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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 두둥둥
주 요 섭
1
내 네 살 난 아들놈 장난감으로 북을 한 개 사다 주었던 것이 우리 집에서 밥 짓고 있는 복실이 어머니에게 그렇게도 큰 슬픔을 가져다주리라고는 나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것이다.
2
복실이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 있게 된 것은 단순한 주인과 식모 간이라는 그런 주종 관계로서는 아니었다.
복실이 아버지는 본래 내 큰삼촌과 죽마지우로 자란 사람이었는데 장성하자 북간도로 건너가서 번개처럼 찬란하고 떠도는 생활을 하다가 그만 총부리 앞에서 찬 이슬이 되어버린 호협한¹ 사람이었다.
복실이 아버지가 그처럼 외지에서 횡사²를 하자(그것이 벌써 이십 년 전 옛일이지마는) 과부가 된 복실이 어머니는 그때 여섯 살 나는 딸 복실이와 또 바로 남편이 죽던 날 아침에 세상에 나온 아들 인선이를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와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마침내는 남편의 죽마지우인 내 큰삼촌 댁에서 식객처럼 들어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식객처럼 와 있도록 했으나, 복실이 모는 그냥 앉아서 얻어먹고만 있기가 미안하다 하여 자진해서 부엌 일을 돕기 시작하였다. 내 삼촌 모³는 처음에는 부리기가 어렵다 하여 복실이 모가 부엌일하는 것을 꺼리었으나, 그러나 날이 감에 따라 어색한 기분이 차차 줄고 혹시 이전 있던 식모가 나가고 새 식모가 아직 안 들어오거나 한 기간에는 복실이 모가 아주 식모 격으로 일을 하게 되고, 이럭저럭하여 마침내는 복실이 모는 내 삼촌 댁에 한 부리우는 사람으로 자연화해버리었다. 그래서 얼마 후에는 그에게 무보수로 일만 시킬 수 없는 일이라고 내 큰삼촌이 주창해서 일정한 월급까지 정해놓고 나니 아주 복실이 모는 식모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래 이십 년간, 복실이 모는 오직 두 자식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었다. 딸은 몇 해 전에 함흥서 잡화상을 한다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그만했으면 시집을 잘 보냈다고 복실이 모는 만족해 하고 있고, 인선이는 상업학교를 마치고 지금 어떤 백화점 점원으로 들어가서 일급 칠십 전을 받고 있으니 이 또한 복실이 모는 퍽이나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복실이 모가 우리 집으로 옮겨 오게 된 내력으로 말하면 재작년에 삼촌이 강원도 강릉으로 솔가하여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복실이 모는 될 수만 있으면 아들이 취직하고 있는 평양에 남아 있어서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희망이어서 우리 집으로 옮겨 오게 된 것이었다. 그때 마침 우리는 처음으로 어린애도 생기고 해서 내 아내가 혼자서 쩔쩔매던 판이라 복실이 모가 오겠다는 것이 결코 싫지 않았다. 그래서 복실이 모는 우리 집에 와 있으면서 건넌방에서 아들 인선이를 데리고 있고, 월급은 없이 그저 그들 모자의 식사를 우리 식구 먹는 대로 먹기로 하고 와 있었다. 이리해서 인선이가 벌어들이는 월 이십 원이란 돈은 거기에서 옷이나 해 입고 그대로 꽁꽁 모아서 이제 한 십 년만 그렇게 공을 들이면 그 모은 돈을 한밑천 삼아서 인선이를 가게나 놓도록 한 후, 며느리나 얌전한 색시를 하나 맞아서 살림을 차리고, 복실이 모는 늘그막에 손자 애들이나 업어보는 조그마한 양상이나 해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것이 복실이 모의 생에 대한 전부였던 모양이다.
3
그런데 복실이 모에게는 아들 인선이에게 대한 꼭 한 가지 불안이 늘 떠나지 않고 있어왔다. 그것은 인선이가 어렸을 적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좀 별다른 성격을 가진 것에 있었다.
그것은 인선이가 여남은 살 났을 적 일이라 한다. 하루는 복실이 모가 저녁에 부엌에서 저녁을 짓다가 잠시 무엇 때문인가 방안에 들어가 보았더니 인선이가 방 아랫목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모양은 잠자는 것 같으나 숨소리가 몹시도 가쁘고 별스러웠다 한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까 두 눈을 다 뻔히 뜨고 누워있는데, 그 두 눈은 천장만을 뚫어지도록 바라다보고 있고, 어머니가 옆에 오는 것도 안 보이는 모양이더라 한다.
