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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정비 한다더니…땅주인, 롯데마트 유치
월세점포·인근상인 반발, 유통법 등 규제 힘들어
2010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삼양시장 재건축 현장 앞으로 200여명의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인근 수유시장과 옛 삼양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찬 바닥에 모여 앉은 이들의 얼굴엔 허탈감과 분노, 초조함이 뒤섞여 있었다. 500여 점포가 있는 수유시장은 시장 입구를 닫고 간판등을 끄는 등 시장 전체가 철시를 했다.
건물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삼양시장이 있던 터다. 올해 초 공사가 시작되면서 삼양시장은 사라졌다. 이곳에서 월세를 내며 장사를 해온 50여 점포 주인들은 시장 정비사업을 위해 건물을 철거한다는 설명을 듣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다. 건물이 헐릴 때만 해도 수유시장이나 수유 골목시장, 동북프라자(옛 동북시장) 등 삼양시장 주변의 재래시장 상인들은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근거로 진행되는 시장 정비사업을 두고 ‘낡은 재래시장을 현대화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말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삼양시장의 새 건물에 상인들은 경악했다. 이 터의 주인인 삼양시장㈜의 서아무개 대표가 재건축한 건물에 롯데마트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들어선 건물 안에는 계산대와 마트용 에스컬레이터가 들어섰다. 롯데마트의 상징인 노란빛 외벽과 빨간 내장재도 설치됐다. 롯데마트가 문을 열면 상인들은 되돌아가 장사를 할 곳이 없어진다. 2대째 삼양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했다는 김진상(46)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는 “건물 주인의 재촉에 나가긴 했는데 그 자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재건축이 되면 다시 입점할 생각으로 삼양시장 뒷골목으로 가게를 옮겼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도 이제야 “삼양시장뿐 아니라 인근 재래시장이나 가게 주인 모두의 걱정거리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뚜렷한 법적 장치는 없다. 현재 삼양시장은 강북구청에 재래시장으로 등록돼 있지만, 건물주는 건물이 완공되는 대로 이 건물을 ‘대규모 점포’로 등록할 예정이다. 삼양시장 상인은 이제 재래시장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도 이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인정된 재래시장과 전통상점가 등 전통상업보존구역의 500m 반경 안에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SSM)가 입점할 경우 이를 지자체가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곳은 수유시장과 동북프라자에서 각각 700m와 500m 정도 떨어져 있어 적용 대상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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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6일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은 한산했다. 장사꾼들의 물건 파는 소리도 뚝 그쳤다. 대신 삼양시장오거리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 앞에는 재래시장 상인과 인근 마트 상인 200여 명이 모여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든 와중에 장사도 그만둔 채였다.
정부, SSM 규제 미루는 동안 대형마트 200곳 난립 상인들은 이날 '롯데마트 입점 저지를 위한 강북중소상인 총궐기 집회'를 열겠다며 한꺼번에 일일철시를 단행했다. 롯데마트가 재래시장 밀집지역에 입점을 시도하면서다. 일각에서는 정부ㆍ여당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를 지금껏 미루면서 대형 마트가 마지막 물타기를 시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SSM 규제법안인 유통법과 상생법의 동시 처리를 여야가 합의한 것은 지난 4월이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김종훈 통합교섭본부장이 "자유무역협정에서 마찰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해당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자 합의는 깨졌다. 법제사법위원회가 7개월을 끄는 동안 전국에는 200여 SSM이 생겨났다. 들어설 곳은 이미 다 들어선 셈이다. 롯데마트의 삼양시장 입점 시도는 그동안 미뤄질대로 미뤄진 유통산업발전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대형마트가 마지막 진입을 시도한 사례다. 국회가 법을 통과시킨 후 대통령이 공포하기까지 남은 기간 15일을 이용해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간 것이다. 유통법이 시행되면 재래시장 근처 500m 안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지 못하지만, 그전에 들어선 대형마트는 막을 길이 없다. "리모델링 하는 척 현수막으로 가려놓더니"…상인들 속았다며 분통 롯데마트가 들어서게 된 경위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양재래시장 안에 상가를 운영하던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작년 1월부터 상가 재건축을 진행했다. 당시 삼양시장 상가에는 20여 개 영세 점포가 세 들어 있었다. 사측은 "리모델링 이후에 다시 불러주겠다"고 상인들을 구슬려 내보냈다. 주변 상인들은 "현수막으로 건물 외곽을 가려놔서 그 자리에 롯데마트가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지난 10월 현수막이 걷히고 나니 상가 외관은 롯데마트의 상징물인 원형구조물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뒤 신문에는 롯데마트 삼양점으로 구인광고도 게재됐다. 주변 상인들은 1년 10개월 만에 삼양시장주식회사가 건물을 롯데마트에 넘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가 재건축이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에 의해 시행되었기에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상인들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건축 사업이 오히려 재래시장을 죽이는 사업으로 뒤바뀌었다"고 성토했다. "이미 이마트에서 쫓겨났는데 물러설 곳 없다"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 바로 맞은편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정원(54) 씨는 "겨우 숨만 쉬고 있는데 이마저도 빼앗아 간다"며 가슴을 쳤다. 정 씨는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2003년에 20년간 모아둔 돈 1억2000만 원을 털어 석계동에서 슈퍼마켓을 차렸다. 하지만 2년 뒤 바로 옆에 이마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권리금도 못 받고 장사를 그만둬야했다. 강 씨가 삼양시장으로 옮겨온 뒤 3년 만에 이번에는 롯데마트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손해를 입는 곳은 삼양시장뿐만이 아니다. 삼양시장오거리는 삼양시장, 수유시장, 동북시장 등 재래시장이 밀집한 지역이다.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는 동북시장과는 불과 500m, 수유시장과는 750m 떨어져 있다. 수유시장은 점포만 350여 개가 있는 대형재래시장이어서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상인 박진효 씨는 "대형마트 하나가 재래시장 점포 630개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며 "롯데마트가 들어서면 (대형 재래시장인) 수유시장이 두 개 날아간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재건축 건물이 롯데마트가 아니라는 주장은 오직 롯데마트만 한다"며 "이런 현실을 보고 가게에서 물건만 팔 수는 없다"며 상인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안영승 재래시장상인대표는 "정릉시장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 매상이 반쯤 줄었다"며 "가게를 내놔도 안 나가니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23년간 정릉시장에서 닭집을 했던 아주머니가 장사가 안돼 폐지를 줍고 다니더라"며 "정릉시장의 현실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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