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로 수장된" 박성호군 어머니 정혜숙씨,
“건질 수 있는데 지연하면서 건지지 않는 것 목격했다. 이것은 대학살”..
독실한 천주교 주부의 분노폭발 http://t.co/bOeUSGvTSJ 숨진 아들은 성당에서 복사로 있던 예비사제였다.
세월호 참사로 예비신학생 아들 잃은 정혜숙 씨의 호소 “기도를 넘어 행동으로”
“‘부활’은 희생자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 막고, 서로 살리는 세상 만드는 것”
2014.06.09 (월) 12:30:30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세실리아) 씨 ⓒ정현진 기자
6월 4일, 세월호 참사 이후 50일째.
이날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박성호(임마누엘) 군의 18번째 생일이었다. 박성호 군은 참사가 일어난 지 8일 만인 4월 23일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온 가족이 안산 천주교 선부동성가정본당 신자였고 박 군은 복사로 활동하면서 사제를 꿈꾸던 예비신학생이었다.
성호 없는 성호의 생일을 단 한 번도 지낸 적 없었다는, 박 군의 어머니 정혜숙(세실리아) 씨는 이날 다른 날보다도 더 무너지는 마음을 돌볼 사이도 없이 유가족 대표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
“성호는 워낙 착했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아이였어요.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싶어 했으니까, 분명 하느님 품에 안겨 있을 거라고 믿어요. 오늘 성호에게 가서 부탁하고 왔어요. 우리는 너무 힘이 없으니까…… 아직도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 1분, 1초라도 빨리 부모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네가 같이 하느님에게 전구해 달라고요. 우리가 힘이 없지만 그래도 애쓰고 있으니까……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다면, 천상의 힘으로 부디 이 일을 해결하게 해달라고. 더 이상 누구도 이렇게 죽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왔어요.”
면담이 끝나고 함께 안산 합동분향소로 향하는 길, 품에 없는 아들의 생일을 챙기는 방법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정혜숙 씨는 이야기를 하다가 채 말끝을 맺지 못했다. 다만 아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왔노라고 전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제 성호는 이 세상에 없어.”
성호 군의 아버지는 함께 팽목항으로 달려가던 길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학교에서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의 연속이었고, 이어지는 오보를 보면서 최악의 상황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엄마이기 때문에 그래도 한 줄의 희망을 놓을 수 없어서, 단 한 명이라도 살아오기만을 바랐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4월 16일로부터 3일간,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점점 가라앉고 있는데, 구조는 하지 않고 부모들을 대상으로 브리핑부터 시작했다. 실종자 가족들을 대하는 이들은 단지 가족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구조가 이뤄지지 않은 그 시간동안 아이들이 수장되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그 다음에는 주검이라도 건져 달라고 애원해야 했다.
정혜숙 씨는 “사고 후 3일 내내 그렇게 우리는 농락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배 안에 갇힌 순간부터 50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일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분노와 실망, 좌절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왜 우리일까? 그 의문을 떨칠 수 없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이지? 우리는 가진 것도 없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저항하지 못하고 금방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왜 감추려고만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사람은 본래 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 현장에는 인간적인 모습, 선한 의지, 위급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모습이 없었어요. 왜 유가족을 감시하고 모든 언론을 막아야 했는지 국가는 분명히 이야기해야 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함께 겪고 함께 품고 있는 의문입니다.”
정혜숙 씨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에서 봉헌되는 추모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정혜숙 씨는 “이것은 대학살”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 사태가 단지 ‘무능함’ 때문이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역시 가만히 있었을지 모른다”면서, “우리는 무능을 넘어 모든 거짓과 음모를 겪었고, 건져낼 수 있었던 아이들을 시간을 지연하며 건지지 않은 것을 목격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정혜숙 씨는 최근 시작된 국정조사 논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첫날 국정조사 방청을 위해 국회를 찾아갔을 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또 한 번 가족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국정조사를 통해 성역 없는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음에도, 국정조사를 위해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국정조사에서도 희망을 찾을 곳은 없었다. “결국 이 조차 가족들이 나서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차라리 정부가 없다면 시민들과 함께 조사하고 밝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혜숙 씨는 진상조사단 구성마저도 가족들끼리 서로 연락하면서 아는 전문가를 찾고 있다면서, 가족들은 실질적으로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언론을 통한 정보는 더 이상 믿을 수도 없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정부가 진정성을 가져야 성역 없는 조사가 가능한데 지금까지 확인한 것은 “의심스러운 정황,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실종자들을 건지지 못한 것도 큰 문제지만, 희생자 가족들과 안산 지역에 대한 지원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이라면 모든 일이 그 지역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지원마저 가족들이 요청해야만 고려되는 상황이다. 정혜숙 씨는 “안산의 상황은 팽목항과 똑같다. 무엇이 재난지역인지 모르겠다”고 물으면서, “재난의 피해자들에게 동냥을 주듯 대하는 정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혜숙 씨는 아이들이 배 속에서 정부와 어른들이 구해줄 것이라 믿었듯 우리도 국가를 믿었다면서, “이렇게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국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희생되고서야 그것을 알았으니, 그 대가가 얼마나 큰가”라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이 시점에서 치유와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라고 호소한다. 정혜숙 씨 역시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트라우마 치유는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라면서, “진상을 밝히지도 않고, 나중에 무엇을 해주겠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정혜숙 씨(왼쪽 두 번째) 등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과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만남이 이뤄졌다. ⓒ정현진 기자
현재 가족대책위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일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만나 호소한 것도 서명운동부터 진상규명까지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서 가족들만의 노력으로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보상을 받으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막아야겠기에 병든 몸과 마음으로 나서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과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호소합니다. 지금까지 미사와 기도로 함께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힘이 굉장히 크고 중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행동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서명해주시고, 함께 선언해주십시오.”
정혜숙 씨는 부활을 믿는다고 했다. 성호 군을 비롯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부활이란 그들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막고 서로를 살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때에야 이 안타까운 죽음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다고 정 씨는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매일 오후 8시에 봉헌되는 추모 미사를 함께 드렸다. 미사 끝에 마이크를 잡은 정혜숙 씨는 미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다시 한 번 호소했다. 비단 미사 참가자만이 아닌 교구민들에게, 한국 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모든 시민들을 향한 호소였다.
“저희도 힘을 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저희와 같은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을 냅니다. 지치고 힘들고 너무 아픕니다. 밥 한 술 뜰 힘도 없는 저희가 힘을 내려고 합니다.
50일이 지난 지금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의 제 모습입니다. 제 가슴에 이런 큰 상처가 생기기 전에 저 또한 누구의 아픔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바꿔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했고 지금 제가 제 아들을 이렇게 잃는 아픔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은 누가 될지 모릅니다. 이대로 놔둔다면 고귀한 생명이 더 많이 아픔을 겪고 우리는 또 울부짖다 말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방법으로든 함께 나서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여러분의 아픔은 막아야 하겠기에 이렇게 호소합니다. 제발 함께해주십시오. 잊지 않겠다는 그 말씀,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제발 더 이상 놓치는 생명이 없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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