그래 어머니는,
“인선아, 너 자니?”
하고 물어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어 다시,
“야, 인선아, 너 어디 아프냐?”
하고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더라고. 그래서 복실이 모는 인선이 어깨를 붙들고 흔들어보았으나, 인선이는 그것도 깨닫지 못하는 듯이 그저 옴짝 않고 누워서 숨소리를 가쁘게 씨근거리면서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더라고 한다. 그 증세가 ‘지랄’⁴ 증세가 아니냐고 내가 언젠가 한번 복실이 모에게 물었더니 결코 지랄 증세는 아니었다고 그는 단언하였다.
복실이 모는 놀라서 한참이나 붙들고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영 대답이 없고 또 깨나지도 않는 고로 할 수 없이 나와서 내 삼촌모에게 급보하였다. '그래 삼촌 모도 놀라서 들어가보니까, 그동안에 인선이는 일어나 앉아 있는데 몹시 피곤한 모양으로 벽에 기대 앉아서 씩씩하고 있었더라 한다. 그래,
“너 어디 아프니?”
하고 물으니까,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
“목마르다”
하고 대답하더라고. 그래 물을 떠다 주니까 물을 한 대접 다 마시고는,
“오마니, 나 인제 자문성’ 별난 꿈 꿨다”
하고 말할 뿐, 무슨 꿈을 꾸었는가 자꾸만 캐물어도 인선이는 그 꿈의 내용 이야기는 안 하고 그저 이상스런 꿈을 꾸었노라고만 대답하더라고.
그런데 우리 삼촌 모는 인선이가 정신없이 누워서 씨근거리는 광경을 친히 보지는 못한 고로 인선이 모더러 공연히 잠자는 애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어서 남을 놀라게 했다고 도리어 복실이 모를 핀잔을 할 뿐이고 또 복실이 모도 무어라고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그때는 그저 잠잠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복실이 모는 인선이의 몸에 다시 무슨 이상이나 없나 해서 늘 조심히 보살폈지마는, 아무런 별다른 이상을 발견 못 했고 해서 차차 복실이 모도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 일 년 세월이 흘러간 뒤 어떤 날, 역시 어슬한 저녁때인데 복실이가 부엌으로 갑자기 뛰쳐나오면서,
“오마니, 인선이 좀 보라우. 걔가 별나게두 구누나”
하고 황망히 떠드는 고로 곧 뛰어 들어가 보았더니 이번에도 인선이는 작년 그때 모양으로 눈을 뻔히 뜨고 누워서 숨소리를 씨근거리고 있었다. 그래 이름을 계속해 불렀더니 부시시 일어나 앉으면서,
“오마니, 나 별난 꿈 꿨다”
하더라고. 그래 무슨 별난 꿈을 꾸었는가고 물으니까,
“사람들이 나팔을 자꾸 불두나.”
하고 대답하였다. 복실이가 옆에 있다가,
“흥, 그것이 꿈인 줄 아니? 저녁땐 데에게 데⁶ 병대⁷들이 늘 나팔 불더라. 나두 들었다 좀”
하고 말하니까 인선이는 열 살 난 애로는 너무 야무진 태도로,
“아니 야, 꿈에 불어”
하고 대답하더라고.
그 후로도 몇 번 복실이 모는 아들 인선이가 죽은 듯이 한참씩을 누웠다가 일어나서는 냉수를 찾고, 그러고는 이상한 꿈을 꾸었노라고 하곤 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복실이 모도 여러 번째 당하는 일이라 그렇게 과히 놀라지도 않았고 또 그런 일이 생기는 수도 그저 일 년에 한 번가량밖에 더 안 되었고, 또 그 일 하나 외에는 별다른 거동이 없는 고로 차차 안심하게 되
었다고 한다.
4
인선이가 열일곱 나던 해 늦은 가을 어떤 날 밤.
