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상정리 조씨 고가(宜寧 上井里 曺氏 古家)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기에 건축된 경남 의령군 화정면에 있는 창녕 조씨 고가이다.
1993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있다.
의령 상정리 창녕조씨 고가 대문채
이 건물은 대문채, 사랑채, 마굿간채, 중문채, 안채, 고방채,가묘,
별채, 광채 등 9채로 구성된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이다.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 표지판
창녕조씨(昌寧曺氏) 현감공파(縣監公派) 1세 조충가(曺忠可)가
함안에 거주하였으며, 2세 조달하(曺達夏, 1469~1494)가 의령 가례면
수성리로 이거하였고, 4세 조계헌(曺季憲, 1537년생, 후릉참봉)은
둘째 아들로 남쪽 7㎞ 거리의 화정면 상정리로 이주하였다.
사랑채와 마굿간채
그의 큰아들 조사남(曺士男, 1560~1592, 장악원 주부)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의 좌장군(左將軍)으로 참전하여
기강전투(岐江戰鬪)에서 순국하였다.
사랑채
이 집은 셋째 아들 5세 조사영(曺士英)의 후손인 10세 조유성(曺有成,
1750~1808)이 살림을 많이 일구어 현재의 주택을 신씨로부터 매입하였다.
14세 조균호(曺均灝, 1854~1899)는 1890년대에 사랑채를 신축하였다.
사랑채 마루
15세 조기현(曺岐鉉, 1872~1953)은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3·1운동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하였는데, 1915년에 별채를 중수(重修)
하였고, 1924년에 가묘(家廟)를 건축하였으며, 1948년에 사랑채를,
1949년에는 안채를 중수하였으며 현 종손은 19세 조병구(曺炳球)이다.
사랑채와 중문채 사잇문
자료에 의하면 의령 상정리 조씨 고가이며 조충가(曺忠可)를
1세로 하여 현 종손은 19세손 조병구(曺炳球)라고 되어있는데,
조선초기 대동보를 만들 때에 삼송(三松)을 1세로 하도록 통일하였으나
세수(世數)인 1세도 상이하고, 항렬자도 대종회에서 정한 항렬자가 아니다.
안채
종손이나 관리자를 만나서 사연을 들어 보고 싶었는데
대문채안에는 대봉감도 따서 늘어 놓았고, 대문앞에는 차량도
세워져있어 아마도 주인이 어디엔가 있을듯 하지만, 보이지 않아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채 돌아서 왔다.
별채
안채와 고방채 등
현재 상주하지는 않는것 같았지만 마루나 건물등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장독대
잘 가꾸어진 사랑채앞 화단
대문채 안쪽
대문 고리
돌담 바깥에서
상정마을 벽화(1)
상정마을 벽화(2)
상정마을은 담장곳곳에 벽화가 잘 그려져 있는 아담한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