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 히메와 환경윤리
1.개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作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는 아이누 족의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재앙신의 저주에 걸려 추방된 에미시족의 왕자 '아시타카'가 야생의 소녀 '산'과 만나고, 인간과 신들의 전쟁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2.선악의 모호함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환경을 주제로 하는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자연을 무조건 선하게 묘하지 않고 인간을 무조건적인 악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중 묘사되는 타타라 마을의 풍경은 오히려 작중에 등장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에서 버려진 약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이 마을은 남녀가 평등하고 나병환자와 같은 약자들을 배척하지 않으며 병자들 또한 화승총의 성능을 개선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불침번을 서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을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슨은 당시는 물론 현재 사회와 비교해봐도 꿇리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숲에 살아가던 짐승들에게는 사철을 캐내기 위해 숲을 파과하여 삶의 터전을 빼앗고 동족을 학살하는 증오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한편 영화의 초반부에서 에미시족의 마을을 습격하고 아시타카에게 저주를 건 멧돼지신 나고는 에보시의 총탄을 맞아 재앙신으로 변한 것이었으며 또다른 멧돼지신 옷코토누시과 멧돼지 일족들 또한 숲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증오하여 이전부터 마을을 파괴해왔고 숲이 파괴되며 지능이 퇴화되어나는 나머지 멧돼지일족과 성성이들은 들개여신 모로의 수양딸인 인간의 아이 산을 배척하는 등 마냥 선한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처럼 두 세력은 첨예하게 대립하나 그 갈등은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동물신들에게 있어 숲은 삶의 터전이고 타타라 마을 사람들이 산을 파헤치고 숲의 나무를 베어가며 얻고자 하는 '철'은 다른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자원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묘사하는 동시에 해당 집단을 긍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을 무조건 악으로 묘사하는 것을 지양한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종의 보존'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대립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생존을 목표로하는 투쟁인 것이다.
3.자연과 생명에 대한 고찰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이 되는 사슴신 시시가미의 숲은 생명이 흘러넘치는 대자연 그 자체를 상징한다. 특히 숲의 주인인 시시가미(사슴신)는 주어진 대사 한마디 없이도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분위기를 압도하며 에보시의 총에 맞아 머리를 잃고 분노하여 날뛰는 모습은 지진,폭풍,화산폭팔과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연상시킨다. 한편으론 아시타카와 산으로부터 머리를 돌려받은 뒤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황폐화된 자연을 원래대로 복구하고 아시타카의 저주와 나병환자들의 질병까지 치유하는 모습은 자연의 온화한 면 즉, 자정능력을 상징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철학이 감독의 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주제의식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아시타카는 신과 인간의 대립에서 철저한 외부인의 입장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타카는 싸움을 멈추고 서로가 공존해야 함을 주장하여 두 세력을 중재하고자 한다. 아시타카의 노력으로 산은 인간에 대한 분노를 어느정도 누그러뜨리고 에보시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며 더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만화영화속 초인적인 영웅의 활약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기에 미야자키 감독은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세상의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이들이 내놓을 수 있는 그나마 최선의 답으로 당장에 직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4.마치며
모노노케 히메는 흰 개가 인간에게 시집을 와서 아이 세명을 낳았고 그 아이들이 아이누의 시조가 되었다는 아이누 족의 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전부터 아이누들의 전설에 관심이 많았고 이는 1968년作'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같은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아이누의 전설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필요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훌륭하게 묘사함으로써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첫댓글 "자연을 무조건 선하게 묘하지 않고 인간을 무조건적인 악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고 하는 분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연이란 정복의 대상일 수 있고, 자연에게 인간이란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요. 이 애니메이션의 백미는 인간과 자연을 대척점에 두지 않고, 인간의 욕망으로 빚어진 숲의 상실조차도 자연의 힘으로 복구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