그날 밤엔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복실이는 바로 며칠 전에 시집을 가고 인선이와 어머니 둘이서만 한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녘이 다 되었을 때에 복실이 모는 몹시 추운 감각을 얻어서 잠을 깨었다. 잠을 깨고 보니, 언제 문이 열렸던지 문이 쫙 열렸는데 그리로 비바람이 쳐 들어와서 막 얼굴을 때리고 이부자리를 적시고 아주 야단이었다. 복실이 모는 일어나서 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보니, 바로 문밖 처마 밑에 무엇인지 시커먼 것이 우뚝 서 있더라고 한다. 복실이 모는 몹시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질렀으나, 워낙 비바람 소리가 요란했기 때문에 안방에서는 그 비명 소라를 못 들었다. 복실이 모는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면서,
“인선아!”
하고 크게 불렀더니 방 안에 누워서 자는 줄만 여겼던 인선이가 의외 에도 문밖에서,
“응”
하고 대답을 하였다.
“인선아!”
“응―.”
그 대답은 바로 문밖에 서서 비를 맞고 있는 그 시커먼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복실이 모는 더한층 놀라서 윗목을 쓸어보니 인선이는 과연 방에 없었다. 그래서 밖에 서 있는 시커먼 것을 자세 자세 보니, 그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인선이였다. 인선이는 쪽 벌거벗고 거기 우두커니 서서 비를 온몸에 맞고 있는 것이었다.
복실이 모는 너무도 놀라고 기가 막혀서,
“인선아! 너 이거 웬 짓이가?”
하고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인선아, 야, 인선아, 인선아, 야”
하고 여러 번 부르니까 그제서야 인선이는,
“오마니, 데게⁸ 무슨 소리요? 데게?”
하고 말하였다. 복실이 모는 귀를 기울여 한참을 들어보았으나 비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런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소리라니? 무슨 소리?”
하고 마침 내 물으니까 인선이는,
“아니, 오마니, 저 소릴 못 듣소? 저 북소리! 두둥둥 두둥등 하는 거, 저것이 북소리 아니요?”
이 소리를 듣자 복실이 모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북소리!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이날 이 새벽 이 시각에 북소리! 복실이 모의 귀에는 십오 년 전 옛날이 바로 방금 전인 듯 그때 그날처럼 요란한 북소리는 그의 고막을 찢어놓을 듯이 요란히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두둥둥! 두둥둥!
십오 년 전 이날 이 새벽에 북소리는 요란히도 온 동네를 뒤흔들었다. 복실이 모는 밤부터 산기가 있어서 잠 한숨 못 들고 앓고 있었고, 석 달 동안이나 총을 메고 사방으로 싸다니다가 잠시 집에 들렀던 남편도 피곤한 몸을 잠도 못 자고 아내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그날 새벽녘에 조금 더 있으면 먼동이 트리라고 생각되던 시각에 복실이 모는 복통이 한층 심해져서 허리를 비비 꼬며
쩔쩔매었고 남편이 몸을 꽉 껴안아주었다.
그때,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동네에는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새벽 공기를 깨치고 울려온 것이었다.
두둥둥! 두둥둥!
남편은 이 북소리를 듣자 흠칫 물러앉았다. 북소리는 차차 더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는 총소리도 간혹 쨍쨍 섞여 들려왔다.
“여보”
하고 마침 내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여보, 난 아무래도 가봐야 하갔소. 저 북소리를 듣소? 저 총출동하라는 명령이우.”
아내는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앓는 소리만 더 크게 할 따름이었다. 남편더러 가라고 하기도 어렵거니와 가지 말랄 수도 없는 줄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북간도를 개척한 조선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이 끊임없는 투쟁은 한 일과로 되어 있고 용감한 아내들은 언제나 남편이 총 메고 나설 때 이를 만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잠들었던 어린 복실이는 소란 통에 깨어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앉았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서, 머리맡에 놓였던 탄환 혁대를 바쁘게 두르면서,
“아무레도 나가봐야갔쉐다. 한 사람 있구 없는 데 승부가 달렸으니께니……총출동, 총출동―”
혼잣말하듯이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벽에 기대 세웠던 총을 들고 황망히 문밖으로 뛰쳐나가면서,
“복실아, 엄마 잘 봐라, 응”
하고 한마디 하고는 바깥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이 남편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목소리였던 것이다.
남편이 나간 후, 북소리는 더한층 요란하여지고 콩 볶듯 하는 기관총 소리와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 숨이 막힐 듯이 짖어대는 개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모두 뒤섞여서 아주 천지가 떠나가는 듯하였다. 복실이는 무서워서 어머니께로 바닥바닥 다가앉았으나 어머니는 그것도 인식 못 하고 오직 그 두둥둥 울리는 북소리만이 온 몸뚱이를 속속들이 뚫고 뻗고 채워서 그냥 전신, 온 우주가 그 북소리 하나로 뭉쳐버리는 것 같은 환각을 느낄 따름이었다.
