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중대장(제23회)
전역하는 그날 까지
대한민국의 군대 계급장중 제일 높은 계급이 대장이다. 그런데 별 넷인 대장보다 더 높은 것이 오성장군 병장이라는 것이다. 물론 농으로 하는 말이다. 대장은 별이 넷인 大將이고 병장은 작대기가 넷인 兵長이니 將과 長은 하늘과 땅차이다.
병(兵)은 이등병부터 병장까지를 말 하는데 작대기 하나를 이등병(二等兵), 두 개를 일등병(一等兵),세 개를 상등병(上等兵)이라 한다. 그래서 이병,일병,상병은 이등병,일등병,상등병의 준말이다. 병장은 글자 그대로 병(兵)의 장(長)인데 밖에서 볼 때는 병장하면 제일 편하고 이등병 하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반직장에서 사장이 제일 편하고 할 일이 없으며 가장 말단 사원이 할 일이 많은 것처럼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회사에서 사장이 가장 할 일이 없고 편한 자리인가.
만약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장이 있다면 그 회사의 앞날은 뻔 한 것이다. 내가 중대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제일 먼저 바로 잡은 것이 이런 잘 못된 생각이었다.
그 결과 어느 때부터 인가 3중대는 이등병이 제일 편하다는 입 소문이 났다. 그렇다고 이등병은 아무 일도 안하고 병장이 다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전역하는 그 날 까지 자신이 달고 있는 계급장만큼 일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중대장인 나도 열외가 될 수 없었다.
전역은 현재까지 복무하던 역종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전역하는 그날 까지’의 전역은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그 날‘을 뜻한다.
현역 복무를 마치고 돌아가야 되는데 이일병은 ‘의가사 전역’을 했다. 멀리 전라남도 시골 에서 73세 되는 할아버지가 이일병 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그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편지의 내용 중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그 편지를 쓴 것도 할아버지가 직접 쓴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대필이었다.
“......네가 군 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많겠지만 돼지새끼 3마리만 보내달라......‘
할아버지는 이일병이 병역의 의무를 하기 위하여 월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용돈 정도의 월급을 받는 것을 모르고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 중대장은 이런 사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해서 이일병을 불러 면담을 해 보니 어렸을 일찍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던 것이다. 지금은 73세 되는 할아버지 한 분만 계시는데 자신이 아니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일병 모르게 선임하사급 이상 간부를 모아 이 문제를 놓고 회의를 했다.
돼지 새끼 세 마리 값을 모으는 것이었다. 우선 중대장인 내가 돼지새끼 세 마리 값의 절반을 내놓기로 했다. 다행으로 나머지를 십시일반 간부들이 협조로 돼지 새끼 세 마리의 값을 마련 할 수 있었다. 그 돈을 할아버지가 살 고 있는 해당 면장 앞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런 딱한 사정이 있는 할아버지가 계시니 관심을 가지고 이 돈을 면장님이 직접 할아버지께 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일병이 의가사 전역 대상이 되니 협조를 해 다라고 했다. 며칠 후 면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면장이 해야 될 것을 군이 먼저 알고 어려운 일을 했으니 고마운 일이며 송구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이일병은 의가사 전역 조치가 되었다. 모두가 중대장의 뜻을 따라 준 중대 간부들의 덕분이었다.
이일병은 가사 사정이 곤란 하여 의가사 전역을 했지만 김정호 병장은 조기 전역을 했다.
조기 전역은 군 복무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전역을 하는 것인데 00계획이란 보호사병 대상자에 포함 되어 만기 전역 2개월을 앞두고 조기전역을 한 것이다. 그 때 김병장은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것에 대하여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나 본인이 만기전역을 원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기 전역을 했다.
김병장이 전역하는 날.
전 중대원이 정문 밖에 나와 도열로 어깨 말을 태우고 마지막 환송을 해주었다. 그 전날에는 중대장 숙소에서 화기소대장과 중대선임하사관(인사계)을 동참 하여 저녁 식사를 하며 그동안 김병장의 노고를 격려해 주었다. 이것은 김병장 뿐만이 아니라 내가 중대장으로 부임 한 이례 전역병 환송식 행사로 해왔던 것이다. 마지막 정문을 나가기 전에는 중대원들이 맹호부대가와 함께 고별가를 부를 때는 모두가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나도 얼마 후 중대장 임기를 마치고 고등군사반교육에 입교하게 되어 중대장 지휘권을 후배 김대위에게 인계하고 떠났다. 중대장 이취임식을 할 때 많은 중대원들이 울었다. 어느 중대원은 꼭 떠나야 되느냐, 교육을 마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느냐고 묻는 병사도 있었다. 중대장 이취임때 중대원들이 눈물을 보이는 것은 거의 이례적인 것으로 중대장으로 군 지휘관이기전에 병사들에게 따뜻한 인간미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이임사 한 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오늘 까지 한 건의 사고 없이 무사히 임기를 마치게 된 것은 본인이 잘했다는 생각 보다는 여러분이 모두 단결해서 열심히 일 하온 결과라 보겠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일, 즐거웠던 일도 많았습니다. 금년 초 군 지휘 검열 교육 분야에서 93.5%로 야전군의 1위.
사단체육대회 참호격투에서 일등의 영광을 차지했을 때 그 기쁨, 병기 100% 가동 검열에서 1위, 체육대회에서는 물론 교육측정에서 모두 승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한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도 있었습니다......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대대ATT에서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최종목표를 우리중대가 탈취했을 때 여러분의 손등에는 모두 가시덩쿨에 긁히어 피가 흐르는 것을 볼 때 해냈다는 마음 한 편에는 아픈 마음도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병사 하나가 보이질 않았다. 표한치 일병이었다.