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로 재벌일가를 이룬 1세대 정주영과 2세대 정몽헌 부자가 펼친 대북사업은 통일의 징검다리 역활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정몽준 회장의 자살은 '특검수사'로 만신창이가 된 정회장이 더 이상 살아봐야 '희망'이 보이지 않아 결심한 또 하나의 '결연한 실천'인 것이다. 전국적으로 하루에 36명꼴 자살, 지난해 1만 3055건. 주요원인은 경제난인 실업과 신용불량, 사업실패 등이란다.
심지어 '성적비관 고2 아들 자살에 아버지도 같은 장소서 열흘만에 자살도 했다(한겨레 8월 5일치)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앞에 '절망'만 있을 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절망적인 정회장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기로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정 회장에게 '희망'이란 '대북사업' 아닌가. 다시 말하면 유언에서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랍니다"라고 함은 '통일사업'을 중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사업을 방해하는 반대세력들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정회장은 '그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 것인가. 즉 철옹성(?)같은 '반통일 세력'들이 정회장의 목을 조르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버텨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뾰족한 수가 없고 보니 '적들'을 향해 우주적인 생명의 육탄으로 맞섰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잠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노정부의 취임식 날인 2월 25일 나는 여의도 현장에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참석한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6.15공동선언>을 짚어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안부'한마디 정도는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취임 일성으로 "서울방문"을 원한다던가,'햇볕정책'도 한번쯤 거론해 볼 수도 있었으련만, '구릉이 담 넘어가듯' <취임선서문>에서는 단 한 줄도 없이, "해방 이후에는 분단과 전쟁과 가난을 딛고, 반세기만에 세계 열두 번째의 경제 강국을 건설했습니다""특히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라는 대목에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정몽헌 회장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틀림없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있다, 는 것을 직감하지 않았을까.
노정부 6개월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고민하고, 고통스러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을까. 이것이 세계 열 두 번째의 경제 강국에서 일어난 기적(奇蹟)의 자살이다. 이 죽음을 놓고 한나라당 한 의원은 "김대중과 김정일이 죽였다"라고까지 망언을 일삼고 있다. 도대체가 민주당은 정몽헌 회장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도 모르고(방치하고) 있었던가.
이제서야 '금강산 지원'결의안 국회제출(한겨레8월7일) 여야의원 23명이 결의안을 낸다니. 한심스럽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이것도 '야당 반대 불변 국회통과 가시밭'이라니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국회, 정치하는 사람들 꼬리지가 보기 싫어진다. 사업가 정회장은 '통일사업'에 이렇게 목숨까지 바치거늘, 정치인들은 무엇들 하자는 거냐. 막말로 저들끼리 '밥그릇' 차지하려 싸움질만 하고 있는 게 정치이더냐.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정회장 빈소를 다녀온 후 "더는 정부가 기업을 남북문제에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라면서 정회장의 죽음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했다니. 기가 막힌다.
철면피 같은 한나라당이여, 경상도에서 의석수 많이 얻은 쪽수로 '특검' 밀어부처 '수사'로 정회장에게 '절망'만 안겨 준 것이 아닌가? 빈소를 찾아 묵념하고 있는 송두환 대북송금 특별검사 사진을 신문에서 보면서, 송특검은 상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한나라당은 인터넷도 모르나. 지금 그곳에서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정회장을 죽였다"라고 아우성이다. 이 집단의 무리들이 '반통일' 세력임을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억지부리지 말라. 조중동이야 말로 한나라의 대변지로서, 저희들끼리 함께 하는 수구기득권 세력이 아니던가. 참 놀라운 것은 어느 내과의원 원장은 오늘 내게 말하기를 "한겨레신문은 노무현 정부의 기관지 같다"라고 했다. 그는 조선, 중앙은 구독하지만 한겨레는 거절한다. 이런 사람이 대학졸업자이고 내과의사이다. 정신과의사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참으로 전염병처럼 번지는 입소문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는 현대를 구박하고 삼성을 밀고 있다"는 것이다. 다 같은 재벌이라도 현대는 노조가 있지만 삼성은 노조도 없다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나 되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이런 재벌을 '두둔'하는 노정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희망'이 보이지 않겠는가. 이 땅의 정신과 의사들은 노정부와 정회장의 자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