이런 아픔, 이런 소란, 이런 북소리…… 마저도 영원에서 영원까지 끊임없이 계속되는 듯이 생각되어, 조금만 더 그대로 계속된다면 몸도 으스러지고 천지도 으스려져버리고, 세상 모든 것에 마지막이 이르리라고 생각 들 때 복실이 모는 갑자기 “으아!” 하고 세차게 울리는 어린애 첫 울음소리가 그 북소리, 그 총소리 위로 쫙 퍼져서 온 방 안을 채워버리고, 온 우주를 채워버리는 듯한 것을 들었다. 동시에 복통이 문득 멎고 온몸의 기운이 확 풀렸다.
먼동이 환하게 터왔다. 북소리도 멎고, 총소리도 멎고, 오직 “으아, 으아” 계속해서 외치는 어린 애 울음소리만 들렸다.
핏덩어리처럼 뻘건 해가 초가지붕들을 빤히 비칠 때에는, 그 동네 젊은 사람의 거의 절반의 시체가 길거리에 넘어져 있었다. 복실이 아버지도 그들 중 하나이었다. 이것은 북간도 조선인 생활의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십오 년! 그것이 벌써 십오 년 전 일이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귀를 기울일 때 복실이 모의 귀에는 그 폭풍우 소리가 십오 년 전 이날 이 새벽 인선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새벽에 북간도 한 촌에서 듣던 그 북소리와 총소리처럼 들려왔다는 것은 순전히 복실이 모의 착각으로만 들릴 것인가? 복실이 모는 한참이나 꿈꾸는 사람처럼 문턱에 엉거주춤하고 앉아 있었다.
두둥둥등 울리는 북소리, 뼈까지 저린 복통, 그러고는,
“으아”
하고 터져 나오는 새 생명의 외치는 소리! 복실이 모는 마치도 그때 그 순간이 반복되는 듯싶은 환각을 느끼었다. 그런데 그 새 생명이 벌써 저렇게 살아서 떠꺼머리총각이 되었구나!
“인선아”
하고 마침내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는 몹시도 떨리었다. 목소리만 떨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모두 푸들푸들 떨리는 것이었다.
“인선아, 북소리는 웬 북소리가 난다구 그러니? 바람 소리밖엔 안 들린다.”
그러나 인선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인선아, 어서 들어오너라.”
그제야 인선이는 묵묵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비에 홈씬 젖은 몸을 수건으로 대강 문지른 후 이불을 쓰고 자리에 누웠다.
“인선아, 너 갑자기 왜 그러니?”
하고 어머니는 염려스럽게 물었다.
“북소리가 자꾸 들려서 그래요…… 또 아바지가…….”
“응? 아바지가?”
“아바지가 어데서 날 자꾸만 부르는 것 같아요.”
복실이 모는 몸에 소름이 쪽 끼쳤다.
“오마니, 우리 아바진 싸우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대디요?”
하고 인선이는 또 불쑥 물었다.
“응.”
하고 복실이 모는 겨우 소리를 내었다.
“아바진 싸와야 되갔으니 깐 싸왔갔디?”
“그럼.”
“한 사람 있구 없는 데…… 오마니, 그게 무슨 소릴까요?…… 한 사람 있구 없는 데……”
“인선아, 너 어데서 그런 소릴 들었니?”
“몰라, 그저 아까부터 자꾸만 그 생각이 나요. 한 사람 있구 없는 데 한 사람이 있구 없는 데 하구.”
“너 아버지가 마지막 그런 말씀을 하시구 나가서 돌아가셨단다.”
“응, 오마니. 나두 이제 그 뜻을 알아요…… 아바진 그 한 사람이 된다고 나가서 돌아가셨디요.”
“인선아, 거 무슨 소리가?”
“아니야요.”
5
인선이의 심상치 않은 현상에 복실이 모는 몹시 늘라고 염려되어서 다시 잠도 못 들고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이튿날부터 인선이는 다시 아무런 별다른 이상이 없이 학교에 잘 다녔다. 그리고 그 생일날 새벽에 생겼던 일은 아주 잊어버렸는지 다시 북소리 이야기도 없고 아버지 이야기도 아니 하는 고로 다시 어머니는 마음을 좀 놓았다.
