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이란?
일본의 오사카 고등법원 형사부
총괄 판사였던 오카모도 겐 판사는 36년 동안이나 재직했던 판사직에서 조기 퇴임했다는 뉴스가 일본 전국에 보도 된바있습니다.
주로 큰 사건들을 맡아 처리해 오던 유명한 판사였던 그가 정년퇴임까지 5년이 더 남았는데도 판사직을 그만두자, 사람들은 추측하기를 변호사 개업을 해서 더 큰 돈을 벌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 달리 의외의 전혀 엉뚱한 길을 찾아갔습니다.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있는 요리학원을 찾아 수강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는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음식점을 내겠다는 각오로 60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는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식칼을 유연(柔軟)하게 쓰는 법과 맛 있는 양념을 만드는 법, 여러종류의 야채를 써는 방법부터 철저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년만에 그는 요리사 자격증 을 따 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36년 간 일했던 오사까 고등법원 건너편에 두평 정도의 조그만한 간이 음식점을 차려 개업했습니다.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않는 돌출행동 같은 모양 새로 보여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업한 손바닥 만한 작은 식당에는 유명한 판사였던 그를 알아 보는 손님들이 많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판사직을 그만 두고 음식점을 낸 것을 궁금해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만큼 손님들로 부터 수 많은 질문이 그에게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판사의 위엄와 법복을 벗어 던지고 주방복을 걸친 그에게 찾아 오는 손님 마다 허리굽혀 인사하는 그에게 식당 개업 하던 날 언론사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런 말로 손님들과 기자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판사로 재판관이 되어 수십년 간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너무도 아팠습니다. 나는 그 일을 36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해 왔습니다.
재판관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가 없는 가시 방석같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떤 방법 으로라도 남을 위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없을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내 음성과 기능으로 좋은 음악을 세상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지만 본래의 자질(資質)이 부족하였고 한때는 돈없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고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 때는 의술을 익히기에 이미 나에게 너무 늦은 시기었습니다.
해서 생각하고 궁리하여 찾아 낸 것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길은 맛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만이 이 나이에 빠르게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식당 주방장이 되더라도 남에게 기쁨을 줄 수만 있다면 정말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 것만 같았습니다.” 라고 초지일관(初志一貫)되게 즐겁고 기쁜 얼굴로 주장하는 그 였습니다.
그는 남에게 죄를 확정하고 그에게 벌을 주는 일이 너무 싫어서 남아있는 인생만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살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는 말을 덧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작은 두평짜리 음식점의 간판은
‘친구(親舊)’였습니다.
그 <''친구''>라는 이름 속에는 그의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 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그의 오랜 소원을 담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바와 같이 인생의 친구를 많이 두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 셋을 둔 사람이라면 인생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그의 작으만한 식당 벽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 밑에 실린 내용의 액자(額子)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나의 기도(祈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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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친구' 가게를 찾아 오시는 손님들을 미소(微笑)로 맞이하게 하소서
나의 언어에는 향기 넘치게 하시고
나의 행동에는 겸손만이 있게 하시며
나의 가치관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사람을 향한 이해와 따뜻한 동정의 마음을 주셔서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게 하소서
받으려 하기보다는 항상 주고 싶은 마음으로 살게 하시고 받은 것은 기억하고 준 것은 곧 잊어버릴 수 있도록 살아가게 하소서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