙패
결과부터 말하면 두 사람에게는 사상 초유의 양자패가 성립되었다. 그 판결 이후 한국기원에서는 대국분쟁 시 의견조율이 되지 않으면 두사람 모두에게 반칙패를 선언한다고 못박고 있다. 물론 당시 두 사람은 서로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당시의 해프닝은 좀 씁쓸한 케이스였다. 웃고 넘어가기엔 대선배와 새까만 후배 사이에 쌓였던 묵은 감정과 연관도 있었다는 후문이고 보면 말이다.
10년 정도 이전이면 연구생제도가 꽃을 피워 10대의 쟁쟁한 기사가 바둑계의 전면에 나오던 시기. 따라서 노장기사들은 더욱 쓸쓸해지는 시기가 되고있었는데 한국기원에 워낙 어린 기재들이 자주 탄생하다보니 노장기사로서는 그들의 행동거지나 태도가 맘에 안드는 부분도 간혹 있었던 모양. 따라서 김성룡과 김재구의 '다툼'은 꼭 그날의 대국에서 일어난
분쟁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와 바둑가의 그 당시 판단이었다.
사실 김성룡이 손을 떼었느냐 안 떼었느냐 하는 건 문제도 아니고 인간의 청각이나 시각으로 그를 판단하기도 힘들다.
확실한 것은 김성룡이 손을 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손이 이착륙을 몇 차례 반복하는 행위는 프로로서 곱지 않은 행동이다. 물론 대선배 김재구의 입장도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지만 확실히 돌이 반상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물렸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도덕적인 문제와 법적인 문제는 다르므로. 여기서 좀 우스운 해프닝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상대의 돌을 잡으면 들어내는 것이 원칙이고 그 사석을 들어내는 과정은 승패를 떠나 몹시 즐거운 행위의 하나다.
그런데 귀신 잡는 프로들도 잡은 사석을 들어내지 않는다든지 안 잡은 돌을 들어내는 몹시 웃기는 짓을 할 때가 있다
89년 7월에 전국의 안방에 방영된 KBS바둑왕전에서 일어난 사고다. 김수장과 서능욱간에 벌어진 대국으로 두 사람은
함께 조훈현 서봉수에게 십 수년을 도전하던 '도전5강'으로 매우 절친한 친구사이. 그러나 바둑내용은 아무도 친구라고 보지 않을 만큼 치열하여 거짓말을 반쯤 보태면, 반상에 올라간 돌보다 돌통 뚜껑에 담긴 사석이 더 많을 정도. 막바지에 이르러 역시 대형 패싸움이 발생했다. 물론 천지대패였고 그 패싸움은 한판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13>반칙패
평소 신중하기로 소문난 김수장은 서능욱이 패를 써오는 걸 보고 바로 문제의 패를 해소할 맘을 먹고 있었다. 즉 워낙
큰 패라서 어떤 곳에 팻감을 써더라도 김수장을 패를 해소할 일종의 만패불청이었으므로 서능욱의 착점이 나오자마자
패를 해소하면서 주섬주섬 상대의 사석을 들어내었다.
들어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아직 공배가 비어있어 법적으로 사망하지 않은 돌까지 모조리 들어내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돌이 얽히고 설켜 있으니 전체가 다 사석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돌까지 모조리 들어낸 것은 분명 반칙패.
그런데 김수장으로서는 일이 되려니까 상대인 친구 서능욱이 그를 모르고 그냥 지나가 버린 것은 행운이었다. 이를 엄연히 목도하고 이의를 제기했다면 당연히 김수장은 반칙패. 역시 도둑을 맞으려면 그 충성스런 개도 하필이면 곯아떨어질 게 뭔가. 진행자인 노영하까지도 까맣게 모르고 지나갔던 것.
종국후 결과는 김수장의 승리. 그런데 그 같은 해프닝은 바둑을 잘 모르는 담당PD가 워낙 궁금해하여 큰맘 먹고 질문을 하게 되면서 알려진 것. 물론 김수장은 전혀 고의가 아니었고 사실 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팻감으로도 써먹을 수 없는 '거의' 사석이었지만 김수장은 용궁 같다 온 기분이었을 터. 그도 그럴 것이 김수장은 그 판을 이기고 승승장구하여
준우승까지 이르렀으니 반칙 한번 용하게 했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다.