인선이는 나이에 비겨서 퍽 침착하고 우울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 언제나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태도였다. 특히 자기 생일 때가 가까워오면 더한층 깊은 명상 속에 잠기는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바로 인선이 생일이었는데, 그날 새벽 밝기 전에 인선이는 일어나서 어디론가 나갔다가 해가 뜬 후에야 몹시 피곤해진 몸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놀라서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을 때, 그냥 새벽 산보로 모란봉엘 다녀왔노라고 대답해서 어머니 마음은 안심시켰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인선이는 자기도 모르게 용악산 쪽으로 자꾸만 가다가 조그만 개천에 첨벙 빠지면서 정신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점원으로 취직이 된 후에는 인선이의 성격은 더한층 침울해지고 밤이면 대개 혼자서 을밀대에 올라가서 한 시간씩 두 시간씩 깊은 명상에 잠기는 버릇이 생기었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주먹을 부르쥐고는,
“동물원이란 말이냐?”
하기도 하고,
“원숭이들처럼”
하기도 하고,
“때가 이르면…….”
하기도 하고,
“한 사람, 사람”
하고 어두운 밤 홍두깨 격으로 소리를 버럭 지르곤 해서 가끔 다른 산보객들을 놀라게 하는 때가 있었다.
6
내가 네 살 난 내 아들놈에게 북을 사다 준 것은 어떤 늦가을 날 저녁때였다. 내 아들놈은 두드리면 두둥둥 소리가 나는 북이 신기해서 자기 전에 한참이나 귀 시끄럽게 두드리고 놀다가 그 북을 손에 쥔 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이튿날 새벽이 채 밝기 전에 내 아들놈은 갑자기 잠을 깨가지고 기를 쓰고 울기 시작하였다.
나와 아내는 그놈 울음소리를 좀 멈추어보려고 여러 가지로 얼리어보았지만 무슨 꿈에 몹시 가위가 눌렸는지 어찌 된 심판인지, 그냥 악을 쓰고 울기만 하고 그치지를 않는 것이었다.
마지 막에는 그놈 자리 옆에 놓인 북을 들어서 두드려보았다.
두둥둥! 두둥둥!
하고. 북소리가 나자 아들놈은 울음을 뚝 그치었다. 나는 한참이나 요란하게 북을 두드렸다. 잠시라도 북을 그치면 아들놈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고로 나는 할 수 없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두드리었다. 그러노라니까 갑자기 바깥 뜰에서,
“인선아, 야, 인선아”
하고 황급히 부르는 복실이 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북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으나 아들놈이 또다시 울기를 시작하는 고로 또다시 북을 두드리었다. 그러노라니까 이번엔 어디 멀리서,
“야, 인선아, 야”
하고 부르는 복실이 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나는 별로 괴이하게 생각지도 않고 그냥 계속해서 북을 두드렸다. 겨우 아들놈을 다시 잠을 들여놓고서 다시 눈을 좀 붙였다가 해가 뜬 후에야 일어나서 뜰에 나가 보았으나, 조반을 짓고 있어야 할 복실이 모가 보이지 않고 부엌은 비어 있었다. 그래 복실이 모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까 방문은 쫙 열려 있고 이부자리도 개지 않은 채로 방은 비어 있었다. 우리는 새벽에 어디들을 갔을까 이상히 생각하면서 복실이 모가 돌아오기를 한참이나 기다려보았으나, 도무지 오지 않는 고로 아내가 나와서 조반을 지으러 부엌으로 가고 나는 거리에 나서서 이리저리 좀 돌아다녀보았으나, 인선이도 없고 북실이 모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회사로 출근할 시각까지도 복실이 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에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복실이 모는 어디로 갔는지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내는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염려가 되어서 인선이가 일하고 있는 백화점으로 나가 보았더니, 인선이 그날 애초에 출근을 아니 했다는 대답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 없고 많이 염려되었으나 하여간 밤까지 기다려보아서 소식이 없으면 내일 아침에는 어떻게 대책을 강구해보기로 하고 기다렸다. 저녁을 먹 어치우고 밤이 어두웠으나 인선이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필경 무슨 곡절이 생겼구나 싶어서 마음이 무척 초조해졌는데 마침내 복실이 모가 돌아왔다. 우리는 토방에 맥없이 주저앉는 복실이 모의 모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파가 종일 어느 흙더미 위에 가서 뒹굴다가 왔는지 온통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머리는 풀어져서 난발이 되어있었다. 우리 내외가,
“아니, 웬일 이오?”
