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ASEM2000을 반대할까!!!

[Anti-Asem]

왜 아셈 2000을 반대해야 할까?

10월 20∼21일 서울에서 25개 아시아와 유럽 나라들의 정상들이 참여하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린다. 김대중 정부는 "세계 정상외교의 장(場)이 서울서 펼쳐질 뿐 아니라 우리 나라가 의장국으로 이 회의를 주도해 나가게 된다는 것은 한국 외교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자신의 '치적' ― 소위 '경제 위기 극복'과 '통일 지도자'― 을 국제적으로 과시하고 싶어하는 김대중 정부는 삼성동 아셈 국제 회의장을 짓는 데만 무려 1조 5천억 원이나 쏟아부었다.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낭비인가.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편, 빈부격차는 되레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통계청, '도시근로자가구 가계수지 동향', <조선일보> 9월 8일치), 정부는 우리의 삶과 아무 관계 없는 엉뚱한 곳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 보장을 희생시키는 것은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즐겨 하는 일이다. 9월 26일부터 시작되는 IMF와 세계은행 연례 총회를 위해 체코 정부는 960억 원을 들여 특별히 회담장을 건축했다. 이 돈이면 집 없는 1만 명의 체코인들에게 괜찮은 집을 지어 줄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군사 독재자 노태우가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노점상과 철거민들을 싹쓸이했던 전례를 따라, 한국 거리의 "깨끗한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며 강남 일대 노점상들에 대한 대대적 '청소'에 들어갔다.

김대중 정부는 시애틀과 워싱턴의 악몽이 서울에서도 재연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시위대들에 대한 탄압을 준비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특수 경찰들이 시위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얼마 전 TV 뉴스에서 육군 특수 부대가 아셈 회담장 부근에서 대테러 진압 모의 훈련을 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아시아와 유럽의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사회적 의제들 ― 인권, 빈곤, 균형 개발, 민주화, 환경 등 ― 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ASEM 2000 한국민간단체포럼은 김대중 정부가 사회적 의제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대중의 진정한 관심은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주들의 이윤 회복이다. 그는 자신이 IMF와 국제 자본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하반기에 4대 부문 ― 금융·기업·공공·노동 ― 구조조정을 강행하려 하는 것이다. 김대중은 한국전력, 체신, 철도 등 공공부문, 금융 기관, 대우자동차, 제2금융권 등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다국적 자본에 경제를 더욱 개방하고, 국유 기업들을 사기업화하고, 노동자들의 권리와 임금과 노동 조건을 공격하고, 필수적인 공공 지출을 가혹하게 삭감하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장시간 노동, 더한층의 착취를 강요당하게 된다.

아셈 ― 제국주의간 경쟁의 산물

아시아 10개국과 유럽연합 15개국 정상들 그리고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참여해 2년에 한번씩 아시아와 유럽을 번갈아 가며 열리는 아셈은,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를 다루는 정부간 협력체다.

아셈은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에 대항하려는 유럽의 견제와 경쟁의 산물이다. 1990년대 들어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동안 아시아 나라들에 가장 커다란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특히, 1989년에 발족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통해 아시아 시장을 지배해 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뒤늦게 아시아 시장에 뛰어든 유럽은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해야 했다.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유럽 제국주의의 경쟁과 도전의 결과로, 1996년 3월에 아셈이 창설됐다.

지난해 10월 베를린에서 열렸던 아셈 경제각료회의는 미국과의 날카로운 갈등을 드러냈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미국의 반덤핑법과 WTO 뉴라운드의 의제 범위를 둘러싸고 미국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WTO 뉴라운드에서 미국의 반덩핌법에 대해 공동 대응하겠다고 결정했다. 한편, 아셈 참가국들은 뉴라운드 의제를 폭넓게 설정하고 ― 무역촉진, 외국인 직접 투자, 다자간 무역체제의 발전 등 ― 모든 의제는 일괄 타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취한 반면, 미국은 농업 및 서비스 분야의 의제들을 제외한 추가 의제를 최소화하려는 입장이었다. 또, 미국은 일괄 타결이 아니라 의제별 합의를 이끌어 내려 했다.

한국에 투자된 해외 자본 가운데 일본 자본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에 유럽의 대(對) 한국 투자 비중도 늘고 있다. 유럽 연합(EU)은 우리 나라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 가운데 44%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지난해에는 한국에 투자된 해외 자본 가운데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유럽 연합은 일본에 이어 두번째 주요 대(對)한국 해외 자본 투자국이다.

유럽과 일본 다국적 기업의 탐욕

아셈의 주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가 회원국 간의 무역·금융·투자 자유화 등을 다루는 경제 분야다. 아셈 특별 대책위인 아셈 비젼 그룹(ASEM Vision Group)의 보고서에 따르면,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강화하고, [WTO]뉴라운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셈의 중요한 과제"다. 아셈 참가단 가운데 기업 경영인들이 250명이나 포함돼 있는 것만 봐도 아셈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아셈의 주요 목표는 2025년까지 아시아와 유럽간 무역·투자 장벽을 완전히 철폐함으로써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을 자유 개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국적 자본에게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자유 시장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즉, 기업 활동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세계 무역을 더욱 '자유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강요가 낳은 끔찍한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유 시장 정책은 세계를 거대 다국적 기업의 착취에 노출시킬 것이다.