하여튼 그날 바둑은 343수나 가는 보기 드문 대혈전이었으니 한여름밤에 벌어졌던 납량프로그램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이다.
똑같은 상황으로 반칙패를 선언 당한 케이스도 있다. 주인공은 역시 속사포의 귀재 정대상과 부산출신의 간판기사 임선근의 86년도 바둑왕전. 임선근은 당시 4단으로 한때 24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며 부산바둑의 매운 맛을 중앙에서 한껏 과시한 바 있는 힘바둑이다.
물론 힘으로는 전혀 지고싶은 맘이 없는 정대상과의 일전은 묻지 않아도 당연히 죽고 죽이는 살상극의 극단을 치닫고
있었다. 수수는 총 80수 정도가 진행되었는데 피차 잡힌 돌이 무려 30개였으니 그 열전의 정도를 짐작코도 남음이 있을 터. 역시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정대상은 패도 불리할 뿐 아니라 팻감도 없어서 그냥 돌을 던지는 것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14>반칙패
정대상의 대마는 '분노의 바다' 중앙을 향해 하릴없이 떠돌며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상황이라 천지대패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 바둑은 아마유단자가 두어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정대상은 불리했다.
그러나 전국의 팬들이 지켜보는 TV대국에서 일찌감치 돌을 거둔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어쩌면 던질 시기를 못 찾고 왜 두는 지도 모르는 혼미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돌을 거두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 보람이었을까. 정대상은 단 한마디의 대사로 그 바둑을 승리로 이끌고 만다.
"어 공배가 하나 비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중앙에 부초처럼 떠도는 대마를 위협하는 수가 모조리 팻감이라 임선근은 속된 말로 아무 데나 돌을 던져서 두어도 이기는 상황. 그런데 팻감을 쓰고 패를 때려 자신이 단수에서 벗어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상대가 팻감을 쓸 때 때려야할 것을 맘이 급하여 아직 공배가 하나 비어있는 정대상의 생떼같은 말을 그만 들어내고 마는 게 아닌가.
물론 다음 자신은 팻감도 없고 하니 그 패싸움은 무조건 지게 되어 있었지만 정대상에게 무조건은 없는 것이었다. 정대상은 현행범을 보자마자 카메라 기사를 향해 '컷!'을 외치며 이의제기에 나섰다.
그러자 해설자인 노영하가 바둑을 중지시키고 즉결에 회부하여 부당한 착수행위의 형벌을 적용하여 임선근의 반칙패를 선언하게 된다.
임선근이 망연자실해하는 건 당연했고 정대상은 미안해하면서도 연신 싱글벙글 재미있어하는 표정이라니. 사실 정대상이 그런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발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당시까지 MBC제왕전이라는 속기프로에서 기록을 맡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속기전 기록을 맡아서 그런 규칙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패싸움이 아니라도 사석을
그냥 들어낸 케이스는 있고 사석도 아닌 돌을 들어낸 사건은 아주 아주 드물지만 있었다. 먼저 죽지 않은 상대의 돌을
들어낸 일화다.
강훈과 김학수 간의 89년 승단대회에서의 일이다. 참고로 김학수는 6단과 4단 두명이 있는데, 6단 김학수로 후배가
더 고단이다. 6단 김학수는 현재 미국 이민생활중이다.
<15>반칙패
89년 승단대회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주인공은 강훈 7단과 김학수6단. 서로 자잘한 패싸움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김학수가 평범한 곳에 팻감을 썼는데 강훈은 그 팻감으로 두어진 상대의 돌을 그냥 들어내 버려 반칙패를 당하고
만다. 팻감은 은히 멀쩡한 상대의 돌을 떼어달라고 떼를 쓰면서 시작된다. 김학수는 멀쩡한 강훈의 돌에다 단수를 친다. 물론팻감으로. 그러면 그 단수를 막으면 된다. 문제는 강훈의 프로다운 짐작이 김학수의 지극히 아마다운 팻감 처리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는 데에 있었다.
보통 팻감을 쓸 때는 가능하면 많이 나오게 쓰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단수를 칠 수 있는 상황도 가능하면 먹여치기를 하여 한번 더 팻감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김학수는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연히 먹여 칠 곳을 그냥 단수를 쳤고 강훈은 먹여 쳤을 것을 가정하고 엉뚱하게 '멍군'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 단수는 되어있고 그 단수를 받기는 받았는데 그래도 단수가
되어있다. 한술 더 떠 단수를 친 돌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 돌을 들어내어서 시체취급을 해버린 것이다. "이게 뭐야!