소리를 한꺼번에 지르면서 뛰쳐나가니까, 복실이 모는 주저앉아서 엉엉 울기만 하였다.
가까스로 그를 달래서 띄엄띄엄 그에게서 나온 그날 새벽에 생긴 이상스러운 일의 대강을 적으면 아래와 같다.
그날 새벽은 바로 인선이의 스무번째 생일이었다. 새벽이 채 밝기도 전인데, 복실이 모는 어떻게 잠이 풀쩍 깨었는데 깨어 보니 바로 그때 인선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복실이 모를 기절을 할 만큼 몹시 놀라게 한 것은 복실이 모의 귀에는 너무나 똑똑하게 두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어디선지 요란스럽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복실이 모는 제 귀를 의심했으나 북소리는 갈데없는 북소리요, 그날이 또 인선이 생일인지라 복실이 모는 불안한 예감에 붙잡혀서, 얼른 옷을 되는대로 주워 입고 인선이를 따라나섰다.
인선이는 벌써 대문을 열고 문밖에 나서 있었다. 인선이는 횡하니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북소리는 복실이 모의 귀에도 너무나 똑똑하게 두붕둥 자꾸만 들려오는데, 어떻게도 마음이 황망한지 그 소리의 방향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저 인선이가 그 북소리 나는 곳을 찾아서 가는 것이라고 직각이 되어서 허둥지둥 그 뒤를 따르면서 인선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들은 대답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휭하니 가고 있는 것이었다. 복실이 모는 숨이 턱에 닿아서 따라갔다.
그들 모자는 보통강까지 다다랐다. 복실이 모 귀에는 인제는 북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데, 인선이는 신도 안 벗고 그냥 절벅절벅, 정강머리에 차는 보통강을 건너갔다. 복실이 모도 따라 건너갔다. 강을 다 건너고 나더니 인선이는 우뚝 돌아섰다. 복실이 모는 달려들어서 아들을 붙들고 늘어졌다.
“인선아, 얘, 어딜 가니? 엉, 너 왜 그러니? 엉?”
인선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한참을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고 서 있더니 아주 침착하고 매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마니, 난 아무래도 가야 돼요. 아바지를 따라가야 되디요. 날더러 어서 오래는데, 데 북소리가 들리지 않소? 날 부르는 아바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소! 한 사람 더 있구 없는 데……·아바지두 그 한 사람, 나 또 그 한 사람……그 한 사람 그 한 사람 들이 가야 돼요. 가야 돼요.”
그러고는 인선이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달음질해서 보통벌 저편으로 달아났다. 복실이 모가 기를 쓰고 뒤를 쫓아갔으나 늙은 노파의 기력으로 젊은 아들과 경주하여 따라잡을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복실이 모는 대타령 부근까지 쫓아가보았으나 아주 아들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노파는 더 뛸 기운도 없어서 허덕거리면서 고개를 넘어가보았으나 인선이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복실이 모는 촌길 가에 뒹굴면서 실컷 울었다. 그러나 그 울음이 이미 가버린 아들을 도로 불러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북소리의 이끄는 힘은 어머니의 눈물의 힘보다도 더 힘센 것이었다.
7
복실이 모를 겨우 달래서 방으로 내다 뉘고 나서 나는 방 안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 이 사건을 머릿속에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음미하여보았다. 네 살 난 내 아들놈은 멋도 모르고 북을 목에다 걸고 박자도 없이 두드리면서 방안을 좁아라고 헤매고 있었다.
그 박자 없는 북소리는 차차 내 머리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끄는 북소리! 지금 멋도 모르고 북을 두드리며 안방을 헤매는 저 네 살 난 내 아들놈, 저놈이 또한 자라나서 한 사람이 될 때에는 한 사람을 부르는 그 북소리를 따라서 나와 제 어미를 내버리고 가버리지 않겠다고 누가 담보하겠는가.
내 머리는 차차 이 북소리에 정복되어, 이 북소리 이외에는 다른 존재는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듯이 느껴졌다. 내 머리, 내 전신, 온 집안, 마침내는 온 우주가 이 박자 없는 북소리로 가득차서 울리고 흔들리고……
두둥둥! 두둥둥!
-끝-
2016년 4월 1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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