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 6년, 아직도 장을 모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나는 주식시장에 발을 들인 지 벌써 6년째다. 서당개라면
오언절구쯤은 눈 감고도 흥얼거릴 터인데, 나는 아직도 차트 앞에서 더듬거리며 뒷북이나 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제의 일이다. 그동안 잠잠하던 한 종목이 갑자기 널을 뛰기 시작했다. 거래량이 붙고 호가창이 분주해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개장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조금 높은 가격에 매수 주문을 넣었다. ‘이 정도면 안전
하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장이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체결되었다. 생각보다 쉽게 팔렸다. 체결 알림을 보는
순간 기쁨보다 아쉬움이 먼저 밀려왔다.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높은 가격에 걸어둘 걸…”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장이 열렸다. 전날 그 종목은 장대양봉을 만들었다가 막판에 밀리며 긴 윗꼬리를 남겼다.
오랜 침묵 끝에 나온 급등이었으니 오늘도 힘을 이어가리라 지레짐작했다. 어제의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자’는 생각에 시장가로 주문을 넣었다.
그러나 9시 정각, 개장 종이 울리자마자 주가는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내가 체결된 가격은 그날의 가장 높은 자리
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마치 내 주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차트는 아래로 길게 꼬리를
달아갔다. 막다른 바닥을 찍고서야 반등이 시작되었고, 그제야 심장이 조금 제자리를 찾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내 머리 위에 귀신이라도 붙은 것일까. 내가 사면 떨어지고, 내가 팔면 오른다.
6년 동안 숱하게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찬물을 한 잔 들이켜고 차트를 다시 보았다. 전날의 장대양봉은 분명 강한 상승이었지만, 긴 윗꼬리는 매도 압력이
만만치 않다는 신호였다. 고점에서 차익실현 물량이 쏟아졌다는 뜻이다. 교과서에는 이런 캔들 다음 날에는 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적혀 있다. 더구나 장 마감 무렵 몇몇 보조지표는 과열을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도 외면했다. 차트가 아니라 내 ‘희망’을 읽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지가 아니라 착각인 듯하다. 나는 6년이라는 시간을 ‘경험’으로 착각했다. 매매 횟수
가 실력의 증거라고 믿었고, 몇 번의 성공이 나를 숙련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차트 위를 뛰어다녔을 뿐이다. 시장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매번 감정에 휘둘리며 다른 결정
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급등을 보면 놓칠까 두려워 쫓아가고, 급락을 보면 더 떨어질까 겁이 나
손절한다. 남들이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에 조급해지고, 손실이 나면 근거를 찾기보다 운을 탓한다. 차트는 객관적인데,
나는 한없이 주관적이었다.
‘서당개 3년’이라는 속담은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얻는 깨달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6년
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았을 뿐,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매매일지를 쓰지 않았고, 실패를 구조적으로 분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시장은 늘 새롭고, 나는 늘 초보일 수밖에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장대양봉 하나에 흥분하지 않고, 긴 윗꼬리 하나에 숨은 의미를 곱씹어 보자. 보조
지표는 장식이 아니라 경고등임을 잊지 말자. 무엇보다 ‘오를 것 같다’는 희망 대신 ‘왜 올라야 하는가’를 묻는 습관을 들이자.
주식시장은 나를 이기려는 상대가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 같다. 조급함도, 탐욕도, 후회도 모두 내 얼굴이다. 언젠가 정말
로 풍월을 읊는 서당개가 되려면, 먼저 겸손해져야 한다. 시장 앞에서 배우는 자세로 다시 서야 한다.
6년 차 투자자라는 허울을 벗고, 오늘부터 다시 1년 차의 마음으로 차트를 펼친다. 언젠가는 내가 사도 오르고, 내가 팔아도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