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12/선물]‘목엽천목 찻잔’을 아시나요?
“이렇게 귀한 선물을 그냥 받으면 쓰것소잉?” “괜찮소. 줄 때 싸게싸게(얼른) 받아가시오잉. 나중에 강냉이농사 잘 되면 한 100만원 후원허씨요잉. 그보다 열 배는 더 받아갈 수 있을팅개로” 축령산 도반형님은 아무리 귀한 것이더라도 무엇을 줄 때에는 아낌없이 줘버린다. 얼마 전 받은 다기茶器가 그렇다. 이름과 형태가 특이한 ‘목엽천목木葉天目’ 찻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아름답기까지 한 그릇에 차를 따라 마시다니, 황홀할 정도이다. 완전히 ‘듣보잡’. 검색을 해보니 중국 당․송나라때부터 고승들이 만들어쓰던 찻잔 이름에서 유래했다 하고, 그 사연이 지난 5월 12일자 한겨레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042665.html
참 별 일이다. 야생화 종묘사업을 하던 김종태(56) 작가, 초보 도공陶工이라는 그가 ‘목엽천목 다기’ 제작에 필이 꽂힌 것은 일본 잡지에서 우연히 관련기사를 본 때문이라고 한다. 그도 그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했다한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경우, 역사가 된다. 이런 경우가 그렇다. 잘 말린 단풍든 나뭇잎을 찻잔 속에 넣어 용광로 고열로 구워내는 것이다. 100개를 로에 집어넣어도 잘 하면 10개나 건진다니, 지난한 공예작품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진을 보아라. 신기하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밥을 담아 먹기에도 아까우니, 좋은 벗 오면 차를 나눠 마시리라. 최근 받은 선물 중에 으뜸이다. 도반형님의 말씀처럼, 이모작 강냉이농사가 잘 되면 큰 맘 먹고 ‘한 장’ 후원을 하리라, 마음 먹었다. 돈은 이렇게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써야 한다. 내가 능력은 한참 부족하지만, 전라도의 문화, 자연, 사람만을 다루는 향토잡지 <전라도닷컴>에 홍보이사를 자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왜냐하면 그 잡지는 끊임없이 나와야 하는 소중한 잡지이기 때문이다. 나를 봐서라도 아직 정기구독하지 않았으면 먼저 1년이라도 해보시라. 꼬오옥, 부탁이다. 나에게 돈 생기는 일은 더군다나 아니다.
화가이든 음악가이든 조각가이든 예술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예술가뿐인가. 시인이든 소설가이든 수필가든 문학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앙꼬없는 찐빵’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으리. 예술이 곧 우리 삶의 앙꼬이다. 예술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자. 얼마나 삭막할까? 아니 그 드라이한 삶은 상상이 안된다. 음악 한 곡, 그림과 조각 한 점, 시 한 편, 숙성된 소설 한 작품, 영화 한 편... 몇 천 년전에 인류의 조상이 그렸다는 알타미라동굴의 벽화 등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창작과 창조는 물론 고통일 터이지만, 그들은(이중섭, 박수근, 고흐, 베토벤 등등등등) 비록 신산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아름답고 윤택한 세상을 위하여 부단히 꿈을 꾸며 작품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우리 동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다. 그들이 착하고 좋은 뜻을 펼치도록, 우리가 아무 조건없이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평소 나의 소신이긴 한데, 능력이 부족하고 여건이 안되는 것을 늘 탓하지 않았는가.
세상이 역시 살만한 까닭은, 자청해서 후원회장을 맡고 작가의 작품활동을 지원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도반형님같은 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 다 저 살기 바쁜 마당에, 가난한 예술가를 위하여 입이 닳도록 떠드는 게 어디 우리같은 범인凡人이 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국보급 전각예술인(2021년 세계서예비엔날레 그랑프리 작가) 친구도 말과 글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직업과 꿈은 완전히 다르다. 변호사가 되는 것은 ‘목표이자 직업’이지만, 변호사가 되어 가난하고 힘 없으나 착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꿈’이다. 의사, 간호사 등 전문직종들도 마찬가지.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왜 되려는 것일까? 정치가가 되는 것은 목표이지만 정치인이 되어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꿈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초심을 잊어서 문제이지만, 어떤 이는 치부를 하려고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었고, '인간백정'이 되고도 죽을 때까지 뉘우치지 않았고 그 직을 친구에게 물려준 희대의 대통령도 있었다.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거늘, 배부른 탐욕의 정상배들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싸그리 가라! 아니, 추방을, 아니 완벽하게 판을 갈라치워야 한다. '그까짓 5년의 권력' 뭐 그리 대단하다'고 국민들에게 어퍼컷을 날리며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으니 그 귀추를 주목해보자. 흐흐. 남들을 우선 배려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는 흔치 않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싹수가 보이는 무명의 소리꾼’의 득음得音을 위하여, 7년여 동안 아무 조건없이 그의 ‘가정경제’를 책임졌다고 한다. 그런 분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그 결과, 그는 지리산 속에서 피나는 독공獨工을 한 끝에 명창이 되었고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소리꾼이 되었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는 『독공』이라는 책도 내고, 호주의 드러머와 함께 ‘땡큐, 마스터 킴’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K-뮤지션’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기똥찬 찻잔을 선물 받고 주위에 자랑을 해보았는데, 대부분 별로 감흥이 별로다. 역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 전과 판이하다'"는 말을 진리인 모양이다. 나는 자랑치는 등 좋아 죽겠는데, 보기도 아까운데 말이다. 아 참, 찻잔에 고스란히 들어앉아 있는 나뭇잎은 푸조나무 잎이라고 한다. 한 폭의 살아있는 세밀화細密畵가 아니고 무엇인가. 님이여, 친애하는 님들이여! 차 한 잔 마시러 혹시나 나의 우거寓居에 들른다면, 기꺼이 잘 모셔놓은 이 은은하고 아름다운 찻잔에 맑은 차 한잔 드리오리다. 바치오리다. 나의 할 일은 “그뿐而已”. 그나저나 옥수수가 좋은 값에 잘 팔려나가야 할 터인데, 그래야 후원이든 금일봉이든 할 것이 아니겠는가. 흐흐.
첫댓글 예사롭지 않은 찻잔!
그 스토리를 읽어보니 아하 이리 신비스럽다니, 감탄이 나오네요.
절강성 고승들이 음미했던 목엽차, 그 다기를 재현하려 했던 주인공, 목엽찻잔 그 장인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