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허 열 웅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하는 로망이고 희망이었다. 시골의
사시사철에 밤하늘이 열리면 신화와 전설이 깨어나 함박눈처럼 별들이 쏟아져 내렸
다. 보석처럼 영롱한 별을 바라보는 동안은 세상의 근심대신 흘러간 추억과 가슴
설레는 낭만이 피어올랐다. 날씨가 차고 건조한 늦가을이나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대기가 투명해 별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스치면서 내게 기대어 오며 잠들어 축 늘어진 그
녀의 머리였다. 그녀는 하늘의 별들이 솟아오르고 아침빛으로 지워져 흐려질 때 까
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나는 가슴속이 약간 두근거렸지만 내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이 맑은 밤에 의해 성스럽게 보호를 받아 고이 잠들고 있는 그녀
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별들 중 하나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
을 잃고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잠들고 있다고 몇 번이나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동화‘별’의 한 부분이다. 산 속에서 홀로 양을 키우고 있는 목동
에게 먹을 것을 갖고 주인집 딸 소녀가 왔다가 소나기가 쏟아져 길이 막히자 모닥불
을 피워놓고 별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새우는 장면이다.
별은 태양처럼 홀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주로 쌍이나 여러 개의 별로 구성된다.
밝기, 색깔, 거리, 온도, 크기 등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빛을 낸다. 우주에는 수천
억 개의 별이 있지만 맨눈으로 보기 힘든 별을 제외하면 우리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은 약 6,000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바퀴씩
도는 현상이 나타내는데, 이것을 별의 일주운동이라고 한다.
지구도 하나의 별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을 잠시 여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별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생명체가 아닌 위대한 우주적 존재인 것이
다. 그러므로 신성한 빛이 되어 100년도 안 되는 여행을 마치고 원래의 별로 돌아
가야 하는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 수명이 다해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고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별임을 그리고 순간의 여행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별은 하늘에서 땅위에 내려와 영광과 명예의 이름으로 호명된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star)라 불리는 연예인이 되고, 나라를 지키는
최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장군(star)이 된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국
기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별들이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하늘만 빤히 보이는 산골에서 보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산 그
림자가 마당에 내려오면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초가지붕
위에 하얗게 핀 박꽃이 별의 입술을 훔칠 때 꽃밭의 채송화나 맨드라미는 눈을 흘
기며 질투를 했다. 희거나 보라색으로 핀 도라지꽃은 자기를 닮았다고 손을 내밀어
반가워했다. 초저녁 이웃 동네로 마실 가기위해 종아리까지 걷어 올리고 시냇물에
건너다보면 물에 내려온 별들이 물고기 등에 업혀 놀기도 했다.
그 옛날 맑고 밝게 반짝이며 빛나던 별을 서울의 하늘에서 바라본다. 고층건물들
로 인해 조각나고 찢어진 하늘에선 숨쉬기조차 힘든지 마른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미세먼지 속에 가려져 흐릿한 빛조차 힘을 잃고 있다. 새벽 2시에 깨는
것이 습관화 되어 창문을 열고 하늘부터 바라보게 된다. 찬 공기가 이마를 스치자
별을 노래한 시와 그림과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별은 많은 사람에게 詩心을 일깨우고, 그림의 혼을 불러오고, 동화나 소설의 줄거
리가 되어 예술의 꽃을 피우게 했다.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
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로 시작되는 윤동주의 ‘별을 혜는
밤’은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와 함께 가장 많이 낭송되는 대표적인 서정시다. 뿐
만 아니라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말년에
그린 가장 대표적인 걸작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세월로 인해 어른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
절엔 영롱하고 초롱거리던 별이었는데 오늘 서울의 별은 아득하고 흐릿한 모습이
다. 이런 별이라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은 낭만이고 여유가 아닐까? 천만 명도
넘는 서울 시민 중 가끔이라도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계
절을 시작하는 봄 하늘에서 꽃무늬로 무리지어 빛나고 있는 별을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홀로 쳐다보는 느낌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첫댓글 우리가 별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주적 시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해요..우리는 별에서 온 존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