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모
대한민국은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라 데모를 많이 한다. 데모를 뉴스로 볼 때마다 나는 으레 1989년 봄에 북경의 천안문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 데모가 떠오른다.
그 데모의 환영 인파 속에 나도 가세하여 학생들을 환호하고 열렬히 응원 했다. 그리고 자비로 속보가 실린 신문을 사서 배포 하기도 했다. 아주 미약하나마 그 데모에 힘을 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해 중국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현대역사상 가장 잔인한 지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등소평이라고 대답하겠다.
1989년 4월에 시작된 중국의 민주화 데모는 줄곧 6월 초순까지 이어졌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데모였지만 어떤 데모이든 데모는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등소평은 당시 정치 라이벌인 공산당 총서기였던 조자양(赵紫阳)을 연금하고 본격적인 데모진압에 돌입했다.
6월4일 새벽, 북경의 하늘에 전운의 먹구름이 감돌았다. 마침내 탱크부대가 새벽의 고요를 깨뜨리고 천안문광장
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애국시민들이 아스팔트도로에서 몸으로 겹겹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탱크부대의 진입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그들은 학생들을 진압하지 말라고 탱크부대에 눈물로 호소 했다. 그러나 진압군은 막무가내로 애국시민들이 친 육의 장벽을 짓누르고 칭창을 하려고 천안문 광장으로 돌진 했다. 칭창이란 바로 진압의 대명사다. 칭창의 본래 뜻은 지저분한 현장을 정리 청소한다는 말이다.
등소평은 시위학생들을 아무데도 쓸모 없는 독성 쓰레기로 여겼다. 드디어 그들은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탱크로 무차별 깔아 뭉개고 짓이기는 초유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때 탱크에 압살 당한 사람들이 얼마인지는 통계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만명 이상으로 집계 되고있다.
천안문 민주화 운동은 사상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비폭력 평화시위였다.
시위학생들은 군 무기고를 탈취하여 무장폭동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시위학생들은 무력으로 공안국 청사를 점거하지도 않았다. 시위학생들은 무력으로 정부 청사를 장악하지도 않았다.
시위자들은 무력으로 해방군과 대적하지도 않았다.
몸에 바늘 한개도 지니지 않은 그런 시위학생들을 등소평은 탱크부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깔아 뭉개고 짓이겨서 천안문 광장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신은 포크레인으로 한데 모아 놓고 시너를 뿌려서 쓰레기처럼 소각해 버렸다. 사람이 넘쳐난다고 인간을 이렇게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할 수 있는가? 사람이 아무리 많기로 인간의 가치가 요것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6.4 탱크 압살을, 보면서 중국은 대국이지만 결코 강국은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 유가족들은 지금도 숨을 죽이고 살고 있다. 북경에는 천안문어머니회라는 조직이 있다. 그들은 매년 6월4일이면 자식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천안문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당국의 물 샐 틈없는
철통경비에 막혀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무엇인가.
이게 바로 사회주의다.
천안문어머니회 어머니들이
마음대로 천안문 광장에
들어 가서 자식들을 기리고 참배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