최근 한국 기업이 유럽의 다국적 기업에 매각된 사례는 이 점을 얼핏 보여 준다. 아셈 회의의 유럽과 아시아 정상들은 인수·매각이 "세계화를 위한 협력 강화"라고 부르지만 대기업 경영진들과 정부들이 서로 회사를 팔아 넘기고 헐값에 사들이는 동안 피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 기업주는 자산 가치가 1조 2천억 원에 이르고 투자 금액이 자그마치 5조 원이나 들어간 삼성차를 단 돈 5억 6천만 달러(6천2백억 원)에 꿀꺽 삼켰다. 거의 모든 경제 전문지들은 이 가격이 "거의 공짜"였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삼성차 채권단은 대금 지불 기간과 방식에 대해서도 엄청난 선심 조처를 베풀었다. 6천2백억 원 가운데 1천1백억 원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10년간 무이자로 나눠 갚게 했고, 장사가 안 되면 부채도 무기한 연기해 주기로 했다. 김대중 정부는 르노에게 삼성차의 막대한 부채를 탕감해 주었다. 대신 삼성차가 남긴 거대한 빚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됐다. (반면 이건희는 삼성차에서 나올 이윤과 지분을 어느 정도 챙겼다.)

김대중은 삼성차가 르노로 매각되면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르노는 2만 명을 해고시킨 바 있는 일명 '공포의 다이어트'라는 구조조정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이 '다이어트'는 거대 가정 용품 및 식품 회사인 유니레버 사(한국의 도브 비누 생산 업체가 바로 유니레버 코리아다)가 비누 공장을 13개에서 4개로 줄인 '다이어트'나 자그마치 80개의 공장을 폐쇄시킨 유럽 필립스의 '다이어트'보다 더 유명하다. 삼성중공업을 인수한 볼보는 삼성의 중장비 공장을 사들이면서 인력 감축 압력을 넣었다. 이것이 바로 아셈이 표방하는 "자유로운 투자 환경 조성"의 본질이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올해 안에 체결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한일투자협정은 부자들의 "자유로운 투자 환경"이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더 나쁘게 만들 것임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미국과 유럽연합(EU)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아시아 내에서 독보적 위치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일본 정부는 대만을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권'에 통합시키고 한국경제를 더욱 자신의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얼마 전 <산케이> 신문은 한일투자협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한일투자협정이 체결되면) 1억7천만 명 인구를 가진 시장이 형성된다. 달러·유로의 2극 경제권에는 못 미치지만 엔 경제권 형성을 위해 확실하게 한걸음 내디디게 된다.”

한일투자협정의 핵심 내용('진지조항'이라고 부르는)은 "한국 진출 일본 기업의 한국인 직원 의무고용제 등 투자 장벽을 없애고", "상품 및 검사·서비스 기준을 통일한 뒤 종국적으로 관세를 철폐함으로써 단일 시장"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핵심 요구를 간추리면 첫째, 무역과 투자에서 과감한 세금 감면, 둘째, 한국인 의무 고용제 폐지·고용승계 거부 권리 인정, 셋째 노동조합이 파업했을 때 한국 정부의 강력한 개입 및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 요약된다.(이 외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 부품을 사용하지 않을 권리, 기술 이전을 하지 않을 권리도 덧붙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인들이 노사 분규에 휘말렸던 경험이 많아 이를 대(對)한 투자의 장애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우려에 대해 김대중은 "21세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해 일본 기업주들에게 각종 세금을 감면해 주고, 일본인 기업의 노사 문제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배치하겠다고 답변했다.

아셈이 내걸고 있는 자유무역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김대중 정부는 환경·빈곤·인권 등 아시아와 유럽의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쟁점들을 거들떠 보지 않고 있다.

아셈은 "환경 재해 방지"를 분야별 협력 내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지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아셈에 참여한 기업주들 자신이 환경 오염의 주범이고 그들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쓸 마음이 전혀 없다. 예컨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방출 문제를 놓고 세계기후회의가 열렸을 때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방출량 규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기후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는 방출량 규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침에 찬성하도록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 기후동맹에는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과 토쿄 전기 회사도 포함돼 있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투자 환경"은 사람보다 이윤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번 아셈회의에서 유럽연합은 동·식물과 식품 검역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주장할 예정이다. 검역 규제가 완화되면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소고기와 오염된 애플 쥬스(실제로 네슬레는 1987년에 오염된 사과 쥬스를 팔았다가 전세계에서 불매 운동의 표적이 된 적이 있다) 등이 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검역 규제가 완화된 뒤 하루 평균 트럭 8백 대 분량의 수입 식품을 단 두 명의 검사관이 5∼10개의 상품만을 샘플로 조사하고 있다.

ASEM 2000 한국민간단체포럼이 기자회견을 통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아셈은 "민중의 삶을 외면하고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세계화"를 추구함으로써 "국제적 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 우리의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