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시집 {새해 첫 기적}에서
천체물리학자들은 우주에는 2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 우주가‘말의 우주’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이 세계는 말의 우주이며, 모든 생명체는 말의 사물과 말의 생명체라고 할 수가 있다. 말의 해, 말의 달, 말의 별, 말의 대지, 말의 밭, 말의 논, 말의 바다, 말의 파도, 말의 백사장, 말의 금은보석, 말의 소나무, 말의 풀꽃, 말의 사랑, 말의 혐오, 말의 그리움, 말의 절망, 말의 찬가, 말의 연인, 말의 바람, 말의 비, 말의 눈, 말의 산소, 말의 수소, 말의 비타민, 말의 단백질, 말의 눈, 말의 코, 말의 입, 말의 귀, 말의 사과, 말의 앵두, 말의 문학상, 말의 그림, 말의 음악 등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유와 느낌과 감정마저도 말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말에 의해서 태어났고, 말의 밥을 먹으며, 말의 대화를 주고 받는다. 말의 전쟁과 싸움을 하고, 말의 승리와 패배를 주고 받으며, 말의 똥을 싸고, 말을 남기며 죽는다. 이 세상의 근본물질은 원자가 아니라 말이며, 모든 역사는 말의 투쟁의 역사이다. 우리가 그토록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를 하는 것도 말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앎과 지혜는 최고급의 재화라고 할 수가 있다. 배가 고픈 것도 말이 고픈 것이고, 배가 부른 것도 말이 부른 것이다. 슬픈 것도 말이 슬픈 것이고, 기쁜 것도 말이 기쁜 것이다. 경제적인 소유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주인이 바뀔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또는 공자와 맹자처럼 말의 소유권은 천년, 만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축제는 말의 축제이며, 우리는 말의 축제를 즐기며, 이 말의 축제 속에서 죽어간다. 서울의 축제, 동경의 축제, 북경의 축제, 런던의 축제, 파리의 축제, 뉴욕의 축제, 중남미의 축제, 그리고 수많은 영화와 음악과 문학과 미술과 체육과 춤의 축제 등----, 이 ‘말의 축제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황새는 날아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말은 뛰어서 말의 축제에 참여한다. 거북이는 걸어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달팽이는 기어서 말의 축제에 참여한다. 굼벵이는 굴러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바위는 앉은 채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모두들 다같이“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말)는 눈부신 태양이고, 맑은 공기와 맑은 숨결이고, 언제, 어느 때나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준다.
시의 기적은 새해 첫 기적이고, 새해 첫 기적은 모든 기적의 진원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