멍쩡히 살아있는 돌을 들어내다니?" 김학수는 당연히 '분노'했고 다 이겼던 바둑을 강훈은 반칙패로 날리고 만다.
이보다 좀 더 재미있는 경우는 상대의 돌을 잡았음에도 안 들어내는 경우일 것이다. 참 드문 일이지만 90년 국수전 2차예선에서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신사로 소문난 홍종현과 노영하의 대국이다.
노영하가 좀 유리했던 상황으로 기억한다. 홍종현은 역전의 기회로 삼을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상대의 돌을 끊자고 들여다본다. 잡혀있는 자신의 돌을 잇자고 들여다 본 것이다. 바둑속담에 "들여다보는데 안 잇는 바보 없다" 란말도 있듯이
당연히 이으면(정확히 표현하면 이으면서 상대 사석을 들어내는) 되는 곳이다.
물론 노영하는 '무슨 소리?'하면서 상대의 요석을 따낸다. 그리고 노영하는 '이제 당신이 두시오'란 뜻으로 계시기를
'찰칵'. 홍종현은 당연히 딴 곳으로 손이 향했고 몇 수가 더 진행이 되었는데 나중에 두리번거리다가 아까 그 장면에서
노영하가 돌을 잡고도 들어내지 않은 괴상한 장면을 목도 한 것이다. "어, 사석 왜 안 들어내?"
<16>반칙패
잡은 돌도 귀찮아서 안 들어낸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돌을 들어내는 것보다는 좀 더 희귀한 케이스에 속하는 이 광경은 심각한 해프닝이었다. 우리 아마추어들이라면 "어. 이게 왜 여기에 놓여있지"하면서 슬며시 나중에라도 들어내면 그만이겠지만 철두철미를 기초로 하는 프로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가.
홍종현은 '당당히' 큰소리를 친다. "어이, 노사범. 진작에 죽은 돌을 왜 안 들어낸 것이여?"
이리하여 심각한 해프닝은 시작되었고 심사위원회가 부랴부랴 소집되었다. 결론은 재대국. 노영하가 분명 제때 사석을 들어내지 않은 건 의아한 일이지만 전체적인 대국흐름에 지장을 준 것은 아니므로 패배로 인정하기엔 좀 인간적인 아쉬움이 들어간다는 유권해석이었다.
90년 기사회에서 만들어낸 대국분쟁 해결원칙은, 문제발생 즉시 이의신청을 해야하며 설사 옷깃에 쓸려 돌이 옮겨지더라도 본래대로든 옮겨진 대로든 상대끼리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양자패. 그러나 양자패가 웬 말인가. 상대에게 피해가 가는 엄연한 반칙이 아니라면 실전 도중이라도 "여기지?"하면서 분쟁 소지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마추어의 경우는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규칙이라는 것은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자는 뜻이지 그 규정을 이용하자는 취지는 아니므로. 아까, 돌이 옮겨진 대로든 그대로든 운운하니까
진짜로 돌을 옮긴 사건이 생각난다. 분명히 돌을 옮겨서 물린 사건이다. 천풍조와 M8단의 속기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15년전 쯤의 일이다. TV속기전에서 수백만 바둑팬들이 목도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물리기가 시도된 역사적인 현장이다. 천풍조와 M은 물 흐르듯이 초반설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한쪽 귀의 화점에다 문명근이 날일자로 걸치고 눈목자로 변 쪽으로 벌려두었다. '일립이전(一立二展)에 맞게, 그리고 높낮이를 고려하여 눈목자로
벌려둔 건 당시의 유행이자 상식이었다.
그런데 M8단은 슬쩍 한 칸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17>반칙패
속기전은 워낙 툭탁툭탁 바쁘다보니까 돌이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기도 한다. 어느 대국에서나 착점이 약간 옆선과 걸쳐져 있을 수도 있으나 문제의 천풍조와 M8단의 대국은 분명히 눈목자로 벌려져 있었다. 그건 아마유단자면 다 아는 상식적인 착점이기도 하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딴 곳에서 후다닥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일찌감치 두어놓은 눈목자보다 오히려 날일자가 더 좋은 상황이 되고 만다. 바둑을 두다 보면 그런 일은 흔하다. 미리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측했다면 물론 그렇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을까. 한참 그 주변에서 서로 주거나 받거니 하다가 M8단은 은근슬쩍 이미 놓여져 있던 눈목자를
날일자로 슬쩍 한칸을 좁히는 것이 아닌가. 공교롭게 필자도 학생시절 그 광경을 똑똑히 화면으로 목도했는데 훗날
알아본 결과 M8단은 수개월간의 중징계를 받았다고.
