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과 씨(氏)는 어떻게 다른가
“자네는 성이 무엇인가? 그대는 어디 김씨요? 저 사람의 성씨는 무엇이오?”
우리는 이렇게 성과 씨를 혼용하여 쓰고 있다. 그런데 성과 씨는 원래는 다른 개념이었다. 그러면 성과 씨의 내면을 살펴보자.
성과 씨는 한자문화권에서 혈통 표지와 그 지파 표지를 가리키는데, 한국·중국·일본에서 쓰임과 의미가 약간 다르다. 우리나라는 성은 부계 혈통의 표지로 대대로 계승되고, 씨는 동일 혈통의 분산 일파를 표시하는 표지로 본과 유사하다. 한국은 성과 이름을 성명이라 하고, 일본은 씨명이라 하며, 일본의 씨는 지명에서 따온 경우가 많다. 일본은 성은 가문의 이름, 씨는 가문이 소유한 땅의 이름으로 구분해 사용한 것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 성 제도는 폐지되고 씨만 사용하게 되면서 부부동성 제도가 확고해졌다.
중국은 선진(先秦) 시기에는 성과 씨가 달랐다. 성은 모계 씨족사회에서 발생했으며 씨는 성에서 갈라져 나왔다. 진한(秦漢) 이후 성(姓)과 씨(氏)가 점차 하나로 합쳐져, 한 대(漢代)에는 성(姓)이라고 통칭(通稱) 되었다. 한대에 이르러 성씨로 통칭되었고, 씨는 귀천을 구별하는 표지로 귀족 남자만 가질 수 있었다.
성(姓)과 씨(氏)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혈통과 집단을 구분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본래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성(姓)은 출생의 혈통, 즉 한 집단의 계통을 나타내는 표지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모계(母系) 혈통을 중심으로 했으니, 성(姓)이라는 말 자체가 여자[女]가 낳았다[生]는 뜻이다. 같은 성을 가졌다는 것은 동일한 여자 조상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성은 변하지 않는 집단의 근간으로,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은 먼 조상에서 갈라진 동일 혈통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성씨 중에는 ‘계집 녀(女)’ 부수가 붙는 성들이 매우 많았다. 이는 고대 중국 사회가 모계 사회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특징이다. 서주(西周) 시대 청동기 명문에 확인되는 초기 성씨들은 거의 대부분 ‘女’ 변이 붙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희(姬): 주(周)나라 왕실의 성씨
강(姜): 염제(炎帝)의 후손인 강태공(姜太公)의 성씨
사(姒): 하(夏)나라 왕실의 성씨
영(嬴): 진시황(秦始皇)이 속한 진(秦)나라 왕실의 성씨
요(姚): 순(舜) 임금의 성씨
규(嬀): 순(舜) 임금이 요(姚)에서 규(嬀)로 성을 바꾸었다 함
이 외에도 고대에는 임(妊), 길(姞), 괴(媿), 호(好), 비(妃) 등이 있다.
씨(氏)라는 것은 동일한 혈통(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지로 분산되어 살게 되면서, 분파된 일족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지이다. 씨는 주로 거주지(지명), 조상 이름, 관직명 등에서 유래했으며, 신분이나 지역 집단을 나타내는 의미가 강했다. 강태공의 본명을 강상(姜尙) 또는 여상(呂尙)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강(姜)은 본래의 성이고 여(呂)는 그의 조상이 여(呂)라는 곳에 봉(封)해졌으므로 이 지명에 따른 이름인 씨(氏)이다. 진나라(晉) 군주의 집안은 성이 희(姬)였는데, 희성은 이후 자손이 늘어나면서 수십 개의 씨로 분화되었다. 하나의 씨족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인구의 증가로 몇 개로 갈라지게 되고, 이 새로 갈라져 나온 씨족은 다시 새로운 토템이나 거주지를 자신들의 명칭으로 함으로써 성의 가지가 생겨났다. 현응(玄應)이 쓴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성은 위에 있는 것이고, 씨는 아래에 있는 것이다.’라 한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씨(氏)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갈래를 열거하면 이러하다.
제후는 분봉 받은 국명을 씨로 삼음: 하씨(夏氏), 주씨(周氏).
경대부(卿大夫)는 하사받은 체읍(采邑)을 씨로 삼음: 제나라의 최씨(崔氏), 포씨(鮑氏).
관직을 씨로 한 경우: 사마씨(司馬氏), 사공씨(司空氏).
조부(祖父)나 부친의 자를 씨로 한 경우: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시호를 씨로 삼은 경우: 문씨(文氏), 무씨(武氏), 소씨(昭氏).
작위를 씨로 씨로 삼은 경우: 왕씨(王氏), 후씨(侯氏).
거처를 씨로 삼은 경우: 남궁씨(南宮氏), 백리씨(百里氏).
그리고 춘추 시기에는 귀족 남자들이 성을 칭하지 않았는데 이는 성은 태어나면서 얻는 것으로 씨(氏)만 말하면 곧 성(姓)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씨의 개념은 본관(本貫)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경주김씨’, ‘전주이씨’처럼 성과 본관이 함께 쓰인다. 본관 제도는 처음에는 그 사람의 출신지를 나타내었는데, 예컨대, ‘안동김씨 철수’라고 하면 안동 출신의 ‘김철수’였다. 처음에는 출신지를 나타내던 본관이 점차 사람의 신분 및 집안을 나타내는 이름이 되었다. 즉, 본관이 씨족의 발상지뿐 아니라, 그 씨족(동본)의 집단적 신분까지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씨는 성에서 갈라진 하위 집단을 의미하며, 신분의 귀천을 구분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귀족만 씨를 가질 수 있었고, 평민은 이름만 있거나 씨가 없었다.
고대 중국과 한국에서는 성과 씨를 엄격히 구분했으나, 한(漢)대 이후에는 두 개념이 혼용되면서 점차 구분이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성씨’라는 말로 통합되어 사용되며, 실질적으로는 성(姓)이 중심이 되고 씨(氏)는 본관 등으로 남아 있다.
또한 시조(始祖)의 성이 이미 오래되어 단지 시조의 성만 말해서는 현재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방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에게 그 조부(祖父)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씨를 칭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씨는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심했다. 특히 제후(諸侯)와 경대부(卿大夫)의 경우 1대 사이에 씨가 바뀌기도 하였으며, 동일한 사람이 서로 다른 씨를 갖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