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길을 묻다]
"일본도 原電사고때 국민성 탓했지만… 도움 안되는 패배주의일 뿐"
'후쿠시마 原電' 민간 조사委 주도… 후나바시 前 아사히신문 주필
세월호 참사, 한국문화 탓으로 돌려선 발전 없어 사고 因果관계 명확히 밝혀내 시스템 고치는 게 급선무
日원전, 안전 神話와 部處간 칸막이가 만들어낸 人災 국민신뢰 위해 민간 조사委 필요했다… 한국도 고려할만
日, 예상 밖 쓰나미 덮치면서 매뉴얼이 무용지물 돼… 매뉴얼에 없는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전 아사히(朝日)신문 주필은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가 나자 민간에 의한 독자 조사를 고민했다. 그는 자신이 이사장을 맡은 '일본재건(再建)이니셔티브'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6개월간 조사를 거쳐 4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본의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는 안전 신화, 부처 간 칸막이주의, 진짜 위기에 속수무책인 매뉴얼주의, 독립성 없는 안전 규제 기관이 만들어낸 인재"라고 결론 내렸다. 후나바시 전 주필은 "기관의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과 권한이 불명확해 신속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 조기 수습에도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16일 도쿄에서 만나 한국 사회가 세월호의 비극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에 대해 물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민간이 독자적으로 조사한 이유는 뭔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사고 이후에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 교훈을 국민이 공유하고 시스템을 정비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정부의 조사위원회도 있었지만, 책임 문제 때문에 진실에 제대로 접근하기 어렵고 국민의 신뢰를 받기도 쉽지 않다. 정부 조사는 책임 추궁을 전제로 한 조사일 수밖에 없어 관련자들이 자기변명이나 조직 보호용 증언을 하기가 쉽다. 민간의 시각에서 조사하면 정부가 밝혀내지 못한 사고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고 봤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민간 조사위원회를 주도했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원전 사고 당시 일본의 문화나 민족성을 탓하는 분석도 있었지만, 이는 자칫 패배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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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는 객관성·공정성 문제가 따른다.
"민간 조사위원회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편중되지 않은 중도적 입장의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원전에 반대하거나 원전에 찬성하는 입장이 강한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만들면 조사를 하기도 전에 결론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 또 책임론을 너무 앞세우면 당파적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진실을 찾아내는 조사라는 인식을 공유했고 증언자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정부 조사에서 밝히지 않았던 사고의 숨겨진 진실도 털어놓았다. 한국의 시민사회도 이번 사고에 관한 독자적 조사를 한다면 사고의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책임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원전 사고와 관련, 과거 오랜 기간 집권했던 자민당 탓이라는 주장과 당시 집권했던 민주당 정부가 사고에 잘못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의견을 잘 용납하지 않는 일본의 문화, 일본인의 민족성 때문이라는 식의 분석도 나왔다. 그런 주장은 문화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식의 허무주의, 패배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를 전후해 관련 조직의 누가, 어떤 판단에 기초,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명확하게 조사해야 구체적 잘못과 책임도 드러나고 사고 재발을 위한 효과적 대책을 만들 수 있다."
―세월호 사고로 한국이 삼류 국가라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어린 학생이 너무 많이 희생돼 국민적 슬픔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고 이후 한국 사회의 논의가 너무 극단적으로 흐르는 것 같다. 사고가 한국 문화의 탓이라거나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식의 주장은 진정한 사고 원인을 밝히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이룬 경제적 성장과 민주주의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사고에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는 만큼, 그것을 밝혀내야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고 책임이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국회가 희생된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당분간 '정치 휴전'을 선언하고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 진상을 조사하고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책임 추궁을 앞세우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몽땅 뒤집어씌우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위기 수습 과정에서도 국가와 국민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다."
―대통령의 사과 방법을 놓고 논란이 됐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과하는 것은 충분한 조사와 대책까지 마련한 후에 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무조건 사과부터 하는 것은 퍼포먼스이고 정치적 쇼로 그칠 수 있다."
―승객을 구해야 할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 충격을 줬다.
"승객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순직한 승무원들도 있지 않았는가.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책임을 다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교훈도 얻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사고 수습을 주도해야 할 원자력안전보안원 직원 4명이 겁을 먹고 먼저 현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사고 현장을 끝까지 지킨 책임감 있는 직원도 많았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무책임한 직원을 만들어낸 조직과 교육 시스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찾아내야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사명감과 위기 대응 능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전 규제 기관에도 문제 많았다.
"안전 규제 기관이 아무리 많아도 독립성, 투명성,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일본의 원전을 관리 감독하는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경제산업성 산하기관이었다, 독립성이 없다 보니 안전 규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전문성도 중요하다. 전문성이 부족하면 업계에 휘둘릴 수 있다. 규제기관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투자를 해야 한다."
―일본은 안전 지침(매뉴얼)을 잘 갖춘 사회 아닌가.
"진정한 위기는 매뉴얼의 범위를 벗어난 위기이다. 원전 사고 당시 예상을 뛰어넘는 쓰나미가 덮치면서 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됐고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 평소에 매뉴얼에 따른 훈련만 되풀이하면 진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원전 사고의 교훈은 매뉴얼에 없는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특징은.
"일본 정부는 1995년 한신 대지진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교훈을 살려 총리실 직속으로 위기관리센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원전 사고 당시에 대응이 불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위기관리센터에 현장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사고 전체에 관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받아 전체 상황을 파악해서, 정부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조직과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경찰·군대·지자체·민간 등 각 분야가 아무리 열심히 대응해도 전체 상황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세월호 사고에서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본다."
―일본재건이니셔티브는 '일본의 위기 시나리오'라는 책도 냈다.
"지진·에너지·안보 등의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어 국가 전체적 대응과 시스템을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원전 사고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봤다. 물론 정부도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부처 간 칸막이주의 때문에 전체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 원전 사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후나바시 前 주필은 누구]
1968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했으며 워싱턴·베이징 특파원, 주필을 역임했다. 국제 감각을 갖춘 일본 대표 칼럼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일본의 고립’, ‘냉전 후 잃어버린 시대’ 등 저서 20여권을 냈다.
차학봉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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