중징계를 받은 건 사고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국에는 TV를 시청하던 팬들의 항의가 빗발을 쳤고 그 여론의
압력으로 인해 M8단은 중징계를 받게된 것이다.
당시 화면의 10초 가량의 짧지만 긴 정중동을 옮겨본다. 돌을 은근슬쩍 옮기는 순간 천풍조는 뭔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거렸다. 필시 "아까 눈목자였잖아?"라는 식이었을 것이고, M8단은 "여긴데요?" 정도로 어필 아닌 어필을 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인물은 해설자인 노영하인데, 필자가 분명 기억하기로는 노영하도 "아까 돌이 눈목자에 놓여져
있었는데요?"라며 '확실치 않은 듯 분명하게' 얼버무렸다. 노영하야 당연히 돌을 옮긴 지는 알지만 프로가 돌을 옮겼다는 사상초유의 일을 실토하기가 뭣해 어물쩍거리던 것이다.
당시 방송화면은 편집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는데, 좀 어색한 옮기기가 이어진 후 바둑은 계속 두었다. 당시의
승패는 기억에 없는데, 한국기원에서는 그 승패와 상관없이 M8단에게 중징계를 내린다. 기사의 품위를 깎아내렸다는 것이 그 이유. 이왕 방송국에서 편집을 하려면 옮기는 장면은 좀 자를 것이지,,,.
하기야 초반상황에서 반칙을 범했다고 그 상황에서 중단하면 방송국에서는 시간을 메우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스튜디오에서는 선후배간의 언쟁으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18>반칙패
이번에는 해괴한 시간초과패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모아본다. 진작에 소개했던 초읽기 해프닝과는 조금 상황이 다른
것들로 낮잠 자다 진 바둑, 화장실 가다가 질 뻔한 바둑, 커피 마시다 바둑판 증발된 바둑 등이다.
80년 일본에서 있었던 어처구니 없는 시간패에 관한 얘기다. 무대는 랭킹 5위기전인 천원전 도전자결정전. 주인공은
우리에게는 좀 낯설지만 올드팬들은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다. 우시노 9단과 야마베 9단.
이름값은 야마베가 더 있다고 하겠다. 야마베는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였는데 불운하게도 사카다
후지사와 등의 걸출한 인물들에게 밀려 단 한차례도 우승컵을 가져가지는 못했다. 다만 준우승은 수차례 경력이 있으니 80년 당시에도 만만찮은 인물이었다.
이에 맞서는 우시노는 우리 프로들도 이름이 가물가물한 무명인데 자신의 이름값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쳐 당당하게
도전자결정전까지 치솟았다. 그는 관서기원 소속으로 중후한 기풍에 두터운 바둑을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서로간에 물러 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을 두고있었다. 그들의 경력을 미리 밝혔지만 도전자로 뽑히는 것
만해도 그들의 바둑인생에서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간 이력이니 말이다. 당시 도전자결정전은 제한시간이 5시간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전기가 대부분 5시간이지만 당시 일본은 천원전 도전기는 6시간, 도전자결정전은 5시간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한참 더디기로 소문난 일본바둑이 당시엔 그 절정이었으니 일생일대의 큰 승부를 벌이던 그들로서는 글자그대로 사력을 다하는 한판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승부는 어이없게도 실력 차이가 아닌 체력 차이에서 갈려지고 말았으니 희대의 해프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당시 오랜 시간 바둑을 두면 잠시 쉬어서 두라는 뜻으로 대국실 옆방에다 공식으로 휴게실을 마련해 두고 있다. 문제는 이 휴게실 때문에 일어나는데, 오후에 접어들고 식사까지 마친 우시노는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일본기원의 비어있는 본선대국실에 들어가 팔베개를 하며 눈을 붙였다.
어차피 식사시간에서도 30분쯤은 남아있었고 좀 시간이 흘러가도 큰 문제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슬며시 눈을 감고
다음 예상되는 수순을 머리 속에다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